[198호 인터뷰] 노동(勞動)을 위하여 – 강희원 법학과 교수

 

강희원 교수는 변호사로서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1992년부터 본교 법과대학 및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노동법을 강의하고 있다. 그는『노동법 기초이론』,『노동헌법론』, 노자(勞資)의 사회적 자치조직법으로서 노사관계법』등 다수의 노동법 관련 저서와 기초법학 관련 논문을 공간했으며, 노동분쟁을 조율하는 경기지방노동위원회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공익위원을 지낸 경험이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노동과 그 권리에 대한 문제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달 17일 서울교정 제2법학관에 있는 강희원 교수의 연구실에 찾아 ‘노동의 권리’에 대해 대담을 나눴다.

 

노동의 주체와 권리

Q. 인간은 끊임없이 노동을 합니다. 이를테면 밥하기, 청소하기, 글쓰기, 운전하기, 기계 고치기, 대화하기 등 우리는 다양한 일을 합니다. 이 수많은 행동들 중 노동법에서 인정하는 노동은 무엇일까요?

노동의 의미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술가, 작가 등이 하는 창조적인 활동으로 영어로 말하자면 activity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일로서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서 하는 것, 즉 농부와 자영업자 등이 하는 노동으로 영어로는 work라고 표현합니다. 셋째는 labor라고 표현되는 종속노동인데 노동법에서 말하는 노동의 개념은 바로 이 세 번째에 속합니다. 노동법이 전제하는 노동은 개인이 자발적으로 하는 창조적인 노동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를 대전제로 하여 사용자의 지휘, 감독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종속노동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또한 모두 고용주에게 귀속됩니다. 사용자에 의해 지배되는 종속의 종류는 경제적, 계급적, 조직적, 인격적 종속 등 다양한데 종속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노동법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또한 종속성의 유무에따라 노동법의 적용대상인지 아닌지도 구별됩니다. 예를 들어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도 밖에서 하루 종일 열심히 일을 하지만 노동법의 보호 대상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자기 자신의 자본을 가지고 포장마차를 운영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종속노동만이 노동법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Q. 노동법이 전제하고 있는 기본 이념은 무엇이고, 그 체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요?

노동법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살펴보면 고대 물권법에서 근대 채권법, 현대 노동법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이와 같은 노동법의 흐름은 소유인격에 대한 노동인격의 회복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노동법의 이념은 근대 시민법적 질서를 일부 수정하여 노동자에 대해 생산자본이 갖는 사회적 지배력을 감축함으로써 어느 정도 건강한 자본주의 질서를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노동자의 정치적 자기 각성의 산물이기도 하지요.

노동법을 기본 이념에 따라 구분하면 크게 근로자보호법과 단결보장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근로자보호법의 목적은 근로자에게 일정 수준의 근로 조건을 보장하고 근로자 및 그 가족의 행복을 실현하는 데 있습니다. 법이념으로서는 생존권이라고 하는 인간의 존엄과 관계합니다. 근로자보호법이 근로관계에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은 공법적 사고(公法的思考)인데, 이에 의해 국가는 이른바 사회적 국가로서 근로관계의 성립과 그 내용, 종료에 간섭하게 됩니다. 근로시간의 제한과 일정 수준의 임금을 보장하려는 노동법 규범이 이 법의 대표적 본보기입니다.

단결보장법은 집단적 노사관계법입니다. 이는 형식적인 근로계약에 의한 사용자의 일방적인 결정을 노동조합과의 공동결정으로 대치하려는 발상을 전제로 합니다. 지금까지 개인은 자기 자신에게만 의존해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에 구속되어야 한다는 개인적 자기결정원칙에 의해 근로관계에서 사용자에 의한 임금 및 근로조건의 명령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에 집단적 법사상은 개인적 자기결정원칙의 허구를 내몰고 그 현실적 조건을 마련하여 사용자와 노동자 간의 대등한 협상을 가능하게 합니다. 개체로서 노동자가 가질 수밖에 없는 무력(無力)은 단체의 집단력에 의해 완화되며 노동헌법의 이념은 근로계약의 원칙과 동등하게 기본적 법 원리로 정립됩니다.

 

Q. 노동법이 대두하게 된 사회적 배경은 무엇인가요?

고대 그리스의 시민들은 자신의 노예를 부리면서 평화롭게 지냈습니다. 그때의 노예들은 사람이 아닌 주인의 소유물 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중세로 넘어오면서 노예제도에서 농노제도로 바뀌었지만 실상은 여전히 농노가 노동의 주체였습니다. 근대에 와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상품생산을 위주로 하게 되면서 산업노동자가 생겨났고 동시에 시민혁명을 통해 농노제도가 폐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전처럼 생산을 해야 하는 주체는 필요했기에 그 역할을 노동자 계급이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 중 계약이라는 제도를 통해 노동을통제하게 했는데 겉으로는 자기의사결정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노예나 농노들처럼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노동자들은 공장과 기계설비와 같은 생산수단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유일하게 소유하고 있는 자기 몸을 상품화하여 사용자에게 노동력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 당시 시민법은 그런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사용자와 노동자 모두 똑같이 평등하다고 보았습니다. 형식적인 법 논리 하에 경제력을 갖는 사용자가 노동자를 지배하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 시민법을 변경 또는 수정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는데 그것이 바로 노동법입니다. 노동법은 불합리한 자본주의 사회를 조금이나마 평등한 자본주의 사회로 바꾸려는 움직임입니다.

 

 

한국에서 노동에 대한 권리

Q. 우리나라의 노동법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합니다.

한국 노동법의 수준은 사실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현실적으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서 문제인 거죠. 우리나라에서 노동법은 1953년 6.25 전쟁 중에 제정됐습니다. 전쟁 중에 만들어졌다니 이해하기 참 어려우시죠? 6.25 전쟁은 3년에 걸쳐 진행되면서 많은 물자를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낙동강 이남 부산 지역에 많은 노동자들이 동원되어 군수물자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시 상황이다 보니 노동자들은 하루 종일 일하면서도 제대로 된 보수를 받지 못했고 생계를 잇는 것조차 어려워졌습니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했지만 먹고 사는 게 더 큰 문제였기에 전쟁 도중 파업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노동법이 다른 법보다 가장 먼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노동법이 제정됐지만 1987년 민주화의 바람이 불기 전까지 제대로 시행될 수 없었습니다. 그 후로 노동법의 수준이 약간 올라갔지만 현재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다시 후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경제의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외국 자본이 국내 시장으로 유입되고 있으나 이에 맞는 노동자들의 권익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외국 자본가들이 정치적 권력을 통해 한국 노동자들의 권리를 무시하고 그간의 노력을 헛되이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감정적으로만 대할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하고 문제를 자각할 수 있는 의식이 필요합니다.

 

Q. 얼마 전 중앙대학교에서 벌어진 청소노동자들의 파업과 관련하여 용역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우리 학교에서도 청소노동자들이 계속하여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 사람의 행동이 현행법에 위배된다면 그것은 명백한 불법입니다. 그렇지만 백만 명, 천만 명씩 현행법에 대해 불만을 호소하고 개정해야 한다는 시위를 벌인다면 그것은 더 이상 불법이 아닌 게 됩니다. 파업과 같은 투쟁은 새로운 법을 쟁취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모순적이게도 법은 위법을 통해 발전합니다.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스스로 법을 쟁취해야 합니다. 법은 정적인 정치이고 정치는 동적인 법입니다. 오늘 합법이었던 것이 내일 불법으로 바뀔 수 있고, 오늘 위법이었던 것이 내일 적법이 될 수 있습니다. 시간을 횡적으로 잘라보면 법은 계속 변하고 있고, 종적으로 자르면 그때그때 실정법이 나오는 것입니다.

 

노동을 위한 삶

Q. 교수님께서는 법의 다양한 분야 가운데 노동법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이신지요?

1970년대 후반 대학을 다니면서 야학에 나갔던 경험이 있습니다. 독산동이나 성수동에 있는 노트 공장 같은 곳에 가서 여공들에게 근로기준법을 가르쳤었지요. 그 당시엔 저도 노동법에 대하여 잘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법을 전공하고 있기에 특별강사로 초빙되어 당시 근로기준법에 대해 ‘1조는 어떠하고, 2조에는 무엇이 있다’는 식으로 읊고 왔던 것이지요. 독일에서 유학할 때는 법철학과 법사회학을 전공하고 노동법을 부전공했었는데 한국에 와서는 노동법으로 강의를 시작했죠. 법철학과 법사회학은 고시과목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그렇지만 노동법은 제가 생각할 때 가장 재미있고 역동적인 법 영역입니다. 노동법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피와 뼈, 살을 가진 노동자의 생존을 어느 정도 배려하기에 인간적인 법이라고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를 가장 구속하는 자본주의의 법이기도 합니다. 기존의 시민법을 수정하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그 이론을 전제하기 때문이지요. 다른 법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노동법은 사회적 갈등의 전선(戰線)이나 다름없습니다.

야학에 나갈 당시 30년 후 쯤에는 진정한 노동법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대가 오지 않겠느냐고 생각했었는데 아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남북으로 나뉜 분단국가라는 현실은 ‘노동’이라는 단어만 꺼내도 북쪽 노동당하고 연결되어 있다고 낙인 찍히기 십상입니다. 더불어 지금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정당이 존재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초식동물이 자신의 대표로 육식동물을 뽑는다면 생태계의 정치적 균형이 잘 지켜질 수 있을까요? 인간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대표를 뽑아야 하는데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지 못한 것 같아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Q. 앞으로 각 분야에서‘노동자’의 신분으로 살아갈 대학원생들에게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adi Said, 1935~2003)의『지식인의 표상』을 읽어 보기 바랍니다. 지식인은 진실을 밝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장 비판적인 것은 있는 그대로를 정직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빨간 것은 빨갛다, 파란 것은 파랗다, 까만 것은 까맣다고. 있는 사실을 부풀려서 거짓된 이야기를 한다면 허풍쟁이에 불과합니다. 갈고 닦은 지식으로 진실을 밝히느냐, 은폐하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법은 노동자의 삶의 질을 결정합니다. 그렇지만 자본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자보다 자기의 명령에 복종하는 노동자를 원합니다. 취업에 열을 올리고 있는 우리 사회는 노동법에 무지한 노동자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대학원생들이 노동법에 관심을 기울이고 제대로 알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스펙을 쌓는 것에 연연하기보다는 먼저 자신을 위해 노동법을 공부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날 대학이 노동자 양성소라면 모든 학생에게 기본적인 노동법의 내용을 가르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점점 더 많아지는 기분을 느낀 적이 있나요? 상대적으로 하나도 몰랐을 때 모두 다 아는 것 같지는 않았는지요. 모르는 게 많아진다고 해서 앎을 포기하는 어리석음은 없을 것입니다.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 더 많은 것을 알기를 바랍니다.

 

대담·정리 : 박혜영 │ hy000p@khu.ac.kr / 사 진 : 송영은 │lovericki@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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