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호 테마서평: 여성과 기술] 테크노페미니즘, 과학기술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 넘어서기

『신사임당 하이테크놀로지를 만나다』(김세서리아, 돌베개, 2014)

『테크노페미니즘』(주디 와이즈먼, 궁리, 2009)

『두뇌는 평등하다』(론다 쉬빈저, 서해문집, 2007)

 

우리는 종종 뉴스에서 ‘여성과 남성은 생물학적인 차이 때문에 성별에 따라 전혀 다른 특성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불면증은 생체리듬과 호르몬의 차이로 여성에게 더 많이 나타난다든가, 언어를 사용할 때 여성과 남성은 뇌의 다른 부분이 활성화되어 그 능력에서 차이가 난다든가 하는 실험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보통 성차(gender difference)를 증명해내기 위한 이런 방식의 조사는 단지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차이를 증명하기 위한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차이가 부각되면 부각될수록 각 집단은 서로 넘을 수 없는 고정불변의 본질적 특성을 갖는 것으로 되어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초점을 바꾸어 볼 필요가 있다. 두 성(sex)에 따른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왜 그렇게 중요한 ‘차이’로 회자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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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과학이 여성을 배제해 온 역사

 

전통적으로 권력을 가진 자가 피억압자를 지배하는 방식은‘배제’이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으로 분리하고, 남성과 여성에게 적합한 성역할이 정해져 있다는 이유로 많은 곳에서 여성들은 배제되었다. 과학 분야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론다 쉬빈저(Londa Schiebinger)는『두뇌는 평등하다』에서 근대 과학이 태동하는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이 영역으로 여성이 진입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던 배척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이러한 배제가 정당화되려면 여성이 과학에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해야 하거나 과학적 연구를 하기에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불완전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때문에 성차에 관한 많은 연구들은 단순히 ‘차이’에 주목한 것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젠더 관계를 고착화시키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내재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주류 지식 또는 지식 체계가 페미니즘과 만나게 되면 필연적으로 기존의 믿음과 시스템은 재구성 된다. 과학에서의 성편향을 시정하기 위해 처음으로 시도된 작업은 역사 속에서 비가시화된 여성을 끄집어내는 것이었다. 여성에 대한 차별의 근원이 무엇인지 밝히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여성들이 살아온 과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때문에 철저하게 여성이 배제되어 있는 영역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기여해 왔는지, 여성 과학자들의 업적을 발굴, 복원함으로써‘그곳에도 여성이 있었다’를 밝혀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는 데 한계가 있다. 여성의 공헌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이들의 활동이‘여성의 삶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가’보다는 남성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성과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자칫 여성을 가부장제 사회 속 희생자의 이미지로 고착화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즉 ‘여성 이 과학에서 배제되었다’라는 제기를 할 수는 있어도 여성이 주체적인 관점에서 기존 체계를 재구성하는 것까지 나아가지는 못한다는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은 과학에서의‘여성 참여를 배제하는 구조적 장애’를 밝혀내는 것을 넘어서서 지식이 생산되는 방식과 권력이 작동하는 구조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샌드라 하딩 (Sandra G. Harding)은 ‘지식은 늘 부분적이고 경합적이며 상황적인 맥락에서 이뤄진다’고

지적하였다. 다시 말해, 과학은 일반적으로 객관적, 보편적 진리를 추구한다고 여겨지지만 사실은 과학자 내부의 패러다임에 따라, 남성의 관점에서 구성된 부분적 지식일 뿐인 것이다.

페미니스트들 안에서 이러한 논점은 대체로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과학기술이 어째서 몰성적(gender-blinded)인가에 관한 지점에서는 견해가 갈린다. 해당 영역이 남성들에 의해 독점되어있어 그런 것인지, 아니면 과학기술 그 자체가 본래부터 남성 중심적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여성들이 점유하는 비중이 많아지게 되면 (하딩의 표현을 빌려) ‘강한’ 객관성을 갖는 지식이 될 것인가? 혹은 최첨단 기술을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기존의 젠더 권력 관계에 균열을 낼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반대로, 기술 그 자체가 남성 지배의 도구이며, 언제나 자연과 여성에 대한 파괴와 착취로 기능하였으므로 기존 젠더 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할 것인가?

예를 들어 재생산과 관련된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아이를 갖기 어려운 여성에게 ‘불임’은 더 이상 ‘운명’이 아니게 되었다. 생식에서의 신체적 한계를 기술이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분명 과학은 여성의 삶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점점 더 출산에 관여하는 행위들이‘의사/전문가’에게 집중되면서 여성은 의료 지식으로부터 소외되고, 더 나아가서는 그저 질병을 가진 환자로 취급된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또한 재생산 기술은 젠더에서만 부정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도 미래를 낙관하기 어렵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과학 기술의 부정적 효과는 젠더에 계급과 인종의 문제가 교차하여 발생하기도 하는데, 가난한 나라의 여성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지구 반대편에 사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커플에게 공공연하게 대리모로 컨택되는 문제 등이 바로 그것이다.

 

과거 성별 분업에 의한 성차별은 오늘날 기술로 극복할 수 있는가?

 

김세서리아는 과학기술이 기존의 젠더 질서에 균열을 내는 역할을 하면서도 여전히 성역할을 해체하지 못하고 오히려 강화되는 측면도 있다고 본다. 『신사임당, 하이테크놀로지를 만나다』에서는 한국의 전통사회에서 요구되었던 여성의 성역할이 현대 과학 기술에 의해 변화된 생활상을 다루고 있다. 모성과 생식 테크놀로지의 상보적 관계, 여성의 말과 글이 사이버 공간과 만나면서 확장되는 저항의 힘, 성형 기술의 힘으로 더욱 강화되고 있는 외모 가꾸기, 그리고 가사노동이 기기들과 만나면서 강화되는 분업의 강도 등을 다루면서 저자는 기술의 발전이 과연 성평등 사회로 가는 촉진제로 작용하는가 반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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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여성이 유교 질서 하에 직접적으로 성차별을 받았다면 오늘날 과학 기술은 기존의 남성과 여성의 권력 관계를 약화시키고 여성들의 활동 반경을 넓히는 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성별 분업의 압박이 사라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술의 발전은 역작용한다는 점이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여성들이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사이버 공간에서 적극적인 정치적 주체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여성과 장애인,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가득한 댓글들이 달린다. 생활시간조사 결과는 여전히 가사분담의 대부분이 여성에게 쏠려 있으며 그로 인해 이중 노동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반복하여 확인시켜 주고 있다. 빨래는 세탁기가, 밥은 밥솥이 해주는 것이 아니다. 가전제품이 지원하는 기능이 추가될수록 돌봄 노동을 주로 하는 여성에게는 더 ‘섬세한’노동이 요구된다.

 

기술에 대한 낙관주의와 비관적 숙명론을 넘어서서

 

김세서리아가 조선시대와 현대를 넘나들며 과학 기술이 젠더 권력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았다면 이에 대한 페미니즘 내 이론적 논의들의 계보를 정리해 놓은 것이『테크노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은 단 하나의 사상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과학기술이 여성과 맺는 사회적 관계가 억압적인가, 해방의 기제가 될 것인가를 해석하는 것도 저마다 다르다. 두 입장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본질은 하나다. 과학 기술이 갖는 속성을 단 한가지로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이야기하면, ‘ 육체 vs 정신’=‘ 자연 vs 문명’=‘ 여성 vs 남성’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의 연장선에서 과학기술 자체가 곧 남성적이거나 남성 중심적일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본질화 하는 것, 또는 과학 기술 분야에 ‘생물학적’여성이 차지하는 수가 많아지거나 적극적으로 기술을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젠더 권력체계가 무너진다는 기술결정론에 빠진다는 것이다.

과학 기술은 그 자체로 젠더적이지 않다. 오히려 지식을 생산해내고 이용하는 주체에 의해 젠더화(gendered technology) 된다. 똑같은 기술이라도 특정한 맥락에 따라 다른 효과를 내게 된다. 과학 기술이 그동안 여성을 배제해 왔던 구조가 있다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이를 넘어서 과학기술이 성차별적으로 작동하는 구조를 밝혀내고 그 지점에 대해서 여성이 직접 개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조이다혜 / 후마니타스 칼리지 강사

 

그림 설명 및 출처

<그림 1> 성형기술은 여성에게 해방적인가?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성형기술은 여성에게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기제가 되기도 하지만 외모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성차별을 근본적으로 해소하지는 못한다. (출처: 스토리온 TV프로그램 <렛미인> 중)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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