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호 테마비평: 예술의 전면에서 보는 매체 전환] 매체 횡단하기, 그리고 ‘다시 쓰기’

매체 전환의 두 가지 충동

매체 전환에 대한 논구는 새삼스럽게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미 현대인의 문화생활 속에 편재해있기 때문이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성찰을 빌려 말하자면, 오늘날 매체 전환된 콘텐츠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너무 적어서가 아니라 지나치게 많아서 그렇다. 무엇이 원작인지 불분명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콘텐츠가 원천을 가진 경우도 많다. 원천이 여러 매체를 옮겨 다니며 확장된 결과 원작과 그에 대한 재현의 선후 관계는 흐려지고 대신 문화적 생산물이 풍부해졌다. 그렇게 보면 매체 전환의 활성화는 경제 논리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몇 년 전부터인가 효과적인 부가가치 창출 전략으로서 OSMU(One Source Multi Use) 방식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OSMU란, 하나의 원천(source)을 기반으로 다각적인 활용(use)을 꾀하는 비즈니스 전략이다. 예컨대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영화, 애니메이션, 미니어처, 게임 등등으로 매체를 확장해 나간 사례를 생각할 수 있다. 최근에는 디즈니처럼 기획 단계에서부터 OSMU 방식을 도입하는 경우도 많다. 작품의 사전 제작 단계에서부터 캐릭터 굿즈, 피규어, 출판물, OST, 게임, 테마파크 등등 다양한 플랫폼으로의 이관과 상품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방식이다. OSMU 방식은 후광효과와 함께 콘텐츠의 기획과 투자단계, 마케팅 단계 등에서 리스크를 줄여주는 효율적인 비즈니스 전략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렇다면 매체 전환은 산업적인 논리에만 충실한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과단하게 말하자면 매체 전환은 관습적인 예술 양식의 하나이다. 예를 들어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등등 고대 그리스 비극 역시 구술 문화로부터 매체 전환을 이룬 작품들이다. 오랜 옛날부터 창작자에게 영감을 주는 매력적인 원천은 새로운 예술 창작의 계기가 돼 왔다. 미국의 거장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의 술회처럼 매체 전환에 대한 욕구는 원작에 대한 매혹에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본다면 매체 전환이 촉발되는 과정에는 산업적인 논리와 예술적인 충동이 상존한다고 말 할 수 있겠다.

매체 전환과 영화

여러 매체 중에서도 영화는 그러한 매체 전환의 욕망이 가장 빈번하게 발견되는 장소이다. 이는 산업과 예술의 점이지대에 있는 영화의 대중 예술적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영화사적인 맥락에서 조망해 본다면, 영화가 초창기 활동사진(motion picture) 시기에서 현대의 관객이 관습적으로 생각하는 영화 형식으로 넘어가는 과도기(1906~1909)에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게 발생하기 시작했다. <로미오와 줄리엣 Romeo and Juliet>(1908), <지킬 박사와 하이드 Dr. Jekyll and Mr. Hyde>(1908) 등등, 연극과 소설을 기반으로 한 다수의 작품이 영화로 각색되면서 영화는 매체 전환의 주요한 거점이 되었다. 이 같은 영화 형식의 전회에는 당대 감독들의 야심이 느껴진다. 전통 예술을 새로운 예술 형식인 영화를 통해 전유하고자 했던 것이다.

영화의 매체 전환과 관련해 유명한 에피소드 중 하나는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감독과 앙리 조르주 클루조(Henri Georges Clouzot) 감독 —그가 감독한 <공포의 보수 The Wages Of Fear>(1953)는 봉준호 감독이 꼽은 역대 최고의 스릴러 영화 중 하나다— 사이에 있었던 소설 『디아볼릭 Diaboliques』에 대한 판권 경쟁이다. 두 서스펜스 거장의 대결은 클루조의 승리로 끝났다. 클루조가 근소한 차이로 히치콕을 따돌리고 『디아볼릭』의 판권을 사들이는 데 성공하자, 내심 그를 라이벌로 여기던 히치콕은 큰 상심에 빠졌었다고 한다. 이후 절치부심해서 만든 작품이 <현기증 Vertigo>(1958),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North By Northwest>(1959), <사이코 Psycho>(1960)와 같은 히치콕의 대표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한편, 영화화된 <디아볼릭 Diaboliques>(1955)은 클루조 감독의 명성을 할리우드까지 알리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디아볼릭>을 보고 욕조에 몸을 못 담그게 된 아이가 <사이코>를 보고 샤워도 못 하게 됐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두 감독의 영화가 당시 세간에 준 충격은 엄청났다.

매체 전환의 본령

사실 정말 흥미로운 부분은 <디아볼릭> 제작 직후 클루조 감독의 행보다. 그는 또다시 스릴러 영화를 만들 거라는 대중의 기대와 달리 실험적인 예술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한다. 입체파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Pablo Ruiz Picasso)가 주연한 <피카소의 비밀 The Mystery Of Picasso>(1956)이라는 영화다. 주지하다시피 예술 작품과 예술가의 삶은 영화 제작에 있어 영감을 제공하는 매력적인 소재로서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그런데 <피카소의 비밀>은 종래에 영화들이 다뤘던 방법과는 유다른 방식으로 예술을 영화에 담았다. 영화의 구성은 매우 단순하다. 파블로 피카소가 특수 제작된 유리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며 클루조와 예술에 관한 대담을 나눈다. 카메라는 피카소의 손길을 그대로 담아내는데, 피카소는 캔버스에 붓을 대는 순간마다 자유자재로 그림을 그려낸다. 마지막 붓 터치가 끝날 무렵에는 처음 스케치와 닮은 구석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입체파의 거장다운 솜씨다.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거장의 작업 과정을 온전히 목도하고, 그의 사상을 직접 듣는 경험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 체험은 창작의 결과물인 회화를 전시로써 즐기는 감각과도 전혀 다르다. 이처럼 <피카소의 비밀>이 주는 독특한 향유감은 무엇보다 조형예술(bildende Kunst)이 시간예술(Zeitkunst)로 전환되는 순간에서 발생한다. 우리는 이 특별한 사례를 통해 매체 확장 혹은 매체 전환이 갖춰야 할 중요한 원칙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다. 원천은 담기는 매체의 형식에 발맞춰 새로운 형태로 재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매체 전환에 관한 이런 원칙은 히치콕의 영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크게 부각되지 않은 사실이지만, 히치콕 역시 매체 전환과 제법 인연이 깊은 감독이다. 히치콕은 <쾌락의 정원 The Pleasure Garden>(1925)을 각색하며 장편 영화 감독으로 데뷔했고, 할리우드에 입성한 계기도 대프니 듀 모리에(Dame Daphne du Maurier)의 소설 <레베카 Rebecca>(1940)를 영화화하면서이다. <레베카>는 그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촬영상을 받으며 흥행과 비평 양쪽에서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다. <레베카>는 화려한 필모그래피에 비해 유난히 아카데미상과 인연이 없던 히치콕 감독이 유일하게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받은 영화이기도 하다. 두 작품이 공통으로 호평을 받았던 부분은 영화 스타일에서의 특별함이었다. ‘서스펜스의 거장’이라는 호칭답게 히치콕의 작품은 치밀하게 계산된 플롯과 관객의 심리를 흔드는 강렬한 이미지의 힘으로 관객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특히 <레베카>의 경우 히치콕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 매우 제한된 창작 환경에서 제작 -사실 <레베카>는 이례적으로 히치콕이 각본 작업에 참여하지 못한 작품이다- 되었음에도 히치콕 스타일이라고 부를 만한 감독의 개성이 곳곳에 녹아있는 작품이다. 히치콕은 무엇보다 원작 소설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압박감을 영화 속의 이미지로 표현하기 위해 공들였다고 회상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히치콕의 매체 전환 작업이 시나리오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철저히 영화의 문법(시각 이미지, 음악, 효과음, 촬영, 편집, 연기 등등)에 적확하게 부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일견 너무 당연해 보이는 이 같은 원칙은 생각보다 자주 간과되곤 한다.

이에 대한 실례는 우리나라 웹툰의 초기 영화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테면 <아파트>(2006), <바보>(2008), <순정만화>(2008) 등등 웹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강풀 원작 영화들의 잇따른 실패다. 상기된 영화들이 이미 검증된 스토리를 가지고도 흥행은 물론 작품성에서도 혹평을 면치 못했다는 점은 매체 전환의 어려움을 실감하게 한다. 이들의 실패 과정을 추적해 보면, 원작을 벗어나 새롭게 담겨야 할 매체 특성에의 이해 부족으로 나온 실수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지나치게 원작을 의식한 나머지 독립된 작품으로서의 짜임새를 잃은 것이다. 앞서 두 거장 감독의 사례에서 드러났듯이 매체 전환의 본령은 원작에 대한 단순한 복제나 모사가 아닌 능동적인 의미에서의 ‘다시 쓰기’인 것이다.

맺음말

매체 전환에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형태와 방식이 있다. 매체 전환의 근간에는 산업적 논리와 예술적 충동이 상존한다. 이는 매체 전환이 폭발적으로 그 외연을 확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다. 게임, 만화, 웹툰, 테마파크, 시, 연극, 오페라, 음악 등등 현대 사회에서 모든 매체는 서로를 횡단하며 끊임없이 그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이 글은 매체 전환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영화를 중심으로 극히 일부의 사례를 살폈을 뿐이다. 매체 전환에 대한 연구는 그 편재성과 다양성으로 인해 더욱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한 분야다.

조한기|영화평론가·만화평론가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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