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호 기획 : 사회적 거리감] 타자에 대한 사회적 거리감

올해 초 시작된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사람들은‘코로나 이후의 삶’을 말하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정리된 말들 은 아니다. 그렇지만 SNS 등의 소통을 넘어서는 온라인의 생활화, 거리두기의 일상화 등으로 말이 모아진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정기간 동안에만 행해지는 캠페인이 아니라 일상적인 실천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지 본 지면을 통해 생각해 보자.

‘사회적 거리두기’의 남용과 오용

한국사회에서 사회학의 위상은 1980년대에 가장 높았다가 이후 쇠퇴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쓸모 있는 학문’인가라는 대중의 의심까지 받고 있 다. 그런데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고 어느 날 갑자기 지극히 사회학적인 용어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폭발적으로 쓰이고 있다. 코로나 19가 대유행병으로 확산돼 전 세계를 위협하자 사회적 방역의 해법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전염병의 확산이 개인 간 접촉 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이지 말고 대 면접촉을 피하자는 것이 본래 의도인데 자기와 다른 계층, 지역, 국가의 구성원들에게 혐오와 차별의 기제로 작동하기도 한다. 그래서 WHO는 ‘물리적 거리두기’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권고 하지만 여전히 사회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사용되고 있다.

사회학에서 사회적 거리는 인종, 종족, 성별, 종교, 계층, 지역 등 다양한 사회집단 간의 사회 심리적 관계, 예를 들어 편견과 차별, 친밀감과 수용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개념이다. 20세기 초 인간생태 학적 관점에서 도시와 사회를 연구한 시카고학파를 이끌었던 로버트 파크(Robert E. Park)는 사회적 거리를 개인 간 그리고 사회집단 간 친밀감의 정도라고 정의하였다. 그는 19세기 유럽의 각국으로부터 유입된 이민자들이 시카고에 정착하면서 마치 모자이크처럼 인종과 종족에 따라 서로 다른 지역에 색다른 공동체를 형성하게 된 것은 사회적 거리감이 작동해서라고 설명하였다. 사회적 거리 개념을 실증연구에 최초로 적용한 것 으로 알려진 에모리 보가더스(Emory Bogardus)는 ‘사회적 거리감 척도’를 개발해서 한 개인이 자기와 다른 인종 및 종족 집단 성원과의 접촉을 허용하는 정도를 측정하였다. 이후 사회적 거리감은 ‘그저 알고 지내는 사이’에서 ‘가족의 배우자로 인정’하는 정도까지 다양한 수준의 사회적 관계 맺음을 허용 하는 정도로 이해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사회학에서 대체로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코로나19 시국에서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행동’으로 해석되는 것이 사뭇 아이러니하다.

‘나홀로 신드롬’과‘사회적 거리두기’의 위험한 결합

셰익스피어(W. Shakespeare)는 <페리클레스>에서 “슬픔은 혼자 오지 않소. 반드시 한패를 데리고 오지”라는 대사를 남 겼다. 작금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이미 개인과 개인 간에, 그리 고 사회집단과 국가 간에 벌어질 대로 벌어진 거리감을 더욱 키울 것으로 우려된다. 사회심리학에서 이미 많이 연구된 현대인의 자기(self) 개념 변화는 이런 우려가 기우가 아닐 것이라 고 말해준다. 사회심리학자인 루이스 저처(Louis Zurcher)와 존 터너(John Turner)는 현대에 들어와서 사람들이 사회규범 에 순응하는 ‘제도적 자기’에서 자기의 욕구 충족을 우선시하는 ‘충동적 자기’로 변모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자기중심적 이고 충동적 자기로 가득한 사회는 공동선에 관심을 갖지 않고 자기 자신만의 욕구를 충족하려고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회 자본 개념을 발전시킨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남(Robert D. Putnam)은 『나 홀로 볼링(Bowling Alone)』이라는 책에서 1950년대 이후로 미국인들이 볼링과 같이 과거에는 함께 하는 여가활동을 혼자 하는 것처럼 대면적 사회교류를 덜 하게 되었고 이는 적극적 사회참여의 감소로 이어져서 결국은 공동체와 민주주의의 존립을 위협한다고 경고했다.

나홀로 신드롬은 전통적으로 집단주의가 강한 한국에서도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는 식사와 음주, 영화관람이 함께 하는 행위였지만 이제는 ‘나홀로족’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또한, 한국인의 정체성 변화를 2005년부터 2015년까지 조사 한 연구1)에 따르면 종친회/향우회, 동창회, 동호회, 정당/정치 단체, 이웃/마을공동체 모임, 종교 모임 등 대부분의 자발적 결 사체에 참여하는 정도가 급속히 약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공동체주의의 약화는 단지 개인과 사회만이 아닌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세계 각국이 범세계적인 가치와 규 범으로부터 탈퇴하고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신고립주의를 취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신인종주의, 신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이민자, 난민, 무슬림, 성소수자들을 향한 혐오표현, 증오범죄, 테러가 증가하고 있다. 코로나19의 발생 원인을 두고도 미국과 중국 간에 날선 공방이 오가고, 트럼프는 WHO가 중국편을 든다고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협박했다. 세계 패권국 가인 미국이 리더십을 발휘해서 세계적 공동대응을 해도 어려울 판에 소아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현대의 개인과 사회, 국가와 세계는 각각의 이익과 욕구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제각기 길을 가고 있 다. 가뜩이나 개인주의와 구별짓기, 자국중심주의와 신고립주의가 팽배해지는 시점에 코로나19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국가 와 국가 사이에 또 하나의 높다란 장벽을 세워 놓은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사회적 공감하기로

코로나19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고 얼마나 많은 희생자를 앗아갈지 지금은 알 수 없으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많은 영역에서 ‘코로나 이전’(Before Corona) 과 ‘코로나 이후’(After Corona)로 시대 가 구분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인류 의 역사와 문명을 돌이켜보면 14세기 유럽 인구의 절반가량을 앗아간 흑사병이 중세의 암흑기를 끊고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전쟁은 분명 비극적인 사건이지만 ‘생산적 파괴’라는 측면도 갖고 있어서 기존 권위와 질서를 파괴 하고 새로운 질서와 제도를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코로나19는 기존 질서와 체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보다 정의롭고 효율적인 제도와 문화를 만드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질병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멀어졌던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다. 이를 리질리언스(resilience), 우리말로 복원력 또는 회복력 이라고 한다. 특별히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19의 가장 큰 피해자들이 고령자, 소수인종, 이민자, 저소득층 이었다는 점에서 기존 의료복지체계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우 선적으로 지원하고 안전을 보장하는 실질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바이러스에는 국적이 없다’는 말처럼 질병 과 같은 위험에는 인종, 종족, 계층, 지역에 따라 사람을 구분 하고 차별하는 식의 대책은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 다. 방의 한구석에서 피어난 연기는 결국 방 전체를 가득 채우 는 것처럼 한 사회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이런 원리는 질병만이 아니라 빈곤, 불평등, 범죄 등 모든 영역에 적 용된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는 운명공동체 의식 을 갖고 위기에 처해있는 사람들의 처지를 공감해야 한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코로나19 이전에도 개인과 사회, 그리고 세계는 핵분열과 같이 나홀로의 길을 가고 있었고, 사회적 거리두기는 이런 트렌드를 정당화하고 가속화했다. 하지만 이 렇게 자기만을 생각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사회와 국가, 세계는 약육강식의 정글이 될 뿐이다. 핵분열의 반대가 핵융합이라고 한다면 나홀로 신드롬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사회적 공감력이라 고 할 수 있다. 굳이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이『공감 의 시대(Empathic Civilization)』에서 말했던 것처럼 “인간의 본성이 공감적 존재이고 인류 문명이 공감의 산물”이라는 주장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사회적 공감력은 개인과 개인을 결속 하고, 개인을 사회와 국가와 연계하고, 세계 각국을 공통의 목표와 규범으로 연합하는 힘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 이후에 사회적 공감하기를 실천해서 의료적 으로 안전할 뿐만 아니라 관계적으로도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노력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사회적 거리는 두더라도 마음의 거리는 가까이”라는 공익광고 문구가 있다. 마음의 거리를 가 깝게 하는 것은 사회적 공감이다. 그래서 이참에 사회적 공감 하기 캠페인이 널리 확산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윤인진 /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각주 1) 한국인의 정체성: 변화와 연속(2005-2015)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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