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호 기자칼럼] 촛불혁명과 코로나혁명

코로나19 이후 BC(기원전), AC(기원후)는 Before Corona(코로나전), After Corona(코로나 후)로 읽어야 할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우리는 더 이상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것이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 기존의 세계가 에덴동산과 같이 풍요롭고 행복했다면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 불행한 일이겠지만, 우리 세계는 그런 이상적인 공간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방역 관리체계가 세계의 표준이 되어가는 현재, 변화하는 것은 개인의 삶만이 아니다. 확진자의 동선을 추적하는 우리나라의 방역 관리체계를 ‘감시 국가의 억압적 사생활 침해’로 보도한 프랑스 언론들은 현재 전국 이동제한령이 내려진 프랑스의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서구 국가들이 절대적인 가치로 내세우던 ‘자유로운 개인’의 이데올로기는 코로나 사태를 통해 그것이 비서구 사회의 공동체를 겨냥하는 방식으로 우월성을 확보해 왔음이 드러났다. ‘자유’는 ‘자유롭지 않은 타자’라는 비교 대상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미국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자택 대피령 해제를 요구하며 일부 시민들이 총을 들고 미시건 주의 의사당을 점령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이상적인 현대인의 모습으로 그려지던 ‘의지를 갖고’, ‘노력하며’, ‘자아성취를 이루는’ 개인은 코로나 앞에서 힘을 잃는다. 개인의 자유는 공동체의 노력과 의지, 그리고 공동체의 성취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서구 사회가 자본주의 체제와 공모해 이상화한 ‘개인의 자유’의 가치는 코로나 사태에 ‘자유롭지 못한 자들’을 통해 또 한번 그 허울을 드러낸다. 코로나 사태에 ‘자유로운 개인’은 재택근무가 불가능해 마스크 한 장을 끼고 현장에 출근해야 하는, 자유를 강요당한 노동자들이다.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프랑스와 달리 효과적인 방역 관리체계를 구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서구의 헤게모니적 자유의 가치와 차별되는 자유의 의식을 우리 국민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촛불혁명을 거친 우리는 ‘공동체적 자유’에 민감하다. 국민청원의 장을 통해 공론화되는 문제들만 살펴봐도 우리 사회는 있는 자가 없는 자를 착취하는 불합리한 권력 구조에 대해 극심한 반감을 가지며 ‘공동체적 자유’의 가치를 중시한다. 코로나 이후의 삶에서 ‘공동체적 자유’의 가치를 폄훼할 수 있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코로나 사태 속 서구 국가들이 맞이하는 연이은 ‘실패’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필두로 구성한 헤게모니 질서가 실패하는 과정이다. 모든 혁명이 혁명 이전의 삶과 다른 세계를 꿈꾸는 것이라면, 공동체적 혁명에 익숙한 우리들은 코로나 사태를 하나의 혁명적 전환점으로 삼아 볼 수 있을 것이다.

허승모 기자 suam3480@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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