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호 사설] 수많은 ‘n번 방’, 디지털 범죄의 심각성부터 인지해야 한다

텔레그램 성 착취 대화방의 가해자 ‘박사’는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벗어날 수 없는 착취의 굴레를 만들었다.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개인정보를 통해 알아낸 가족이나 주변인의 연락처로 신체가 드러난 사진을 보내겠다는 협박에 피해자들이 범죄로부터 달아날 방법은 없었다. 충격적인 것은 그러한 개인정보들이 공공기관의 사회복무 요원을 통해 유출되었다는 사실이다. n번 방 착취의 굴레를 구조화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공범 사회복무 요원들은 구청과 주민센터의 행정 전산망을 통해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알아냈다. 사회복무 요원에겐 개인정보 조회 권한이 없지만 개인정보에 대한 제도적 보호장치가 없는 환경에서 피해자들의 개인정보는 손쉽게 범죄에 이용됐다.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디지털 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사회체계에서 잠재적 피해자들은 온몸이 범죄에 노출되어있다.

직원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범죄자들(사회복무 요원)이 전산망에 몰래 접근해 개인정보를 유출했다는 구청과 주민센터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옆 학교 고려대학교에서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어떠한가. 고려대 글로벌서비스센터 소속 직원이 개인정보를 유용해 여학생 40여 명에게 “관심 있다”고 연락한 사건은 우리 사회가 디지털 범죄에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어있지 않고 개인정보에 대한 제도적 보호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범죄자’와 ‘직원’의 차이는 범죄가 발생한 후에나 구분할 수 있다. 또한 범죄가 밝혀지고 범죄자의 실명이 공개되더라도 한번 유출된 개인정보에 대한 피해자의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딥페이크 합성 영상에 대해 ‘혼자 즐기는 것’,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만들 수도 있는 것’이라 처벌할 수 없다는 논의가 나온 3월 국회 법사위에서 디지털 범죄에 대한 국회의 안일한 인식은 증명됐다. ‘박사’의 실명을 공개하고 n번 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을 공개하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만으로는 디지털 범죄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개인정보에 대한 뒤처진 인식과 제도적 보호장치의 부재로 이미 수많은 n번 방이 텔레그램 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 퍼져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쉽게 노출되어있는 디지털 범죄에 있어 정부는 범죄자와 범죄자가 아닌 자를 뒤늦게 구분하기 전에 하루빨리 디지털 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적극적인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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