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호 문화비평: 대학 구조조정] 대학 구조조정과 산수의 정치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 계획이 발표되면서 대학가에 비상령이 떨어졌다. 특히 지방대와 전문대는 가히 구조조정을 앞둔 기업의 분위기와 흡사한 ‘전운’마저 감돈다고 한다. 정부는 학령인구 감소를 대비해 향후 9년간 대입정원 16만 명을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대학개혁’과‘특성화’란 허울 좋은 수사들이 동원되지만, 우리는 이 시대에 구조조정이 의미하는 바를 잘 알고 있다. 기업에서건 대학에서건 그것은 곧‘인력감축’을 의미한다. 실제로 대학가에서 진행되고 있는 구조조정은 인력감축과 학과통폐합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 대학에서는 대학원생 조교를 자르고, 저 대학에서는 취업률이 낮다며 인문·사회·예술계열 학과를 통폐합한다. 물론 갈등이 없진 않다. 경기대 학생들은 학과통폐합 계획에 반발해 총장실을 점거했고, 서일대 학생들은 연극과 폐지 방침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의 산발적인 저항을 제외하면 대학 구조조정의 필요성 자체는 사회적인 합의를 얻고 있으며, 각 대학들도 적응과 생존에 판돈을 걸고 있다.

기실 이는 매우 단순한‘산수’인 것처럼 보인다. 향후 학령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해 고등학교 졸업자 수가 대학 입학정원을 곧 넘어서게 된다는 것이다. 구조조정 방침을 놓고 평가기준과 방식의 문제에 대한 설왕설래가 있지만, 정원감축의 필요성만은 불변의 상수로 전제되어 있다. 그런데 고교졸업생 수가 대입정원보다 늘어나면 한국 고등교육 전반에 무슨 큰 재앙이라도 닥치는 것일까? 이는 우리가 산수의 논리를 따를 때에만 참이다. 대학정원이 줄어들면 자연스레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교육여건이 개선될 것이다. 대학의 목적이 시민들에게 고등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면, 배움의 전당으로 들어가는 길은 넓을수록 좋을 터다. 물론 학생 수가 줄어들면 일부 대학은 재정적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 따라 대학은 스스로 특성화와 경쟁력 강화에 나서게 될 것이다. 적절한 교육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대학은 자연스레 도태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시장주의자들이 선호하는 이상적인 경쟁 상황 아니던가.

 

신자유주의 평가대학의 논리

 

대학의 본질이 배움과 학문의 전달이라면 입학정원 자체는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장기적으로 토론할 문제는 대학교육의 질과 공공성 확보에 관한 것일 게다. 그렇다면 정부는 어째서 정원감축에 대학개혁의 사활이라도 걸린 양 호들갑일까.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대학을 통치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점이다. 정부는 직접 재원을 투입해 장기적인 대학교육의 비전과 세부적인 정책들을 제시하는 대신, 포괄적인 평가를 통해 대학들을 경쟁시키고 주어진 자원을 차등 지원한다. 그러면 각 대학은 지표에 맞추기 위해 자체적인 구조조정에 돌입하고, 정부는 큰 투자 없이 도 강력한 교육개혁을 단행한다는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각 대학이 처한 특수한 맥락과 상황을 고려하려면 매우 복잡하고 세밀한 지표들을 개발해야 하기에, 정부는 가장 단순한 지표들만 가지고 대학 단위로 평가를 한다. 국공립대와 사립대, 수도권 소재 대학과 지방대, 상경계열과 인문예술계열을 어떻게 동일한 지표(예컨대 취업률)로 평가하느냐는 당연한 물음은 사전에 기각된다. 구조조정의 논리란 그런 것이다. 먼저 목표로 잡은 수치가 주어지고, 그에 따라 현실을 적응시킨다. 중요한 것은‘9년간 16만 명’이라는 수치이지, 구체적이고 복합적인 현실이 아니다.

이는 사실 1990년대 중반부터 체계적으로 진행된 ‘신자유주의 평가대학’의 기본원리에 다름 아니다. 1996년 대학설립준칙주의에 따라 대학 설립요건이 완화되면서, 오늘날 부실대학의 온상이 된 사립대학들이 우후죽순 설립되었다. 이는 사실상 국가가 저렴한 비용으로 고등교육의 책임을 민간에 전가하고, 기업이 대학을 이윤의 원천으로 삼을 수 있도록 지원한 것이었다. 알다시피 이후 대학은 구태의연한 상아탑에서 벗어나 경쟁과 이윤의 원리를 최우선으로 삼는 기업 내지 자본으로 변모했다. 지식경제의 모토에 발맞춰 대학의 연구는 학문적 성과가 아닌 이윤을 낼 수 있느냐에 따라 평가되었고, 교수평가부터 강의에 이르기까지 대학 전반에 걸쳐 경쟁의 논리가 내면화되었다. 정부는 평가를 통해 예산을 할당하는 방식으로‘원격통치’를 함으로써 대학교육의 비용은 물론 책임도 덜게 되었다. 대학은 규제완화를 통해 등록금을 높이고 대학을 활용한 수익사업을 벌이면서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정부의 예산지원이 차별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대학 간 서열화가 심화되었고, 서울소재 상위권 대학으로의 쏠림과 지방대학의 공동화현상 또한 극대화되었다.

정부와 기업화한 대학이 각자의 계산에 따라 이득을 취하는 동안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갔다. 많은 대학이 재정을 등록금에 의존하면서 등록금은 치솟았으나, 교육여건과 질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대학평가는 물론 교수평가에서도 강의보다 연구실적에 초점이 맞춰지는 한, 강의가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전임교수들이 연구실적과 프로젝트 관리에 매진하는 동안, 강의는 대체로 비용절감을 위해 비정규직 시간강사에게 맡겨졌다. 교양교육을 표준화하고 획일화하면서 학생들의 강의선택권은 좁아졌고, 수강신청 때만 되면 예사로 일대 전쟁이 치러진다. 대학들이 해외유학생들을 추가적인 수입원으로 삼으면서 대형강의 비중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결국 대학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학부교육의 질이 아니라 비용이며, 그나마 학부교육의 성과 중 관심을 갖는 요소라곤 오직 취업률뿐이다. 오늘날 대학생들은 치열해진 학점경쟁 속에서 더욱 강의에 헌신하고 있지만, 질적인 면에서 오히려 체계적인‘과소교육’을 받고 있는 셈이다.

 

199-9-1

 

교육위기를 통한 통치

 

노동배제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채택함에 따라 양극화가 심화되고 실업이 증가하면 정부는 교육위기를 새삼 사회적 혼란의 주범으로 천명하곤 한다. 부실한 교육시스템이 새로운 사회적 수요에 부응하지 못함으로써 국가경쟁력이 약화되고, 청년층에게 취업에 필요한 배움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교육예산을 줄이고, 관료화되고 비효율적인 공교육체계를 혁신한다며 민간에 대폭 권한을 이양하는 ‘교육 민영화’정책이 시행된다. 이것이 지난 30여 년간 영국과 미국을 비롯해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도입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벌어진 교육개혁의 공통된 전개양상이다.

빈곤과 실업의 원인으로 교육의 위기, 즉 ‘인적 자원’의 비효율성을 지목하는 것은 사태의 책임을 개개인에게 전가하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갖는다. 정부는 대학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부실대학의 근거를 ‘낮은 취업률’에서 찾고 있다. 대학생들이 취업을 못하는 이유가 대학교육이 기업의 수요에 부응하지 못한 탓이라고 간주하는 셈이다. 대학은 그 책임을 교수들에게 전가하여 졸업생들을 취업시키지 못하면 페널티를 주겠다고 성화다. 학생들은 본인의 인적 경쟁력이 떨어져 취업을 못한다고 자책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잠시만 생각해보면 청년층 고용률이 낮은 이유가 기업이 투자와 신규채용을 꺼리면서 일자리 자체가 부족한 탓이라는 점이 분명하지 않은가. 게다가 대다수의 일자리가 비정규직에 박봉인 상황에서 대체 어디에 취업을 하란 말인가. 따라서 대학과 교수들을 닦달한다고 해서 양질의 일자리가 생겨나는 것이 아닌 한, 대학 구조조정으로 청년층의 취업난을 해소하기란 난망한 일이다.

대학교육의 목적이 단지 취업을 위한 직무교육이 아니라면 우리는 다시 교육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대학교육이 이윤과 경쟁의 논리에 종속되면서 취업은커녕 제대로 된 고등교육도 받지 못한 채 학생들은 비싼 등록금만 퍼 나르고 있다. 대학에서 학문적 교양과 비판적 지성, 공공성에 대한 인식과 사회적 연대감을 익히지 못한 채 오로지 개인적 해결책만을 추구하면서, 기성질서에 대한 순응과 복종의 태도만이 양산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일거에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지난 20여 년간 정부와 기업의 공모 하에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각각의 국면에서 교수와 학생들은 나름 저항했으나 결집력 있는 연대를 이루지 못해 결국 교육에 대한 권리를 하나둘씩 잃어갔다. 그 결과 저항에 대한 냉소주의와 패배주의가 깊이 침투한 것 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영국과 미국, 유럽, 남미 등지에서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거세게 일어난 데서 볼 수 있듯, 사회정의와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은 언제든 광범위한 저항의 물결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최철웅 / 계간《문화/과학》편집위원

그림 설명 및 출처

<그림 1> 서일대 학생들이 연극과 폐지 방침에 반대하여 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 www.nocutnews.co,kr)

작성자: khugnews

이글 공유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