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호 인문학술 : 괴담의 과거와 현재] ‘괴담’의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괴담은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듣게 되는 오싹한 이야기이다. 빨간마스크 괴담부터 군대 괴담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괴담의 역사는 어떻게 이어져 온 것일까? 고전에서 현대까지 다양한 서사장르와 접목하며 변화와 전승을 이뤄온 우리 나라 괴담에 대한 논의를 이 자리에 풀어본다.

전설


학술적으로 전설은 신화, 민담과 함께 설화의 하위 장르로 분류된다. 신화·전설·민담 삼분법을 두고 명칭이나 개념과 관련하여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보편적인 구분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세 장르 사이의 관계와 차이가 비교적 분명하게 설명되기 때문이다. 신들의 이야기가 인간의 이야기로 대상과 범주를 달리하면서 신화의 신성성은 탈각되고 진실성만 남았을 때 이야기는 전설이 된다. 신적인 능력을 가지고 세상에서 능력을 발휘하던 신이나 신적인 영웅과 달리, 전설의 주인공은 세계의 횡포 앞에 좌절하거나 패배할 수밖에 없는 왜소한 인간이다. 따라서 전설은 비극성을 미적 특질로 한다. 전설의 비극성은 전설의 역사성과도 관련을 가진다. 전설의 진실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전설에는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가 등장하고 증거물이 제시되는데 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이야기 범주 앞에서 주인공은 자유로울 수가 없다. 반면, 진실성보다는 흥미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민담의 경우 주인공은 천하무적이다. 하인이든, 어린이든, 여성이든, 바보든 ‘옛날 옛적 어느 곳에’로 시작되는 막연한 시간과 공간 안에서 민담의 주인공은 세상과 맞서 모든 난관을 헤치고 자신의 운명을 극복해 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그래서 잘 먹고 잘 살았다더라’라는 결말에 이르러 민담은 발랄함과 통쾌함을 미적 특징으로 확보하게 된다. 전설이 주로 소설로, 민담이 주로 어린이 문학의 소재로 각광 받는 것은 그러한 미적 특질의 차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학술적으로는 전승집단의 태도, 주인공과 주인공의 행적, 미의식 등에서 신화·전설·민담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실제 이야기가 전승되는 전승 상황이나 전승집단 내에서의 신화·전설·민담의 구분은 그리 선명하지는 않다. 전설은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통칭하기도 하면서 구비전승 전반을 전설로 인식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대의 전설집이라고 하는 최상수의 『한국민간전설집』(1958)을 보아도 신화나 민담으로 보이는 이야 기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어 전설의 유형이나 성격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전설을 몇 가지 기준으로 분류해 보면, 우선 전승 장소에 따라 ‘왕십리 지명 유래 전설’이나 ‘백마강 조룡대 전설’처럼 특정 지역에 한정되는 지역 전설과 ‘오누이 힘내기 전설’이나 ‘장자못 전설’처럼 전국적, 혹은 전세계적인 분포를 보이는 이주전설(광포전설)로 나눌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발생 목적에 따라, 지리상의 특징이나 자연현상, 특수한 습관, 특정 지역의 동식물이나 자연의 생김새 등을 소박한 지식으로 설명하는 설명적 전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역사적 전설, 민간 신상을 기초로 하는 신앙적 전설 등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기록된 전설과 전승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수많은 인물 전설과 사찰 연기 전설이 기록되어 있으며, 『동국여지승람』이나 『세종실록지리지』를 비롯한 수많은 읍지(邑誌) 등에서도 지형의 특징이나 지역의 습속, 지명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는 전설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양반이나 문자를 아는 식자층들이 당시 민간에 구전되던 이야기들에 관심을 가지고 기록으로 남겨 놓은 것인데, 이렇게 문자로 기록된 구비문학을 ‘문헌설화’라고 한다.
신화·전설·민담 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기록된 것은 전설 이었다. 건국신화를 제외한 무속신화들은 감히 기록이 될 수없었고, 민담의 경우에도 지배계급의 입맛에 맞는 교훈적 이야기나 음담패설 정도만 기록될 수 있었다. 그러나 역사성과 진실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전설은 달랐다. 기원이나 유래에 대해 설명하거나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는 전설의 특성이 양반들의 기호와 맞아 떨어지면서 전설은 이른 시기부터 양반 들의 문집이나 저술에 기록되기 시작했다. 정사(正史)에 기록될 수 없는 떠도는 소문이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기문총화』, 『동락패송』, 『어우야담』등의 문헌에 정착되면서 전설은 ‘야담(野談)’, ‘야사(野史)’, ‘패사(稗史)’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문헌설화로 정착·전승되었다.
흔히 전설은 기록되지 않은 민중의 역사라고 한다. 정사에 기록된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한다면, 전설은 전승집단이 ‘그렇게 믿고 싶은’ ‘진실’, 민중들의 염원이 만들어낸 진실의 역사다.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이 무기력하게 생을 마친 것이 아니라 사실은 호국용이 되어 백성들을 지켜주고 있다는 믿음, 이여송이 조선에 큰 인물이 날 것을 미리 예견하고 혈맥을 잘랐기 때문이 조선이 위대한 인물을 얻지 못한 채 위기와 환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공동체적 신뢰와 믿음, 비록 지금은 패배하지만 언젠가는 새로운 영웅이 등장하여 새로운 세상이 열리리라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믿음 등이 전설이 말하는 역사적 진실이다. 요컨대 전설은 정사에 기록된 실제 역사와는 다른, 민중들이 체감하고 인식하는 역사를 써나간다. 역사적 사실 이전의 ‘진실’의 ‘역사’, 이것이 전설을 전승시키는 중요한 힘이다.


괴담의 탄생

괴담(怪談)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야담 이라는 명칭이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을 보면 민간에 전승되던 전설은 말할 것도 없고, 골계적 이야기나 음담패설, 단편적 지식이나 개인적 관심사까지 다양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조선후기 임방의 『천예록』등과 같은 야담집의 경우, 창작이 가미되어 소설화 경향까지 보이고 있어 단순히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짤막하게 기록하던 초기 형태의 야담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앞서 전설은 야담으로 기록되었다고 하였으나, 야담 자체는 ‘기록된 전설’이라고 단순 하게 지칭하기는 어려운, 다양한 내용과 형식을 포괄하는 넓은 편폭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전설이 설화의 하위 장르라는 학술적 개념과는 달리 실제 전승 상황에서는 구비전승 전반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처럼 야담 또한 전설을 비롯하여 설화나 세간에 떠돌던 허황되거나 놀라운 이야기까지 포괄하는 폭넓은 개념과 범위를 특징으로 꾸준히 명맥을 유지한다.
일제 강점기가 되면 야담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1920 년대는 책읽기가 ‘취미’의 하나로 자리잡으면서‘오락’으로 서의 읽을거리가 쏟아져 나왔던 시대다. 『별건곤』을 비롯하여 『조광』, 『월간야담』, 『야담』등의 잡지가 이 시기 등장하였으며, 이 잡지들은 역사를 개작한 소설 및 야담, 실화, 애화, 우화, 만담 등 수많은 읽을거리를 제공하였다. 여기에 ‘기담’이라는 표제어를 단 기이하고 황당한 이야기들이 소개되어 오락 물로 소비되었는데, ‘기담’은 전통적인 야담을 비롯하여 세간에 떠도는 신기하고 황당한 이야기나 소문까지 전통과 근대를 두루 포괄하고 있었다. 즉, 이 시기 야담은 전설을 비롯하여 다양한 내용과 형식의 이야기를 아우르면서 근대적 장르를 준비하는 가교의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에서 유행하던 ‘에로(틱), 그로(테스크), 넌센스’ 문화의 유입과 함께 1930년대 조선은 ‘괴담’의 시대로 돌입하게 된다. 초기의 ‘괴담’은 ‘기담’이라는 용어와 서로 혼용될 수밖에 없었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로테스크’라는 개념이 번역되면서 생긴 ‘괴기(怪奇)’라는 개념은 변격탐정소설이나 괴담 등의 작품을 유행시 키면서 근대 대중적 취미의 하나로 부상하게 된다. 일본에서 주로 ‘기형적이고 음란한 범죄’와 관련하여 이해되었던 ‘괴담’은 식민지 조선에서도 차츰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기괴한 이야기라는 의미를 넘어 엽기적이고 잔혹한 범죄와 연결되는 섬뜩하고 충격적인 이야기라는 의미로 성격을 굳혀가게 되었 다. 야담이 근대 오락물로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공포와 괴기가 부각되는‘괴담’이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러한 괴담의 유행을 잘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1930년 『별건곤』에 실린 기사다. 기사에는 ‘김빠진 연애소설보다, 노파들의 입에서 풀려나오는 신화(神 話) 괴담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고 되어 있어 1930년대 괴담은 매우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였음을알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 등장한 ‘괴담’은 식민지 대중들에게 자극 적인 볼거리와 이야깃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식민지 현실에 대해서는 외면을 하고 있었다. 제국주의 통치하의 식민지 대중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오락의 영역으로 전환시킴과 동시에 현실 인식과 비판의식 등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했던 일제의 통치 전략과 잘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한편, 기사에서 신화와 괴담을 나란히 언급하면서 근대적 장르인 소설과 대비시켜 놓고 있는 것으로 보아 ‘괴담’은 신화와 같은 옛이야기, 즉 설화나 전설과 같은 전근대적인 이야기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조선시대 야담으로 기록되었던 전설은 일제 강점기에 ‘괴담’이라는 새로운 용어와 함께 그 전승력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국방웹툰 <말년이다> 일화 중 ⓒT


현대의 구비전승과 도시 전설


구비문학은 ‘말’의 문학이다. 말은 문자가 없던 시대부터 문자가 발명된 이후에도 지속되어 왔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말’의 문학인 구비문학 또한 과거의 전통이 아니라 현재에도 살아 있는 지속적인 장르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전통적인 이야기에만 치중되어 오던 구비 문학 연구가 이러한 현재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것은 1990 년대 중후반에 들어서였다. 말이 중심이던 구술문화 시대, 문자의 발명과 함께 시작된 문자문화 시대, 라디오와 텔레비전 중심의 전파문화 시대를 지나 지금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전자문화 시대를 맞고 있으며, 이러한 매체 변화와 함께 구비 전승도 개념과 범주를 달리하자는 것이었다. 그와 함께 ‘살아있는’ 현대의 이야기, 혹은 현대의 이야기 문화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라디오와 TV 토크쇼, ‘이야기’를 극화한 프로그램, PC 통신 유머방 등을 연구 대상으로 삼기 시작하면서 ‘전통’과 ‘문학’이라는 좁은 제한에서 ‘현대’와 ‘문화’로 구비문학은 외연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전설의 현대적 재맥락화가 아니라 현대에 새롭게 생성되고 있는 “현대의 전설”에 대한 관심은 민속학 쪽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부터 독일과 미국에서 대두되기 시작한 도시 민속학은 민속학의 관심을 농촌에서 도시로 옮겨가기 시작했으며, 1970년대 이후 ‘현대의 전설’ 혹은 ‘도시 전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던 영국은 마침내 1982
년 국제현대전설연구학회(The International Society for Contemporary Legend Research)를 발족하고 활발하게 연구를 진행하였다.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도 현대적 이야기들이 주목을 받았다. 1981년 도시 전설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브런밴드(J. H. Brunvand)의 『사라지는 히치하이커 Vanishing Hitchhiker』가 출간되면서 이후 도시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현대적인 이야기인‘도시 전설’이 전통적인 전설을 대신하는 현대의 전설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 책은 1988년 일본에서도 번역이 되었는데, 일본에서는 이전에 이미 ‘세간 이야기(世間話)’라고 하는 현대적, 도시적 이야기에 대한 관심이 일고 있었다.
도시 전설에 대한 우리나라의 관심은 1995년 시마무라 야스노리(島村恭則)가 한국에서 발표한 「한국의 도시 전설(韓國の都市傳說)」이라는 논문 이후 시작되었다. 이어 쓰네미쯔 토루(常光 徹)의 『일본의 도시 괴담』(다른 세상, 2002), 김종대의 『한국의 학교 괴담』(다른 세상, 2002)이 나란히 출간되면서 한일 양국의 도시 전설이 ‘괴담’이라는 이름으로 소개가 되었는데 그 즈음은 학교 괴담을 비롯한 ‘괴담’이 전국적 으로 유행하던 때이기도 했다. ‘도시 전설’이라는 학술적 용어보다 ‘괴담’이라는 용어가 훨씬 더 먼저, 널리 쓰이고 있었던 것이다.


도시 전설 혹은 괴담


도시 괴담, 학교 괴담, 군대 괴담, 범죄 괴담, 삼풍백화점 괴담 등 ‘괴담’이라는 용어로 흔히 지칭되는 도시 전설은 구전 이라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혹은 인터넷 사이트나 게시판,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등 새로운 매체를 통해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다. ‘자유로 귀신’이나 ‘빨간 마스크’, ‘홍콩 할매 귀신’, ‘김민지 괴담’ 등은 이제 한번쯤은 들어본 도시 괴담이 되었다. 특히 ‘홍콩 할매 귀신’, ‘김민지 괴담’, ‘ 빨간 마스크’ 등은 198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후반까지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꾸준히 유행하면서 사회적 우려까지 낳았던 괴담들인데, 이 중 ‘빨간 마스크’는 일본의 도시 전설이 우리나라에 유입된 것이다. 자정이 되면 학교의 동상이 걸어다닌다거나 과학 실이나 화장실과 관련한 학교 괴담도 일본 학교 괴담의 유입 결과다. 학교 괴담의 경우, 일제 강점기에 이미 전파되고 전승 되었던 이유도 있고, ‘훈육’과 ‘통제’중심의 억압적 교육 환경이 일본과 우리나라가 유사한 데서 비롯되는 요인도 크다.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현대의 괴담은 더욱 직접적이고 빠르게 일본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잔혹성과 엽기성, 공포를 강조한다. 이와 함께 구비전승 중에서도 ‘여우 누이’나 ‘구미호 전설’등 공포를 소재로 한 이야기들이 주목을 받고 동화로, 영화나 웹툰 등으로 매체를 달리하면서 유행을 하기도 하면서 전설의 새로운 현대적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설이 본래 가지고 있던 역사적 진실성이나 전승 집단의 의식 등은 소거된 채 지나친 일본풍의 엽기와 공포를 강조하는 오락물로서의 괴담은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가 하면 삼풍백화점 괴담을 비롯한 참사 괴담과 군대 괴담은 우리나 라만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반영하는 괴담으로 주목받기도 한다. 군대 괴담은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사회적 특수성을 반영하고 있으며, 삼풍백화점 괴담 또한 우리 사회의 아픔 에서 비롯된 괴담이다. 일본을 통해 들어온 괴담들이 공포와 엽기에 치중하는 반면, 군대 괴담이나 삼풍백화점 괴담 중에는 공포보다는 저항이나 위로 등우리만의 정서를 드러내고 있는 이야기들이 다수 등장하여 전통적인 전설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살아 있는 전설, 움직이는 괴담

괴담의 전승은 전승자들의 심리 기저에 있는 현실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괴담이 가장 유행했던 1990년대 한국 사회는 1991년 개구리 소년 실종을 비롯하여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화성 연쇄 살인범 등으로 공포와 불안이 만연했던 시기다. 도시 전설이 가장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는 학교와 군대도 억압과 통제, 그로 인한 불안과 공포가 가장 극심한 공간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전통적 전설이 주로 노인이나 식자층을 중심으로 전승되었던 것과 달리 괴담은 어린 학생이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향유, 유통된다는 것도 젊은 세대들의 깊은 패배 주의와 우울, 현실에 대한 좌절과 공포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우려되는 점은 전설의 가치와 의미의 퇴색이다. 괴담이 공포에 초점을 맞추어 자극적인 오락으로 소비되면서 전설이 본래 가져야 할 ‘진실’과 진짜 ‘역사성’은 거세된다. 군대 괴담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군대 괴담은 군대라는 공동 체를 벗어나 인터넷 상에서 대중적으로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는데, 군대라는 공간이 가진 억압과 불합리, 모순은 증발된 채전승 집단이 가지는 공포와 불안만 재생산되면서 소비된다.
괴담이 통속적 오락물로 전락하고 말지, 아니면 새로운 역사성과 진실성을 회복하면서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해 나갈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설화, 전설, 야담, 괴담 등의 용어가 분명한 범주 속에 포획되지 않은 채 그리도 불분명하고 모호했던 것 또한 이들이 당대에 지속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장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전설, 혹은 고전이라는 전통적 장르가 현재적 의미를 가지고 살아 있기 위해서는 기존의 것을 쓸고 닦아 계승하는 차원을 넘어 현대인들과 함께 공존하면서 불안 하고 누추한 현대인의 삶을 반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괴담은 전통적 전설의 현대화와는 또 다른 차원의 현재적 실체라는 점에서 의의와 가치를 가진다고 하겠다.


진은진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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