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호 문화비평: 숏폼(short form)의 출현] 짧은 콘텐츠, 감성 정보의 시대

짧은 콘텐츠, 감성 정보의 시대

“창천에 태양이 빗나고 대지에 청풍이 불도다. 산정수류하며 초목창무하며 백화난발하며 연비어약하니 만물 사이에 생명과 광영이 충만하도다.”

100년 전 『동아일보』창간사의 첫머리다. 문장마다 구절을 반복하며 이어가는 만연체의 느낌이 고풍스럽기만 하다. 21세기 독자는 더 이상 이렇게 늘어지는 문장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인터넷과 SNS는 미디어가 담아내는 콘텐츠의 길이를 확 줄여버렸다.

2006년 처음 등장한 트위터는 140자라는 짧은 글로 순식간에 상황을 알릴 수 있는 능력을 보여 주며 레거시 미디어를 제치고 뉴미디어의 강자로 떠올랐다. 2013년 미국 보스톤 마라톤대회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나자 시 정부는 트위터로 소식을 알렸고, 시민들은 이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현장을 파악하며 대응했다. 이처럼 트위터는 정보의 신속성과 간결성 때문에 빛이 났다.

짧은 콘텐츠를 좋아하는 뉴미디어

뉴미디어는 짧은 콘텐츠를 좋아한다. 짧은 콘텐츠의 전통이 뉴미디어를 만들어낸 디지털 시대에 처음 나타난 건 물론 아니다. 소설보다 짧은 시, 시보다 짧은 시조, 시조보다 짧은 하이쿠가 있었다. 장편영화보다 짧은 단편영화, 단편영화보다 짧은 초단편영화도 있었다. 콘텐츠 앞에 붙는 ‘짧은’이라는 말은 여러 함의를 담고 있다. 시가 소설보다 짧다고 해서 누구도 그 독창적 지위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단편영화는 때때로 장편영화가 되기 위한 사전 단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는 속담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촌철살인이라는 말이 있다. 한 마디 길이 쇠침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뜻이다. 짧은 건 때때로 힘이 세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고갱이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긴 것이 뛰어나고 짧은 건 그보다 못하다는 생각은 상황에 따라 전복된다. 그러므로 형식과 장르의 길이는 콘텐츠의 우열을 판단하는데 아무 소용이 없다. ‘짧음’의 콘텐츠가 훨씬 더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짧은 콘텐츠가 주목을 받게 되는 까닭은 무엇보다 넘쳐나는 정보 때문이다. 디지털이 만들어내는 소통의 시대, 세상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는 네트워크는 개인과 집단이 주고받을 수 있는 정보의 총량을 거의 무한대로 늘려놓았다. 말 그대로 정보의 홍수 속에서, 만들어진 정보의 선택을 위해 생산자와 향유자는 공모한다. 짧게, 더 짧게! 

카카오톡을 비롯한 상호대화형 SNS는 짧은 콘텐츠 유통에 크게 이바지했다. 구구절절한 물음을 받아도 대답은 ‘넵’ 한 글자면 충분하다. 답이 한 글자라고 서운해 하는 순간, ‘꼰대’가 된다. 짧은 콘텐츠는 시대의 흐름이자 젊음을 대표하게 된다. 정보는 이런 방식으로 시대성과 세대성을 획득한다. 감정을 나타내는 콘텐츠는 더욱 짧아진다. ‘ㅋㅋㅋ’과 ‘ㅠㅠ’는 똑같은 초성 자음 셋과 중성 모음 둘만으로 온 국민의 감정을 보여주는 콘텐츠가 됐다. 정보는 이렇게 즉시성과 단순성에 더해 감성성을 더하면서 힘을 얻고 있다.

신속성, 간결성, 즉시성, 단순성

문자 기반 대화가 이뤄지는 플랫폼에서 이런 식의 감정 표현은 자연스러운 형식이다. 언어로 주고받는 대화와 문자 대화는 성격이 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말을 언어로 전할 때면 언제나 동반되는 어조나 어감을 문자로는 구현하기 어렵다. 문자 대화 상황에서는 지금 말하고 있는 내가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분명하게 전달해야만 소통 장애를 방지할 수 있다. 감성화한 짧은 정보는 이렇게 언어의 문자화를 바탕으로 왕성해지고 있다.

그렇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짧은 문자의 결핍은 이미지가 채워주기 시작했다. 이미지의 초기 형태인 문자형 이모티콘이 오해를 불식하기 위한 확실한 방법으로 동원됐다. 점점 진화한 이모티콘은 이제 캐릭터라는 형식으로 굳게 자리 잡았다. 휴대폰 카메라 성능이 거듭 수준을 높이자 유저들이 직접 촬영한 이미지는 짧은 글을 보조하는 강력한 기능을 맡게 됐다. 인스타그램은 일상을 찍은 사진에 짧은 글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정보의 생산자와 향유자를 불러 모았다. 그렇게 보면 이제 짧은 글과 이미지의 지위는 자리바꿈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짧은 콘텐츠는 문자 플랫폼을 넘어서서 움직이는 이미지, 영상 장르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짧은 영상콘텐츠는 ‘숏폼’(short form)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유행 중이다. 중국에서 태어난 ‘틱톡’은 숏폼을 선도하고 있다. ‘아이치이(爱奇艺)’는 휴대폰에 최적화한 세로 화면 숏폼 드라마와 영화를 내보내고 있다. 시사와 교양 콘텐츠 중심의 ‘진스’(錦視)도 출시됐다. 미국에서도  짧은 영상콘텐츠 플랫폼 ‘퀴비(Quibi)’가 출시될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유튜브 플랫폼을 기반으로 숏폼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중이다. 국내에서는 레거시 미디어의 숏폼 진출도 활발하다. ‘TV동물농장’을 잘게 쪼개 놓은 SBS의 ‘애니멀봐’, 옛날 코미디 프로그램을 재편집한 KBS의 ‘크큭티비’, 정형돈이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제작되는 MBC의 ‘M드로메다’가 대표적이다. 해외와 비교했을 때, 국내 사례는 레거시 미디어가 숏폼으로 뛰어들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숏폼의 등장은 콘텐츠 기획과 제작비를 줄여주면서 향유자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전략적 선택으로 주목받고 있다. 시장 실패의 경우 위험 요인도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숏폼은 콘텐츠의 글로벌 유통과 향유라는 양적 확대의 맥락 속에서 만들어진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 또한 생산과 향유의 주체가 통합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자연스런 결과이기도 하다. 누구나 자기만의 정보를 생산, 유통할 수 있는 개성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숏폼은 그렇게 산업적, 사회적, 문화적 필요에 부응하고 있다. 

감성 정보 확산의 명암

전통적으로 정보는 이성의 산물로 여겨져 왔다. 문자는 정보를 담아내는 꼭 알맞은 형식이었다. 그러나 미디어의 진화는 정보의 성격을 바꾸고 있다. 예컨대 그 옛날 전화가 등장했을 때, 편지에서 전화로 미디어의 틀을 바꾼 정보는 문자에서 언어로 형식을 바꾸면서 그 속에 개인의 감정을 담기 시작했다. 전화만 해도 일대일 미디어였기에 정보의 유통은 이미 알고 있는 지인 사이에 이루어지는 지극히 개인적 소통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SNS는 생산과 향유의 주체를 무한한 지점들로 다극화하면서 누군지도 모르는 상대와 소통해야 하는 맥락을 만들어냈다. 짧은 글, 짧은 콘텐츠, 숏폼은 정보 생산과 수용의 구조는 변화한 시대를 대변한다. 문자에서 출발했으나, 그 한계 때문에 언어와 이미지의 결합을 선택한 짧은 콘텐츠는 감성적 진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 짧은 콘텐츠는 점점 감성화하게 될 것이다. 감성은 즉시적이고, 간결하며, 단순하며 개성적이다.

짧은 콘텐츠는 그 동안 우리가 미처 관심을 갖지 못했던 정보의 감성화라는 범주를 발견하게 해 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때문에 또 다른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단순화하는 감성은 그 자체로 문제를 만들어낸다. ‘ㅋㅋㅋ’로 통일된 웃음의 형식 때문에 우리는 언제부턴가 ‘하하’, ‘호호’, ‘흐흐’, ‘히히’를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신속하고 간결하며, 즉시적이고 단순하며 개성적인 짧은 콘텐츠는 감성을 매개로 유통된다. 웃고 울고 화내고 즐거워하는 순간의 몰입을 통해 감정을 향유하는 과정은 우리의 삶을 어느 한 지점에 얽어매지 않으면서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그렇게 만들어진 감성 정보에는 옳고 그름의 이성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재미와 무미의 감성 가치만이 남을 뿐이다. 그러므로 짧은 콘텐츠와 긴 콘텐츠는 더 이상 대립적이거나 적대적으로 간주될 수 없다. 짧은 건 짧은 대로, 긴 건 긴 대로 의미를 찾아야 한다. 시는 시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단편은 단편대로, 장편은 장편대로 저마다 의미를 갖는다. 긴 콘텐츠는 우리를 생각하게 하고 고민하게 하며 옳고 그른 이성의 가치로 데려가기 때문이다. 

임대근 |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 중국어통번역과 교수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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