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호 영화비평: <작은 아씨들>(2019)] 이토록 영민하고 현명한 21세기 ‘작은 아씨들’

“주인공이 여자라면 결말은 결혼이거나 죽임을 당하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하죠” <작은 아씨들>의 첫 장면에서 출판 편집자는 조(시얼샤 로넌)에게 말한다. 물론 죽임을 당하는 것이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병으로 죽거나 반강제적으로 목숨을 끊거나(사회적 타살) 하는 것일 게다. 다시 말해 19세기 미국(혹은 유럽, 아니 어느 나라라도 상관없다)에서 여성 주인공은 결혼을 통해 해피 엔딩으로 골인하거나, 죽음을 통해 독자들에게 가슴 절절한 새드 엔딩으로 다가가야 했던 것이다. 이 첫 장면은 중요하다. 여기에서 아직 풋내기 작가인 조는 편집자의 이 말에 그 부당함을 지적하지도, 제대로 된 항변도 하지 못한다. 그녀는 여성임과 동시에 소위 갑을관계에서 ‘을’이다. 저작권, 인세는 고사하고 원고료나 받으면 다행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 이 순간 어느 곳에서라도 첫 책을 내는 작가/저자의 대부분은 그저 내 책을 내준다는 것 자체에 감지덕지해서 인세, 원고료 같은 건 미처 생각지도 못한다. 5년 전 나 역시 그러했다.

결혼과 돈을 둘러싼 문제

<작은 아씨들>이 남북전쟁에 나간 아버지, 자애로운 어머니, 그리고 우애 깊지만 가끔씩 티격태격 갈등도 벌이는 자매들, 다소 괴팍하지만 본 마음은 따뜻한 부자 대고모의 이야기인줄로만 알았다. 다시 말해서 그냥 여성 캐릭터가 중심이 된, 그러나 여성주의와는 거리가 먼, 오히려 전쟁에서 돌아온 아버지의 귀향으로 온전한 가부장제가 복원되는 이야기로만 생각했다. 원작소설을 읽어본 적 없는 나로서는 그것이 1949년 작(머빈 르로이 감독), 1994년 작(질리안 암스트롱 감독)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이다. 그리고 그런 기억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건 원작의 한계라기보다는 시대적 한계다. 그러나 고전이란 언제나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을 비밀스러운 요소들을 숨기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의 시험대를 거쳐 오늘날의 독자/관객들에게 발화된다. <작은 아씨들>도 마찬가지다. 20세기 페미니즘의 대모 격인 시몬 드 보부아르는 “<작은 아씨들>에서 내 얼굴과 내 운명을 보았다”고 이야기했다. 이번 영화를 연출한 그레타 거윅 감독은 “오늘날 여성으로서 내가 창작 활동을 하기 위해 나누고 있는 대화들이 바로 거기에 다 들어 있었다”고 술회했다(『씨네 21』 게재 인터뷰).

그런 점에서 2019년 작 <작은 아씨들>은 1949년 작, 1994년 작보다 여성의 일과 사랑을 그리는 데 있어 진일보했다. 그 역할이 두드러지는 것은 역시 조와 에이미(플로렌스 퓨)다. 특히 결혼과 돈을 둘러싼 문제가 그렇다. ‘일’이 아니라 ‘돈’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이란 곧 돈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결혼 역시 돈과 관련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네 자매 이전에 부모 세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고모(메릴 스트립)는 남을 위해 베풀고만 사는 것이 옳은 일일지는 모르나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네 자매의 부모들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그들은 해방노예를 교육시키고, 굶주리는 이웃을 위해 자신들의 크리스마스 음식을 나눠 준다. 셋째 딸 베스(엘리자 스캔런)는 그 이웃의 성홍열에 감염되어 결국 세상을 떠난다. 야박하게 말하면 남을 돕자고 자신들의 딸을 희생시킨 것이다(물론 너무도 착한 베스는 누구의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 행한 것이다). 이것은 숭고한 일일지는 모르지만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어리석은 일이다.

대고모는 네 자매의 아버지가 이런 식으로 재산을 남을 위해 써서 가난뱅이가 되고, 자신은 잘 관리해서 부자로 남아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영화에서 대고모의 이 말은 단지 돈 많은 친척의 밉살스런 거드름으로 보이지 않는다. 사실, 대고모가 독신으로 사는 것과 부자인 것은 어느 정도 관계가 있어 보인다. 방탕한 남편을 만나 재산을 날리거나, 반대로 이타적이지만 무능한 남편을 만나 재산이 축나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노동자나 농민으로서의 직업이 아니라면 당시 중간계급 여성에게 자신을 건사할 수 있는 직업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허투루 쓰지 않고 보존하는 것이 최소한 현상유지를 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무직인 그녀의 재테크 비결은 끝내 공개(?)되지 않지만 대고모의 이러한 태도는 네 자매가 결혼과 돈/일을 저울질 하는데 중요한 열쇠를 제공한다. 어찌 보면 이것은 그녀들이 부모의 이타주의냐 대고모의 ‘자기보존주의’냐를 선택하는 영화인 것이다.

가장 영악하게, 그러나 가장 지혜롭게

베스, 메그, 에이미, 조의 순으로 따라가 보자. 베스는 굶주리는 이웃을 돌보는 게 시들해진 자매들을 대신해 그 집에 갔다가 성홍열에 걸려 죽는다. 수줍음 많고 병약한 그녀에게 결혼은 사치나 다름없다. 그녀를 위한 어떤 로맨스도 영화에는 없다. 그 다음은 큰 딸 메그(엠마 왓슨)다. 그녀는 엄마(로라 던)를 쏙 빼닮았다. 가장 예뻐서 대고모가 항상 부잣집에 시집보낼 기대를 해왔지만 그녀는 돈이 아닌 사랑을 택한다. 배우가 되고 싶어 했던 메그가 꿈을 포기하는 것이 안타까워 조는 기를 쓰고 말려보지만, 그녀는 남편과 아이를 낳고 사는 평범한 여자의 삶을 택한다. 영화는 이것을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폄하하지 않는다. 그건 그녀의 선택일 뿐이다.

역시 문제로 떠오르는 것은 에이미와 조다. 둘의 비중이 가장 큰 것은 <작은 아씨들>의 유구한 전통 같다. 에이미는 다소 허영심 있고 철없는 막냇동생으로 기억되었다. 이번 영화에선 정말 똑 부러진다. 특히 로리(티모시 샬라메)와의 대화에서 드러난다. 그녀는 여성이 직업을 갖고 자립해서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화가를 꿈꾸지만 역사에 기록되는 여성예술가는 거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예술을 예술로 인정하는 것은 남자들의 일이고, “남자들이 경쟁자를 쳐내는 거네?”라는 로리의 물음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녀는 결혼은 남편이 아내와 자식들을 소유하는 것이고, “결혼이 경제적 거래가 아니라고 말하지 말라”며 로리의 어리숙하고 낭만적인 결혼관을 일갈한다. 너스레를 섞자면,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가 여성의 결혼을 ‘합법적 매춘’으로 변질 시킨다고 비판했던 칼 마르크스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녀는 로리와의 결혼을 선택한다. 그것이 제대로 된 직업이 허락되지 않았던 그 시대에 꿈도 사랑도 포기하지 않는 일일지도 모른다. 화가로서 그녀의 성공 여부는 어쩌면 남편 로리와의 주도권 싸움에 있다. 이리 똑 부러진 여자라면 질 것 같지 않다.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역시 주인공 조다. 아마도 원작의 결말을 가장 충실하게 수용했을 1949년 작에서 조는 잠시 집에 들렀다 떠나는 프리드리히를 돌려 세운다. 그리고 결국 그녀가 그와 결혼할 것임을 암시하며 끝난다. 이번 <작은 아씨들>이 이것을 어떻게 처리하는가가 최대 관건이다. 영화는 첫 장면의 출판 편집자를 다시 불러들인다. 과연 그녀는 프리드리히(루이 가렐)와 결혼하게 될까? 그래서 편집자의 보수적인 해피엔딩을 그대로 따르게 될까? 가장 조마조마한 순간이다(“제발…결혼으로 끝내지마”). 영화는 이것을 조의 극중 자전소설 『작은 아씨들』로 슬그머니 대체해 놓는다. 그리고 프리드리히와 결혼하는 것으로 끝낸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그녀는 편집자와 거래를 한다. 선인세를 요청하고 원고료를 올려달라고 하며, 저작권을 요구한다. 여성독자들이 원하는 결말이라는 편집자의 말을 들어주면서, 그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건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만약 결혼으로 끝내지 않는다면 대중의 취향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인기작가가 돼야 자기가 원하는 작품도 쓸 수 있다. 그러나 그건 극중 극, 즉 자전소설의 결말일 뿐이고 영화 속 조는 여전히 자립적인 직업인이자 독립적인 여성이다. 이토록 영민하고 현명한 결말이 있단 말인가? 먹물스러운 해석을 덧붙인다면, 이것이야말로 돈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지켜주는 것 역시 돈이라는 게오르그 짐멜의 전언을 영화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그렇게 시간의 시험대를 거쳐 이 고전은 이렇듯 가장 동시대적으로 우리 곁을 찾아 왔다.

정영권(동국대학교 대학원 영화영상학과 강사)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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