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호 특강취재 : 말과 활 아카데미 <인스타그래머블 instagrammable - 수전 손택: 찍기와 찍히기, 이미지와 윤리>] 거짓 이미지와 뒤틀린 진실

지난 1월 30일 ‘말과 활 아카데미’는 비판적 부정과 거리 두기를 통해 참된 앎을 탐색하고자 하는 ‘Be not 시리즈’의 일환으로 <인스타그래머블 instagrammable – 수전 손택: 찍기와 찍히기, 이미지와 윤리> 특강을 개최했다. 인스타그래머블은 신조어로, ‘인스타그램에 올릴만한, 사진으로 찍어서 SNS에 올릴만한 가치가 있는’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 표현은 개인의 일상을 타인에게 공유하는 삶을 살아가는 현시대를 표상한다. 타인에게 개인(의 일상 또는 생각)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을 확인받고자 하는 현대인의 존재 방식이기도 하다. 본 강의는 수전 손택(Susan Sontag, 1933~2004)의 저서 『사진에 관하여』 (1977)와 『타인의 고통』(2003)을 읽으면서 인스타그래머블에 대해 사유한다. 강의를 맡은 김은주 강사는 이화여자대학교 철 학과에서 들뢰즈와 브라이도티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 았으며, 현재 서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특강은 3월 5일까지 진행되는 4주차 수업으로 필자는 ‘1강 인스타그래머블한 재현, 이미지, 윤리’를 수강하였다. 본 지면 에선 이미지가 재현하는 것이 무엇이며, 이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수전 손택의 질문

2018년에 실시된 한 통계에 따르면 인스타그램 일간 활성 사용자는 약 5억 명에 달한다. 일일 평균 42억회의 ‘좋아요’가 생성되며, 게시물 중 85%가 사진으로 게재된 피드이다. 가히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고 할 수 있는 현재. 강사는 ‘우리는 왜 그렇게 찍고, 게시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손택은 플라톤의 동굴을 언급하며 그녀의 저서 『사진에 관하여』를 시작한다. 그 동굴에는 죄수가 갇혀있다. 이 죄수는 몸이 꽁꽁 묶여 있으므로 오직 앞만 바라볼 수 있다. 죄수는 동굴의 벽만 바라보며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죄수의 뒤에는 ‘실제’사람과 사물들 이 존재하는 세계가 있고 또 그 뒤에는 횃불이 타오르고 있다. 횃불은 실제 세상을 비추고 그것은 동굴 벽면에 그림자를 만든다. 죄수는 벽의 그림자를 진짜 세계라 여기며 살아간다. 플라톤의 비유 속 이 죄수는 현상계에 사로잡혀 진실을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손택은 플라톤의 동굴에 갇힌 죄수 이야기를 통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그리고 ‘만족할 줄 모르는 사진의 시선’을 이야기한다.

1840년대 초 카메라가 발명되고 시대를 거치면서 ‘사진’이 지니는 의미 또한 변화되어왔다. 손택은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새롭게 알려준 ‘사진’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더 나아가 우리가 사진을 통해 대상을 관찰할 권리가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이미지에 관한 자료와 주장들을 나열하며‘바라본다’라는 것의 근본적인 원리와 그 윤리가 무엇인지를 함께 사유하길 제안한다.

사진의 윤리적 문제

우리가 인스타그래머블한, 소위 갬성(감성)적인 경험을 만들어 찍고 공유하는 것은, 그렇지 못한 현실을 피해 개인의 욕구를 가상의 공간(SNS)에서 이루고자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렇게 공유되는 사진은 개인의 욕구 해소 수단으로 그치지 않는다. 가령 94년도 퓰리처 수상작인 ‘수단의 굶주린 소녀’처럼 사진은 찍히는 그 순간 상황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도덕적 문제를 비롯해 소비를 위한 대상화라는 윤리적 문제를 끊임없이 야기한다.

손택은 사진 찍는 행위를 ‘자기 자신과 세계가 특정한 관계를 맺도록 만드는 행위’라 말하며 반드시 그 행위는 계약과 동의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계약과 동의 없이 이뤄진 사진 찍기 행위엔 윤리적인 문제가 나타나게 된다. 그 대표적 예로 파파라치 사진, 찍혔음에도 그 사실을 인지할 수 없는 CCTV, 블랙박스 영상 등이 있다. 그리고 이와같은 사진들은 윤리적 문제를 넘어 법적 문제로 사회에 큰 쟁점이 되고 있다.

바라보는 것으로 축소되어버린 경험

사진 안과 밖은 다르다. 손택은 카메라를 통해 우리가 현실을 찍어내고 있지만 사실 렌즈에 담긴 것 이상으로 현실이 은폐되어 있으며, 사진은 ‘경험을 증명해주기도 하지만 경험을 거부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사진은 자신이 담고 싶고, 기억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대상을 자신과 타인에게 ‘경험’으로써 증명한다. 이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SNS를 살펴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SNS에 공유된 ‘인증+샷(shot)’은 ‘경험’이 증명되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큰 예다. 다시 말해 인증샷을 통해 우리는 어떤 경험을 했는지, 어떤 경험을 하지 않았는지(혹은 못 했는지)를 타인에게 보여주거나 기억하려고 한다. 이러한 형태로 SNS는 경험을 증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새로운 형태의 아카이브 역할을 하게 되며 결국, 경험은 사진에 찍히고 공유되는 것으 로, 더 나아가서는 사진을 보는 행위 자체가 어딜 가고 무얼 했는지 어우를 수 있는 경험으로써 여겨지게 된다.

손택은 말라르메의 말을 빌려와 오늘날에는 모든 것들이 결국 사진에 찍히기 위해서 존재하게 되어버렸다고 말한 바 있다. 즉, 인스타그래머블한 이미지로 재현될 때 우리가 ‘대상화시킨 것’이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본래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믿어온 것들이 사진에 찍혀야만 그 의미를 갖게 되었다는 모순을 일깨운다. 이를 확장한다면 현대인의 존재는 자아만으로 구성될 수 없고 사진을 찍는 타자의 존재, 빛과 디지털에 의해 조작되는 셀카 속 자 기-타자의 존재 등 자아 이외의 존재와 함께 구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사진을 바라보는 방법

현대인들은 사진을 남기며 개인의 경험에 의미와 형태를 부여한다. 가령 휴식을 위해 여행을 떠났음에도 손에서는 휴대전화 카메라를 내려놓지 못한다. ‘멋진 나’, ‘붙잡아 놓고 싶은 순간’등을 담기 위해서, 그리고 ‘남는 것은 사진이다’라는 명목하에 여행은 사진을 위한 수단으로 둔갑한다. 일상생활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얻고자 수십 번씩 셔터를 누른다. SNS를 통해 유명해진 핫플레이스에 가는 것이 음식을 맛보거나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서라기보단 사진을 남기기 위한 수단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사진의 의미로 돌아와 남겨진 사진이 실제 경험을 그대로 재현하는지에 대해서 자문해야 한다. 개인 계정에 업로드한 피드들은 ‘인스타그래머블’ 그 자체이다. 원하는 애플리케이션으로 구도를 잡고 분위기를 입히고 (심지어 외모까지 수정할 수 있다) 사진과 어울리는 내용까지 모든 것을 개인이 ‘조작’하여 공유한다. 보여주고 싶은, 보여주기 위한 모습들로 가득한 사진들은 진실일까? 공유되는 우리의 일상은 ‘조작’되어 있다. 사진을 찍은 자의 목적과 의도를 정확히 인지하고자 하는 것은 사진의 진실성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사진을 있는 그대로의 진실로 바라 보는 것은 ‘조작’을 은폐한다.

사진은 거울이 아니기에 절대적으로 진실한 사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진이 거울처럼 현실을 재현한다는 생각은 사진에 권력을 부여하게 되는데, 이는 사진에 어떤 ‘진실’이 존재할 것 이라는 관념이다. 심지어 사진을 찍는 행위뿐 아니라 사진을 보는 행위만으로 권력은 재생산될 수 있다. 결국, 사진은 사진작가의 의도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손택은 언제나 사진을 ‘의심’ 해야 함을 주지한다.

말과 활 아카데미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특강들과 세미나가 온·오프라인으로 제공되고 있다. 또한, 인문서점 산책자와 함께 운영되고 있어 진행되는 강좌와 관련된 서적들을 쉽게 구매 할 수 있다.

김유진 기자 | beapolar0819@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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