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호 학술대회취재 : 2019 지리학대회] 세상을 공간적으로 해석하기

과거 인류가 지구상에 있는 모든 대륙에 도달하고 마침내 그것을 하나의 지도 위에 나타낼 수 있게 되었을 때, 지리학자들은 “지리학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탐험을 통한 지식 축적과 지역에 대한 백과사전식 서술에서 벗어나, 지난 수십 년간 정치·경제·사회·문화·역사·관광·GIS·빅데이터 등 다양한 연구들은 근본적으로 위의 물음에 답을 하기 위한 시도 였다.

지난달 22일(금)과 23일(토), <2019 지리학대회 : 세계화 4.0시대 의 사회통합과 포용, 지리학의 접근>이 서울시립대학교에서 개최됐다. 지리학대회는 국내 지리학 관련 학술단체와 국공립 연구기관 들이 참여하는 학술대회다. 크게 인문·자연·GIS·사진 등의 분과로 나뉘며 다양한 학술단체와 연구자, 학생들이 모여 발표하고 토론하며 의견을 나눈다. 본 지면에서는 지리학대회에서 논의되었던 발표 내용을 중심으로 지리학의 ‘세상을 공간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세계화 4.0시대, 지리학

‘세계화 4.0시대’라고들 한다. 그런데 세계화는 현시대를 살아 가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한 나머지 오히려 깊게 생각 해보지 않았던 단어다. 과연 세계화란 무엇일까?

세계화의 ‘화(化)’는 변화이다. 변화는 물리적인 것 그 이상으로, 인류가 ‘세계’라는 존재를 지각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본인이 사는 마을, 속해 있는 국가를 넘어 지구 반대편 대륙과 사람들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인지의 확장으로부터 비롯된 수백 년간 삶의 변화는 그 이전의 수천년을 상쇄했다. 변화의 과정에서 지리학은 탐험과 정복의 기술이었다. 세상의 끝이 낭떠러지가 아님을 알게 되고 신대륙을 발견한 인류에게 지구는 더이상 미지의 존재가 아니었다. 교통·통신 기술의 발달은 전세계 어디든지 하루만에 갈 수 있게 했고, 지구 반대편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시공간 압축’은 사고의 범위가 세계라는 스케일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인류는 그동안 다양한 방식의 공간 변화를 겪으며 발전해왔다. 기술의 발달은 세계를 그 어느때보다도 가깝게 만들었으나 세계는 여전히 파편화되고, 분절됐다는 반성이 공유됐다. 지리학자들은 “갈등과 대립을 어떻게 공간적으로 해석하고 더 나아가 포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고민을 나누고자 이번 지리학대회의 주제는 ‘사회통합과 포용’으로 개최됐고, 한국공간환경학회는 ‘한반도 접경지역과 새로운 지정학적 상상력’세션을 열었다.

가까이 있는 공간 다시 보기

한반도, 특히 남북의 접경지역은 일반적으로 군사분계선 기준 남북 2km 지역을 지칭한다. 그러나 군사분계선만이 경계인 것은 아니다. 남과 북이 만나는 장소뿐만 아니라 그 특수성으로 인한 예외적인 공간은 모두 접경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접경지역은 어떤 공간인가?

우리나라의 접경지역은 남북 관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더 크게는 세계적 스케일의 지정학적 질서를 반영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냉전 시기를 지나며 적대와 배제의 공간에서 화해와 협력의 공간으로 나아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접경지역은 여전히 대립과 갈등의 공간으로만 인식되고 있으며, 학계의 연구 또한 과거의 학문적 풍토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이에 지리학자들은 접경지역이라는 공간 다시 보기라는, 새로운 접근 방식을 취할 것을 주장한다.

첫 번째로 소개할 연구는 개성공단에 대한 것이다. 개성공단은 남북한 역사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곳으로, 화해와 경제 협력의 공간으로 출발했으나 갈등의 공간이자 단절의 공간이 되었다. 백일순(서울대학교) 연구자는 기존 연구가 개성공단이 그저 경제 협력과 남북교류로 인해 만들어졌다는, ‘비공간적 시각’에서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한반도라는 기존 지정학적 시각에 매몰되어 거버넌스의 주체를 국가 스케일에 한정지음으로써 미시적 스케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놓쳤다는 것이다.

연구자는 개성공단 연구가 개성의 입지적 장점이나 접경지역으로서의 특수성을 넘어, 공간 생산의 결정 과정과 선택 양상의 예측 불가함, 우연성·혼종성 등이 점철되어 있음을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예로, 연구자는 개성시 주민들이 공단에 출퇴근하기 위해 이용하는 버스를 들었다. 개성 시내를 가로지르는 남한 버스라는 이질적인 광경과, 근로자들만의 정류장(공터)에서의 소규모 시장 형성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이는 개인의 요구에 대한 남한 자본주의의 응답이자 공터에서 시장으로의 자본주의의 확산이며, 새로운 공간에 대한 인지 확장, 더 나아가 인간 이동의 흐름에 대한 연구다.

경계는 흔히 선으로 인식되나 면이기도 하다. 남과 북, 그 사이의 DMZ는 면으로서의 경계다. 최명애(한국과학기술연구원)·박범순(한국과학기술연구원) 연구자는 DMZ를 새로운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구자들은 DMZ를 60여 년간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생태의 보고’로서 바라보는 시각을 지적했다. DMZ를 자연 보호 지역으로 지정하여 생태관광자원으로 이용가능한 지역으로 보는 실용적 관점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관점은 실제 DMZ 안팎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인간 및 비인간의 정치적, 경제적, 생태적 활동을 비가시화하고, DMZ의 미래를 특정 보전 및 이용 방식으로 제한한다는 한계를 갖는다.

DMZ에 대한 이해와 실천의 방식을 확장하고자, 연구자들은 인간 활동이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는 인류세 논의를 DMZ 연구와 접목할 것을 제안하며 그 함의를 3가지로 정리했다. 동아시아의 인류세 논의를 지역적 맥락화를 통해 전개할 수 있고, 인간 없는 공간이라는 인류세(Anthropocene) 공간의 새로운 유형에 대해 논의하며, 새로운 보전 모델을 탐색할 수 있다.

경계가 항상 눈에 보이는 고정된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강수영(서울대학교)·한윤애(런던정경대학교) 연구자는 한국 전쟁 시기 개인이 마주했던 경계, 권력의 차이를 ‘일상의 지정학’ 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이들은 개인이 일상생활에서 군사화를 체화하는 방식과 태도, 특히 한국적 맥락의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근대화 및 경제 부흥으로 정당화되었던 폭력의 일상적 발현을 연구했다. 연구자들은 그동안 행위자로서 로컬 주체가 기지촌을 운영한 국가와 미군의 역할, 혹은 위안부 여성들에 의해 가려져 있었다고 지적한다.

연구 지역인 파주 기지촌은 이름 그대로 미군기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촌락이다. 미군 부대란 특성상 달러 경제로 마을이 운영되었으며,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미군 대상 성매매 혹은 PX 유통 등의 업무에 종사했다. 미군 부대와 부대에서 발원하는 달러 경제망에 촘촘히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기지촌은 민간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군대의 리듬 및 논리와 동기화되었다. 부대가 타지로 훈련을 가면 마을 전체가 부대를 따라가 “마을이 텅텅 비었고”, 그 속에서 개인이 체화한 위계질서와 경계는 경제망 내 개인이 수행한 역할과 지위에 반영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경제적 종속에 의한 일상의 군사화를 경험했으며, ‘마을 권력자’들은 위임된 권력을 내면화하 여 부상했다. 마을 사람들간 경계는 사적 영역에서도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남성과 여성의 권력 차이, 기혼여성과 미혼여성 간 위화감, 백인과 흑인 군인 간의 위계 등 다양한 결의 권력 차이가 있었음을 밝혔다.

위의 연구들은 그동안 대립과 갈등의 공간으로만 여겨졌던 접경지역을 새로운 상상력을 통해 다시 본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경계와 이를 둘러싼 접경지역이 단지 군사적 긴장으로 가득 채워진 고정되고 균일한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접경지역은 어떤 공간인가?

접경지역은 서로 다른 두 존재가 만나는 공간이다. 이질적인 두 존재가 만나기 때문에 경계가 존재하지만, 그 경계는 단일하거나 균일하지 않다. 철책선과 같은 하나의 선이 될 수도 있고 DMZ나 접경지역처럼 면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경계 안에서 오고 가는 일부 사람들에게 경계는 행위에 있는 것이다. 즉, 경계는 다양한 행위자들의 이해와 충돌이 나타나는 지점이다. 따라서 경계는 다공적(porous)이며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항상 변화하기에 ‘border’가 아닌, ‘bordering’이다.

세상을 공간적으로 바라본다는 것

지리학자들은 세상을 공간적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각자가 말하는 ‘공간적인’ 시각은 분야 에 따라, 방법론에 따라 다양하다. 그러나 단 한가지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기준은, 장소를 그저 “어떤 사건이 마침 그곳에서 일어났을 뿐인” 무대가 아니라 “사건을 구성하고 사건에 영향을 주는 동적인 공간”으로 본다는 것이다.

지리학은 변화하고 있다. 혹자는 지리학이 가장 잘 나갔을 때는 대탐험시대, 지리학자들이 미지의 땅과 바다를 누빌 때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2019 지리학대회>는 지리학이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해 왔으며, 오늘날 지리학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원생들은 다양한 영역에서 세상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공부하는 미래의 연구자일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지리학의 방식에 대한 소개를 통해, 원생들 또한 각자의 방식을 찾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류제원 기자 | jewonryu@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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