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호 인문학술 : 농식품체계] 한국 농식품체계의 구조와 변화

음식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다. 그러나 현대인 대부분은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른 채, 그저 마트 선반 위에 놓여진 식품을 구입할 뿐이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음식은 소수의 초국적 식품기업들이 생산 하여 대형 유통망 체인을 거쳐 초대형 슈퍼마켓에 진열된다. 무엇이 이러한 ‘농식품체계’를 만들어냈는지, 한국의 농식품체계는 어떠한지 본 지면을 통해 알아보자.

먹거리와 농식품체계

인간 역시 생명체로서, 먹지 않고는 살아갈수는 없는 존재다. 하지만 인간의 먹거리는 다른 종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인류의 진화와 발전 속에서 음식을 조달하는 정교한 체계가 만들어져 왔기 때문이다. 수렵·채취에서 농업으로의 전환이 이뤄졌고, 산업혁명 결과 농업 역시 전문화와 대규모화가 이뤄졌다. 유럽을 시작으로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되었으며,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식량 생산에 직접 참여하지 않으면 서 먹고 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농업과 산업의 분업을 기반으로 하는 먹거리 조달 체계, 즉 농식품체계(agri-food system)가 형성된 것이다.

농식품체계는 먹거리의 생산, 유통, 소비, 폐기의 전 과정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식품 체계라는 말도 많이 사용되지만, 1990년대 이후 먹거리 생산을 담당하는 농업(agriculture)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농업사회학자들이 농식품체계라는 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관련 분야에서는 흔히 사용되는 일반 명사가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거리 조달을 관장하는 구조를 예전의 식품체계와 구별하여 ‘현대 농식품체계’라고 한다. ‘전통적 농식품체계’에서는 먹거리가 소규모로 생산되고, 기후나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자급자족 방식이었다. 지역마다 고유의 식자재를 활용한 독특한 음식이 있었고, 먹거리 분배의 중심에 공동체가 있었다. 반면 현대 농식품체계는 먹거리를 대규모로 안정적으로 생산하며,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교환된다. 음식의 지역성은 약화되었으며, 시장이 먹거리 분배의 중심기제가 되었다.

기업식량체제와 현대 농식품체계의 특징

현대 농식품체계의 구체적인 양태는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역사적으로 변화해온 식량체제(food regime)와 깊이 관련된다. 이후에 다룰 남한 농식품체계 역시 전 지구적으로 조직화 되어온 식량체제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식량체제 관련 논의는 1980년대 이후 세계체계론에 영향을 받은 일군의 농업사회 학자들에 의해 발전되었다. 대표적으로 코넬대학의 필립 맥마이클(Philip McMichael)과 토론토대학의 헤리엇 프리드먼 (Harriet Friedmann) 등이다. 이들은 자본주의의 역사를 식량 조달을 통한 국제분업의 동학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19세기 영국의 자본주의 발전과 산업화(=노동계급 형성)는 아메리카, 호주, 카리브해 등의 식민지에서 제공된 곡물, 고기, 설탕을 기반으로 했다고 본다. 이를 ‘제1차 식량체제’라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헤게모니 속에서 새로운 ‘제2차 식량체제’가 형성되는데, 이는 미국의 값싼 곡물, 특히 밀을 기반으로 한 제3세계 지역의 산업화와 노동계급의 형성을 내용으로 한다. 1950~60년대 남한에 제공된 식량원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식량체제론자들은 1995년 WTO 농업협정을 계기로 새로운 식량체제로의 전환이 진행되었다고 지적한다. ‘제3차 식량 체제’ 혹은 ‘기업식량체제’로 불리는 이 새로운 체제는 주로 초국적 기구와 거대 농식품 기업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현재 우리 먹거리의 생애주기 전체를 관장하는 농식품체계는 이러한 기업식량체제 하에서 구조화된 것이다.

거대 농식품기업들에 의해 지배되는 현대 농식품체계는 위와 아래는 넓고, 가운데는 가느다란 모래시계 모양을 하고 있다. 미국의 예를 들면, 모래시계의 윗간에 약 220만 개의 농장이 있는데, 이들이 아랫간에 존재하는 3억 명의 소비자들에게 먹거리를 공급한다. 그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식품 관련 기업들인데, 그 수를 모두 합쳐도 19만 개를 넘지 않는다. 하지만 모래시계의 모래 흐름, 즉 먹거리의 흐름을 지배하는 것은 이 소수의 농식품 관련 기업들이다. 예컨대 세계종자 시장의 대부분은 몬산토, 듀폰, 신젠타 등이 지배하고 있는데, 이들 기업은 종자뿐 아니라 관련 산업인 농약, 화학비료, 생명공학 부문에까지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다(그림 1 참조). 인수·합병 을 통해 거대한 종자·화학·생명공학 기업들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이들이 농업생산의 모든 분야를 통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림 1) 세계 종자산업 구조

한편 식품의 직접적인 소비와 관련해서는 우리에게 보다 익 숙한 식품기업들이 존재한다. 예컨대 네슬레, 코카콜라, 펩시코, 다농 등이 각각 수십 개의 자회사 및 브랜드를 통해 세계 소비자들의 먹거리를 공급하고 있다(그림 2 참조). 이 식품회사들은 음료, 과자류, 인스턴트식품 등 가공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인다. 바쁜 현대인들이 직접 음식을 조리하기보다 매식이나 간편식을 자주하게 되면서 이 기업들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다수의 소비자들은 초국적 식품기업들이 제공한 식품들 을 대형 슈퍼마켓에서 구입하여 먹게 된다.

(그림 2) 세계의 식품기업들

우리나라 농식품체계의 변화

우리나라의 농식품체계 역시 식량체제의 틀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해왔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세계식량체제 안에 포섭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 중심 세계질서 안에 편입되면서부터이다. 남한 농식품체계는 크게 ① 식량원조체계(해방~1970년), ② 개발주의적 농식품체계(1970년~1980년대 초), ③ 신자유주의적 농식품체계(1980년대 중반~현재)의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식량원조체계 시기의 식량 조달 및 소비의 중심에는 미국으로부터 유입된 밀이 있었다. 한국은 해방 이후 식량부족 문제 가 심각했는데, 특히 한국전쟁은 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식량원조 프로그램(미국 공법 480 호; PL480)은 우리나라의 먹거리 생산과 소비의 큰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값싼 미국산 농산물은 그렇지 않아도 어려웠던 한국 농가경제를 더욱 황폐화시켰다. 무엇보다 국내 농산물 가격 전반에 하방압박을 가해 탈농을 가속화했고, 도시 노동자의 저임금을 지원하는 구조를 만들 어냈다. 이 시기에 주목해야 할 식품은 밀이다. 과거에 밀은 한국인들에게 일상적인 식재료가 아니었다. 밀로 만드는 대표 적인 음식인 잔치국수는 특별한 날 장수 와 복을 기원하고자 먹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원조로 수입된 엄청난 양의 밀은 한국인들의 입맛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고, 밀을 활용한 음식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개발주의적 농식품체계는 박정희 정부에 의한 남한 근대화의 틀 안에서 유지되었다. 개발주의적 농식품체계에서 핵심이 된 식품은 쌀이다. 쌀은 한국인의 문화적 정체성의 핵심이며, 정치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먹거리이다. 한국인에게 ‘식사=밥=쌀’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며, 쌀/밥은 부와 풍요의 상징이었다. 이는 정치 지도자들에게도 중요했다. 분단 상황에서 박정희와 김일성은 각기 남북의 국민에게 하얀 쌀밥을 먹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즉, 쌀은 정치적 정당성 문제와 깊이 관련되었던 것이다.

박정희 정부는 쌀 자급자족을 중요한 정책목표로 삼았다. 이는 한편으론 혼·분식을 통한 쌀 수요 관리, 다른 한편으론 녹색혁명을 통한 쌀 증산을 통해 추진되었다. 정부는 필리핀 미작 연구소와 서울농대·농업시험장이 합작하여 만들어낸 ‘통일벼’ 같은 다수확품종을 통해 1976년, 쌀 자급을 이뤄냈다. 박정희는 1977년 1월 연두 기자회견에서 식량난에 시달리는 북한에 쌀을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는데, 이는 체제 우월성을 과시 하고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었다.

흥미롭게도 이 시기에 이중적 식품구조가 형성되었다. 쌀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미작 체계와 밀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노동음식 체계이다. 쌀은 남한의 소농들을 위한 정치·경제적 고려의 고리였고, 밀은 국제곡물체계로의 편입이자 저임금을 바탕으로 하는 노동력 재생산의 조건이었다. 미국산 밀 수입은 1970년대 초반부터 원조에서 상업적 교역으로 형태가 바뀌었다. 산업적 대규모 영농을 통해 생산된 미국산 밀은 그나마 존재하던 국내 밀 농업을 도태시켰다. 값싼 미국산 밀은 남한 저소득층의 식재료로 빠르게 그 위치를 공고히 했다. 밀을 활용한 음식, 즉 라면, 멸치국수, 짜장면, 짬뽕, 우동, 칼국수, 수제 비 등이 서민들의 배를 채워주었다. 하루 16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공장 노동자들의 주식 역시 밀이었다. 평화상가에서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를 외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던 청년 전태일의 배경에도 이 슬픈 밀가루 음식이 있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남한 농식품체계는 세계화와 수입 개방의 흐름 속에서 급격하게 변화하였다. 농업생산의 측면에서는 전통적 미작 부문과 기업적 환금작물 부문으로의 이중구조가 만들어졌다. 1995년 WTO의 출범은 세계시장 규범이 농업 부문까지 침투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자유 무역과 시장 근본주의의 강력한 파고와 농산물 수입개방 속에서 농가경제는 어려움에 처했다. 상징적으로 유지되는 미작 부문 과는 별개로 경쟁력 담론 속에서 지역특산물을 강조하면서, 농업의 산업화·단작화가 가속화되었다. 또한, 축산업이 빠르게 성장하여 급증하는 한국인들의 육류 수요를 충당했다. 새로운 신자유주의적 농식품 체계 속에서 농촌은 더욱 피폐해져가고, 슈퍼마켓에는 값싼 수입 농산물과 가공식품 이 범람하게 되었다. 남한의 곡물 자급률은 20%대로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 되었다.

지속가능한 농식품체계를 찾아서

현재 우리에게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농식품체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그 이유를 몇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먹거리의 출발점인 농업은 엄청난 양의 화석연료를 사용하고 있으며, 단작화되었다. 이는 환경적으로는 재앙이다. 둘째, 그 과정에서 농업은 외부 투입재를 대량으로 구입하는 산업이 되었다. 농업이 종자, 화학비료, 농약, 농기계 등 농기업 활동에 크게 의존하게 됨으로써 농민이 가져왔던 생산 관련 주권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 셋째, 농업 생산자와 소비자의 중간 에서 시장을 지배하는 식품관련 기업들은 더욱 거대해지고 초국적화되면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넷째, 그 결과 먹거리가 가진 몸과 생명의 의미는 사장되고, 단지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으로 재규정된다. 소비자들은 그저 값싼 먹거리만 찾는 수동적 존재로 전락한다.

현대 농식품체계가 사회적으로나 생태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으며, 궁극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기존 농식품체계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지속가능한 농식품체계를 만들기 위한 꾸준한 과정이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농식품체계 모색에 영감을 주는 이론적 자원으로 칼 폴라니(Karl Polanyi)의‘사회적 배태성 (social embeddedness)’ 개념이 유용하다. 20세기 초반의 위대한 경제학자 폴라니는 자유주의 유토피아에 대한 심층적 분석과 통렬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그는 ‘자기조정적 시장’ 이라는 이데올로기가 허상에 불과하며, 토지·노동·화폐를 상품화하려는 노력이 결국은 사회적 파국을 낳는다는 점을 밝혔다. 자기조정적 시장을 사회질서의 원리로 삼고자 할 때, 사회 자체가 붕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폴라니의 논의를 농식품 체계와 관련지어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현대 농식품체계는 먹거리를 극도로 상품화한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정책들이 강화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해졌다. 그 속에서 사회적 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농식품체계는 신자유주의적·기업적 농식품체계의 운영원리에 대한 반(反)에서 출발할 수 있다. 즉 현재 농식품체계가 기반으로 하는 시장지상주의를 넘어, 사회적 원리가 도입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생활협동조합(생협)이나 사회적 기업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작지만 성공적인 사례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완주로컬푸드’ 이다. 완주로컬푸드는 지역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직매장 에서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직거래 협동조합이다. 완주로컬 푸드의 사업적 성공보다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것의 사회적 역할이다. 지역의 소농, 특히 노인 농민들은 직매장에 출하를 하면서 여러 긍정적인 경험을 하고 있다. 농사짓는 보람을 느끼고, 다른 농민들과 소통을 하게 되고, 또한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1) 사회적 소수자들을 포용하는 사회적 경제의 역할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농식품체계의 또 다른 기준은 생태적 고려이다. 분석적 편의를 위해 먹거리 생산과 소비로 나누어 검토해보자. 오늘날 먹거리는 크게 농업과 가공산업을 통해 생산된다. 현대적인 농업은 생산주의(productivism)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더 저렴하게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를 휩쓴 생산주의는 종자개량, 화학비료, 농약, 농기계, 단작 등을 통해 현실이 되었다. 농민은 이제 다수확품종 종자를 구입해서 농지에 한두 종류의 작물만을 재배한다. 단작을 반복함으로써 나빠진 토양을 화학비료를 통해 개선하고, 병충해에 대비해 농약을 뿌린다. 관리와 수확은 최대한 농기계를 활용하고 노동 비용은 줄인다. 농약, 비료, 농기계는 모두 화석 연료를 의미한다. 소위 “음식을 먹는 것은 석유를 먹는 것”이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농민들이 생산한 먹거리는 대형 트럭이나 기차를 통해, 혹은 선박이나 비행기를 통해 소비지로 이동한다. 도시의 소비자들은 먹거리의 생산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식사에 필요한 먹거리는 마트에 진열되어 있다. 바쁜 현대적 생활양식 때문에 일주일 먹을 음식들을 한꺼번에 슈퍼마켓에서 구입한다. 자동차를 몰고 마트에 가서 잔뜩 구입한 식료품은 냉장고에 저장되어 일주일의 양식이 된다. 현대적 혹은 포드주의적 식품체계의 핵심은 슈퍼마켓, 자동차, 냉장고다. 이들은 모두 엄청난 에너지 소비를 기반으로 한다. 세계 전역에서 과일과 채소가 냉장시스템을 통해 슈퍼마켓으로 이동하고, 가정용 냉장고는 화력이나 원자력으로 생산된 전기를 사용한다. 이처럼 현대 농식품체계는 대량의 에너지를 사용하며, 특히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장거리 이동이 일반화 되면서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 또한 많이 생산된다.

지속가능한 농식품체계의 과제는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간단한 방법은 생산지와 소비지(消費地)의 거리를 줄이는 것이다. 거리 줄이기(de-distancing)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여러 나라에서 지역먹거리(local food)는 중요한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지역먹거리의 구체적인 형태로는 농민장터, 도농직매장, 지역농산물을 활용한 학교 및 공공급식, 공동체지원농업 (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등이 있다. 모두 먹거리의 생산지와 소비지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줄이고, 더 나아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사회적 거리를 줄이고자 하는 노력이다.

한국에서 대표적인 대안적 먹거리조직은 한살림이나 아이쿱과 같은 생협이다. 생협은 오랫동안 소비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면서 좋은 먹거리를 공급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생협들 사이에도 이념이나 조직 운영방식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특히 농민 생산자를 바라보는 관점과 지역먹거리에 대한 인식은 생협들 사이에 논쟁의 지점이다. 최근 생협은 사업적 팽창과 조합원 수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안팎에서 위기론이 등장하고 있다. 그 핵심은 생협의 대안성과 철학의 약화라고 할 수 있다. 남한의 폭력적 산업화 과정에서도 좋은 먹거리 공급에 큰 역할을 해온 생협이 진정한 대안으로 성장하고, 지속가능한 농식품 체계 구축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쇄신이 필요하다. 지역성과 생태성을 강조하고, 농민 생산자와의 연대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주도하지 않고, 기업 경영적 논리를 내면화할 경우 생협의 위기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지금까지 농식품체계라는 ‘구조’에 대해 논의했다. 지속가능한 농식품체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누가 만들 것인가라는 ‘주체’의 문제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대부분 먹거리 소비자이다. 하지만 성찰적 소비자 즉, 먹거리 시민(food citizen)이 될 수 있다. 먹거리 시민은 먹거리에 대한 관심과 지식을 가지고, 사회·생태적으로 좋은 음식을 선택하려 하고, 먹거리 생산자들과 연대하는 행위자이다. 먹거리 시민이 늘어나고, 일상에서 행동하며, 서로 연대하며 구조 변화를 꾀할 때, 농식품체계가 변할 수 있다. 대안적 주체로서의 먹거리 시민이 있어야 지속 가능한 농식품체계로의 이행이 가능하다. 우리가 무엇을 먹는가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김철규 /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1) 자세한 내용은 김태완·김철규, 「지역먹거리 운동 조직과 농민 생활의 변화: 완주로컬푸드협동조합 사례를 중심으로」, 『농촌사회』26집 1호. 2016 참조.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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