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호 리뷰: 국립현대미술관, 〈김순기 : 게으른 구름〉] 시공간 속에 존재하는 예술

하나의 원이 시공간 속에 존재할 때, 보는 이는 원 속에 존재하는 다른 차원의 시공간을 엿볼 수 있다. 순간적으로 저 세상을 들여다본 관찰자는 그제야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고 환희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하나의 크고 멋진 원을 구현하기 위해 예술가들은 매 순간 더 상위의, 더 적절한 생명력을 꽃 피우려 매일의 수행을 마다하지 않는다. 국립현대미술관(MMCA)에서 진행 중인 〈김순기 : 게으른 구름〉의 작가 김순기(1946~) 역시 40여 년의 시간 동안 꾸준한 수행을 지속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일찍부터 철학과 예술, 테크놀로지가 결합된 퍼포먼스와 비디오, 글쓰기 작업 등 다양한 영역의 교류와 실험에 관심을 두었던 그녀의 예술관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

순간을 그려내는 행위, 다시는 없을 시적인 삶

김순기 작가는 하나로 규정하기 힘든 복합적 면모를 가졌다. 이것은 작품의 물질성보다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내는 순간성이나 상황에 관심을 두고 작업을 진행하는 작가의 성향 때문일 것이다. 작업실 주변에서 수집한 돌멩이, 나무 등을 이용한 오브제와 판화 등 일기 쓰듯 작지만 꾸준하게 순간을 기록해 온 작가의 모습이나, 비디오 아티스트들과 교류하며 남긴 멀티미디어 작업, 세계적인 미학자들과 신자유주의 시대 예술의 가치와 역할을 묻는 인터뷰 작업 등에서‘순간을 그려내고자 했던’ 작가의 태도가 나타난다. 작가의 삶을 따라 생겨난 다양한 매체와 소재의 오색찬란한 작품들을 보고 있자니 예술로 일상을 오롯이 채워온 작가의 발자취가 절로 그려진다.

특히 세 번째 섹션인 ‘조형상황’은 이번 전시의 핵심으로 꼽히고 있다. 이 작품은 해변의 바람에 대형 풍선을 날려보내는 작업이었다. 작품에는 김순기 작가와 미대 학생, 작가, 일반인들이 함께 참여했는데, 각각의 참여자들이 손수 영상을 자유로이 기록하고 그 영상들을 작가가 함께 엮어낸 것이 특징이다. 이 작품에는‘예술이란 캔버스 내에서 작가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열린 시공간 속에 존재 하는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작가의 철학이 반영되었다. 영상에서 파란 하늘로 미련 없이 떠나가고 있는 커다란 하얀 풍선을 보고 있노라면 당시의 빛과 바람, 먼지, 사람 소리, 차 소리가 오감으로 느껴지는 듯 하다.

드높은 삶에 대한 끝없는 탐구

이번 전시명 〈게으른 구름〉에서도 드러나듯 작가는‘게으름’이라는 요소를 불성실과 나태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삶을 보다 자세하게 관찰하고 긍정하며 사유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으로 본다. 국립현대미술관과의 전시 인터뷰에서 김순기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보통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어디에서 얻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영감이라는 단어를 잘 모른다고 답합니다. 작업을 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다음에 할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사용하고 싶은 재료도 생각나곤 하니까요. 내가 생각하는 작가로서의 나는‘일꾼처럼 묵묵히 일 하는 사람’입니다.”

게으름을 원동력으로 삶을 끊임없이 탐구해나가는 작가의 열정적인 모습에서 우리는 ‘일상이자 실천으로서의 예술의 의미’를 다시금 고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회고전이면서도 신작 두 점을 발표하는 이 전시는 8월 31일 개막해 내년 1 월 27일까지 계속된다.

윤슬채 기자 | jn2565462@khu.ac.kr

작성자: khugnews

이글 공유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