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호 책지성: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왜 인간은 사는가?

누구나 잘 사는 것을 꿈꾼다. 그러나 느닷없이 찾아오는 삶의 공허함에 우리는 묻는다.‘ 내가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인가?’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성취에 집착하거나 술, 도박, 마약 등의 일시적인 자극에 빠지기도 하지만 공허함은 해결되지 않는다.‘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에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결론은 존재할 수 없다. 삶이란 막연한 것이 아닌,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이 시련을 겪는다면, 그 시련은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는 자신만의 유일한 과제다. 그 시련을 겪는 사람은 세상에서 유일한 한 사람이며 누구도 그 시련에서 구해줄 수 없고, 시련을 대신 짊어져 줄 수 없다. 이 시련은 삶이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그 방식을 결정하는 본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다.

강제수용소와 일시적인 삶

제2차 세계대전, 나치의 강제수용소. 강제수용자들의 강제노동과 노동 부적합자들의 가스실 학살. 언제 죽을지 모르는, 한 점의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곳.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가히 설명조차 할 수 없는 지옥이었으리라.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당시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강제수용소에 수감당했던 빅터 프랭클(Viktor Emil Frankl)의 수기(手記)이다. 그는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로고테라피(Logotherapie)라는 정신의학이론을 정립했고 그의 수기는 로고테라피 이론의 입문서이기도 하다.

그는“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삶의 길을 선택할 자유만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으며, 그 자유를 포기하게 되면 살아갈 수 없다”라고 반복해서 말한다. 매 상황마다 판단하고 선택 내릴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리 희망의 끈을 자르고 죽어버릴 수도 있지만, 가스실을 앞에 두고도 당당히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는 것 역시인간이다.

수감당한 유태인들에게 가장 절망적이었던 것은 고통의 끝, 석방되는 날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수형 기간은 불확실했고,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상태를 작가는‘일시적인 삶’(provisional existence)이라 명명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내적 삶의 구조 전체가 퇴행되어, 혼란스러운 시간감각을 경험하거나 현실을 덜 사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수감되기 전의 과거 회상에 몰두하기도 한다. 미래의 목표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미래를 대비하는 삶을 포기하는 것이다. 끝을 예견할 수 없는 일시적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기대와 목표를 세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그 상실

찢어진 신발과 발에 난 심한 종기에 극심한 통증을 겪으며 긴 행렬에 끼여 걸었다. 날은 추웠고 수용소에서 작업장까지는 몇 킬로미터나 남았다.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은 사정없이 옷 틈새를 난도질했고, 그는 끊임없이 지금 상황에 대한 자질구레한 문제들을 걱정하며 절뚝거렸다.

매일같이, 시시각각 그런 하찮은 일만 생각하도록 몰아가는 상황이 역겨웠던 프랭클은 현재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고 미래를 그렸다. 환하게 불이 켜진 쾌적한 강의실의 강단에서 강제수용소에서의 심리상태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는 자신을 말이다. 그 순간 그를 짓누르던 걱정들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고 그가 처한 상황과 순간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다. 프랭클은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통해‘미래에 대한 기대’가 인간의 힘든 순간을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이자 삶을 포기하게 하는 상실의 전제가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기대의 지속이다. 프랭클은 미래에 대한 기대의 상실과 삶의 연관성을 두 가지 사례를 들어 이야기한다.

어느 날 그의 구역 고참 관리인인 F가 꿈 이야기를 한다. 꿈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종전날짜를 알려 줬다는 것이다. 해당 날짜까지 한 달 남짓 남은 상황에서 종전 기미는 보이지 않았지만 F는 희망에 차 있었다. 꿈속에서 들은 종전날짜의 전날 F는 아프기 시작했고, 당일 의식을 잃었고, 다음날 죽었다. F의 죽음의 직접적 요인은 발진티푸스였다. 하지만 죽음의 결정적 요인은 종전이 오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고 프랭클은 말한다. 그의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은 잠재해 있던 발진티푸스 균에 대한 저항력을 떨어뜨렸고, F는 병마의 희생양으로 자신을 몰았다.

미래에 대한 기대의 상실과 삶의 연관성은 수용소의 사망률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44년 성탄절부터 1945년 새해에 이르기까지 일주일간의 수용소에서의 사망률은 급격히 증가했다. 이에 수용소의 주치의는 그 원인이 가혹해진 노동조건이나 식량 사정의 악화, 기후변화, 전염병 등이 아니라고 결론짓는다. 프랭클은 대부분의 수감자들이 성탄절에는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으며, 그 상실에서 오는 절망감이 그들에게 큰 영항을 미쳤을 것이라 주장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인간의 정신 상태와 육체의 면역이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으며, 기대의 갑작스런 상실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수용소 생활과 로고테라피

빅터 프랭클은 인류 최악의 비극 중 하나인 홀로코스트 경험을 그저 개인적인 비극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았고,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을 행운으로만 여기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의 생존 경험을 통해 정신의학 이론, 로고테라피를 정립했다.

로고테라피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다음의 정신요법 제3학파로 불린다. 천재적인 학자가 환자 몇 백 명을 진료하면서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이론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죽음의 문턱에서 몇 년간을 버티면서 겪은 찰나의 감정과 사고의 정수가 로고테라피의 기반이 됐다.

로고테라피는 환자의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 정신분석이 환자의 증상에 대한 근원파악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로고테라피는 이론이 이루어야 할 실질적 과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제는 삶의 의미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환자가 삶의 의미를 지속해서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로고테라피의 임상 기법으론 불안의 대상을 역으로 지향하도록 하는 역설지향(paradoxe intention)기법, 삶의 의미나 가치를 부여하는 사물에 전념한 강박 증상에서 해방되도록 권고하는 반성제거(dereflexion)기법이 활용된다. 이러한 기법들은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의지의 좌절로 초래된 실존적 공허를 극복하기 위함이다.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는 의미의 좌절 이후에 오는 공허를 극복하는 데서 지속될 수 있고, 삶의 의미와 목적의 지속적인 탐구는 환자의 악순환 형성(vicious-circle formation)과 송환기제(feedback mechanism)를 약화시켜 정신질환자에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자기 집중증상의 발생과 심화를 막는다. 실존의 잠재적 의미까지 고려해 환자가 일시적인 삶에서 벗어나 미래를 구성할 수 있도록 돕는 철학 상담으로써 로고테라피는 정신의학과 실존주의 철학의 만남의 지평에서 시도된 정신치료, 내지는 심리치료라고 볼 수 있다. 자기 존재의 깊숙한 곳에서 정말로 소망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한 뒤 그것을 실현해야 할 인간의 자율성과 책임을 강조하는 이 이론은 그 무엇보다 한 인간의 삶과 생존에 의미를 부여함에 초점이 맞춰진 의미치료, 로고테라피인 것이다.

삶은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우리는 삶으로부터 무언가를 기대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삶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이다. 우리는 삶에서 기대하는 무언가를 잠시 내려놓고, 우리가 삶을 위해 해야할 일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들에 올바른 답을 찾고, 개개인에게 주어진 과제를 수행에 나가는 것이다.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나아가‘어떻게’살아야 의미가 있는 삶인지 자신만의 답을 찾아야 한다.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어떻게’라는, 삶의 방식을 통해 대답할 때 우리는 삶이라는 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방법을 도출할 수 있다.

산다는 것은 곧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그 시련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다. 만약 삶에 어떤 목적이 있다면 시련과 죽음에도 반드시 목적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목적으로 여기는 것은 오로지 삶을 위해서이다. 빅터 프랭클은 실존주의 철학자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의 말을 인용한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정은택 기자 | 2081897@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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