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호 문화비평: 독립출판 문예지] ‘영향력’ 만들기

최근 독립출판과 독립 문예지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기존 소수권력 중심의 문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주된 이유를 바탕 으로 문화·경제적 여건 및 출판·유통 시스템의 변화 덕분이다. 그러나 과연 독립출판 문예지는 얼마만큼의 지속가능성 을 가지는 것일까? 이에 본보는 독립문예지《영향력》의 발행인 은미향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지금의 문학 생태계의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문학주간 2019 : 문예지 100주년 공동 심포지엄 〉에서 문예커뮤니케이션학회(공병훈 학회장)가 최초의 문예지 《창간》 발간 100주년을 맞아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예지 독자 의 92.9%가 창작자이고 일반 독자는 7.1% 정도라고 한다. 사실 ‘문예지가 문인들만의 책’이라는 자조 섞인 평을 들어온 건 한두 해 만의 일은 아니다. 그런데, 문예지를 읽는 사람 열 중 아홉 이 창작자라는 사실이 정말 문제인 걸까.

독립출판 문예지들의 등장

《영향력》의 창간호 준비를 시작했던 2015년 가을까지만 해도 ‘독립출판’에 대한 인식 혹은 인지도나 ‘문예지’의 상황이 지금과 달랐다. ‘독립출판 문예지’에 대한 관심은 그보다 낮아서 당시 우리가 파악하고 있었던 독립출판 문예지로는 강성은, 김현, 박시하 시인이 그해 4월에 창간한 격월간 문예지 《더멀리》정도에 불과했다. 계간으로 기획한 《영향력》은 2015년 가을부터 준비를 시작해 2016년 2월에 첫 호를 냈다.

《더멀리》가 독립출판의 형태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발행인이 모두 등단한 시인이었던 반면, 《영향력》은 발행인 두 명이 모두 한국의 등단 제도를 통해 등단한 바가 없었다는 점에서 도전이라면 도전이었다. 투고를 통해 책을 만들기로 한 만큼 좋은 작품의 투고가 있어야 책을 만들 수 있을 텐데, 알려지지 않은 발행인 · 편집인 · 작가에게 자기 작품을 보내오는 사람이 있을까, 있더라도 과연 좋은 작품일 것인가, 만든다 해도 이름 모르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가득한 책을 그것도 문예지를 읽어줄 사람이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없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원고 모집 공고를 냈고, 모인 원고 중 일부로 책을 만들었고, 팔았다.

‘등단’이라는 방식은 매체마다 장르별로 1명씩 뽑으니 너무 좁고, 1년에 한 번씩 열리니 너무 멀고, 사지선다 시험처럼 정답이 있는 게 아니니 예측이 너무 어려운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좁고, 멀고, 예측이 어려운 방식으로는 ‘등단’이라는 걸 할 수 있는 작가의 수가 너무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우리처럼 어딘가에서 계속 쓰고 있거나 끊임없이 쓰려고 하고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우리는 용감하게도 《영향력》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문예지를 만들 수 있었다.

독립출판 문예지들의 출간, 그리고 폐간

국내 최초 고양이 문예지를 표방한 《젤리와 만년필》, 약자와 소수의 독립문예지《소녀문학》, 느슨한 문예 공동체를 꿈꾸는 《베개》, 2019년 창간된 《be:lit》과 같은 독립출판 문예지는 물론 이고, 이미 문예지를 발간하고 있던 기성 출판사에서도《Axt》(은행나무), 《릿터》(민음사), 《문학3》(창비)과 같은 새로운 콘셉트의 문예지를 창간했다. 와중에 《더멀리》는 12호를 끝으로 폐간했고, 《젤리와 만년필》이나《소녀문학》은 휴간에 돌입했다. 그리고 《영향력》 또한 내년 봄에 나올 13호를 폐간호로 출간한 후 마무리하기로 했다.

들여다보면 문예지마다 저마다의 사정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 《영향력》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현실적인 이유가 컸다. 사실 언급한 현실적인 문제의 존재 자체는 처음과 지금이 다르지 않다. 하지만 폐간을 결정하기 전까지는 이 모든 것을 충분히 감수할 힘, 《영향력》의 영향력이 충분히 있었던 것 같다. 늘어나는 투고작과 잡지로 연을 맺은 작가들에 대해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꼈고, 무엇보다 힘든 만큼 보람이 컸다. 하지만 작가, 편집인, 편집 디자이너, 발행인, 마케터, 운송 책임자, 회계 담당자의 역할을 동시에 하다 보니 조금씩 주객이 바뀌는 느낌이 드는 걸 외면하기 힘들게 됐다. 우리는 책을 만드 는 사람이기 이전에 글을 쓰는 사람이었는데 우리 자신의 글쓰기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외부의 인정까지도 모두 다른 작가의 작품을 편집하고 엮어서 그것을 판매하는 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훨씬 더 미치지 못하는 시간이 지속됐다.

더불어《영향력》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외부의 지원금을 받지 않고 크라우드 펀딩과 판매수익만으로 운영해왔다. 지원금을 신청하고, 받은 지원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시간을 쓰지 않을 수 있었지만 대신 작가들에게 충분하고 합당한 원고료를 지급하지 못했다. 그런 점이 작가들에게 점점 미안하게 느껴졌고 그 부담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졌다. 역으로 지원금을 통해 합당한 원고료를 지급하며 운영해오던 다른 문예지 중에는 지원금 사업에 선정되지 못한 것을 계기로 휴간하게 되고 그것이 폐간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다.

새로운 지평으로서의 가능성

《영향력》이라는 이름이 거창하지만 사실 우리가 의도한 건 이런 ‘영향력’이었다. 누군가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글을 쓰게 하는 힘, 오랫동안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해 온 좁은 문을 통과 한 후 누군가가‘문단’이라 이름 붙여 놓은 보이지 않는 그 문턱에 올라가지 않고도 자신을 작 가로 인정하고 믿게 하는 힘. 그렇게 계속 써나가는 사람이 있는 한 그걸 읽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가 쓰고 만든 책 속의 어떤 작품, 어떤 구절이 독자로 하여금 영향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믿었다.

‘키친테이블라이팅’이라는 부제로 인해 주부 대상 잡지로 오해하거나, ‘전업 작가가 아닌 사람이’라는 설명 때문에 기대를 낮춘 채 《영향력》을 접했다고 하는 사람도 많았다. 반대로 ‘독립문학 잡지’라는 수식어 때문에 기성 문단에서 보지 못한 참신함과 재기발랄함을 기대했는데 기성 문학과 다른 점을 모르겠다는 지적도 있었다.

실제로는 바로 이런 점이 《영향력》이‘영향력’을 끼친 지점일지도 모르겠다. 그게 어떤 것이 었든, 책을 읽고 나서 책을 읽기 전에 가졌던 편견이나 선입견이 깨졌다는 평을 들었을 때 기뻤다. ‘문학은 이러하고, 문예지는 저러하며, 독립출판은 이러할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사고의 틀에 균열을 일으키는 일, ‘이런 것도 있고 이런 방법도 가능하구나’하는 가능성을 확장하는 일에 《영향력》이 끼친 영향력이 분명 있지 않을까.

처음부터 우리는 기성 문단에 대한 대립항이 되겠다는 마음보다는 또 하나의 대안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전통적인 등단 방식만을 작가가 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면 그 외의 모든 방법을 볼 수 없게 되거나 혹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기 쉽다. 누군가가 수상자로 호명해 주고 시상해야만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좌절 또한 쉬워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지평을 열고 어쩌고 하는 거창한 목표보다는 너무 좁아서 너무 높게만 보이는 그 지평 을 조금이라도 넓힐 수만 있어도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잡지를 시작했다.

무엇보다 작가라는 그 이름은, 외부보다는 오히려 자기 안에서 호명되었을 때 진짜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닌가. 자신을 작가라 여기고 부르는 걸 주저하지 말되, 정말 좋은 작가인지를 끊임 없이 묻는 데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문학 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

이 글을 시작하면서 던진 질문에 스스로 답해 보려고 한다. 문예지를 읽는 사람의 열 중 아홉 이 창작자라는 사실은 핵심에서 벗어난 문제의식이 아닐까. 창작자와 일반 독자를 나누는 구분 자체가 유의미하지 않은 시대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영향력》의 역할은 쓰고자 하는 사람이 계속 쓸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나에 관해서 쓰는 일은, 내 안에 있던 생각이나 이야기를 지면 위에 씀으로써 그만큼 거리를 두어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일이고, 타인에 관해서 쓰는 일은, 써보지 않았으면 결코 그만큼 깊게 오랫동안 생각해보지 않았을 다른 종류나 형태의 사람에 대해서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읽고 쓰는 사람, 문학 하는 사람이 많아 진다는 것은 이해와 공감, 배려의 가능성을 키우는 일이다. 그것은 《영향력》이라는 물성을 지닌 한 독립문학 잡지의 폐간 후에도 누군가에 의해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라는 징조를 이미 충분히 목격하고 있다. 필자 또한 이제 《영향력》은 더 만들지 않게 되지만, 결코 글쓰기를 멈추지 않음으로써 우리가 바라왔던 바로 그 ‘영향력’에 대한 기대는 놓지 않으려고 한다.

은미향 / 키친테이블라이팅 계간지 《영향력》편집자·작가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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