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호 리뷰] 전태일 기념관 : 아들과 어머니의 꿈

“여러분 오늘날 여러분께서 안정된 기반 위에서 경제 번영을 이룬 것은 과연 어떤 층의 공로가 가장 컸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여러분의 애써 이루신 상업 기술의 결과라고 생각하시겠습니다만은 여기에는 숨은 희생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즉 여러분들의 자녀들의 힘이 큰 것입니다. 성장해가는 여러분의 어린 자녀들은 하루 15시간의 고된 작업으로 경제 발전을 위한 생산계통에서 밑거름이 되어 왔습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둘러싸인 전태일 기념관 입구에 걸려 있는 근로진정서의 한 조각이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내가 밟고 있는 지금 이 땅이 누구 위에 세워진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심 이것이 위험한 생각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동반하면서. 나는 그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말 괴롭다는 것은……”

전태일 열사는 대구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잦은 사업 실패로 이사를 많이 다녔다고 한다. 그러던 중 가족의 생계를 위해 서울로 떠난 어머니를 찾아 여동생을 데리고 서울로 왔던 것이 고된 노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는 봉제공장에서 보조로 하루 14시간을 한 달에 50원 남짓한 월급을 받아가면서 일했다. 어린 나이였고,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인해 과민성 질병에 시달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벌지 않으면 살 수 없었기에 그는 이를 악물고 일했다. 그러면서도 함께 일하는 동생들이 배가 고파 아침부터 골골대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차비로 빵을 사주고 두 시간 거리의 집을 걸어갈 만큼 심성이 착했다고 한다. 정말 괴로운 것은 아무리 일을 해도 나아지지 않는 환경과 턱밑까지 차오르는 가난 앞에서 노동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이음터, <전태일의 꿈, 그리고>

전태일기념관의 상설전시관인 이음터에 들어서면 노동자를 위한 근로기준법의 미흡함과 부당성을 알게 된 전태일이 평화시장 최초의 노동운동 조직‘바보회’를 창립한 흔적과 실제로 돌렸던 설문지를 발견할 수 있다. 근로 조건의 부당성을 알리고 노동자들의 근로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분전했지만, 돌아온 것은 해고 통보였다는 사실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로진정서를 제출하고 신문기자를 만나러 다니면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전시 섹션 한쪽에 마련된 작은 텔레비전들의 화면을 통해 그가 노동조합을 새롭게 조직하고 발전시키면서 노동운동의 규모도 점차 키워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정권의 여론달래기식 개선안에 분노해 결국 11월 13일, “근로기준법 화형식”이 있던 날 그는 자신의 몸으로 석유를 감싸 안았던 것이다.


꿈터, <어머니의 꿈, 하나가 되세요>

“우리는 하나가 안 되어서 천대 받고 멸시 받고 항상 뺏기고 살잖아요. 이제부터는 하나가 되어 싸우세요. 하나가 되세요. 하나가 되면 못 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 다. 태일이 엄마의 간절한 부탁입니다.”

좁은 통로를 따라 돌아나가면 꿈터가 나오고 그곳에선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연설이 무한으로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이소선 여사가 찍힌 사진들 속에는 전태일의 못다 한 꿈을 위해 그녀의 생을 마칠 때까지 노동자의 편에 서서 외쳤던 모습이 대부분이다. 식당을 열어 노동자들을 위해 국수를 삶고 있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모자(母子)의 외침과 행동은 대한민국 노동사(史)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전태일 열사의 젊은 시절이 검은 장미로 흩날릴 때. 모두의 눈물을 그러모아 평생의 과업으로 살아가신 어머니를 마주했을 때. 나는 만감이 교차했지만 그저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싸우지들 말고 다만, 직접 보시라! 노동권을 위해 그들이 펼쳤던 울분의 날갯짓을…….

대한민국의 노동운동의 시작을 알 수 있는, 그리고 오늘날 노동현실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계기의 공간, 전태일 기념관은 현재 이소선 8주기 추모 기획전을 11월 17일까지 전시 중이다.

김웅기 | dndrl0314@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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