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호 특강취재] 세종예술아카데미 <이야기가 있는 서양미술사> : 종합적 큐비즘으로 나아간 피카소의 질문

세종예술아카데미는 2019년 가을학기를 맞아 <이야기가 있는 서양미술사> 특강을 개최했다. 강의를 맡은 이현 미술사가는 홍익대학교 미술사학 석사와 파리 1대학 미술사학 박사를 취득한 미술사의 석학이다. 현재는 프랑스에서의 미술관 옆 도서관의 경험을 살려 도서관옆신호등이라는 도서관의 대표로 활동 중이다. 이 특강은 9월 5일 시작하여 12월 26일까지 하는 14주차 수업 이다. 필자는 10월 10일에 진행된‘공간혁명이야기’를 수강하였으며, 이에 따라 큐비즘의 역사를 쓴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와 그에 얽힌 미술사를 소개해주고자 한다.

1901-1904 : 청색 시대

피카소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림과는 차이가 있는 특이한 작품을 탄생시킨 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세계가 새로이 출발하는 지점이자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히는 <아비 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 1907)만 보아도 상당히 난해한 느낌을 받는다. 피카소의 작품을 살펴보면서 필자는 만일 그가 문학가였다면 한국의 이상(李箱)과 비슷한 맥락으로 설명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상이 한국의 근대문학사에서 빼먹을 수 없는 초현실주의 작가이자 1930년대 모더니즘의 한 축을 담당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상의 작품을 실제로 접했을 때는 문학사적으로 어떤 의의를 느끼기보다는 난해함에 압도당하는 기분을 먼저 느끼게 된다. 피카소도 비슷했다. 그는 서양미술사에서 사실적인 전통주의적 화풍에 새로운 공간을 부여한 혁명적인 화가였지만 필자는 일단 난감한 기분부터 들었던 것이다.
이현 미술사가는 피카소의 청색 시대에 주목하여야 한다고 설명한다. 청색 시대는 스페인에서는 1901년 봄을, 프랑스 파리 에서는 1901년 후반부를 시작으로 본다. 이 시기에 피카소 작품은 주조색을 검푸른색으로 하는 우울한 분위기의 화풍을 자아냈다. 대표적인 작품인 <삶>(La Vie, 1903) 은 친한 친구였던 카사헤마스(Carlos Casagemas)가 자살로 생을 마친 뒤, 그 넋을 기리고자 그린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카사헤마스와 그의 애인이었던 제르망 피쇼(Germaine Pichot)가 나체인 상태로 서로를 껴안고 있고 그 반대편에는 수녀로 보이는 여인과 여인의 품에 안긴 아기가 보인다. 그리고 그 대칭 사이에는 캔버스 속 또 다른 남녀가 서로를 껴안고 있다. 이 그림을 통해 이현 미술사가는 “카사헤마스가 성불구자였는데 이를 피카소가 팬티를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체적 문제가 있던 카사헤마스는 피쇼와의 불화로 인해 삶이 점점 망가졌던 것이다.
그러다가 그녀를 총으로 쏘고는 그녀가 죽은 줄 알고 자살했다. 이러한 비극을 마주한 피카소의 심정을 묘사한 <삶>은 불화하는 사랑, 새로운 생명,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 등의 다채로운 메시지를 전한다.
이 시기에 피카소는 하층민의 삶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리얼리스트의 면모도 보여준다. <다림질하는 여인>(Woman Ironing, 1904)은 그의 청색 시대를 마무리 하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엘 그레코(El Greco)식 비례를 차용한 비정상적으로 긴 신체와 거친 느낌의 이목구비는 노동의 현실감을 부각시켰다. 특히 거친 머릿결 끝으로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은 작품이 주는 무게감을 훨씬 무겁게 적시는 것이었다. 과학과 산업이 인류의 생활을 책임질 수 있다는 신뢰 이면에서 조금씩 도태되어 간 하층민의 삶을 피카소는 직시했던 걸까?


1904-1906 : 장밋빛 시대

20세기 초반은 서양의 식민주의가 정치적 지배력을 강화하는 역사적 맥락에 대립하여 과학과 철학에 관한 지각변동이 발생하는 시점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근대의 인간은 이성이 압도하는 합리적 인간관보다는 본능적 인간관에 점차 매료됐다.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가 말한“신은 죽었다”이래 세계는 절대자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관점이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고, 이로써 수많은 예술가들은 이제 모방하는 인간이 아닌 창조하는 인간 으로서 스스로의 내면의식에 치중하게 된 것이다. 미술가들 역시 살롱으로 모여 들면서 실험적 이고 전위적인 작품을 만들게 된다.
실험과 전위는 같은 말이 아니다. 실험이 형식적인 뒤틀림이라면 전위는 내용적인 뒤틀림이기 때문일 터이다. 피카소의 장밋빛 시대 작품을 보면서 필자는 다시 비슷한 방식으로 1960년대 한국의 시인 김수영과 피카소의 만남을 상상한다. 혹자는 김수영을 민중문학을 이끌었던 시인 으로 보지만,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간극 위에 간신히 서 있는 시인으로 보는 것이 조금 더 타당한 듯하다. 이와 연관하여 조금 더 살펴보면 시인과 피카소의 창작세계에서 우연히 겹쳐지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가령 김수영이“시여, 침을 뱉어라”고 외쳤을 때의 속내를 상상해보자. 시는 예술이고 침을 뱉는 일은 정치적인 것이다. 시가 침을 뱉는다는 것은 예술이 정치의 수단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직 예술 안에서 가능한 불화의 세계를 예술로 보여줌을 의미한다. 우리가 할 수 없었던 말을 예술의 자장 안에서 오직 뚜렷한 슬픔으로 보여줄 때, 실험과 전위는 동시에 태어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말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닌,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보여주는 것으로서의 시만이 형식성의 실험과 내용성의 전위를 동시에 초점하는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시론이었다.
피카소의 장밋빛 시대의 작품들은 청색 시대가 보여줬던 우울의 직설화법이 아닌 한 차례 역설을 통해 알레고리를 생성한다. 다시 말해서, 따뜻한 색을 주조색으로 삼으면서도 피사체는 여전히 하층민의 표정이다. 가령 서커스에 관심이 많던 그가 유랑단의 모습을 작품 안에 담음 으로써 그것이 유쾌함 속에 감춰진 슬픔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이처럼 실험의 형식과 전위의 내용 안에서 그의 시선이 조금씩 뒤틀리고, 뒤틀림 사이로 드러나는 슬픔의 윤곽을 넌지시 보여준다. 그런데 이 시기는 그의 혁명에 있어 과도기였다. 카탈루냐(Catalunya)와 몽마르 트르(Montmartre)를 오가면서 작품세계의 외연을 넓힌 그는, 고솔(Gosol)의 원시예술품들과 세잔(Paul Cezanne)의 작품을 접하고는 마침내 <아비뇽의 처녀들>을 완성한다.
<아비뇽의 처녀들>을 보면 커튼을 친 방 안 중앙에 과일이 하나 놓여 있고, 그 주변으로 다섯 명의 여인이 각자의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거친 선들과 원시적으로 표현된 이 작품에 대해 이현 미술사가는 르네상스 이후 사실주의적 전통에서 해방된 최초의 입체파 작품 이라고 설명했다. 피카소와 함께 대표적인 입체파 화가로 불렸던 브라크 (Georges Braque, 1882~1963)는 이 작품을 보고“마치 휘발유를 삼킨 것 같다”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작품을 그리기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스케치에서는 다섯 여인 외에 의사와 선원으로 판단되는 남성 두 명이 더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유곽 생활을 즐기는 피카소의 성병에 대한 두려움을 캐치할 수 있는 유일한 스토리라인이었다고 이현 미술사 가는 설명했다. 피카소가 이러한 서사성을 작품에서 작위적으로 없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자신만의 새로운 작품세계를 열어젖히는 난해성을 인정받기 위한 시도가 아닐까?


새로운 공간 : 큐비즘

<아비뇽의 처녀들>에 깊은 인상을 받은 브라크는 함께 활동 하던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를 떠나 피카소와 함께 미술사의 새로운 문을 연다. 20세기 등장한 상대성 이론과 양자 이론 등과학의 끊임없는 발견은 절대 공간의 개념을 무너뜨리고 공간의 불확 실성을 증명해내게 된다. 이에 따라 리얼리티는 사물의 외형적 공간성 에서 자유로워야 했고, 시각의 위치에 따라 공간이 변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게 된다. 따라서 화면은‘창’,‘ 거울’을 뛰쳐나와, 평면과 파편 화된 공간으로 질주해나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피카소와 브라크의 큐비즘 작품들은 서로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발전했다. 마티스로부터“쁘띠 큐브(Petit cubes)”라는 비평을 받은 그들의 작품은 점차 미술 공간 혁명의 상징인 입체파로 정립되어 갔다.
그러다 1912년 피카소가 내놓은 최초의 꼴라쥬(collage) 기법의 작품 <등나무의자가 있는 정물>(Naturaleza muerta con silla de rejilla, 1912)이 탄생한다. 이 작품은 항구의 상징인 밧줄로 테두리를 두르고 접시와 컵이 놓여 있으면서도‘JOU’라는 글자를 통해 신문을 표현하는 등 현실에서 관계성이 없는 사물들을 모아둔 종합적 큐비즘의 시초로 해석된다. 이 작품의 의의는 재현적 회화라는 전통성에 대한 반발을 일으킨다는 점에 있다. 현실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부정이 만들어낸‘진실을 위한 의문’이 작품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피카소를 보고 이현 미술사가는 강의 초반“나도 모르게 투명하다고 말했어요”라고 했다. 작품에 있어서의 투명 성은 무엇일까? 그것은 곧바로 예술의 순수성을 연상시킬 수도 있으나 여기서는 무수한 굴절을 가진 투명이라는 점에서 피카소의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단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예술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각자의 미학이 달라지듯, 또한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각자의 생활이 달라진다. 피카소의 작품을 통해서 최소한의 형식만 남겨 둔 가장 현실적인 작품 앞에서 우리는 그 투명성의 공간 안으로 우리의 대답을 덧붙일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다음 강의에서는 종합적 큐비즘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세종예술아카데미는 문의를 통해 특강 중도신청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특강 외에도 예술 전반에 걸친 다양한 강좌가 제공 되고 있다. 가을이 너무 빨리 걸음을 옮기는 듯한 요즘, 더 추워지기 전에 새로운 여행의 문을 열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김웅기 | dndrl0314@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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