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호 인터뷰: 김종복 영어영문학과 교수] 학자의 첫걸음, 훔볼트 연구자상 수상자에게 묻다

김종복 교수는 국내 인문학자 중 최초로 세계적 권위의 독일 훔볼트 연구자상(Humboldt Research Award)을 수상했다. 인문학자이자 영어영문학과 교수이며 전(前) 일반대학원장인 김종복 교수는 통사전공분야와 말뭉치(Corpus) 언어학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다. 이에 본보는 김종복 교수를 만나 미래의 연구자인 대학원생을 위한 연구법을 배우고, 전 일반대학원장의 입장을 통해 대학원의 미래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 한다.

국내 인문학자 최초 훔볼트 연구자상 수상

Q. 훔볼트 연구자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올해 3월 수상하신 훔볼트 연구자상은 어떤 상인지, 수상까지의 과정과 후보 선정방법 등 상세한 내용이 궁금합니다.

독일 훔볼트 재단에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연구자들을 지원하고 있어요. 산학협력을 통해 독일의 연구 기관에서 연구 체류를 후원하기도 하고, 개발 정책 관련 연구 프로젝트를 통한 장학금 제도도 있죠. 수상 분야는 각 분야 우수한 연구자에게 주는 우수자상(Fellow Award), 연구자상, 그리고 한 단계 높은, 독일학자에게 수여되는 교수상(Professor Award)이 있어요. 훔볼트 연구자상은 반드시 독일 학자에게 추천을 받아야 해요. 매년 훔볼트 재단 예산의 90% 이상을 독일 정부에서 지원받기 때문입니다.
훔볼트 연구자상을 받으면서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많이 느꼈습니다. 최근 5~6년간 유럽 학자들과 협업을 많이 하고, 학회에서도 자주 교류하며 제가 연구하는 분야를 많이 알린 것이 동기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이런 교류를 통해 알게 된 독일의 학자가 감사하게도 저를 연구자상에 추천하고 싶다고 연락해 줬어요. 추천을 받고 나면 지금까지 자신의 연구업적과 그 내용 등을 서류로 제출하고, 1년 정도의 심사기간을 거쳐 수상자를 선발합니다. 사실 상에 대해서 크게 기대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수상하게 되어 스스로에게 큰 자부심이 됐습니다.

Q. 교수님께서 훔볼트 연구자상을 수상하기까지 많은 노력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노력들 중에 수상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연구업적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부분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훔볼트 재단 홈페이지에는 연구자상에 대해서‘해당 분야에서 최고의 업적을 남겨야 된다’고 명시되어 있어요. 연구의 우수성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훔볼트 상은 한 가지 연구만을 통해 상을 주는 것은 아니에요. 누적되는 연구들이 중요하죠.
저는 경희대 영어영문학과에서 석사를 마치고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다양한 언어의 구조에 대해 연구했어요. 최근에는 영어와 한국어의 언어 현상에 집중해서 인문학 분야 해외 학술지‘ANHCI’에 해당 연구논문을 지속적으로 제출해 왔습니다. 2006년에는 영어문법에 관련된 책을 스탠퍼드 대학에서 출판했고, 2016년 한국어 통사구조에 관한 책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출판했어요. 지금까지 출판한 저서들과 해외학술지에 등재한 논문들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 봅니다.
지금도 일 년에 한 편 정도는 해외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서 세계 학회를 가면 많은 사람들이 제가 누구인지는 아는 것이죠. 글로벌 시대에서 알려진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학문적 우수성이 우선시 되어야 하지만, 추천을 받기 위해서는 아카데믹 네트워크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노력들이 쌓이면서 좋은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대학원의 미래를 위한 조언

Q. 교수님께서는 훔볼트 지역의 연구 환경을 비롯해 유럽 대학의 우수한 연구 환경들을 경험하셨습니다. 해당 연구 환경들과 비교했을 때 경희대학교의 연구 환경은 어떤 차이가 있으며, 미래를 위해 대학원은 어떤 변화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경희대학교의 연구 환경은 매우 자유롭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연구에 대해서‘학문적 위상의 중심은 연구의 우수성이다’라고 강조하고 권장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만족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과 비교해보면 경희대는 아직 연구중심의 대학교라고 말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아요. 대학원생들의 연구 환경도 다소 열악하고, 대학원 자체의 규모도 작죠. 젊은 학자들을 위한 연구 지원 프로그램들이 지금보다 더 강화되어야 합니다. 이는 경희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대부분 대학교들이 가지고 있는 숙제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연구중심의 대학교라면 모든 원생들이 연구실을 갖추고 있어야 됩니다. 당장 공동연구실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은 연구 환경은 선결과제입니다.
실질적으로 한국의 많은 대학교들이 연구중심의 대학이라고 말하기 힘든 이유는 대학교가 학부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유명 대학교들은 보통 학부와 대학원의 비율이 비슷하고,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경우는 대학원의 비중이 더 높아요. 그로 인해 연구에서 현격한 차이가 납니다. 연구가 살아나고 대학원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대학원의 비중이 더 커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Q. 교수님께서 소장으로 계시는 경희대학교 언어정보연구소는 지난 4월 19일 서울교정 스페이스 21에서‘환경인문학 한미 공동 심포지엄’을 개최했습니다. 언어정보연구소의 심포지엄 주제를 환경인문학으로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 전공분야는 언어학이지만 줄곧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분야가 환경인문학이에요. 훔볼트 시상식의 심포지엄에서도 주요 공통 관심사가 환경이었고, 경희대도 그 어떤 대학보다 오랫동안, 선도적으로 환경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 왔어요.
지금까지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늘 과학적 관점에서 접근해 왔어요. 하지만 환경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봐요. 그렇게 환경문제를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게 환경인문학이죠. 이러한 담론의 장을 만들기 위해서 한국연구재단에 국제 심포지엄 관련 연구 지원 사업을 신청했고 미네소타대학의 팀들과 공동으로 심포지엄을 개최하게 됐습니다.

Q. 환경인문학 한미 공동 심포지엄은 국제적 네트워크 형성과 전공 간의 교류 등 소통과 협력의 중요성을 보여줬습니다. 현재, 그리고 미래의 연구방식은 과거와 달리 소통과 협력의 중요성이 지대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학문이든 혼자서만 연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이론’이라는 것은 자신의 논리입니다. 하지만 이 논리가 결코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죠. 논리를 다듬고 완성하기 위해서는 결국 담론과 논의, 토론과 피드백이 필요합니다.
한국이 외국과 현격히 차이나는 부분이 바로 논의입니다. 한국은 아직까지 이런 담론의 장이나 토론이 굉장히 약합니다. 이런 부분 또한 연구 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본적으로 대학원의 비중이 작기 때문에 학과 내 자유로운 학문적 토론 분위기가 만들어지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논문을 제출하면 그에 대한 피드백이나 논의가 국제저널과 확실히 차이가 나요. 따라서 이런 소통과 네트워크 형성을 위해서는 국제화 마인드를 가져야 하고,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발표하고 토론하고 피드백을 받는 경험을 해봐야 된다고 생각해요.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논의하는 것이 연구자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원생들이 국제 학술대회에 참여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어요. 학술대회를 준비하는 부분부터 모든 것이 경험이 되기 때문이죠. 교육학자 존 듀이(John Dewey)는‘교육은 경험이다’라는 말을 했어요. 저는 결국 연구도 교육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연구가 선행되어야 교육을 할 수 있으니까 말이죠.
한국은 담론의 장이나 토론 문화가 약하다보니 논의에 익숙해져 있지 않아요.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질문하는 방법조차 모른다는 것이죠. 시작은 경험부터예요. 한번 경험해보면 두번째는 훨씬 쉬워질 것입니다. 경희대 대학원은 해외 학술대회 지원 프로그램이 있어요. 최대한 많이 참여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오늘날 대학원의 교육은 질적 제고가 화두로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학원의 역할과 존재의 정당성이 질문되고, 변화와 혁신이 요구되는 현실에서 대학원의 미래를 위해 무엇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경희대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숙제는 대학원의 활성화이고, 대학원 활성화의 가장 큰 핵심이자 대학원의 생존 여부는 국제화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경희대가 해외 원생들을 많이 지원하고 있지만, 연구의 국제화와 연구력 강화를 위해서는 훨씬 더 질적으로 연구력이 있는 해외 원생들을 영입해야 됩니다. 그리고 이 연구력이 있는 해외 원생들과 국내 원생들이 경쟁을 해야 된다는 것이죠.
이를 통해 연구가 국제화되는 것입니다. 국제화를 위해서는 사실 자금도 충분히 준비되어야 하고, 나머지 시스템들도 뒷받침돼야 하겠죠. 확실하게 분석해서 연구력 있는 학생들을 영입할 방법을 고민해야 돼요. 장학금 등 제도적인 부분에서도 말이죠.

미래의 연구자를 위한 조언

Q. 교수님께서는‘건강한 몸이 건강한 사고를 만든다(Strong Body, Strong Mind)’라는 지론을 가지고 계십니다. 교수님의 지론과 함께, 연구자에게 필요한 연구습관에 대해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중요한 연구습관 중 하나는‘끝냈다’라는 경험의 축적이에요. 자신의 연구주제가 잘 풀릴 수도 있고, 막힐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한 가지 주제를 정해서 연구를‘시작’했으면 끝내야 합니다. 중간에 포기하는 것도 습관이 될 수 있어요. 중간에 포기하는 습관이 생기면 다른 주제를 정하더라도 조금 힘들다고 포기하게 되는 것이죠. ‘끝냈다’라는 경험이 축적이 되면 그 경험이 연습이 되고, 이후에는 어떤 주제, 어떤 목표라도 끝까지 갈 수 있어요. 끝까지 달성시키는 경험을 꾸준히 축적하지 못하면 좋은 연구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모든 연구는 오랜 시간 축적이 필요해요.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연구를 잘 할 수 있는지 물어본다면 저는 일단 오래 앉아 있어야 된다고 말해요. 제가 학생들에게 추천하는 책『아웃라이어』(말콤 글래드웰 저)에서는 전문가가 되기 위한 최소요구시간(Minimum requirement hour)이 있다고 합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인내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종종 학생들에게서 아프다는 연락을 받아요. 이해는 하지만, 아프면 연구를 할 수 없어요. 몸이 아픈데 어떻게 연구를 하고 실험을 할까요? 오래 앉아있으려면 건강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Q. 선배이자 연구자로서 원생들에게 당부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대학원과 학부의 가장 큰 차이는 연구죠. 연구는 절대 수동적으로 할 수 없어요. 학부 때는 교수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지만 대학원은 아무도 시키지 않아요. 스스로 연구주제를 찾고 연구해야 해요. 교수는 조언자일 뿐이지요.
학자의 길은 능동적이어야 합니다. 능동적인 자세를 통해 연구를 진행해도 결코 한순간에 완성되지는 않아요. 연습과 훈련 그리고 그 과정의 축적이 필요하죠. 학자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더 긴 호흡을 해야 됩니다. 일순간에 훌륭한 예술작품이 나오지 않듯이 연구자는 긴 호흡으로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대담·정리: 정은택 | 2081897@khu.ac.kr

사진 : 윤슬채 | jn2565462@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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