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호 영화비평: <악질경찰>, <생일>(2019)] 폭력의 기억을 재현하는 방식

2019년 상반기에 개봉한 한국영화 중에서 인상적인 작품을 꼽는다면 <악질경찰>(이정범)과 <생일>(이종언)을 언급할 수 있다. 물론 이 두 작품뿐만 아니라 여성서사를 전면에 내세운 <걸캅스>(정다원), 한국영화 최초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봉준호) 등도 주목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질경찰>과 <생일>을 언급한 이유는 이 두 작품이 세월호를 직접 언급한 첫 상업영화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세월호는 한국사회에 커다란 상흔을 남긴 사건으로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침묵과 망각이 강요되고 있으며 그것이 상업성에 연결되는 것은 금기시 되는 분위기이다. 그렇게 구축된 진공에 자리 잡은 것은 살아남은 이들의 슬픔과 미디어를 통해 재난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이들의 죄책감이다. <악질경찰>과 <생일>은 바로 이 지점, 다시 말해 의미를 부여받지 못해 감정만 남은 기억에 관한 영화로 재난의 기억을 사건 외부에 있는 이들과의 공유를 시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오카 마리의 논의가 유용해 보인다. 그는 『기억·서사』에서 폭력을 경험한 이들의 기억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함께 나누어 가져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폭력의 기억을 수정하거나 망각을 부추겨 사건 자체를 부정하거나 사건을 리얼하게 재현하려는 욕망에 짓눌려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지워버리는 영화에 대해서 언급한다. 특히 후자의 경우, 재현된 사건이 폭력의 전체처럼 보이게 만들어 사건에 접근하는 것 자체를 가로막는 효과를 발휘한다. 문제는 이 욕망 아래 깔려 있는 내셔널리즘이다. 재현의 욕망은 우리와 타자의 경계선을 선명히 긋고 타자를 배제해 우리의 일상을 안전한 것으로 상상하도록 만들어 국가에 귀속시기 때문이다. 때문에 폭력적 사건을 그려내는 작업은 그 방법과 방향, 즉 재현의 윤리를 세밀하게 적용해야 한다.

재현의 폭력

<악질경찰>은 세월호를 정면으로 다루는 대신 우회로를 선택한다. 그것은 학생들의 죽음 대신 남은 이들, 그중에서도 ‘어른들’의 죄의식을 상기하는 길이다. 필호(이선균)는 제목처럼 비리를 눈감아주고 뒷돈을 챙기는 악질경찰이다. 급한 돈이 필요했던 그는 경찰의 압수창고를 털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거기는 거대기업인 태성의 불법 비자금 관련 증거가 보관된 곳이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했던 필호는 태성의 음모에 휘말리게 되고 도주하던 중 미나(전소니)를 만나게 된다. 영화는 중반에 이르러 어른들을 믿지 못하고 거리를 전전하며 세상에 불만 가득해 보이던 미나가 사실 단원고 학생이라는 것을 필호와 관객들에게 알려준다. 태성은 증거를 빼앗기 위해 필호와 미나를 협박하기에 이르고, 그 모습을 본 미나는 “이런 것들도 어른이라고”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투신하게 된다. 미나의 죽음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한 필호는 각성하게 되고 비리의 심장부인 태성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된다.

비극은 영화 바깥에 존재하는 실재 사건이 아니라 바로 여기에 숨어 있다. 영화는 안산 단원구와 단원고 등을 사용해 세월호 사건을 직접적으로 호명한다. 재난 이후임에도, 여러 반성의 목소리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위험에 처한 아이들을 도와줄 어른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미나의 마지막 한 마디는 바로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악질경찰>은 세상과 필호를 각성시키기 위해 미나를 뛰어내리게 만든다. 이때 필호가 경찰이라는 점과 비리의 온상이 민간대기업이라는 점은 중요해 보인다. 필호가 경찰이라는 점은 그를 국가의 대리인으로 해석 가능한 지점이다. 그는 비리를 저지르지만 태성의 비리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태성은 미나의 죽음을 지워버리는 반면 필호는 미나의 죽음으로 반성하게 되고 태성을 단죄하게 된다. 이러한 설정은 비극의 책임을 국가가 아닌 민간기업에 돌리는 것이며 잘못을 바로잡는 역할도 국가만이 할 수 있다는 알레고리로 읽을 수 있다. 경찰에 끌려가던 필호가 교복을 입고 노란 리본 아래에서 놀던 소녀들에게 잘 지내라고 소리치는 모습과 그런 필호에게 웃음을 보내는 미나의 모습으로 구성된 마지막 장면은 국가 또는 우리가, 사회가 지녔던 죄책감에 대한 자위이다. 국가의 알레고리가 남성에게만 허락된 것임을 염두에 둔다면, <악질경찰>은 모든 원인을 비리기업에 돌려버린 다음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발급해 공동체의 흠집을 지워내는 남성-국가의 모습을 그려낸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미나의 웃는 얼굴을 정면에서 포착한 마지막 쇼트는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어른들을 용서했으니 이제 세월호 이야기는 그만하자라는 선언처럼 보인다.

남겨진 재현, 애도

<생일>은 세월호 사건으로 소중한 아들을 잃은 순남(전도연)과 정일(설경구)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과장 없이 따라간다. 카메라는 재난의 수인(囚人)이 된 그들의 모습을 세심하게 포착한다. 사업을 하느라 사건 당시 베트남에서 있었던 정일은 가족들에게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 순남은 밤마다 수호의 옷과 물건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린다. 수호의 동생인 예솔(김보민)은 바다를 무서워할 뿐만 아니라 생선도 먹지 않는다. 그런데 이 고통은 그들 것만이 아니다. 카메라는 집안을 벗어나 또 다른 유가족과 아르바이트를 하는 수호의 친구들을 포착한다. 영화는 이들이 아직도 2014년 4월 16일의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중이다. 동시에 세월호가 우리 사회에 자리하고 있는지도 보여준다. 어느 밤 순남은 수호의 옷을 껴안고 오열하기 시작한다. 이때 영화는 순남의 눈물을 클로즈 업으로 포착하는 대신 옆집의 풍경을 이어 붙여 눈물에 대한 여러 반응을 보여준다. 어떤 이는 순남의 슬픔을 이해하고 위로해주는가 하면 어떤 이는 눈물을 지겨워하고 또 어떤 이는 그 눈물로 입은 자신의 피해를 말한다. 영화는 여기서 멈추는 게 아니라 보상금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반응까지 담아낸다. <생일>은 유가족의 슬픔에 동조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어느새 한국사회 깊은 곳까지 자리하게 된 이 재난, 그리하여 거의 모두가 세월와 연루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연루된 자들인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엇일까.

영화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남겨진 자들의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유가족들의 도움으로 열게 된 수호의 생일파티에서 수호의 친구들은 그의 관한 추억을 하나씩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약속했지만 이제는 같이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이제는 혼자만의 추억이 된 같이 뛰놀던 어린 시절에 대해서,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그 날 그 순간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한다. 프로이트는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일을 애도작업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존재 그 자체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남은 자들이 상실의 슬픔과 고통을 극복한다는 의미이다. 자신만큼 중요한, 어쩌면 자신보다 더 소중한 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애도는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프로이트는 애도라는 말 뒤에 작업이라는 단어를 덧붙여 극복 과정 자체의 어려움을 강조한다. 밤마다 수호의 옷을 끌어안고 눈물을 지었던 순남은 생일파티를 통해 수호의 친구들이 그를 기억해주고 다 같이 눈물을 흘려주는, 일종의 정화 작업을 통해 수호가 자신의 곁에 없음을 인정하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생일파티 이후 집안의 모습이다. 이때 카메라는 인물을 프레임 밖에 배치한다. 순남과 정일과 예솔의 일상을 담은 목소리가 들리면 현관의 센서등이 자동으로 켜진다. 이제야 수호가 가족의 곁을 떠난 것일까. 영화는 확실한 대답을 들려주지 않는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이 삶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생일>은 폭력의 기억을 품고 살아가야 할 이들의 고통을 위로하면서 관객들에게 그 고통의 과정을 이해해 달라고 부탁하는 영화이다.

5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프레임 바깥은 아직도 투쟁의 공간이다. 기억의 암살자를 자청한 수정주의 세력들이 남겨진 자들이 걸어가야만 하는 고통의 과정을 더 험난하게 만들고 있다. 어쩌면 두 작품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반응일 수도 있다. 그리고 사회적 기억이 희미해져 갈수록 영화는 재난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힐지 모른다. 인간의 고통을 표현하는 형식으로서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남겨진 자들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건이 가지고 있는 고통을 표현하는 예술적 방법에 대한 사유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재난에 연루된 이들이 할 수 있는 윤리적 의무이기도 하다.

백 태 현 / 동국대학교 국제학생센터 강사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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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1. 무심히 연 멜이 둥근달에 소원을 비는 추석연휴 전날~
    들출수 없는 생각만으로도 미안함이 몰려온다.
    이시대의 기성인으로 꿈도 가져보지 못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바다소리처럼 멀어지듯 가까이 울림으로 이렇게 맞이하는 추석도 나쁘지 않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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