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호 특강취재: 다중지성의 정원, <레윈 코넬 - 주도권을 잡은 남성성>] 헤게모니 남성성의 해체와 새로운 남성성

다중지성의 정원은 지난 7월 9일부터 총 8주 동안 특강 <꽃보다 남자 : 남성과 남성성에 대한 8가지 생각>을 진행하고 있다. 특강은 여성과 변별되는 남성의 특징을 이해하고자 기획됐다. 강연을 맡은 이인 작가는“특강을 통해 남성과 여성에 대한 논의가 수면 아래에서 오해와 분노에 뒤엉킨 채 들끓을 게 아닌, 수면 위에서 건강하게 논의되는 사회를 바란다”고 했다. 지난 7월 30일에는 <래윈 코넬 – 주도권을 잡은 남성성>이라는 주제로 네 번째 강연을 진행했다.

헤게모니 남성성과 공모하는 남자들

강연자는 헤게모니 남성성을 설명하기 전에 90년대 초 서구 마르크스주의(marxism) 형성에 기여한 이탈리아 정치 이론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1937)를 통해 강의를 열었다. 그람시는 옥중에서‘왜 이탈리아에서는 계급 중 가장 하층민인 노동자와 농민이 독재를 더 지지했고, 왜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가?’라고 생각했다. 그람시는 이에 대한 답을 도출하기 위해 헤게모니(hegemony)라는 개념을 끌어들였다. 이전에는 단순히‘정치적 지배’만을 의미했던 개념을 계급지배의 분석에 대입한 것이다. 지배는 힘의 강제만이 아닌 피지배층의 자발적 동의를 얻어 유지되며, 이때 헤게모니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문화적, 도덕적, 이데올로기적 지도력이라 할 수 있다. 그람시는 권력이 피지배층의 자발적 동의를 얻는 데 성공한 상태를 헤게모니라 칭했다. ‘권력 = 폭력 + 동의’라는 그람시의 공식을 역전하면 지배층에 대한 피지배층의 암묵적 지지가 파괴되어야 혁명이 가능함을 알 수 있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남성성은 가부장제에 의해 만들어진 이데올로기이다. 이는 노동의 성적 분업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으로 특정 사회의 문화적 산물로 구성된다. 하지만 남성성은 모든 남성에게 평등한 것이 아니다. 남성성은 특정 남성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구조를 이룬다. 이 ‘주도권을 지닌 남성성’이 호주의 남성학 연구자 래윈 코넬이 고안한 개념인‘헤게모니 남성성’(Hegemonic Masculinity)이다. 헤게모니 남성성은 사회 여러 부문이 결합되어 남성성을 전시, 유통, 학습시키면서 자연스레 각인, 체현되고 신봉된다. 이렇게 형성된 헤게모니 남성성은 앞서 서술한 헤게모니의 집합적인 성격과 더불어 피지배층, 즉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주변화된 남자들’의 지지에서 비롯된 권위로 인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남성성은 많은 남자들이 규범적 기준을 실제로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문제에 직면한다. 헤게모니 남성성도 마찬가지다. 전체적으로 헤게모니나 패턴을 엄격히 실천하는 남자들은 적다. 그러나 많은 남자들이 헤게모니를 통해 이익을 얻는다. 지역적 예외가 있다고 해도 남자들은 가부장적 배당금, 즉 전반적인 여성 종속의 결과로 암묵적 이익을 누리기 때문이다. 이는 세계적 젠더 질서가 남자들에게 주는 특권이라 할 수 있다. 그 배당금에는 문화적, 성적 특권뿐 아니라 더 많은 소득과 노동참여권, 불공평한 재산소유권, 제도적 권력에 관한 접근권 등이 있다. 여자들의 상황에 관한 국제적 조사에서 이 점이 알려졌지만, 그 배당금과 남자들이 갖는 함의는 대개 외면됐다. 이렇듯 세계적 규모에서 헤게모니 남성성을 생산하는 조건, 즉 남자들의 지배를 체현하고 조직하며 정당화하는 남성성의 지배적 형태가 존재한다.

남성지배와 주류 남성성을 포기한다는 것

불평등한 남성지배가 이뤄지기 위해선 폭력이 수반된다. 폭력은 남자들 사이에서 경계를 긋고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남자를 배제하기 위해 사용된다. 한편 동성애 남성을 향한 폭력은 기존 질서와 자신의 남성성을 유지하려는 명목으로 자행되며, 동성애자 학대에 가담하는 남자들은 대개 자신이 사회를 대표해 남자다움의 배신자를 처벌한다고 생각한다. 폭력은 지배체계의 일부지만 지배체계의 불완전성을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정당한 위계라면 위협의 필요가 없을 것이다.

헤게모니 남성성의 관점에서 봤을 때 동성애적 쾌락은 남성적인 것에서 추방당했고 일탈 집단의 것으로 분류됐다. ‘이성애’의 거울상은 없다. 오히려 이성애는 사내다움(manliness)의 필수 요소가 됐다. 가부장제에서 동성애자는 남자답지 못한 남자, 여성적인 남자라는 고정관념이 대중을 사로잡았고, 이성애와 폭력은 주류 남성이 되기 위한 기본 구성 요소가 됐다.

주변화된 남자들은 헤게모니 남성성을 지지하지만 빈곤의 맥락에 맞춰 남성성을 수정한다. 또 일군의 남자들은 페미니즘이나 환경급진주의를 접하며 주류 남성성과 자신을 분리하고 새로운 자아를 모색한다. 주류 남성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는 남자로서 향유하거나 책임져야 하는 것들을 포기하고, 헤게모니 남성성의 남자다운 남자를 거부하는 것이다. 주류 남성성에서 자신을 분리하고 성차별을 억제하면서 헤게모니 남성성을 포기한다는 것은‘수동성’을 선택하는 것으로, 애정관계에서 주도권을 행사하지 않게 된다. 이 포기전략은‘성적주도권’을 갖는 것에 죄책감을 쉽게 느낀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성도 헤게모니 남성성을 일부 선호한다. 지배성과 공격성이 남성성으로 평가받고, 이를 매력으로 느끼는 여성 또한 적지 않다. 때문에 남성성을 포기한 남자들은 여성들에게 있어 별로 선호되지 않는 경우가 존재한다.

젠더 프로젝트

몸의 차이만으로 남성과 여성의 구별과 지배관계는 설명되지 않는다. 코넬은 가부장제와 성차별이‘재귀적 몸실천’을 통해 이뤄진다고 설명한다. 인간은 재귀적 몸실천을 통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성별에 따른 역할을 나누고, 개인의 생활방식을 넘어 사회관계의 상징과 의미를 형성한다. 이는 역사적 무게와 견고함을 지닌 구조를 형성하고, 또 그런 구조를 통해 재귀적 몸실천을 형성하며, 그것은 그 자체로 고유한 현실이 된다. 즉, 행동을 통해 존재와 세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실천은 구조들을 구축하고 재구축한다. 코넬은 재귀적 몸실천에 의해 우리 몸에 각인되어 작동되는 방식은 변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를‘젠더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인다. 이는 헤게모니 해체를 목표로 한다. 헤게모니 남성성에 반항하고 주도권을 지닌 남성성에 거스르는 행위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이 차이와 지배의 패턴은 문화, 제도, 재귀적 몸실천에 깊숙이 배태돼 있어서 권리에 기반한 개혁 정치에서 일종의 한계처럼 기능한다. 어떤 지점을 넘어가면 지배에 대한 비판이 차이를 향한 공격으로 변질당하고 거부당한다.

‘구조화된 구조이자 구조화하는 구조’로서 작동하는 성역할과 성구분은 젠더 질서로부터 자유롭기가 쉽지 않고, 이 사회적 관계를 정의하는 구조는 새로 정립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성교와 임신, 출산과 육아, 연애와 결혼이라는‘재생산의 무대’를 앞두고 인간은 특정한 행동양식을 따르기 마련이다. 가부장제는 그저 남자들의 우격다짐으로 운용되지 않는다. 가부장제에 관한 남자들의 이해관계는 가부장제에 쏟는 여자들의 투자와 함께 유지된다. 여자들 또한 성별 구도에 안정감을 가질 때, 그 안정감은 기존 사회질서를 옹호하는 구조에 대한 옹호가 될 수 있다.

젠더는 계급, 인종과 상호 교차한다는‘상호교차성 페미니즘 이론(킴벌리 크랜쇼)’의 영향을 받는다. 젠더는 실천의 특수한 유형이 아니라 일반적인 사회적 실천을 구조화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다른 사회 구조들과 관련된다. 따라서 젠더해체는 다른 운동과 동맹을 맺어서 실천해나가야 한다고 코넬은 주장한다. 가부장제를 여자들을 학대하는 남자들이라는 영원한 이분법이 아니라 역사적 구조로 이해할 수 있다면, 가부장제는 역사적 단계를 통해 사라질 것이다. 비록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변화의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시도는 가치가 있다.

젠더 프로젝트는 사회수준에서 작동돼야 한다. 개인적인 수준의 자아와 태도의 변화는 의미만 있을 뿐, 기존 성별구도에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사회 정의의 정치는 몸의 행위성을 통해 작동하고, 그 행위성을 잃지 않고 확장하면서 재귀적 몸실천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남자들에게 남성성에서 벗어나라는 단순한 요구가 아니라 새로운 남성성을 발굴하고 홍보해야 한다.

약 2시간에 걸쳐 진행된 해당 강의는 래윈 코넬의 헤게모니 남성성과 젠더 프로그램을 설명하며 현 시대의 남성성과 그 배경, 이후 나아갈 길을 제시했고, 가부장제 구조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이인 작가의 <꽃보다 남자> 강연은 주 1회 진행되며 다중지성의 정원 홈페이지(www.daziwon.com)를 통해 참가 신청할 수 있다.

정은택 | 2081897@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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