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호 기획: 중앙아메리카 난민] 그들이 ‘북쪽’을 향하는 이유: 중앙아메리카 북부삼각지대 이주자들의 실상

‘제주도 예멘 난민’사태 이후, 더 이상 우리나라도 난민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미디어는 난민 문제와 관련해서 온갖 자극적인 이슈를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으며 난민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반응도 적지 않다. 난민을 옹호하는 댓글엔 ‘그들이 당신 옆집에 살아도 괜찮겠냐’는 식의 글이 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난민은 단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이에 본 지면에서는 최근 가장 이목이 집중되는 중앙아메리카 난민에 대해 종합적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두 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2019년 6월 23일, 미국 텍사스주 국경도시인 브라운즈빌과 강을 사이에 두고 맞닿은 멕시코 마타모로스 국경검문소 근처 다리 밑이었다. ‘북쪽’이라 불리는, 강 건너 미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던 이주자였을 것이 분명했다. 멕시코와 미국을 가르는 국경 어디쯤에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의 숫자가 매년 400여 명을 넘어선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어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그저 있을 법한’죽음일 수 있었다. 적어도 그곳에서라면 말이다

그럼에도 언론들은 이들의 죽음을 앞다투어 타전했다. 젊은 아빠와 어린 딸의 사진이었다. 죽은 아빠의 셔츠 안쪽에 묻힌채, 죽어서도 미국에 닿지 못하고 다시 멕시코쪽으로 흘러 들어온 아이의 삶이 너무 참담하게 느껴진 것일까? 아니면, 두 살 배기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목숨을 걸고 강으로 들어가야 했던 아빠의 상황이 너무 아프게 느껴진 것일까? 아마도 세상은 이 사진 앞에서 2015년 난민이 된 부모를 따라 유럽을 향해 이주하던 중 지중해에서 목숨을 잃고 다시 터키 해안으로 밀려온 세 살배기 아이 쿠르디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한 장의 사진을 두고 많은 언론들이 미국 트럼프 정부의 불법 이주자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비판하였다. 같은 사진을 두고 트럼프는 이와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무관용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며 맞섰다. 오히려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콘크리트 장벽에 대한 명분의 입지를 다시 한번 다지는 듯했다.

멕시코와 미국 두 나라 사이에 국경이 생긴 이래, 밀입국은 늘 존재했다. 사실 국경이 생기기 이전 미국 서남부 영토의 일부가 멕시코의 것이었으니, 이 지역에서의 이주는 오히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국경의 감시 또한 느슨한 편이었다. 다만 1990년대 이후 국경 감시와 통제가 엄격해지면서 밀입국 루트도 점점 더 은밀해지고 어려워졌다. ‘닭장수’(pollero) 혹은 ‘코요테’(coyote)라 불리는 월경 브로커들이 이주에 없어서는 안 될 축으로 등장했고 이주 비용은 점점 비싸졌다. 요즘 같아선 아무리 많은 돈을 지불한다 해도 성공적인 밀입국이 쉽게 보장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최근 몇 년간 밀입국을 시도하는 건수 역시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멕시코와 미국을 가르는 국경에서 밀입국을 시도하다 체포되는 건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국경 감시가 그만큼 촘촘해진 이유도 있겠지만, 미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간 월경을 시도하는 이들 대부분이 멕시코인들이었다면, 최근에는 이들 대신 중앙아메리카 북부삼각지대라 불리는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과테말라 사람들의 밀입국 시도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밀입국자 중 90%를 차지하던 멕시코인들의 비중이 30%로 줄어든 반면, 60%에 가까운 수치가 중앙아메리카 3개국 출신으로 채워지고 있다.

지난 6월 멕시코 측 국경검문소 근처로 죽은 채 떠밀려 온 아빠와 딸 아이도 엘살바도르 출신이었다. 물리적으로 봤을 때 이들의 미국을 향한 이주는 멕시코인들의 경우에 비해 훨씬 어렵고 복잡할 수밖에 없다. 더 먼 거리를 이동하고 더 많은 국경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운 좋게 미국 국경에 닿는다 해도 현 미국 정부의 불법 이주자들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생각한다면 미국을 향한 이주를 결심한다는 것 자체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숫자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거기다 젊은 남성이 주가 되었던 기존 이주 패턴이 여성뿐 아니라 아이까지 동반한 가족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사진 속 아빠 오스칼과 딸 발레리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기동력과 민첩성을 갖추고도 밀입국 성공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몇 년간 중앙아메리카 북부 삼각지대 출신의 이주 패턴은 오히려 그 반대로 진화해 온 셈이다. 이와 같은 단면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죽음의 열차에 오르는 이들

중앙아메리카 북부삼각지대 출신의 미국을 향한 이주자들이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이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이들의 숫자보다 이들의 이주 방식에 대한 우려가 심각하게 제기되었다. 멕시코 남쪽 국경으로부터 미국과 닿은 북쪽 국경에 이르기까지 짧게는 1500km에서 길게는 3000km 이상을 이동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들이 선택한 이동 수단은 ‘죽음의 열차’라 불리는, 북쪽을 향해 올라가는 화물열차의 지붕이었다. 주요 도로마다 설치된 멕시코 이민국의‘악명 높은’ 검문을 피할 수 있고 교통비 지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이었다. 다만,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철판으로 된 화물열차 지붕에서 더위, 추위, 배고픔, 갈증 등에 노출된 채 이동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불어 멕시코 각 지역 마약 카르텔에 기반을 둔 폭력조직에 의한 약탈, 납치, 겁탈, 강간, 살인 등에도 고스란히 노출되었지만, 멕시코뿐 아니라 자국 정부에게도 이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로 취급되었다. 달리는 화물열차 지붕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죽음의 열차라는 이름만 있을 뿐, 받아들이기 힘든 불편한 진실이었다. 여성 이주자들은 멕시코 국경을 넘자마자 ‘멕시코약’이라 불리는 피임약부터 사야 하고, 남자든 여 자든 죽음의 열차 지붕에 오르기 전 주머니에 자신의 ‘목숨값’으로 얼마 정도의 현금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 이들 사이에 통용되는 이주의 공식이 되었다.

그럼에도 최근 십여 년 사이 이들의 수가 급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죽음의 열차에 오르게 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이 될 수 있는 명확한 현실은 이 지역의 ‘살인율’이다. 중앙아메리카 북부삼각지대라 불리는 이 세 나라 모두 최근 십여 년 사이 인구 10만 명 기준으로 계산되는 살인율에서 100명 이상을 기록한 전력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살인율이 1명을 넘지 않고, 세계보건기구가 살인율이 10명을 넘어가면 그 어떤 전염병의 창궐보다도 위험하다고 발표한 사실을 감안하면, 현실적이지 못할 만큼 높은 수치다. 살인이 일상화된 것과 별반 다름없는 상황이다. 불명예스럽게도 이 세 나라는 매년 세계에서 살인율이 가장 높은 다섯 나라 범주안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순서를 바꿔가며 포함된다. 이쯤 되면 죽음의 열차 위에서 맞닥뜨리는 참담한 현실들이 자국에서 살아가며 맞닥뜨리는 현실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이주자 카라반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2018년 등장한 ‘이주자 카라반’은 일시적이긴 하지만 더이상 이들을 죽음의 열차에 오르게 하지 않았다. 그간 철저히 개별적이고 비공개적이었던 이주를 조직적이고 공개적으로 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이다. 본국을 출발하기 전부터 SNS를 통해 참가자들을 모집하고, 수천 명 단위의 이주가 시작된 이후로는 철저히 그들의 루트와 일정을 공개하면서 미국을 향해 이동하는 방식이다.

대부분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출신이었고 2018년 10월 시작된 이후 3만 명 정도가 멕시코를 관통하여 미국 남쪽 국경에 닿았다. 일단 대규모 이주자 행렬이 만들어졌고, 세계 언론이 그들을 쫓아 보도하면서 멕시코 각 지역 마약 카르텔에 기반을 둔 폭력조직의 약탈 대상이 되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들에게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만, 이들의 북상에 미국 정부가 군 병력 배치와 함께 국경의 완전 폐쇄라는 강수를 두면서 이들이 멕시코 쪽에 정체되는 결과가 야기되었다.

그 와중에 미국의 압박을 이기지 못한 멕시코 정부마저 그간 이들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태도를 철회했다. 멕시코 남쪽 국경을 강화할 뿐 아니라 이주자 카라반을 통해 들어온 이들을 다시 본국으로 돌려보내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멕시코 북쪽 국경에 정체되어 있던 이주자들의 희망은 점점 희미해졌다. 발레리아의 아빠 오스칼도 마찬가지다. 지난 4월 초 엘살바도르 집을 떠나 6월 초 미국 국경까지 이르긴 했지만, 거기서 더이상 진전을 이어가지 못했다.결국 선택은 두 가지였다. 다시 떠나온 자국으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목숨을 담보로 마지막 행운을 빌어가며 미국을 향해 가든지.

과연, 미국은 작금의 현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결국 미국에 닿지 못한 채 다시 멕시코로 떠밀려온 젊은 아빠 오스칼과 어린 딸 발레리아의 사진이 언론에 보도되었을 때 대한민국 포털 사이트에 달린 댓글들은 한결 같았다. 불쌍하긴 하지만, 불법 이주자에게 관용을 베풀 순 없다는 것이었다. 어 쩌다 그에 반대되는 의견 아래는 어김없이 다음과 같은 댓글이 달렸다. ‘그토록 원한다면, 당신 집에 데려가 살아라’

맞는 말이다. 어찌 되었든, 불법은 지양되어야 한다. 다만,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미국이 이들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어떻게 개입하고 그들의 희망을 어떻게 왜곡했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세 나라에 심어진 바나나를 지키기 위해 미국이 자행한 불법 정치개입, 그로 인한 참담한 내전, 그리고 최근까지도 공공연히 행해지는 정치적 간섭을 생각해 보시라. 현대사에서 단 한 번도 평화롭거나 풍요롭지 못했던 그들의 상처를 생각해보시라. 무엇보다도 매년 미국으로 들어가는 수백 톤의 코카인이‘중미 회랑’이라 불리는 이 세 나라를 통과하면서 뿌리는 돈과 그 돈을 보고 달려드는 마약 카르텔들이 뿌리는 피를 생각해보시라. 바로 그 피가 그들 삶에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린 살인의 연료인 셈이다. 과연 미국은 이러한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작금의 현실이 미국의 과거와 전혀 무관하다 할 수 있을까? 콘크리트 장벽을 세운다 한들 죽음의 열차에 오르는 이들, 혹은 이주자 카라반에 합류하는 이들을 막아낼 수 있을까?

림 수 진 / 멕시코 콜리마대학교 정치사회과학대학 교수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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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1. 방송에 나오지 않은 기사라서 재미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 좋은소식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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