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호 인터뷰: 김해주 아트선재센터 부관장] 예술을 통한 상상의 공간 만들기

세상과 삶에 대한 새로운 목소리를 부각시키는 전시를 생산하며 미술관을 꾸려가는 큐레이터들은 어떠한 생각과 고민을 갖고 있을까? 2015년 한국직업능력 개발원의 직업만족도 조사 1위를 차지하기도 했던‘큐레이터’라는 직업은 아직 여러모로 환상에 가까운 베일에 가려져 있다. 독립큐레이터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재작년부터 아트선재센터를 이끌어가고 있는 김해주 부관장을 통해 본보에서는 큐레이터가 바라보는 세상을 엿보고자 한다.

큐레이터의 삶에 대하여

Q. 큐레이터의 삶에 뛰어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학부에서 프랑스문화학과 신문방송학을 공부했던 저는 미술 역사를 공부하거나 실기를 먼저 접한 게 아니라 우연한 기회를 통해 만드는 과정에서의 ‘전시’를 먼저 알게 되었습니다. 영화, 문학 등 문화 예술의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던 중에 전시라는 매체를 접하게 된 것이죠. 학부 시절 우연한 기회를 통해 해외작가의 작품제작을 돕게 되었고, 졸업할 무렵에는 아트선재센터에서 인턴십을 잠깐 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전시기획이라는 것이 ‘세상과 삶에 대한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느끼고 감히 내가 시도해 볼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작가들이 특정 생각을 작업으로 표현해내는 방식들이 제각각 너무나 독특하고 다양해서 그것에 굉장히 경도되고 흥미를 느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전시를 만드는 일들을 조금씩 옆에서 도우면서 큐레이터 일을 배워가기 시작했습니다.

Q.  2015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직업만족도 조사 1위를 차지하기도 했던‘큐레이터’라는 직업은 그 업무량에 비해 대우가 아직 부족하며, 국내에서의 실질적인 사회적 대우 또한 부족 한 것으로 들었습니다. 부관장님의 직업과 일의 내용에 대한 만족도는 어떠하신가요?

업무량이나 부수적인 노동 조건에 비해서 경제적 보상이 큰 직업은 분명히 아닙니다. 큐레이터마다 다르겠지만, 개인적인 삶과 일 사이의 구분이 거의 없을 정도로 시간적으로도 얽혀있어요. 큐레이터는 끊임없이 사고하고 그 결과물들을 시각적으로 전환하는 작업인 탓에 일과와 노동 시간의 구분이 없기 쉽습니다. 이런 고됨과 더불어 각종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노력도 필요해서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전시 하나하나가 만들어질 때마다 느끼는 큰 보람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지속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Q. 현재 소속되어 계신 ‘아트선재센터’는 2000년대 초 국내 현대미술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역사 깊은 공간이라고 들었습니다. 혹시 부관장님으로서 특별히 기관활동에 신경 쓰시는 부분이 있을까요?

아트선재센터는 1998년에 설립되어 올해 21주년을 맞이하는 현대미술관입니다. 아트선재‘센터’로 되어있지만, 소장품을 소장하고 있는 정식 미술관으로 등록되어있는 사립미술관이죠. 말씀하신 것처럼 1990년대 말 설립된 이후,  현대미술에 중요한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고 동시대 미술의 주요한 이슈들을 다루는 전시들을 해왔습니다. 그 어느 기관보다 발 빠르게 국내외 동시대 미술의 활동과 이슈를 소개하는 역할들을 해온 만큼 한국현대미술에 있어서 중요한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당시 젊은 작가들의 작업과 국내 미술계에 신선한 전시들을 선보였던 것처럼 지금도 새로운 목소리를 발견하려 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대 삶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들에 관해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다양한 기관별 큐레이터 업무의 범위와 성격

Q. 현실의 큐레이터는 여러모로 환상에 가까운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큐레이터란 주로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 직업인가요?

큐레이터의 일을 묘사하는 말 중에 ‘못에서부터 비전까지’ 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랄드 제만(Harald Szeeman)이라는 스위스 출신 큐레이터가 했던 말인데, 이처럼 큐레이터는 전시를 둘러싼 아이디어를 정립하는 것에서부터 그 아이디어를 점검 및 실행하고 정리하는 것, 나아가 전시에 관련된 행정적인 일들까지 담당합니다. 큐레이터의 역할은 다양해서 책이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 작가 혹은 관람객들과의 토크 행사를 진행하는 것과 같은 활동들까지도 기획의 범위 안에 있습니 다. 큐레이터는 ‘지금 어떤 전시를 제안할 것인가’를 판단하기 위해서 미술계를 비롯한 사회 속 이슈들을 판단하고, 그에 대한 논의의 장을 어떻게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 합니다. 이를 위해 꾸준하게 전시의 동향을 파악하고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조사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Q. 국립미술관과 사립미술관, 대안공간 그리고 국가주도 창작공간(레지던시)과 같은 다양한 미술 공간별 업무에 서로 다른 특징이 있을까요?

먼저, 공공미술관과 사립미술관을 비교하면 공공미술관은 안정적인 인력과 예산으로 작업이 진행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대신 공공의 기금을 사용하는 곳이기 때문에 예산 사용에 있어서 수차례의 행정적인 절차들이 뒤따르지만, 사립미술관의 경우는 의사결정이 신속하고 업무처리와 기획에 있어서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른 편입니다. 다만 사립미술관은 비영리 미술기관으로서 안정적인 예산과 운영의 자구책을 찾는 일 등이 필요합니다. 현대미술계 안에서, 제도 속에서 각각의 공간들은 상호 간에 연결되어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서로 파트너십을 구축하기도 해요. 각 공간의 성격을 파악하고 전체 미술의 장 안에서 각자의 기관만이 할 수 있는 역할들을 파악하고 동시에 함께하여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는 것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Q. 독립큐레이터와 소속된 큐레이터일 때의 특징이 어떻게 다른가요?

독립큐레이터로 일을 할 때에는, 시간적인 자유로움이 분명히 있지만 혼자서 계획부터 실행까지 진행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반면, 미술관 같은 공간에서는 프로젝트별로 일을 하는 독립큐레이터와 다르게 한 공간에서 연속되는 전시들을 통해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기획해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 같아요. 단발적인 한 번의 전시보다 연속되는 전시들의 맥락을 통해서 긴 시간의 계획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며 업무를 분담할 때 생기는 규모의 확장 같은 것도 분명히 다른 것 같습니다.

큐레이터에게 기획이란

Q. 큐레이터의 가장 큰 임무는 관객들에게 일명‘좋은 전시’ 를 선보이는 것인 것 같습니다. 본인이 생각하시는 좋은 전시, 이상적인 큐레이팅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역시 무엇이 좋은 큐레이팅인지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 전시기획의 본질인만큼 이것은 보면서 판단이 가능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놓은 위치나 전시를 둘러싸고 만들어지는 모든 것들은 기획자들과 작가들이 의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의해 작동하는 것이 기 때문에 그것들이 잘 작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좋은 전시란 작품의 수나 작가의 명성과 관계없이 기획의 타당한 이유와 세심한 의도들이 전시가 보여주는 시각적 결과물들 안에서 섬세하게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큐레이터는 작가와는 다른 방식의 미학적 관점과 비평적 시각을 제안하는데요, 오늘날 큐레이터들이 주로 집중하는 화 나 제안의 방식에 특징이 있을까요?

미술이 갖는 매체의 변화 혹은 작품이 제작되는 방식의 변화에 관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각, 회화, 퍼포 먼스와 같은 매체가 오늘날의 새로운 시각 환경, 이를테면 스마트폰과 인터넷 정보를 통해 점철되는 환경 안에서 생성되는 변화에 많은 작가, 큐레이터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매체의 변화에 집중하는 것이죠. 또한 사회적 움직임에 관한 불평등의 문제나 환경 문제같이 우리의 삶 속에서 다시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문제들에 관한 관심이 있어요. 그런데 사실 미술 매체 자체에 관한 질문과 사회적 움직임에 관한 질문 모두 연동될 수 있는 부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술 역시 사회의 일부분이고 결코 고립된 진공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전시의 역할은 이러한 현상을 교육이나 다큐멘터리와 같은 정보의 형태로 제공하는 것과는 달리 새로운 상상의 공간을 제안하는 것에 있는것 같습니다. 그것이 유토피아든 디스토피아든 특정 세계를 공간적으로 다양하게 상정하고, 그런 생각들을 실험해보는 장으로서 전시나 미술, 그리고 미술관의 가능성을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저마다 개성이 뚜렷한 작가들의 언어를 통해서 어떻게 현상의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가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것이죠.

Q. 2020년 문화 트렌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예술소비, 세련 된 생활습관이 되다’와 같은 키워드에서 여가 시장이 생산성을 가지고, 경제성 있는 하나의 시장으로 재평가되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역시 미술관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러한 점에 관한 부관장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실제로 많은 분들께서 미술관 체험과 경험에 익숙해지는 것 같습니다. 좋은 이미지를 SNS의 배경으로 찍기 위해서라도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들도 많습니다. 다만, ‘트렌드로 예술을 소비한다’라는 측면에서 대중을 하나의 공통적인 경험을 갈구하는 공통집단으로 보지 않을 필요가 있습니다. 대중의 필요를 세부적으로, 다각화된 것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관람객 수만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갖는 생각의 차이를 반영할 수 있는 미술 공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Q. 전시를 비롯해 ‘문화’를 좀 더 가깝게, 제대로 즐기고 싶은 원생들에게 한마디 말씀 부탁드립니다.

현대미술을 아직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있는 것 같은데, 사실 현대미술은 직설법이 아니기 때문에 직관적인 의미의 파악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현대미술 작업은 그래서 더 매력이 있습니다. 미술은 특별한 형식과 제각기 다른 화법을 사용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더욱 섬세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것은 꼭 미술에 관한 역사나 이론들을 배워서 알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작업을 좀 더 자세히 보고, 궁금해하고, 귀를 조금만 더 기울이면 작업이 스스로 이야기하는 순간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업이 말을 걸지 않는다’라고 하시면 그 작업물은 자신 과 대화가 되지 않는 작업이라고 편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작업을 하나의 대화의 상대라고 생각하시고 귀를 기울이다 보면 현대미술이 갖는 특유의 매력을 알게 되고, 재미에 빠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담·정리: 윤슬채 | jn2565462@khu.ac.kr

사 진 : 김웅기 | dndrl0314@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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