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호 인터뷰] 번역은 전달이다 – 김난주 번역가

김난주 번역가는 본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을 수료한 뒤, 쇼와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일본근대문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1992년 무라카미 하루키의『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번역한 이래로 약 300여 편의 일본 출판물을 국내에 소개했으며, 현재 한국의 대표적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경기도 고양시 화정동의 한 카페에서 번역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199-1-1번역과 만나다

 

Q. 번역가로 입문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당시에는 번역가 입문이라는 의식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 시점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이죠. 당시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가 있었고, 또 그 위에 세 살짜리 딸이 있었어요. 그런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을 때, 번역이라는 것이 떠오른 것이지 번역가 입문이라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에서 돌아와 친정에서 살면서 뭔가 해야 할 일이 필요했어요. 그건 돈뿐만 아니라 어떤 매달릴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는 의미입니다. 아무튼 여러 가지 의미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던 게 번역이었습니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일이 계약된 상태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무계획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 때는 내가 나를 위해서 일한다는 의미가 컸으니까 그렇게 시작했고, 출판사와 연결이 잘 되어서 첫 책이 무사히 출판됐습니다.

 

Q. 처음에 번역한 책이 무라카미 하루키의『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로 알고 있습니다. 왜 이 책을 번역하게 되셨나요?

사실은 그 책이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저는 생리적으로 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이를 낳고도 책을 읽었습니다. 대학원 수업에서 일본현대문학을 강의하시는 분이 1980년대 일본문학의 경향에 대해서 많이 말씀해 주셨는데, 그때가 무라카미 하루키의『노르웨이의 숲』이 나왔을 때였습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 대한 언급이 수업 시간에 있었고 그 이름이 머릿속에 가물가물하게 남아 있었는데, 책방에서 그 책을 우연히 보고는 완전히 푹 빠져 버렸어요. 그리고 1990년에 귀국해서 아이를 낳고 하는 과정에서 이 책을 번역해 보고 싶은 욕망이 싹텄습니다. 그게 시발점이었어요.

 

좋은 번역가와 좋은 번역이란

 

Q. 한국어로 적혀 있지만 아무리 읽어봐도 뜻을 알 수 없는 번역서들도 있는데요. 그것은 어쩌면 해당 문화를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것은 단순히 번역가가 책을 열심히 읽지 않았고 그 작품을 한국어로 표현해 낼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것입니다. 번역가는 책을 열심히 읽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찾아 봐야 합니다. 우리나라 소설을 읽어도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문제시하지 않고 그냥 읽어 버리면 끝이죠. 하지만 번역하는 사람은 그 단계에서 끝낼 수 없기 때문에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읽거나 자료를 찾아봐야 합니다. 조사에 의해서 해명될 수 있는 것이면 조사해서 해명해야 하죠. 우리는 직업적으로 번역을 하는 사람이니까 그것을 놓치고 지나가면 안 되는데 정말 몰라서 놓치는 경우가 있어요. 그렇지 않고‘이게 뭘까’하고 의심을 했는데 ‘별거 아니겠지’하고 지나가는 경우는 그 사람이 그 문화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책을 열심히 읽지 않은 것이지요.

 

Q. 국문학을 전공한 것이 일본 문학을 번역하는 데 도움이 됐나요?

저는 문학작품을 일본어로 이해하고, 그것을 한국어로 표현합니다. 일본어로 표현하는 것이아니에요. 그래서 결정적인 것은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국문학을 공부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것이 번역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일본문화를 알고 모르는 것은 번역하는 데 크게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Q. 한국어로 이해되지는 않지만 원전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아니면 유려한 한국어로 쉽게 읽히는 번역이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어느 것이 더 좋은 번역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문학작품을 주로 번역하는데 작품마다 원래 가지고 있는 특성이 달라요. 번역의 굉장히 중요한 기능 중에 하나는 전달입니다. 전달을 할 수가 없으면 의미는 없는 것이죠. 예를 들어 작가가 횡설수설하는 말을 써놨다고 할 때 독자가 ‘이 작가가 횡설수설하네’라고 생각할 수 있게 번역하면 되는 겁니다. 이런 상황을 유려한 문체로 번역할 수는 없지요. 어쩌면 문장 자체의 맥락이 없을 수도 있고, 의미가 단절되어 있을 수도 있어요. 그걸 그대로 이야기하면 되는 것입니다. 저는 번역이라는 것이 문체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체라는 것은 재현할 수가 없어요. 각각의 언어가 가지고 있는 틀이 다릅니다. 이 사람은 네모난 틀 안에서 이런 문체를 가지고 글을 썼는데, 한국어는 동그란 틀이란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네모난 틀 안에서 쓴, 소위 문체라는 것이 동그란 틀 안에서 다 재현될 수 있냐는 것입니다. 저는 없다고 보는 사람이거든요. 문체를 운운하는 것은 번역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번역자를 괴롭히지 않는 명료한 글이 있는가 하면 애매모호하게 써서 번역자를 괴롭히는 글도 있죠. 결국 번역자가 그런 글을 한국어로 재현해 낼 때는 원래 가지고 있는 문체가 손상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번역에서 문체를 운운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조금 난센스라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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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그 어려움

 

Q. 무라카미 하루키의 간결한 문체, 야마다 에이미의 이해 할 수 없는 문체 등과 같이 작가마다 다른 문체를 어떻게 번역하시나요?

하루키는 워낙 문체가 명료한 사람이니까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만들어요. 그가 만들어 낸 세계에 확 빨려 들어가게끔 만들죠. 그런데 문체가 명료하지 않은 작가들은‘이게 뭐지?’하고 독자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독자를 생각하게 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노림수일 수가 있습니다. 일본어의 특수성 중에 하나는 조어(造語)가 굉장히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개인 차원에서도 가능합니다. 그냥 말을 써 버려요. 그러면 그런 말은 표준어도 아니고 사전에도 없어요. 그런데 대충 의미는 알 수 있습니다. 요즘은 그런 조어에 대한 용례를 인터넷으로 찾아볼 수 있고, 실질적인 용례가 없으면 그에 유사한 용례를 찾아서 뜻을 아는 경우도 있고, 문맥을 봐서 아는 경우도 있고, 또 한자로 표기한 경우에는 한자를 보고 알 수도 있습니다. 일본 문학을 번역할 때 힘든 점은 이런 조어가 많다는 것입니다.

 

Q. 자신이 번역한 것에 대해 맞는지, 아닌지 고민을 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런 고민을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해석한 것이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거야 뭐 알 수 없지만 거의 틀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작가도 소설이라는 세계 안에서 그 말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저도 세계 안에서, 문맥 안에서 그 의미를 생각해 보면 이것은 이 뜻일 수밖에 없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거의 접근할 것이라고 봐요. 그렇게 믿어요. 다만 그걸 우리나라 말로 표현할 때 정말 그 뉘앙스에 접근하는 우리나라 말로 옮길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문제인 것 입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때문에 요즘 젊은 사람들의 언어가 바뀌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졌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약간 그런 고민이 생길 때가 있어요.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충분히 통용되는 말 중에 제가 모르는 뭔가가 분명히 있을 텐데, 그 말을 쓰고 싶은데, 그것을 저는 잘 모르는 거죠. 그런 답답한 경우가 있습니다.

 

Q. 번역이란 기술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닌 것 같은데요. 학계 내의 번역을 폄하하는 경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런 것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습니다. 그냥 저는 제 일을 할 뿐이니까요. 저는 교수도 아니고, 다른 업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냥 번역만 해서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일본 근대문학의 대부로 여겨지는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는 학자이자 소설가이면서 번역가였어요. 번역한다는 일 자체가 학자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었던 시대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에는 교수들이 주로 번역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수라는 직 자체가 한국에서는 명예직이다 보니까 교수가 번역을 한다는 것이 굉장히 창피한 일이 되어 버린 것이죠. 용돈 벌이하는 것 정도로 밖에 취급을 못 받았습니다. 그래서 번역에 대한 인상 자체가 우리나라는 굉장히 낮아요. 그리고 대우도 낮죠. 사회적인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했어요. 그
런데 1990년 중반쯤부터 저 같은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제는 하나의 직종으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현실의 ‘나’를 확인하라

 

Q. 가톨릭 대학 일어일본문화전공에서 번역에 관한 수업을 하셨는데 학생들에게서 새로운 활력을 느끼셨나요?

한 5년 정도 강의한 것 같은데 나중에는 재미가 없어서 제가 그만두겠다고 했습니다. 한 1~2년 동안은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을 했었는데 해가 갈수록 점점 수업 준비를 하지 않더군요. 자기네들은 취업준비도 해야 하고 영어도 해야 하는데, 학생들이 쓸모 있다고 생각한 것에 비해서는 수업준비 시간이 많이 걸렸던 것이지요. 그런 모습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우리 세대는 취업을 하려고 영어 공부하고 그런 세대가 아니었어요. 요즘은 또 그게 아니잖아요. 그것이 우리나라 현실이기도 하고 모순이기도 합니다. 자기 전공만 살리기도 쉽지 않고, 또 그것만 해서는 취직이 안 되니까 말입니다. 우리나라 같은 사회에서 모두가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가문의 영광이 되는 게 보편적인 가치로 인식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각각 생김새도 다르고, 개성도 능력도 다 다른데 취직을 하지 못하면 사회적 낙오자로 여겨지니까요.
Q. 졸업 후 향로를 고민하는 원생들에게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자신이 뭘 할 수 있는지 찾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고민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모두들 하고 싶은 것은 많이 있어요, 그런데 할 수 있는 것은 잘 몰라요. 좋은 회사에 취직도 하고 싶고, 돈 모아서 해외여행도 가고 싶고, 멋진 애인도 있었으면 좋겠고, 맛있는 음식도 먹었으면 좋겠다는 하고 싶은 것에 대한 명료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가리는 작업은 잘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입니다.

당장 뛰쳐나가고 싶다는 나의 욕망과 현실적인 문제들이 부딪힐 때는 내가 뭘 할 수 있을 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뛰쳐 나가고 싶은 것이 죽을 만큼 강렬하다면 뛰쳐나가야지요. 그런데 현실적인 문제들을 처리해야 한다면 욕망을 좀 잠재울 수 있지 않겠어요? 우리 사회는 너무나 고학력이라 욕망의 수치도 굉장히 높습니다. 월급이 백만 원인 회사는 가지 않아요, 삼백만 원을 준다고 하면 가지요. 그런데 모두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삼백만 원 받고 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점검은 하지 않고 삼백만 원을 받는 일만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나라가 너무 많이 풍요로워진 탓도 있는 것 같아요. 그 풍요에 맞춰서 생활하는 데 익숙해지다 보니 그게 채워지지 않으면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말입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사회의 출발점에 섰을 때 부모가 억대 부자가 아닌 이상 나는 벌거벗은 채로 사회로 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 ‘나는 백만 원 주는 일이라도 필요하니까 가겠어’라는 용기를 가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내가 백만 원짜리 일을 하지만 이게 언젠가는 삼백만 원짜리 일이 될 거야 하는 그런 용기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게 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담·정리 : 송영은 | lovericki@khu.ac.kr
사 진 : 황성연 | betabori@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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