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호 인문학술] 임화 시의 ‘바다시편’ 재독하

1930년대는 한국 근대문학의 보고라 할 정도로 수많은 쟁점을 가지는 시기다. 이 시기에 시인으로서, 비평가로서, 문학사가로서 활동하던 인물이 있다. 바로 임화다. 이번 인문학술에서는 임화의 바다시편을 재독함으로써 그것이 어떻게 현해탄 콤플렉스를 극복하는지에 대한 고찰을 다루었다.

임화, 논쟁의 누빔점


임화(林和, 1908~1953)는 우리 근대 문학에서 가장 논쟁적인 작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보성고보를 중퇴한 이후 다다이즘에 잠시 심취해 있다가 프롤레타리아트 문학 운동으로 전환한다. 그러면서 프롤레타리아트 국제주의 전선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고 카프(KAPF, 1925~1935)의 볼셰비키화를 이끌면서 젊은 나이에 카프 서기장의 위치에 올랐다. 카프 해산 이후에는 문학과 문학사 연구에 몰두하면서 시와 비평, 문학사 이론 등 여러 영역에 걸쳐 중요한 저작들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우리 근대 영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필름은 남아 있지 않지만1920년대 후반에 김유영이 연출한 <유랑>(1928)과 <혼가>(1929)에 배우로 참여한 바 있으며 그 외의 몇몇 영화에 관여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조선영화론」(1941) 등 영화와 관련된 논의를 다룬 적도 있다. 이런 이유로 임화를‘조선의 발렌티노’란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는 해방 후 다시 혁명가의 모습을 되찾는다. 이 시기 임화는 박헌영을 보좌하면서 조선공산당과 남로당에 관여하였다. 그러면서 해방 이후 새로운 국가의 건설을 위해 민족통일 노선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혁명가적 면모와 문학 및 문학사 이론가의 면모, 그리고 배우와 영화 이론가의 면모를 두루 갖춘 인물이 바로 임화였던 것이다. 그러나 임화에 대한 논쟁들이 이후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재생산되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그가 작업한 텍스트들이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작업에 논쟁적인 지평들을 들여놓고 있다. 때문에 임화의 작업에서 역사주의 마르크스주의의 틀을 지닌 논의의 외관을 걷어내고 들여다보면 하고 다양한 텍스트 맥락을 함의하고 있는 논의들이 자리하고 있다. 즉 어떤 입장에서 임화를 바라보는가에 따라 연구자의 입장이 확연히 달라지는 지점들이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임화가「신문학사의 방법론」(1941)에서 도입한 이식문학론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임화의「신문학사의 방법론」은 연구자가 민족문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는가 ㅜ그렇지 않은가에 의해서 그에 대한 논의의 성격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민족문학의 관점에서 볼 때 임화의 이식문학론은 받아들이기 힘든 논의라 대체로 비판적인데 민족문학의 관점 내에서도 이와는 거리를 둔 논의를 펼치는 논자도 있다. 그에 따르면 임화가 카프 시기 프롤레타리아트 이론에 경도되었던 것에 비판적인 입장에 선 연구자의 경우 이에 대한 비판 작업으로 이식문학론이 수행된 것으로 보고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도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임화라는 고유명은 그를 둘러싼 논쟁의 누빔점과 같은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논쟁적 지평에는 물론 임화의 주요 작업인 시도 놓여 있다. 임화의 작업에서 사실 시는 가장 중심이 되는 작업이었다. 초기 단편서사시에서『현해탄』(1938)에 수록된‘바다시편’그리고 해방 이후의 선전선동시까지 시 작업은 임화의 정신적 중추에 놓인 작업이었다. 임화에게 있어서 시는 비평과 문학사의 부수적인 지평에 놓인 작업이 아니라 가장 실천적인 지평에 놓인 문학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동의하듯 시 작업이 난관에 부딪칠 때 임화는 비평이나 문학사로 물러났고 그러다가 혁명적이고 실천적인 장이 열릴 때마다 다시 시 작업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바로 임화의 시가 지닌 이런 점 때문에 그의 시에 대한 평가가 극명한 온도차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평가의 온도차에도 불구하고 임화의 시에 대한 연구에서는 대체적으로 시를 평가하는 기준이 역사주의와 관련된 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임화가 논쟁적인 작가임을 기억해볼 때 이런 경향은 조금 의아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바로 이런 이유로 임화의 시는 우리에게 재독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이하의 논의에서는 임화의‘바다시편’을 재독하면서 그의 시에 잠재되어 있는 비역사성에 대한 논의를 풀어가고자 한다.


역사주의와 임화 그리고 비역사성

임화의‘바다시편’이 지닌 비역사성에 대해 말하려면 먼저 역사주의와 임화의 시의 관계에 대해 잠시 이야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와다 요시히로가「임화의/와 역사주의」에서 적절히 지적했듯이 임화의 사상은 역사주의의 자장 안에 있었다. 새로운 것과 낡은 것의 대립을 통해 새로운 것이 승리하고 보편적인 세계사의 방향으로 진보해 나갈 것이라는 사고는 임화의 문학을 추동하는 사상이었다. 더불어 카프, 마르크스주의와 프롤레타리아트 국제주의, 코민테른, 소련 공산당과 같이 명확한 이념적 지평을 가리키는 말들은 사적 유물론을 바탕으로 역사발전 단계를 논하는 마르크스주의와 맞물려 임화와 역사주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인식하게 만든다. 실제로 임화의 초기 단편서사시에서는 이런 경향이 뚜렷하다. 「젊은 순라의 편지」나「우리 오빠와 화로」, 「네 거리의 순이」등의 시에는 계급의식을 추구하는 임화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임화가 혁명의 보편성을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에서 놀랍게도 역사주의가 말하는 보편적 역사의 장에 미세한 균열을 낸다는 것이다. 임화는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를 통해서 자신의 사상적 기준인 역사주의를 넘어선다. 그리고 이런 균열은 그가 혁명을 말할 때 일어난다. 임화는 종종 혁명적 급진성을 강력하게 추구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인해 역사주의의 단계를 거쳐 보편적 역사발전 단계인 세계사로 나간다는 역사주의의 근본적인 방식과 대립한다. 이는‘지금’의 긴급성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임화의 시에서 혁명이란 지금 당장 획득해야 할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역사주의를 강력하게 밀고 나가는 임화의 시적 상상력이 역사주의의 근간을 흔들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생긴 균열을 통해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이 바로 비역사성이다. 당대적 동시성을 추방한 역사주의의 지평에서 임화는 역사주의를 급진화하여 비역사화된 혁명의 당대적 동시성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비역사성은 그런 점에서 기존에 역사소설 등을 다루는 논의에서 역사의식의 결핍을 뜻하는 의미로 활용된 비역사성의 개념과는 확연히 다른 개념이다. 여기서 다루는 비역사성은 최근의 신식민주의 비판과 관련된 비서구 중심의 문학과 역사 연구에서 다루고 있는 개념이다. 디페시 차크라바르티와 로버트 영으로 대표되는 일군의 연구자들의 연구가 이러한 단초를 제공해준다. 이들은 바바와 스피박에 비해 그 연구가 덜 알려진 편이지만 탈식민주의 연구의 한계를 비판 계승하면서 비서구이론 연구의 틀을 제공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이들의 연구는 마르크스주의가 지닌 역사주의 관점을 비판하면서도 마르크스주의가 열어놓은 해방의 차원을 지켜나가는 방식을 찾아낸 데에 있다. 이들의 연구는 역사주의와 거기에 기반한 이론적 기틀을‘지방화 하기’를 통해 주변화한 것에 있다. 여기서‘지방화하기’란 역사발전의 모든 단계를 서구의 발전 단계를 기준으로 하는 역사주의 담론들을 해체하고 그 지평에 비서구의 당대적 동시성을 기입하는 작업을 통해 수행되는 연구이다.2) 이렇게 되면 역사는 역사주의의 관점에서 보는 투명한 역사적 이행 단계로는 해명하기 어려운 불투명성을 지니게 된
다. 그러니까 비역사성은 바로‘지금’의 시간에 의해 나타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지금’의 긴급성이 어떻게 비역사성을 우리 앞에 환기시키는가? 사실 역사주의는 역사발전단계에 대해 말하면서 유럽을“자본주의, 근대성 혹은 계몽주의가 최초로 발생한 지역으로 묘사3)”한다. 그로 인해 역사는 단일한 역사성의 기준 안에 놓이게 된다. 역사주의의 이러한 입장은“식민지 주민들에게는 <유럽에서 먼저, 그리고 다시 다 른 지역>이라는 시간의 구조에서 후자의 장소가 할당4)”되도록 만들어 비서구의 역사가 지닌‘지금’의 동시대성을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로 인해“역사는 한편의 대기실5)”이 되어버린 것이다. 역사주의에 대한 비서구의 대응은‘아직은 아니다’에 대항하는‘지금’이다. 그런 점에서‘지금’의 시간성은 벤야민이『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서 말한 지금시간과 동일한 맥락에 놓인 역사성의 차원에 닿아 있다. 때문에 ‘지금’은 마르크스주의가 강조하는 역사발전단계보다 더 급진적이
라고 볼 수 있다. 임화의 시에서 이러한 비역사성은 시 작업 전반에 걸쳐 나
타나고는 있지만 여기서 살펴보려는‘바다시편’에서 좀 더 급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비역사성의 차원을 제국의 상상력의 근간인 바다의 차원에서 현재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바다시편’에 대한 재독을 해나가면서 임화의 시에 나타난 비역사성의 의미를 짚어보도록 하겠다. 그 논의를 열기 위해 임화의 시에서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시어인 해양명‘태평양’을 주목해 재독해보자.

한국과 일본 열도의 규슈 사이에 있는 대한해협은 과거에 현해탄으로 불렸다.


바다 시편과 비역사성


현재까지 임화연구에서 임화의 ‘바다시편’들은 일명 ‘현해탄 콤플렉스’가 드러나는 시편들로 이해되어 왔다. ‘현해탄 콤플렉스’란 김윤식의 용어로 제국 수도 도쿄에서 배워오는지식에 대한 동경과 그에 대한 몰인지를 통칭하며 이러한 배움의 경로가 되는 현해탄이 이를 드러내주는 상징적인 경로임을 함축하는 용어이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당시 일본유학생을 비롯해 일본으로부터 지식을 배워온 지식인들의 내면에 ‘현해탄 콤플렉스’가 구조화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관점에도 역사주의적 관점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먼저 일본에 나중에 조선에’라는 사고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문제는 임화의 경우‘바다시편’을 통해서 이러한 지평을 임화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해체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논의들은 임화의 시에 나타나는‘바다’를 단리하게 바라보았다. ‘현해탄’이 바로 그 바다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임화의 시에 나타나는‘바다’는 단순히‘현해탄’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임화의 시에서‘바다’는 다층적인 의미맥락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임화의 시에서 호명되는 해양명‘태평양’이다. ‘태평양’이 임화의 시에서 처음 등장하는 것은「우산 받은 요코하마 부두」란 시이다. 이 시는『현해탄』에 실린‘바다시편’과 일정정도 시간적 거리가 있기 때문에 기존 논의들에서는‘바다시편’과 함께 다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시는 이후‘바다시편’들에서 임화가 묘파하고자 하는‘바다’의 내적 구조를 처음 드러내고 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바다시편’에서 노래되는‘바다’가 단순히‘현해탄’으로 환원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시어가 바로‘태평양’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사실‘태평양’이란 해양명은 오랫동안 우리가 사용해 온 해양명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란 점이다. ‘태평양’은 근대에 우리나라에 번역어로 도입되기 이전에는 이름 없는 그냥‘바다’였다. 고전 작품「일동장유가」를 살펴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임화는‘현해탄’으로 흘러들어오는 ‘태평양’을 호명하고‘현해탄’이 지닌 바다로서의 내적 구조를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더불어 임화는‘태평양’에 시적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지평을 도입한다. 이것이 모두 잘 나타나고 있는 작품이「우산 받은 요코하마 부두」인 것이다. 「우산 받은 요코하마 부두」에서‘태평양’은“나의 어머니 나의 아버지 나라로 돌아가”기 위해 거쳐 가야할 바다이다. 시적 화자가 이렇게 발화하는 시점은 시적 화자가 일본에서 추방당하는 시점이다. 그래서 시적 화자는 요코하마 부두에 서 있는 것이다. 시적 화자가‘태평양’을 통해 귀환할 것임을 드러내는 시적 발화는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귀환이다. 왜냐하면 당시 요코하마에서 조선으로 돌아가는 배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미주로 나아가는 국제노선이 요코하마 항구의 주요 노선이었다. 그러니까 임화는 여기서 시적 상상력을 통해‘태평양’을 거쳐 국제주의적 연대의 가능성을 안고 조선으로 돌아가는 귀환을 노래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국제주의적 연대의 가능성은 다시 일본으로 귀환할 것임을 노래한다. 지금은 추방당하기에 만날 수 없는‘이국의 계집애’와 재회할 것임을 노래하는 것이다. 이는 의 프롤레타리아트와 다시 연대하기 위해 돌아올 것임을 노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태평양’이 혁명의 긴급성을 도래시키는 바다임을 드러나게 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우산 받은 요코하마 부두」에서 나타나는 국제주의적 연대의 가능성, 혁명의 가능성은‘태평양’을 통해서 우리에게 도달하는 것으로 노래되었다. 그런데 이 시가 초기시인만큼‘태평양’을 통해 우리에게 도착하는 혁명의 긴급성이‘지금’의 것으로 감지되지 않는 면을 보인다. 연대와 혁명이 추방과 귀환이라는 구조 속에서‘태평양’을 거쳐야만 도달할 수 있는 성격을 띠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은 임화의 시에 내재한 역사주의적 관점이 나타나고 있다고 독해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이 시에서 노래되는‘태평양’이‘지금’의 긴급성을 환기한다고 볼 수 있는 이유는 시적 화자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혁명적 연대의 사건을 ‘지금’부두란 무대 위에 시적 상상력을 통해 현재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할 수 있다. 이는 이후의 작업에서 더욱 강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현해탄』의「해상에서」나「해협의 로맨티시즘」에서 노래되듯‘태평양’은 일본의‘관문해협’을 통해서 현해 바다로 흘러드는 내밀한 바다로 나타난다. 임화는 현해탄에 비해서‘태평양’의 묘사에는 거의 공을 들이지 않기에 이 부분은 눈에 잘 띠지 않는다. 다만 임화는 현해탄 위의 배에서 현해탄으로 흘러들어 오는‘태평양’에 시선을 두고‘태평양’을 아직 이루어지지 못했지만‘지금’이루고자 하듯이, 그러한 긴급성으로 호명한다. ‘태평양’을 호명하는 행위를 통해 여전히 혁명의 가능성은 현재화되어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과정에서 임화는 당시 역사의 차원에서 비가시화된 존재들을 우리 앞으로 불러온다. 시「눈물의 해협」에서 묘사되는‘엄마’와‘아기’가 그들이다. 「눈물의 해협」에 등장하는‘엄마’와‘아기’는 임화가『현해탄』에서 3등 칸에서 마주하는 이름 없는 사람들 중에 일부이다. 이들은 고유명을 가지지 못한 3등 칸의 승객이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히 현해를 건너는 배의 승객이 아니다. 여기서 시적 화자는 아기를 품에 안고 울고 있는 엄마와 그 엄마가 흘린 눈물이 아기의 얼굴에 닿는 것을 보고 그것을 노래한다. 그 과정에서 화자는 아기가 아직 경험하지 못했지만“네가 알고 보지 못한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눈물은 억압 받고 역사 속에서 호명되지 못한 채 사라져간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함축하고 있다. 비역사화된 피억압층의 역사를 함축하는 이 눈물은 아기에게 어머니의 눈물흘림을 통해 도달하고 있다. 동시에 눈물은“아직 그들의 탄 배의 이름도 닿을 항구의 이름도 없고, / 이 바다를 건너간 많은 사람들의 운명은 조금도 똑똑히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노래하듯 아직 역사화되지 않는 현재의 지평을 드러나게 해주고 있다. 이러한 순간이 우리 앞에 도래하는 곳이 바로‘바다’다. 임화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지금’의 역사를 도래시킨다. 임화가‘바다시편’에 연 이러한 비역사성의 차원은 제국주의의 상상력의 근간이었던‘바다’를 해체한다. 이것이 임화가 ‘바다시편’에서 비역사성을 열면서 성취한 지점 중에 하나다. 칼 슈미트는“세계사는 리바이어던이라 불리는 힘센 고래와 그만큼이나 강한 땅의 동물로 코끼리 아니면 황소로 상징되던 베헤모스 사이의 투쟁6)”이었다고 논하면서 근대의 권력이 바다에서 나왔다고 논한 바 있다. 임화는 이러한 제국주의 바다의 지평에 비역사화되고 이름 없는 존재들을 옮겨놓음으로써 ‘바다’를 혁명적 연대와 혁명의 가능성이 현재화하는 장소로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임화가 바라든 바라지 않았든, 시적 여정을 통해 열어 밝힌‘바다’의 비역사성의 지평이다. 지금까지 임화의‘바다시편’에 대한 재독해하기에 대해 논해 보았다. 임화 시 연구에서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해양명 ‘태평양’을 조망하는 작업을 통해 임화가 그려낸‘바다’의 지평을 재조명하는 과정에서 임화가 비역사성의 차원을‘바다’에서 끌어내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는 임화에 대한 논쟁에서 늘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현해탄 콤플렉스’를 해체하고 임화를 새롭게 재독하도록 이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앞으로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임화의 작업들을 재독해한다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논쟁의 지평에 임화의 작업을 옮겨 놓을 수 있게 될 것이라 기대한다.

1) 이 글은 김학중의 박사학위논문「임화 시 연구—임화 시에 나타난 비역사성을 중심으로」(2019)의 Ⅲ장
‘태평양, 대양적 보편성’과 Ⅳ장‘바다의 잠재성, 액체성, 비역사성’을 기초로 하여 작성된 글임을 밝혀
둔다.
2)디페시 차크라 바르터,『 유럽을 지방화하기』, 그린비, 2014, 43-73쪽 참조.
3)디페시 차크라 바르터「, 인도 역사의 한 문제로서 유럽」,『 흔적』1호, 문학과학사, 2011, 72쪽.
4) 위의 논문, 73쪽.
5) 위의 논문, 74쪽.
6)갈 슈미트,『 땅과 바다』, 꾸리에, 2016, 17쪽.


김 학 중 /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강사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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