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호 책지성: 셔먼 알렉시, 『얼굴』(Face)] 연결과 저항의 시학: 셔먼 알렉시의 시집 『얼굴』

셔먼 알렉시(Sherman Alexie, 1966~)는 우리나라에서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다. 그는 아메리칸 원주민 작 가로서 원주민의 역사와 아픔의 정서를 소설, 시, 영화 등 의 여러 수단으로 표현하여 저변을 넓혔다. 물론 그의 작품이 활발히 논의되던 시점 이전에도 많은 아메리칸 원주민 작가들이 활동했지만, 그중에서도 알렉시의 작품은 대중성과 작품성 모두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보호구역 밖의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한다. 그의 작품은 원주민의 정체성, 문화, 역사, 언어, 정확하게는 가난, 알코올 중독, 절망, 가족, 보호구역 안과 밖의 삶과 그가 사랑하는 것을 주 제로 삼는다. 우리는 그의 시를 읽으며 슬픔과 공감의 정서에 빠지기 쉽지만 알렉시 특유의 해학과 재치 또한 돋보임을 알 수 있다. 그의 시집 『얼굴』(Face)은 2009년에 출판되었으며 시집에는 다수의 시와 짧은 산문들이 수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동 도서들을 중심으로 알렉시의 작품들이 번역되어 있다. 그의 첫 청소년 소설 『짝퉁 인디언의 생짜 일기』(The Absolutely True Diary of a Part-Time Indian, 2008)와『플라이트』(Flight, 2008)가 대표적이다.

아메리칸 원주민

그의 작품을 살펴보기 전에 원주민의 역사와 현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아메리 카 대륙에 거주하는 원주민을 일컬을 때 흔히 사용하는 ‘Indian’이라는 단어를 영어사전에 검 색해보면 두 가지의 매우 다른 의미가 동시에 등장한다. ‘인도사람’, ‘인도어’와 ‘아메리칸 인디언’이 바로 그것이다. 제라드 비제너(Gerald Vizenor)는 우리가 아메리칸 원주민을 ‘인디언’으로 부를 때의 이 ‘인디언’이라는 단어가 “확실히 편리한 용어이긴 하지만, 어떤 원주민의 언어에서 파생된 것도 아니고 전통적인 부족의 경험이나 문학의 측면을 포함하거나 묘사하지 않는 발명 된 이름”이라고 지적한다. 자신만의 고유한 문화와 언어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아메리카 원주민 은 제국주의적 세력에 의해 또 다른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 미 대륙이 영국의 식민지였던 17세기에 백인은 원주민과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원주민은 서부 개척 정책으로 자신의 토지와 가족을 잃고 보호구역 안에 갇히게 되었다. 많은 수의 원주 민이 알코올 중독과 도박, 마약 중독으로 고통 받고 있었으며 이는 빈곤과 고립으로 이어졌다. ‘고상한 야만인(noble savage)’이라는 표현이 그런 개념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듯, 아메리카 원주민의 문학, 문화, 역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원주민을 학살의 피해자로만 국한하거나, 문명사회 에 길들여지지 않은 신비스럽고 야만적인 군상으로 묘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시각은 원주민의 문화 전반을 과거에 고착시키며 한계 짓는 하나의 선입견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시에 나타난 동물들 그리고 종족의 슬픈 역사

『얼굴』에 수록된 시들 중, 「인디언 보호구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얘길 들었을 때, 나 는 사슴 이야기를 회상한다」(When Asked What I Think About Indian Reservations, I Remember a Deer Story)에는 그가 느낀 민족의 분노에 대한 목소리가 서려있다. 시집의 다른 시에서 자신의 선조들과의 관계, 연결을 보여주었다면 이 시에서는 자신의 후손들을 의 식하는 태도가 엿보인다. 첫 연에서 화자는 트럭의 바퀴에 다리가 낀 채 비명을 지르는 사슴의 모습을 비춘다. 그리고 “그 비명은 우리의 실패한 선조들이 학대받은 후에 내는 비탄의 소리 (That scream is the sound of our grief / After our failed fathers have been crushed)”라고 명명한다. 사슴이 문명의 발전으로 인해 자신의 서식지를 잃고 떠돌다가 끝내는 자동차에 치여 생을 마감하는 가장 흔한 로드킬의 대상임을 봤을 때, 그의 선조 또한 지배 세력의 부당한 억압으로 고통받아온 또 다른 사슴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선조는 여전히 모두 ‘취한 채 무일 푼’의 상태로 천국에 있다. 정황을 모두 아는 화자는, 그의 후손들을 소환하여 유혈이 낭자한 과거에서 벗어나길 원한다. 슬픔은 진정으로 선조들을 기리는 것이 아니며 그로 하여금 오히려 후손들은 다시 사슴의 역사, 그 반복되는 수레바퀴 속으로 다시 회귀하도록 이끈다고 쓰고 있 다. 그리고 마침내 화자는 선조와 후손들의 중간자로써 “네 아버지의 유령을 부인(deny your father’s ghost)”하라는 일종의 명령을 통하여 과거의 고통과 고뇌에서 눈을 돌리고 있다. 알렉시는 자신이 들은 선조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며 오히려 그 거리감에서 객관적으로 사물과 사건을 바라볼 수 있다. 이 사회에 적응해 나가는 것이 소멸되지 않는 것이라는 절충안을 내놓는다.

「새와 함께한 밤들」(Avian Nights)에서도 역시 말살, 죽음과 관련된 시적 화자의 감정 변화와 거리감을 살펴볼 수 있다. 화자는 ‘찌르레기(starlings)’가 자신의 집 처마에 집을 짓고 알을 낳자 ‘해충 구제업자(exterminator)’를 부른다. 해충 구제업자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일말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이렇듯 무심한 학살 행위는 화자의 내면에 갈등을 불러온다. 비록 이 학살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 자신이 바로 수표를 끊어준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저항 없이 새들의 서식처에는 피바람이 불어왔고 찌르레기들은 전쟁다운 전쟁을 벌여보 지도 못한 채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알렉시는 이러한 반복되는 전쟁과 학살을 벌이는 인간과 새들을 ‘멍청한(dumb)’이들로 보고 있다.

알렉시는 과연 이 전쟁에서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시의 중심 소재인 ‘새’와 ‘개미’는 화자에게 피해를 입히는 세력이긴 하지만, 화자의 분노와 결정으로 말미암아 집단 학살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 가운데 화자는 단순한 연민인지 안타까움인지 분노인지 모를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이는 자연스레 백인과 원주민들 사이의 끊임없는 싸움을 떠올리게 한다. 시의 전체 흐름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계속적으로 전복시키며, 알렉시는 온전히 새나 개미의 입장도 아니고 사람의 입장도 아닌 중간자적 위치를 점하게 된다.

알렉시의 언어

“우리(원주민 작가들)는 우리의 전통에 대해 써서도 안 되고, 영적인 관습들을 써 도 안 된다. (중략) 확실히 당신이 이미 경험했던 영적인 경험에 관한 이야기나 시를 쓴다면, 당신은 쓸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은 그것이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사 용되고 취해질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나는 이것이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 각하고, 바로 그것이 내가 일상적인 삶에 대해 쓰는 이유이다.”(Crossroads: A conversation with Sherman Alexie)

그는 자신들의 문화와 혈통을 보존하거나 계승하자는 직접적인 제안은 하지 않는다. 그는 떠도는 과거의 원혼 같은 선조들의 의미 없는 모습을 백인들의 시각으로 우상화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현대 미국 사회에서 영어를 구사하는 원주민이어야만 쓸 수 있는 그들 자신의 새로운 전통을 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원주민들은 미국 역사 전반에 걸쳐 전쟁과 빈곤으로 고통받아왔다. 현재 자신이 속한 민족의 언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원주민들이 많지 않다는 통계가 있고 그들을 하나로 아우르는 중심 세력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알렉시는 자신을 ‘파트 타임 인디언’이라고 이름붙이고 그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고 있다. 보호구역을 떠나 백인들이 주류인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며 영어를 구사하며 동시에 자신의 선조들에 대해 쓰고, 원주 민들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원주민 문학의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그는 선조들의 유령은 그만 잊자고 말하면서도, 전쟁에 대한 분노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생활 속에서 작은 새나 개미를 죽 이고 내쫓는 장면에서도 민족 학살의 어두운 역사를 떠올린다. 그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그의 감정을 함께 느끼며 원주민들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그려볼 수 있다.

김민주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문학과 석사 수료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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