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호 책지성: 미셸 슈나이더,『 슈만, 내면의 풍경』] 황혼 속에서 고통을 노래하다

▲미셸 슈나이더(Michel Schneider) ⓒ auditorium.kr

시린 비가 흩날리던 2월의 뒤셀도르프, 군데군데 얼어있는 라인강에 그는 몸을 던진다. 상실한 의지를 공표하듯 뻣뻣한 몸이 울렁이는 물살을 받아내고 있다. 어부들의 부축을 받으며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젖은 몸에서 떨어지는 물이 ‘뚝뚝’작은 신음을 내고 있었다.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은 그렇게 삶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날의 자살 시도는 실패였지만 그의 영혼은 그날 죽었다.

독일의 낭만주의자들은 말한다. 고통을 위로하고 싶다고, 고통의 사기(邪氣)를 빼앗아버리고 싶다고, 그 악랄한 고통을 침묵시키자고. 그리고 그것은 음악이 할 수 있는 일이라 한다. 하지만 슈만에게 음악은 달랐다. 음악이 곧 고통의 극단이었다.

‘Humor(후모어)’

그를 검게 감싸고 있는 고통과 죽음은 그의 음악에서 어떤 형태로 드러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왠지 솔직해 보이는 장조(Major)보다는 음침한 단조(Minor)의 조성일 것 같다. 그의 걸음이 발랄할 것 같지 않으니 곡의 템포도 한걸음조차 떼기 어려울 만큼 느릴 것이다. 하지만 실상 슈만의 여러 피아노 작품들을 보면 곡의 조성과 템포 어느 것에도 통일성을 찾기 힘들 정도로 널뛰는 수법이 돋보인다.


슈만은 대조적이고 이중적인 구도를 즐거워했다. ‘슈만의 음악적 이중 구도’는 일반적으로 내성적이고도 부드러운 심성을 대변하는 가상의 인물 ‘오이제비우스’(Eusebius)와 자유분방하며 열정적인 성격을 드러내는 ‘플로레스탄’(Florestan)으로 표현된다. 실제로 슈만은《다비드 동맹 무곡(Davidsbündlertänze) Op. 6》에서 각 소곡마다 오이제비우스 혹은 플로레스탄이란 서명을 새겼고,《 환상곡(Fantasie) Op. 17》에는‘베토벤을 기념하여 쓴 대규모의 소나타,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로부터’라는 부제를 달기도 했다. 이렇게 곡의 구성이 전혀 다른 곡들을 앞뒤로 배치하여 그만의 Humor(후모어)를 창조해낸 것이다. Humor(후모어)란 용어에는 유머, 해학이라는 의미와 함께 기분이라는 뜻이 들어있다.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유머와는 조금 다르게 유머 안의 기분을 살피는 것, 유머와 기분에 대한 분리까지를 포함한다.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급작스레 변하는 화성이 거의 산산이 조각난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리듬의 요소가 평온하게 유지되는 경우도 종종 포착된다. 마치 본색을 가리고 싶어 하는 듯 낯선 얼굴을 내민다. 그렇게 선율과 리듬의 결합이 허물어지며 또 다시 Humor(후모어)를 떠올리게 한다. 이때 형성되는 ‘낯섦’이라는 것은 슈만이 악곡에 부가적으로 써놓은 지시어나 곡의 제목에서 ‘먼 곳’, ‘ 낯선 곳’으로 자주 표현된 개념이다. 이것은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Johann Christian Friedrich Hölderlin, 1770~1843)의 시「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Mn´emosyne)에서 “낯선 땅”이라는 텍스트로도 표현이 되는데, 슈만이 의도한 예술적 의미와 일맥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의 징후다. 더는 아무 의미도
더는 아무 고뇌도 아니다 우리는 그리고 우리는
거의 잃어버렸다 낯선 땅에서 언어를.

-횔덜린,「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Mn´emosyne)

고통과 고뇌의 사이에서

앞서 언급한 횔덜린과 슈만은 여러 부분에서 비슷한 색채를 공유한다. 정신병으로 고통 받았던 두 예술가는 광기와 불안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일이 잦았고, 자연스레 ‘고통’이라는 개념은 그들의 초점에 위치하게 됐다. 고통은 어디서부터 오고 그 주인은 누구일까? 슈만에게 있어서 음악은 고통의 극단이었기에 그의 음악 속에서‘기쁨’의 감정을 느끼는 일은 거의 없다. 그저 혼란과 공허가 뇌리에 남아 가슴을 짓누른다. 고통이다.

그 고통은 주인을 찾을 수 없고 의미를 찾기도 어렵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임종의 순간에 “지금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고문과도 같은 고통뿐이다. 그것은 더는 의미가 없다”며 그의 안락사를 도왔던 의사 막스 슈어에게 지독한 고통에 대해 말했다고 한다.하지만 고뇌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고뇌는 그것을 느끼는 그 사람이 주인이며 고뇌의 이면에는 종종 쾌락과 즐거움이 함께 있기도 하다. 시간이 약이 되는 경우도 고뇌에만 해당한다. 고통에게 시간이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횔덜린의 “더는 아무 의미도 더는 아무 고뇌도 아니다”라는 시구는 고뇌의 부재를 뜻하는 고통을 표현함과 동시에 고통의 무의미성에 대해 함축하고 있다.


고뇌 속에서 우리는 ‘고뇌’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고뇌의 시작점을 찾아볼 수 있고,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분석해볼 수도 있다. 또한 고뇌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저 고통에 점령당해버린 상황 속에서는 그중 어느 것도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고통으로 가득한 슈만의 음악을 듣고 해석하려 드는 것, 우리가 통상적으로 느끼는 감정 표현을 그곳에서 찾으려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음악 속에서 고통은 템포나 대조적인 패시지 등의 표면적인 수단을 통해 표현되지도 않고, 형상과 특징이 없는 중립적인 존재로서 우리를 유폐해버린다. 고통의 원인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면 더 이상 고통은 존재하지 않을 텐데, 고통이란 메시지는 발신자를 남기지 않는다.

황혼녘의 음악

황혼녘은 어둑어둑 빛을 잃어가는 시간의 틈이다. 틈새로 보이는 하늘은 밝지도 깜깜하지도 않은 모호함의 형상이다. 자욱한 안개 속의 어떤 빛과도 닮았다. 슈만의 음악을 연주할 때면 아직 시작하지 않았는데 이미 그 안에 존재하고 있거나, 멈춤을 생각하려는 찰나 이미 모든 것이 끝나 있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시작’이라는 알림 없이 음악 한 가운데에 그냥 휩쓸려 들어가며, 그저 불쑥 나타나고 사라지는 연기처럼 행위의 적절한 시기와 형태가 무엇인지 찾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미 이 세상의 음악이 아닌, 지도에서 찾을 수 없는 세상 너머에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이는 수수께끼 같은, 출현과 소멸을 모두 품고 있는 황혼녘과 너무나 닮아있다.

슈만의 음악에서는 암호화된 하나의 모티브가 지속적으로 반복하여 등장한다. 다섯 개의 음이 하강하는 멜로디 라인을 갖고 있는 이 모티브는 특별한 이름을 갖고 있지는 않다. 필요에 따라 그 모습이 수시로 변형되어 나타나기도 하는데, 기본 형태에 대칭을 이루고 있기도 하고 때론 전위된 형태일 때도 있다. 물론 빠르기에도 제한이 없고, 악곡의 성격도 상관하지 않는다. 저자 미셸 슈나이더(Michel Schneider)는 슈만의 모티브의 하강하는 선율을 보고, “ 저물고 묻히는 것, 황혼”을 떠올리며 모티브 속에 녹아 있는 황혼녘을 생각한다. 빛이 멀어지며 어둠이 다가오는 그 순간이 슈만의 내적 예술세계를 탐사하기에 적기인 것이다.

슈나이더는 이 저서에서 독일 낭만주의 음악예술의 정점에 위치해있는 슈만의 음악세계를 활자로 적어내고, 언어로 빚어냈다. 그 과정에서 시인 횔덜린의 예술관을 통해 슈만의 전반적인 예술을 사유하고자 했으며, 실제로 이 저서에서는 횔덜린의 시구 일곱 개를 각 장의 제목으로 삼아 슈만 음악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문학과 음악을 사랑했고, 두 예술적 범주의 결합을 끊임없이 시도했던 슈만이었기에 그의 음악에 대한 문학적이고 언어적인 해석은 꾸준히 이어져오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슈만이 창작 과정에서 장 파울(Johann Paul Friedrich Richter, 1763~1825)과 호프만(Ernst Theodor Wilhelm Hoffmann, 1776~1822)에게서 큰 영감을 받았던 사실 때문에 두 문학가와 연관한 내용이 연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진보적 관점에서 봤을 때, 가히 일관적이고 정체된 연구라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틈에서 횔덜린을 불러내어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 슈나이더의 예리한 시선이 바로 그를 특별하게 만드는 지점이라 생각한다. 횔덜린을 통해 가슴속 깊이 파고든 울림이 슈만의 내면적 예술성을 보다 깊고 넓게 느끼게 한다. 그 깊은 울림을 허락하고야만다.

강가람 | pianist_kgr@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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