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호 기획: 대학 내 교수 성폭력] 학계 성폭력 문제, 교수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 사회 곳곳에는 성을 매개로 가해지는 신체적·언어적·심리적 폭력이 만연하다. 학계까지 침범한 성폭력 문제는 학생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이에 본보는 대학 내 교수 성폭력 문제와 구조적인 원인을 알아보고, 이와 관련한 교수들의 인식 변화의 필요성을 짚어보고자 한다.

2018년은 미투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사회 곳곳에서 성희롱 · 성폭력 피해를 증언하고 연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던 한 해였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은 검찰, 연예계, 종교계, 문단과 함께 대학을 비껴가지 않았다. 2019년 현재 대학은 그 어느 곳보다도 미투 운동이 격렬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장이다. 가시화된 미투 운동으로 불거진 수많은 대학 외에도 여러 대학에서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빈도로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고발이 이루어졌고, 특히 교수 성범죄의 경우 징계나 처벌로 종결된 사례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해결되지 않은 사례들을 중심으로 언론 보도가 이루어지다 보니 상황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변화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교육부나 대학이 교수 성희롱 · 성폭력을 대하는 방식이 확실히 달라지고 있다. 실제로 대학 내에서 자체 징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형사 고발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학교가 징계를 마냥 회피하기도 어렵다. 현재 연구 윤리와 성희롱 · 성폭력 문제는 대학마다 교수 징계가 가장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민감한 사안이다.

물론 이렇게 상황이 변화했다고는 하지만, 최근에도 성추행·갑질 교수 파면을 두고 학생들이 집단 단식에 이어 동맹휴업까지 하게 된 사례에서 보듯 교수 성폭력 문제의 해결은 쉽지 않고, 문제에 대한 대학 내 인식 차도 매우 크다. 교수라고해서 입장이 단일한 것은 결코 아니지만, 교수 성폭력에 대해 대학 내에서 교수와 교수 아닌 사람들 사이에는 상당한 인식차가 확인된다. 그런데 대학 내 교수 징계 절차는 많은 부분이 교수에게 맡겨져 있다 보니 이러한 인식 차는 학내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으로 이어지는 원인이 되곤 한다. 고발하는 측에서는 학생 인권이나 노동권의 문제로 대학 개혁을 위한 중대 사안으로 이해되는 반면 교수들에게는 교권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문제를 인정한다고 해도 교수의 해임이나 파면 요구는 과하다고 주장하면서 교수의 인권과 생존권을 제기하는 경우가 흔하고, 대놓고 미투 운동이 지나치다며 비난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교수 성폭력 문제를 둘러싼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대학 내에서 교수의 비위 사실을 판단하고 징계하는 문제가 교수들에게 달린 상황에서 교수와 교수 아닌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학생들을 투쟁의 현장으로 내모는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개별적으로는 양식이 있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고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고자 하는 교수라고 할지라도 교수집단의 일원으로서는 딱히 다르지 않은 행동을 해서 실망을 자아내기도 한다. 과연 이런 문제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그러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 이 글에서는 우선 교수 성폭력 해결 과정에서 교수집단의 인식이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을 짚어보고 필요한 전환의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교수 성폭력은 사건이 아니라 구조다

대학 내에서도 피해를 고발하는 내용 가운데 성추행과 성폭행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듣는 대중들의 관심 역시 성적인 피해에 모이는 경우가 많다 보니, 피해자가 입은 피해의 주 내용이 성적 자기 결정권이 침해된 것이라 보는 경우가 많다. 물론 피해자의 성적 자기 결정권 침해는 중요한 사안이지만, 교수에 의한 성폭력의 경우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대학 내에서 교수가 차지하는 위치에서 발생한다. 교수가 가해자가 되고 학생이 피해자가 되는 경우, 학생들은 종종 학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대학원생들의 경우에는 막 발을 딛기 시작한 학계를 떠나야만 하는 경우도 많다. 그야말로 ‘미생’이 따로 없다. 노골적으로 대학원생들이 학계에서 활동하거나 지도 교수를 바꿔서 학업을 지속하는 것조차 막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 할지라도 스트레스와 평판에 대한 공포감, 학계에 대한 환멸로 학업을 이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대학이라는 조직 내에서 무력감을 경험한 피해자들은 대학을 떠난 후에도 조직 생활을 필요로 하는 직장을 기피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성폭력 피해는 잠시의 사건이 아니라 다양한 층위에서 배제로 이어지는 구조인 것이다.

그것에 비해 가해자를 포함하여 일반적인 교수집단이 상상하는 피해는 성폭력 행위 그 자체에 국한되는 경향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가 입은 피해에 비해 해임이나 심지어는 정직 수준의 징계도 과하다는 반응이 생겨난다. 교수에게 부과된징계는 ‘돌이킬 수 없는’피해라고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가해자가 오히려 피해자로 동정을 받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요즘 교수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혹은 교수 그만두면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다고 해임을 하느냐고 하고, 정직의 경우에도 평생 평판에 영향을 주는 과한 징계를 한다는 말에 대해서 교수들끼리의 공감대는 꽤 두터워 보인다. 교수 성폭력의 결과가 피해자들에게 성적 피해 이상의 결과를 가져오며, 피해자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젠더 권력을 공고화시키는 중요한 기제이자 성차별적 효과를 발생시킨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교수는 매우 드문 상황이다. 하지만 교수들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대학 밖의 시선은 차가운 편이다. 교수들이 정년까지의 직장 생활을 자신들이 획득한 신분이자 권리로 받아들이지만 일반인들은 이를 대단한 특권으로 보기 때문이다.

교수 성폭력은 ‘권력형’성폭력이다

대학 내에서 심지어는 교수들 사이에서조차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증가하고, 각종 프로젝트를 매개로 대학원생이 시간적·경제적으로 교수에게 종속되는 경향이 커지는 상황에서 교수가 자신이 가지고 행사하는 권력에 대해 성찰하지 않는 상황은 여러모로 문제가 된다. 가해자 교수는 끝없이 개인적인 유대나 호감에 기초한 관계였다고 주장하고, 심지어는 동의를 구했다고 항변하기도 하지만, 현재 일반적인 교수와 학생 관계가 대등하게 싫은 것을 싫다고 표현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안희정 사건 2심 판결에서 명시했듯이 어떤 상황에서는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았거나 요구에 응했다는 사실 자체가 위력이 존재했음을 입증하는 증거가 되며, 동의의 증거가 되지 않는다.

교수집단의 경우 정치인이나 고위 권력자에 비해 스스로를 약자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교수를 권력자로 생각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강의실에서 강의를 하고 학점을 주며 추천서를 쓸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나이에서나 직위에서 분명한 우위에 있다는 사실, 학계라는 중요한 네트워크를 선점하고 있다는 사실을 종종 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가해 교수 스스로는 개인적으로 호감이라고 주장할지 몰라도 구체적인 상황은 명백하게 자신이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대나 취약한 상대를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 본인을 포함하여 사태를 바라보는 교수집단이 자신이 가진 권력을 부인하는 것은 단지 피해자에 대한 공감의 실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문제를 개인의 일탈이나 소통의 실패로만 보는 것은 넓게는 사회 전체, 좁게는 대학 내에서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성의 실패를 증명한다.

동료애 말고도 교수가 느껴야 할 책임은 많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교수집단이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산다고 하면 억울하게 느낄 사람이 많을 것이다. 교육부를 비롯해서 연구재단, 대학 당국의 통제, 언론사 주체의 순위 평가에 이르기까지 교수집단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이 존재하는 것도 분명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압력이 주로 정량화될 수 있는 업적과 성과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면서 대학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어떤 연구 결과를 내야 하며, 교수가 져야 할 책무는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는 점점 더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외부적인 압박에 대해 교권 침해로 받아들이는 교수집단의 사고 습관은 점점 더 굳어져서, 교수 성폭력 사건에 대한 처벌 강화 경향조차도 교권 문제로 받아들이면서 교수를 보호해야 한다는 반응 이상을 보이지 못하는 것이 지금 평균적인 교수집단의 현주소이다.

현실이 그렇다 보니 학교 밖에서는 대학이 확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거나 대학교수들을 모두 싸잡아 비난하는 소리도 크다. 실제로 차라리 포기해 버리고 싶은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그럴 수 없는 것은 여전히 대학 진학률이 거의 70%에 이르는 이 나라에서 대학은 엄청난 개인적·사회적 자원을 소모하고 있는 제도이자, 실제로 포기하기 어려운 사회의 공유자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학의 주인이 교수만은 아니지만, 영어로 교수를 지칭하는 패컬티(faculty)라는 단어가 의미하듯이 교수는 대부분의 학생보다 대학에 오래 머무르면서 운영해 나가는 기관 역할을 한다. 그런 교수들이 교수 성폭력 사건을 두고도 동료 교수 입장 말고는 아무것도 이해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하는 것은 대학의 미래를 암담하게 한다. 현재 대학이 처한 상황은 교수가 교수를 보호하는 것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는 위기와 급변의 상황이 아닌가. 대학이 한때 그랬듯이 다른 세계를 꿈꾸고 가능하게 만드는 기반이라는 역할을 되찾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의 문제들에 응답하는 자세가 먼저 요구된다.

백영경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교수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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