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호 인터뷰: 김희찬 경희대 중앙박물관장] 경희와 함께 64년, 중앙박물관을 말하다

2019년 경희대학교 70주년을 맞이하면서 그 무엇도 아닌‘경희’가 궁금해졌다. 그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떠올린 것이 중앙박물관이다. 중앙박물관은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을까, 경희대학교 박물관으로서 경희의 어떤 것을 품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중앙박물관 김희찬 관장을 만났다. 3시간 동안 이뤄진 인터뷰 에서 경희에 대한 그의 애정이 묻어나오는 듯 했다.

경희대와 경희대학교 중앙박물관

Q. 우리 학교는 올해 개교 70주년을 맞습니다. 중앙박물관도 1955년 10월 개관해 60여 년 동안 경희 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는데요, 중앙박물관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중앙박물관은 1955년 작은 박물실로 시작해 1966년 11월, 지금의 위치에 재개관하면서 종합박물관 으로서 면모를 갖췄습니다. 현재 유물 대장엔 7천여 점이 등록돼 있으며 학술용은 만 점을 보유하고 있 습니다. 박물관이 전시하고 있는 금귀걸이와 같은 유물들은 경주 인왕동 고분에서 직접 발굴했으며, 영 암 내동리 옹관묘 발굴 조사, 충주댐 수몰지구 문화유적 발굴 조사, 주암댐 수몰지구 문화유적 발굴 조 사, 암사동 선사취락지 발굴 조사, 미사동 선사취락지 발굴 조사, 통일동산 개발지구 문화유적 발굴 조 사 등 학술조사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들어 세계적으로 학술·연구에서 교육·사회공헌으로 박물관 기능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학술 연구는 전문 기관에 위임하고, 대학 박물관은 교육적으로 전문화되는 추세입니다. 우리도 그 러한 흐름에 발맞춰 문화유적답사, 인턴십, 박물관 전시·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교육과 사회공헌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Q. 중앙박물관은 개교 70주년을 맞아 <한국의 기와> 특별전을 진행 중입니다. 개교 70주년이라는 뜻깊은 해의 특별전 주제를‘기와’로 하신 이유가 있나요?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어떤 유물을 주제로 할지 많은 고민이 있었는데요. 개교 70주년인 만큼 우리가 소장 하고 있는 유물 중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것, 바로‘기와’를 주제로 하게 되었습니다. 기와는 시대를 알려 주는 중요한 유물이지만 출토되는 양이 많아 문화유적으로서 그 가치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 지만 우리 학교는 기와의 중요성을 인식해 1980년대부터 수집을 시작했습니다. 백제, 신라의 기와 와 다르게 고구려 기와만큼은 구하기 힘들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대거 반출된 고구려 기와를 구매해 삼국시대 기와 시리즈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기와를 연대별로 전 시할 수 있는 곳은 오직 경희대학교 중앙박물관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연유 로 개교 70주년에 <한국의 기와> 특별전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Q. 중앙박물관의 수많은 소장품 중 특별히 소개해주실 소장품이 있을까요?

저는 경희대학교의 유물 두 가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먼저, 2018년 말 문화재청 등 록문화재 제741호로 지정된 본관입니다. 본관의 문화재 지정 배경을 알기 위해선 우리 학교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데요. 1953년 경희대는 부산에서 피난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11월 24일 본관 기공식을 열었습니다. 당시 한국은 1인당 GDP가 70달러도 되 지 않는 세계 최빈국이었으나, 1954년 5월 20일 학장 취임식에서 조영식 박사는“세계 적인 대학을 만들겠다”라고 선포하면서 본관을‘천 년 가는 건물’로 짓고자 했습니 다. 본관에는 경희의 창학이념과 비전, 정신이 응축돼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956년 8월 20일 완공된 본관은 지난해 문화재청의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정말 천 년을 가는 건물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유물 중‘청화백자호상문병’ 도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 백자에는 코끼리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우리가 아는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조선시대 연암 박지원 선생의『열하일기』에 수록된 코끼리 이야기를 아시나 요? 코끼리를 처음 접한 조선사람이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할 길을 찾지 못해“몸뚱이는 소 같고 꼬리는 나귀와 같으며 약대 무릎에 범의 발톱에 귀는 구름장같이 드리웠으며…”라는 비 유적인 표현을 사용해 묘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백자에 새겨진 코끼리는 바로 이 비유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18세기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보여주는 유일한 유물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코끼리와 청화백자 속 코끼리가 어떻게 다른지 직 접 비교해보시기 바랍니다.

대학교 내 박물관으로서 역할

Q. 사실 대학 내 박물관의 존재는 다소 생소합니다. 실제로 1982년 대학설치기준령 개정으로 대학 내 박물관은 더는 필수사항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 학교가 박물관을 유지·운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중앙박물관은 1955년 설립돼 1966년 11월 12일 현 위치로 이전했습니다. 중앙도서관 건물에 대한 마스터플랜은 1957~58년 무렵에 만들어졌고 1960년 공사를 시작하여 1968년 6월 완공됐으니 실은 도서관이 완공되기 전 부터 중앙박물관이 먼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죠. 당시 4년제 대학교로 인가를 받으려면 대학 내 박물관이 필수였던 것이 사실입니다만, 그것만이 우리 학교가 박물관을 운영하는 이유 는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자격요건 충족을 위해서라면 규모를 확대할 필요가 없었겠죠. 하지만 박물관은 중앙도서관 건물을 설계할 때부터 확장을 전제로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학교가 이토록 박물관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창학 정신과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경희의 창학 정신‘문화세계의 창조’는 고차원적 정신문화 와 최고도화된 과학기술로 이뤄진 인류문화를 의미합니다. 경 희는 초기부터 문화의 중요성을 알고 한국문화, 자연문화, 인 류문화를 보여주는 다양한 박물관을 세울 계획이었습니다. 이 러한 흐름에서 먼저 중앙박물관이 건립되었고, 1978년 자연사 박물관, 국제캠퍼스의 중앙도서관 4층 인류문화사박물관 부 지에 2005년 고지도 박물관인 혜정박물관이 들어서게 된 것입 니다. 즉, 교내 박물관은 단순히 필요해서 생긴 공간이 아니라 문화에 대한 경희의 창학 정신을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Q. 대학교 내 위치한 박물관인 만큼, 외부 박물관과 구분되는 특징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중앙박물관은 경희대학교의 구성원으로서 교육과 사회공 헌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인턴십, 정기문화답사, 그리고 다양한 프로그램 활동이 있습니다. 먼저, 중앙박물관 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턴십을 시행하고 있는데요. 지난 2004년부터 현재까지 총 100여 명이 참여했고, 2014년부터는 한 학기에 한 번씩 모집하고 있습니다. 사학과를 비롯하여 미 술, 지리, 체육, 화학, 도예, 산업디자인, 관광, 글로벌커뮤니케 이션, 언론정보, 정치외교 등 다양한 학과에서 학예 업무에 관 심 있는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에서 제공하는 인턴십 교육은 기초과정(한국사 및 박물관학)과 심화 과정으 로 운영됩니다. 인턴십 학생들은 이번 특별전 <한국의 기와> 전시 지원뿐만 아니라 유물해설 지침서 제작, 관람객 응대, 도 슨트 등을 체험하고 매 학기 박물관 탐방 및 문화답사를 통해 학예 실무역량을 높이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 박물관협회 방 중 문화시민봉사단을 운영해 박물관이 없는 주변 대학에서 학 예 업무 교육과 실습을 위해 방문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박물관의 문화적 사회 기여를 위해 지난 2001년 부터 운영하는 정기문화답사가 있습니다. 올해 5월까지 총 148회가 진행되었으며 인문학과 역사에 관심 있는 참여자와 함께 답사를 다녀오고 있습니다. 한 회당 평균 40여 명이 참여 하며, 현재까지 총 5,000여 명이 참여했습니다. 돌아오는 7월 에 있을 제150회 정기문화답사는 <한국의 기와> 특별전과 연 계해 학술대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중앙박물관은 정기적으로 전시 연계프로그램 과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최근 5년간은 주로 지 역사회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이 진행되었는데요. 작년에 실시한‘박물관과 함께 떠나는 우리문화산책’에는 교내 구성 원 외에도 경희의료원 환우와 보호자, 푸른학교 야학 어머니 등 다양한 분들이 참여해주셨고, 동대문구 다문화 축제 운영 부스에도 참가하는 등 해를 거듭할수록 더 대중적인 교육 활 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올해는‘박물관 길 위의 인문학’사업 을 통해 <한국의 기와> 특별전 주제에 맞춰 한국 고건축과 관 련된 프로그램인‘단청 컵받침 칠하기’, ‘와당 석고방향제 만 들기’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와 박물관

Q. 박물관의 가장 큰 의의는‘기록’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록을 보관하는 장소로서 박물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기록이라, 어려운 질문이네요. 기록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계속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를 한강과 같은 거대한 강의 흐름이라고 본다면 기록은 그 강을 이루는 하나 하나의 물방울입니다. 물방울이 모여 웅덩이가 되고 시내가 되고 강이 되는 것처럼 하나하나의 기록이 모여 거대한 강을 만드는 것이죠. 기록을 퍼즐 조각으로도 비유할 수 있겠습니 다. 퍼즐 하나는 아무리 하찮고 사소할지라도 그 조각이 모여 야 큰 그림이 되는 것이죠. 하지만 오늘날 기록은 홍수처럼 범 람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수많은 기록이 쏟아지고 있어서 이제는 기록을 어떻게 수집하고 보관하는지가 중요해졌습니 다. 이제 박물관은 단순히 기록이라는 사료를 모아놓는 곳이 아니라 비판적·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흘러가는 강의 물방울과 퍼즐의 조각에 의미를 부여 하는 것이죠.

Q. 최근 급격한 과학기술의 발전과 사회적 변화에 따라 디지털로의 패러다임을 꾀하는 박물관이 늘고 있습니다. 박물관의 미래는 어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디지털화는 시대의 조류라고 생각합니다. 중앙박물관도 유 물 전산화 과정을 꾸준히 진행해 현재 5천여 점을 인터넷으로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디지털을 중시하는 흐름은 필연적이지 만 그에 못지않게 아날로그 감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사실 디 지털화는 최근 몇십 년간의 현상에 불과하고, 인간은 훨씬 오랫동안 아날로그에 익숙해져 있죠. 디지털로 가야 할 부분이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 이 둘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박물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박물관 숫자는 늘어나는 추 세입니다. 사람들은 유적지를 실제로 방문하고 싶어 하는데 이러한 현상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디지털은 분명 필요하지 만, 아날로그만이 줄 수 있는 느낌 또한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 에 박물관은 그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합니다.

Q. 마지막으로 원생을 비롯한 교내 구성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저는 유물을 보는 태도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꼭 박물관 에 오지 않아도 좋습니다. “박물관에 가겠다”라는 생각만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젊은이들 해외여행 많이 가는데 보통 내가 그 나라를 알고 싶다고 하면 박물관을 가잖아요? 근 데 꼭 들어가지 않아도 돼요. 그 앞에서 그냥‘인증샷’만 찍어 도 괜찮습니다. 박물관을 가겠다고 생각하고 그 앞까지 간 것 이니까요. 만약 박물관에 실제로 들어와서 유물을 보고 싶다 면, 저는 굳이 다 볼 필요 없고 본인이 좋아하는 것 하나만 봐 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다만 무엇을 보더라도 그 유물이 품고 있는 역사는 무엇일까, 그런 상상력을 갖고 박물관을 관람한 다면 즐거운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물은 필연적으로 주변과 상호맥락성을 갖고 있습니 다. 유물 또한 그렇지요. 그래서 전체적인 맥락에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 변치 않는 건 없고, 유물 또한 변 화하고 있습니다. 유물 자체의 속성은 그대로일지라도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들, 사회적 상황 등에 따라서 유물이 품고 있는 의미 또한 변하는 것이죠. 다큐멘터리‘누들로드’의 감독은 갈돌과 갈판과 같은 유물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똑같 은 벼를 두고 동북아 사람들은 찰진 밥을 만들고, 동남아 사람 들은 폴폴 날리는 밥을 만들고, 이탈리아 사람들은 면을 만들 었는데, 과연 그 차이는 어디서 왔을까 생각하는 호기심이 바 로 박물관 유물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이처럼 박물관에 와서 유물을 볼 때 유물 너머의 맥락, 생활을 보고자 한다면 박물관 은 말 그대로‘창의성의 보고’가 될 것입니다.

대담·정리: 류제원 | jewonryu@khu.ac.kr

사 진: 강가람 | pianist_kgr@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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