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호 문화비평: 이미지의 중요성] 이미지가 재현하는 사실과 진실

-미래 시민사회가 테크놀로지와 이미지 시대에 대응해야

이미지는 거짓말을 한다

우리는 사진 속의 이미지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흔히 이야기한다. 사진은 현상의 정직 한 복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사진이 적정 수준 이상의 해상도를 갖는다면 사진 속의 피사체는 현 상과 일치할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마셜 맥루언(Marshall McLuhan, 1911~1980)의 핫 미디어(핫 미디엄)과 쿨 미디어(쿨 미디엄) 은유에 의하면 사진은 대표적인 핫 미 디어이다. 사진은 대표적인 고해상도(higher definition) 미디어이고, 사진을 보는 우리 수용자는 해독과정에 소극적으로 참여(lower participation)한다. 이 점에서 사진은 쿨 미디어인 그림과 대 비되는 핫 미디어이다.

그러나 사진 속의 사실도 그 자체가 진실은 아니다. 사진은 사진작가의 관점에서 바로 본, 현 상의 한 단면의 묘사일 뿐이다. 사진작가의 관점은 프레임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 피사체의 측 면과 배면을 묘사할 수도 없다. 사진작가는 단지 자신이 서 있는 그곳의 한 관점에서 피사체를 복제할 뿐이다. 이런 점을 잠시 잊은 채 사진 속 피사체의 모습을 진실이라고 본다면 이는 명백 한 착시이고 착각이다.

우리 일상의 이미지들도 그러하다. 이미지는 아무 리 높은 해상도로 구현되더라도 그것이 현상의 모두 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미지를 진실 이라고 믿는다. 사진이 대표적인 핫 미디어이기에 수 용자의 해독 참여도가 낮다는 점이 여기에도 적용된다. 비판적으로 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진실이라는 가면을 쓰고 다가오는 이미지의 속임수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이미지의 재현(representation)은 분명히 현실 그 자체의 제시(presentation)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과 진실의 문제

글이건 이미지이건 우리가 그 속에서 진실(truth)을 찾는 것은 늘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역사가도 저널리스트도 진실보다는 사실(facts)의 문제에 더욱 집착한다. 우리가 관찰한 현상이 사실이라면 그 자체가 진실에 가까울 가능성이 더 크다 는 전제 때문이다. 19세기 독일 역사가 랑케(Leopold Von Ranke, 1795~1886)의 실증주의적 역사학 방법론의 출발점이 여기에 있다. 엄밀하게 확인과 검증이 가능한 자료, 즉 확연한 사실 만이 역사 기술의 사료가 될 수 있다는 관점이다. 20세기 영국의 역사가 콜링우드(Robin G. Collingwood, 1889~1943)는 이와 대비되는 역사학 방법론을 제시한다. 콜링우드에게 역사는 사실에 기초한 역사가의 해석과 영감의 산물이다. 실증적 사료를 바탕으로 한 역사가의 상상력 이 역사의 해석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그것이 역사의 진리에 접근하는 원동력이라고 보는 입 장이다. 이는 20세기 후반 신역사주의 방법론적 근원이 됐다.

저널리즘의 영역에서도 사실과 진실의 논쟁은 계속되어 왔다. 저널리스트는 일상의 사건의 사실을 기록한다는 측면에서 실증주의적 역사가의 소임을 수행한다. 그리고 나아가 사실에 대 한 해석을 통해 진실을 모색한다는 측면에서 신역사주의 역사가의 사명을 자임하기도 한다. 이 러한 과정에서 글뿐만 아니라 이미지의 힘을 빌리기도 한다. 그 이미지는 그것이 사진이건 그 래픽이건 간에 불가피하게 프레임의 제약을 받게 된다. 그래서 진실의 추구가 때때로 진실의 왜곡과 오류를 야기하는 시행착오를 피할 길이 없다. 진실은 사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전지 적(omniscient) 시점을 요구한다. 그런 점에서 제한적 시점의 이미지가 진실을 묘사할 수 있다 는 가정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유튜브 시대의 사실과 진실

출판, 신문, 방송을 통한 일방적 정보와 지식 유통 시대는 새로운 네트워크 테크놀로지 시대 의 패러다임에 의해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져 가고 있다. 2018년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1 분 동안 약 300시간 분량의 동영상 이미지가 유튜브 공간에 탑재되고 있다. 하루 동안 올라오는 유튜브 동영상의 분량은 약 43만 시간을 상회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이는 우리가 하루 24시간 계속 시청하더라도 50년을 계속 봐야 하는 엄청난 분량이다. 유튜버라고 불리는 이미지 생산자 의 수는 약 5천만 명에 이른다. 유튜브는 76개 언어로 88개 국가에 이미지와 스토리를 공급하고 있다. 전 세계 인터넷 사용자의 약 95%가 유튜브를 보고 있다. 다양한 취향, 생각, 의견을 공급 하는 유튜브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권력이다. 오늘날 인류는 바야흐로 유튜브 시대에 살고 있다.

유튜브를 통해 유통되는 다양한 취향, 생각, 의견이 사상과 표현의 글로벌 민주주의를 불러왔 다는 자유주의적 시각도 있다. 그러나 유튜브 유통시장의 급격한 팽창이 우리 사회의 사실과 진실 가치의 추락을 야 기하고 있다고 보며 이를 심히 우려하는 공동체주의적 관 점도 있다. 우리 사회의 역사가와 저널리스트의 공동체주 의적 역할을 통제받지 않는 유튜브 이미지들이 대치했을 때에 우리 사회는 사실과 진실의 암흑기를 맞게 된다.

새로운 이미지와 정보 환경에 대응하는 시민사회 운동

유튜브가 선두에서 주도하는 네트워크 시대, 이미지 홍수의 시대에 우리는 이미지와 정보 유 통 환경의 새로운 질서를 위한 건강한 시민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환경 시민운동이 우리 사회 환경의 완전한 복원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이즈음 미세먼지 환경의 실제적 정화와 아울러 시민의 경각심에 호소하는 환경운동을 벌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미지와 정보 환경의 정화를 위한 시민사회 운동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무책임하고 검증되지 않은 이 미지의 난무가 시민의 자율적인 정치적 풍향계를 마비시킬 수도 있다면 이는 분명히 묵과될 수 없다. 2017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이미지 정치의 과잉이 현실 정치 판도를 좌우한 극명한 사례 다. 전 세계의 분쟁과 난민에 대한 이미지는 이들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고정화할 우려가 있다. 누군가는 오염된 이미지 시장의 위험성에 경종을 울려야 하고 순진한 수용자, 순진한 시민을 계몽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우선, 유튜브를 포함한 다양한 소셜미디어가 양산하는 이미지에 대한 체계적이고 심층적인 모니터링이 시민사회 운동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소셜미디어 사업자와 콘텐츠 공급자들의 자기 규제의 분명한 명분과 방법론을 제공해야 한다. 이들 스스로가 일차적 게이트 키퍼의 역할을 성실히 준수하고 담당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한편, 네트워크 시대 콘텐츠 공급자와 수용자를 대상으로 한 미디어 리터러시 철학에 대한 진지한 성찰, 그리고 체계적인 시민교육 과정에 대한 논의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다 양한 문화, 취향, 의견의 시대의 다문화적 삶의 윤리가 구성원 모두에게 체감될 수 있는 방향으 로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미지 시대, 미래 시민사회의 방향

우리 일상에 다가선 5G 시대는 이미지와 정보 과잉 시대의 또 다른 국면을 예고한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문명의 이기임이 틀림없다. 새로운 경제와 산업 시대라는 희망찬 인류의 미래를 불러오는 새로운 테크놀로지임도 자명하다. 그러나 테크놀로지를 그대로 방치하면 괴물이 된 다. 여기에 인류 의지의 적극적인 개입이 불가피하다.

근대역사의 원동력은 자유주의와 이를 보완하는 공동체주의의 교차적 상호 응전에 있었다. 테크놀로지는 늘 인류의 자유의 폭을 대폭 확장해 가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이제는 우리에 게 주어진 자유의 깊이를 숙고하는 공동체의 대응이 필요할 때다. 이미지의 시대에 와해될 우 려가 있는 사실과 진실의 성을 견고하게 다시 구축하는 것이 건강한 미래 시민사회의 중요한 과제다.

마동훈 /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교수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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