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노동법을 알아야 하는가?

자본주의와 노동

인류의 역사는 노동의 역사이자, 타인의 노동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우리가 오늘날 누리고 있는 유용한 것들은 모두 노동의 결과이다. 단순히 노동하는 인간을 가리켜 ‘노동자’라고 부른다면, 바이블의 아담이 그랬듯이, 인간은 태초부터 ‘노동자’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노동자(또는 근로자)’라고 말할 때, 그것은 단순히 노동하는 인간을 통칭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특수한 정치·사회·경제적 제도가 낳은, 임금을 받고 타인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들 즉 자신의 생활을 지탱하는 유일한 근거로서 노동력을 판매하여 그 대가로 주어지는 재화에 의존해서 살아가고 있는 이른바 종속노동(從屬勞動)의 인간군(人間群)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구성원 절대다수는 이러한 노동자로서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자본주의사회는 두 가지 사실에 의해 그 구조가 규정된다. 첫째는 노동력이 상품화되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다수의 노동자가 자본의 명령 아래에서 재화와 서비스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노동력의 상품화란 사용자 편에서는 노동자의 노동력의 소유자인 것을, 노동자의 편에서는 사용자가 화폐소유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법적 형식으로서 노동계약(=근로계약, labour contract)을 체결하여 노동력과 화폐를 교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약이 노동자의 노동력을 사용자에게 양도하는 계약은 아니다. 왜냐하면 현대법이 노예제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살아 있는 인간의 신체에서 분리될 수 없는 노동력 자체의 양도는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노동계약은 노동자가 노동력 자체를 상대방에게 양도하는 것이 아니라 약정된 조건으로 「노동한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급부하는 것일 뿐이다.

자본주의적인 경영체(기업)란 다수의 노동자가 「노동한다」는 과정에서 재화와 노동을 조직하는 질서다. 「노동한다」는 과정의 조건은 사용자와 개별 노동자 간의 계약에 의해서 정해진다고 하지만, 그 내용으로서 노동조건은 「정형」(定型)으로 통일되고 단순화될 수밖에 없고 또 사용자가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서 그 「정형」을 일방적으로 정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노동자에게는 불리하다. 자본적 소유는 영리목적의 소유이다. 상업자본이든 산업자본이든, 금융자본이든 모든 자본의 속성은 같다. 영리자본은 독재(獨裁)인 동시에, 자신의 이윤추구를 위해서 노동자의 생존 자체를 위협한다. 이러한 자본적 경영의 폐해에 대해 처음에는 노동자가 개별적·산발적으로 반항하다가 무자비하게 희생되었지만, 점차 집단적으로 대항하기 위해서 자연발생적으로 단결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는 단결하여 사용자와 교섭하는 방식 외에는 사용자와 대등한 입장에서 노동조건의 향상을 흥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본주의국가는 오랫동안 노동자의 단결 자체를 탄압해왔는데, 그 후에 단결을 방임·용인하다가 결국, 단결 자체를 조성하는 태도를 취하기에 이른다. 단결을 조성하는 것이 오히려 자본주의체제의 건강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은 그 구성원인 근로대중의 생활권과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으면, 노자(勞資)관계가 분열의 위기에 빠지고, 공동체로서의 국가 자체의 존립이 위태롭게 되기 때문에 노동자의 생활권과 노동권을 보장하는 법률을 제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이 노동입법이다.

노동문제에 대한 국가적 처방으로서 노동법

이렇듯 노동법의 역사는 기껏해야 2세기 남짓하다. 노동법은 19세기 후반 서유럽에서 자본주의가 산업자본주의단계로 접어들면서 임(賃)노동자가 사회적 계급으로 대두하여 이른바 ‘노동문제’가 사회적·정치적 문제로서 본격화되자, 이에 대하여 국가가 그 대응책을 마련하면서 태동하기 시작했던 법이다. 근대시민사회의 내재적 모순이 외화(外化)되어 그 사회적 병폐를 시민법에 의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사회적 병폐를 완화·수정하기 위한 법적인 방책이 바로 노동법이다. 자본주의국가에서 「노동력보존의 방법」으로서 노동법은 좋든 싫든 간에 필연적으로 생성될 수밖에 없었다. 자본주의체제는 한편에서는 노동 주체 즉 노동자의 존재를 전제로 해서 생성·발전해가고 또 노동자 없이는 그 존립 기반을 가질 수도 없고,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자의 착취, 노동력의 끊임없는 이용 없이는 그 존재가치가 무의미하게 되는 모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개별자본은 끊임없이 이윤추구에 의한 자본증식이라는 본능적인 목적을 추급해가는 과정에서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열악한 노동조건 하에 노동자를 취로케 하고자 한다. 이러한 개별자본의 행동은 어쩔 수 없이 노동자의 질병, 사고 등 노동재해를 증가시키고, 능률과 생산성의 저하를 초래함과 아울러 사회불안과 노동자의 저항을 불러와서 자본주의체제 전체를 위협하게 되는 경우도 초래한다. 자본주의의 초기 단계 즉 원시적인 자본축적시대의 노동조건이 얼마나 가혹하였는가는 그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이러한 상태는 노동력의 마멸로 직결되고, 총(總)자본의 입장에 서서 전체사회를 관리하고 자본주의체제를 유지해야 할 국가의 이성(reason of state)에서 보면 절대 그대로 방치해서는 아니 되는 현상이다. 그러면 개별자본의 욕망은 총자본의 전체적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법률적 제도에 의해 억제되어야 하는 것은 자본주의국가에 있어서 필연일 수도 있다.

서유럽의 선진자본주의국가에 있어 노동자의 단결에 대한 법인(法認)의 경우도 보면, 자본주의사회가 고도화되면 노동운동이 격화된다. 자본주의국가는 노동운동이 체제 자체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면 처음에는 노동자단체로서 노동조합에 인정하지 않았다가 자본주의가 더욱더 고도화되어 독점자본주의시대로 진입하게 되면 노동시장기구로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다. 이 단계에서 노동조합은 결사의 자유(the freedom of association)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것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는 이른바 단결권(the right of collective organization)에 의해 국가의 적극적인 보호를 받는다. 그렇지만 단결권은 특별하기 때문에 그 행사의 방식과 한계가 국가적 입법에 의해서 조밀하게 규범화된다. 이러한 국가적 입법이 20세기 초반 유럽국가에서 성립되었던 집단적 노동관계법이었다.

우리나라 노동법은 이제 겨우 환갑을 넘긴 정도다. 우리 노동법의 기본적인 틀은 1948년 제헌헌법 제17조와 제18조를 기점으로 해서 1953년 제정되었던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및 「노동쟁의조정법」에 의해 구축되었다(그 후에 이들 법률들은 그 수십 차례 개정되었고 또 개별 단행법률로 구체화되었다). 노동법이란 어떠한 법을 말하는가 하면, 실제로 타인에게 고용되어서 노동하고 있는 사람, 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 학교를 나왔지만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한 사람, 치료하거나 도움을 받으면 노동할 수 있는 사람, 그러한 사람들을 위해서 생활권과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제정되어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노동법은, 형식적으로 보면, 사용자와 노동자의 노동계약관계, 사용자 및 사용자단체와 노동단체(노동조합)와의 이른바 집단적 노동관계 및 노동조합의 조직관계라는 세 영역을 규율하는 법 전체를 총칭하는 말이다.

노동법은 우리 삶의 질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노동법을 알아야 하는가? 자본중심적인 현대산업사회에 있어 종속노동이 대부분의 국민의 생존직업이 되었고, 현대 공교육제도는 양질의 노동자를 양성하는 과정이고, 대부분의 어린이는 커서 노동자가 될 뿐이다. 대다수의 국민은 평생 동안, 다만 고급노동자인가 저급노동자인가 또는 정신노동자인가 육체노동자인가라는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으며,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노동자는 기업주로 발돋움을 할 수 없다. 노동계약은 수백만 근로대중들의 생존을 장악하고 있는 법형식이다. 그러므로 노동법은 근로대중의 생활을 보장하는 근간법(根幹法)이자, 삶의 질을 결정하는 법이다. 「민법」(civil law)은 그 이름과 달리 그 태생에서부터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민의 법」(people’s law)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속노동으로 생계를 영위하고 있는 현대산업사회에서는 노동법이야말로 노동시민의 민법이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의 법」이라고 하겠다. 노동법은 노동자만의 전선(戰線)이 아니라 노동하는 모든 국민의 전선(戰線)이자, 노동력을 팔아 생존을 영위하고 있는 산업대중의 전선(戰線)이기도하다.

모든 법은 ‘하도록 허락된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 사이를 나누고 있다. 법은 일정한 행위를 금지하면서도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각자에게 인정되는 권리(rights)란 각자에게 인정된 권력(power)이다. 이것은 노동법에서도 마찬가지다. 노동법은 노동자로서 ‘하도록 허락된 것’과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을 구분하고 있다. 노동자로서 하도록 허락된 것이 바로 노동자의 권리이다. 노동자의 권리는 노동자가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온전하게 생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권력이다. 노동법은 자본주의체제 하에서 노동자가 약자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노동자가 단결하는 것을 그 기본권으로 전제해서 자신들의 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고 하고 있다. 즉 근로권(노동권)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 제32조 및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노동3권)을 보장하는 헌법 제33조가 그것이다. 노동자는 헌법상의 단결권에 기한 집단력을 행사해서 자력으로 노동권을 실현할 수 있다. 약자로서 노동자는 단결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노동자의 단결체가 바로 노동조합이다. 그런데 여러 가지의 사정과 이유로 인해, 우리는 현재 또는 미래의 노동자로서의 권리의식이 박약하여 자신에게 권력으로 허락된 권리조차 제대로 행사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젊은이들은 ‘헬조선’이라고 아우성을 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권력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아니, 사용할 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대학원생 조교도 노동법상의 노동자이다. 그러므로 조교도 실정노동법을 공부하고 또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한편, 스스로 더 나은 근무조건과 환경의 개선을 위해서 개별 대학교의 차원 또는 전국적인 차원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실정법이 권리로서 보장하고 있는 권력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가는 각자에게 달려 있다. 그러나 권리란 행사되지 않는 한 아무런 권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강희원 /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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