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호 인터뷰 : 유희경, 시집서점 <위트앤시니컬> 대표] 책을 읽는 물방울이 모이고 흩어지는 곳

봄비가 떨어진다. 새싹들을 위해. 혹은 목련을 떨어뜨리기 위해? 그리고 다시 어디론가 흩어지는 봄비. 뒤숭숭한 봄비의 마음을 헤아려줄 수 있는 문화는 어디에도 없는 걸까? 우리는 혜화동의 한 전통 있는 책방 2층에 위치한 작은 시집서점을 찾았다. 이곳의 주인장인 유희경 시인은 위트 있으면서도 시니컬하다. 그런 말투로, 책은 정말 개인적인 경험이라 말한다.“ 따로 또 같이”의 시너지를 위해‘물방울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는 그의 이야기 속에 어쩌면 봄비 같은 우리들의 마음을 위한 해답이 숨어 있진 않을까?

시인의 길, 기획자의 길


Q. 시인님께서는 등단 이후 11년 동안 총 세 권의 시집을 내며 시인의 길을 묵묵히 걸어 오셨습니다. 그 시간들은 어떤 의미로 남으셨나요?
일단 묵묵히 걸어오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남다른 일을 모색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결과론적으로 봤을 땐 그랬으니까요. 그래도 시 쓰는 일은 훨씬 더 제개인적인 면을 잘 드러내는 일이었고 사람 유희경을 표현해주는 일이었습니다. 지난 11년은 시적 사고를 해야 한다는 의식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도록 마련된 시간 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특별한 것 같아요.


Q. 시인님의 시집을 읽다 보면‘부재’라는 키워드가 특히 강조되는 것 같습니다.
딱히 부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진 않았는데, 그렇게 읽으셨다면 그 키워드도 시에 들어가 있는 거겠죠. 시와 관련된 단어 중 제일 먼저 도드라진 부분이 다름 아닌 부재라면 그것 또한 나라는 존재를 표현해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기본적으로 시를 쓸 때 가지고 있는 감정은 상실감인 것 같아요. 상실감은 부재와 연관돼 있죠. 가령 이차원적인 시간 속에서 나의 생각은 일직선으로 가게 돼 있고 나의 생각이할 수 있는 일이 앞을 내다보거나 뒤를 돌아보는 거라면, 시간이란 건 이미 왔거나 오지 않은 것들뿐이잖아요. 그런 생각들 속에서 부재라는 표현도 도드라진 것 같습니다. 다만 이런 생각은 당연한 일이고 저뿐만 아니라 시를 쓰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겪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요. 어쩌면 이런 감정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는가가 더 중요하겠죠.


Q. 시인님께서는 시인의 길도 걸으면서 경영자의 길도 걷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점운영은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시선이 있습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건 서점운영이 경제적으로 어려울 거란 선입견 입니다. 다들 그렇게 예상을 하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서점을 운영하 려고 마음먹었을 때 사회에 공헌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건 분명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자영업이란 건 이익추구를 목적으로 하고 그런 것들의 가능성을 판단한 후에 모든 일들이 진행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경영자가 아니라 문화기획자의 마음으로 이 일을 시작했어요. 기획을 성공시키려면 사람들을 모아야 했고 당연히 공간이 필요했죠. 이왕이면 장소로서 의미를 갖는 공간이 었으면 했고 제 전문은 책, 문학이었습니다. 그럼 책을 팔거나 책을 볼 수 있게 하거나 둘 중 하나를 해야 하는데, 책을 볼수 있게 하는 것은 이익이 나지 않습니다. 현대사회에서 기획이란 자본주의의 원리를 배제하고 생각 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제가 일을 시작하면서, 출판사에 소속 돼서 일을 하는 것보다 저를 좀 더 주목해주는 것, 어떤 공동체를 만드는 것, 이런 보람들이 경제적으로 부족한 나머지 부분을 더 채워주고 있기도 하고요.

시집서점을 운영한다는 것


Q. 이곳은 작년 신촌에서 혜화동으로 이사를 했는데, 아쉬움과 설렘이 공존할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어요. 하나는 숍앤숍으로 구성되었던 신촌의 공간을 제가 인수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사를 가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시집서점이 이대와 연대 사이에 있다는 건 메리트가 컸어요. 이대와 연대는 문학적 전통이 강한 곳이기 때문에 서점 운영에 있어서 최적의 조건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주 훌륭한 조건이었습니다. 신촌하면 <위트앤시니컬>이기도 할 만큼 인지도도 있었고요. 고민이 많았죠. 그때 마침 혜화동의 <동양서림>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리모델링을 해야 하는데 전반적인 조언을 듣고 싶다는 얘기였 어요. 그래서 서점에 갔다가 창고였던 2층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2층을 임대하고 제가 여기서 행사를 기획하고 젊은 사람들이 좀 더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를 냈습 니다. 제 선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동양서림> 사장 님의 남편분께서 하신 얘기였어요.“ 서울에 100년 된 서점이 없는 것 알고 있느냐, 만약에 동양서림이 몇 년만 더 버티면 서울에서 100년 된 서점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정말 매력 적인 이야기였어요. 제가 그 역사를 거머쥘 수도 있는 거니까 요. 그 이후로 더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신촌 생활을 깨끗이 접고 혜화동으로 왔어요. 이제 4개월 됐는데 지금까지는 시너 지를 잘 이뤄가고 있습니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좋은 사람 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것으로 저는 만족하고 있습니다.

Q. 사실 요즘 서점에 가는 사람들은 책보다는 책과 연관된 콘텐츠, 굿즈 등에 더 관심이 많은 듯 보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책은 사는 게 아니라 보는 거라고 생각하고 와요. 그리고 이런 공간에 오면 기념이 될 만한 어떤 것들을 가지고 가고 싶어 해요. 진짜 문제는 이겁니다.‘ 사람들이 왜책을 안 읽게 되었을까?’계속 풀어가야 할 문제겠지만 제 생각은 책을 안 읽어도 불편할 게 없는 사회가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쁜 표지에 대해 비중 있게 이야길 하고 있고, 이제는 더 이상 그것에 대해 그 누구도 비판하지 않아요. 그런데 저는 책이 살아나려면 표지를 예쁘게 만드는데 투자하는 비중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표지에 사활을 거는 일을 통해 사람들의 소비욕을 증가시키는 것으로는 책의 수명을 연장할 수는 없는 거죠.

Q. 어느 인터뷰에서 시인님은 서점이 이제 책만 파는 곳이 아니라‘물방울 공동체’의 공간이 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물방울 공동체’는 무엇인가요?
소설책으로 만 부를 넘기는 일은 어렵지만 시로 만 부를 넘기는 일은 꽤 많아요.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시인들은 대부분만 부를 넘기는 시인들이에요. 저도 그 중에 한 명이고요. 그러면 도대체 만 명의 독자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 사람들은 어디 있기에 시는 읽히지 않는다는 선입견이 생겼을까요? 그건 모일만한 공간이 없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독자와 시인의 만남을 기획해야겠다는 결과를 도출했습니다.
그러다가 아감벤의『불과 물』,『 도래하는 공동체』라는 책을 접했고 거기서‘물방울형 인간’이라는 개념과‘도래하다’라 는 개념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두 가지를 합쳐서‘물방울 공동체’라는 단어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개별적인 체험을 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바라보는 존재의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개별적인 사람들이 시적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그릇을 만들어 준다면 그 물방울들이 모여서 하나의 웅덩이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죠. 따라서 사람들이 시적 체험을 위해 모일수 있는 공간이자 다시 물방울로 돌아갈 수 있도록 개별성을 존중해줄 수 있는 공간이 시집서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그들이 시적 체험을 좀 더 재밌고 근사한 방식으로 할 수 있는 것, 시너지를 만들 수 있는 기획이었습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공동체가 바로‘물방울 공동체’입니다.

Q. 그렇다면 시와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위트앤시니컬>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보죠. 기형도 신간이 나왔어요. 기형도 신간 공지를 하면 책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겠죠. 그럼 그 사람들이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기형도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모르겠지만‘내가 나쁜 독서를 하는 게아니다’라는 확신은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위트앤시니컬>을 운영하면서 위계와 폭력성을 가지고 있는 시집들을 제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는 다 뺐는데, 그것은 여기서 안전한 독서를할 수 있다는 안심, 여기서 시집을 살 때 잘못 산 게 아니라는 안심, 이런 것들을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문화거점, <위트앤시니컬>

Q. 최근에 기형도 시인의 작고 30주년 완독회를 비롯해 수많은 낭독회 행사가 문화거점으로서 긍정적인 원동력이 됐습니다.
완독회나 낭독회를 하는 건 나와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같은 시이지만 해석하는 세계는 분명히 다르다는 전제를 깔아 놓은 상태에서 시를 듣는 거예요. 시가 어렵다고 느껴지는 사람들도 시를 낭독해서 들을 때 울림이란 게 생기고 뭔지 모르게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농담 같은 예시일 수도 있지만 연애할 때‘그 사람 왜 좋아?’라는 질문을 받으면, 우리가그 이유를 정확하게 말할 수 없잖아요. 그런 것처럼 모호한 좋음이 있어요. 저는 그런 좋음을 안심시켜주는 일을 하고 싶었 어요. 더불어 공동체가 만들어낼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의 최선이 이런 일인 거 같아요. 1대 1로 낭독회를 한다면 누가 오 겠어요. 모임의 최대 장점은 대중들 속에 숨어서 기호를 즐길수 있다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모임이라는 단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거죠. 제가 모일 회(會)라는 한자를 많이 쓰는데, 이 한자를 좋은 의미로 많이 쓰고 싶어요.

Q. 이 서점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궁금해집니다. 구상 중이신 새 프로젝트가 또 있으신가요?
거의 매일매일 하고 있어요. 제 친한 동료 중에 한 명이 자주 <위트앤시니컬>에 오다가 통 오지 않기에 물어봤더니 농담반 진담 반으로“유희왕이 갈 때마다 자꾸 무슨 아이디어를 내서 일을 시키는 바람에 부담스러워서 못 가겠다”라고 하더라 고요(웃음). 지금은 물방울 공동체를 더 생생하게 구현할 수있는 방법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따로 또 같이’책을 읽고 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생활이나 사고방식에 적극적으로 편입될 수 있는 모종의 방법 들을 고민하는 거죠. 저희는 낭독회도 같은 방식으로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저희는 안 해본 일을 하는 것을 무척 좋아해 요. 그런 것들을 계속 기획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그 시도들이 성공적이었으면 좋겠어요.

Q. 문화를 즐기기엔 참으로 팍팍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듭니 다. 그럼에도 활발히 문화공간을 지켜나가는 <위트앤시니컬>의 대표로서 원생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건강하세요. 건강 잘 안 챙기다가 나중에 외과, 내과 정모 만들지 마시고 평소에 운동하셔서 건강을 많이 챙기셨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은 공부노동자잖아요. 중요한 건 이제 공부도 노동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여러분이 사대보험을 가입하고 노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이전에, 여러분들이 하는 일 자체가 상당히 고된 일이라는 의미이거든요. 고된 일은 신체적으로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운동 열심히 하시고 끼니 잘 챙기세요. 내 정신이 온전해야 심리적으로 위축되지도 않으니까요. 건강해야 여러분들이 원하는 일들을 해 나갈 수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학자들을 보면 그들은 탁월한 체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해 요. 경희대학교 원생들이라면 탁월한 머리를 가지고 있을 거잖아요? 그러니 앞으로는 탁월한 체력을 위해서 운동하시고 건강하세요.

대담·정리: 김웅기 | dndrl0314@khu.ac.kr

사 진 : 김유진 | beapolar0819@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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