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호 인문학술] 현대인의 욕망, 라캉으로 진단하다

현대 소비사회에서 우리는 소비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소비에 따라 더욱 무기력함을 느낀다. 이번 인문학술 지면에서는 욕망이란 무엇이며, 라캉이 말하는 욕망이론과 이를 통해 욕망의 본질을 살펴보고자 한다.

소비사회와 강요된 욕망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가 말한 것처럼 욕망은 인간의 본질이다. 욕망 덕분에 인간은 존재할 수 있다. 욕망은 우리 삶의 다양한 그림과 갈등을 그리고 모든 활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비사회를 사는 현대인에게 욕망은 곧잘 소비나 재화의 향유와 동일시되면서 쾌락주의와 연관된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소비의 사회』에서 말한 것처럼 현대 소비사회는 인간의 욕망과 관계 자체를 기호의 논리로 편입하면서 무제한의 소비가 욕망의 본 모습인 것처럼 강요하기 때문이다. 소비사회에서 상품은 본래의 사용가치나 교환가치가 아니라 특정 의미와 상징성이 기재된 기호가 되기 때문에 인간은 소비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다. 결국 소비 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기호화의 연쇄 속에 편입되어 또 소비를 강요받으면서 무기력한 주체가 된다. 더 많이 소비하고 소비를 통해 정체성을 표현하면서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하지만 이럴수록 에리히 프롬(Erich Pinchas Fromm)이 지적한 것처럼 자신을 시장에서 판매하기 좋게 내걸린 어떤 상품처럼 인식하는‘시장 지향성 (marketing orientation)’ 현상만 커지면서 인간 소외가 심화된다. 결국 욕망의 본질을 잘 못 이해하고 미디어가 강요하는 기호의 논리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긴다고 할 수 있다.
욕망의 본질을 이해하면서 소외된 욕망에서 벗어나 참다운 존재의 진리 실현을 고민할 때이다. 이하에서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Jacques Lacan)에 근거해 욕망의 본질과 욕망 구현의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라캉은『세미나 6, 욕망과 그 해석』에서 타자의 욕망에 압도당하면서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햄릿의 비극을 다뤘고, 『세미나 7, 정신분석의 윤리』에서는 욕망을 양보하지 않는 것이 윤리의 새로운 내용이라고 천명하면서 욕망의 중요성을 부각한 사상가이기 때문이다.

욕구, 요구, 욕망의 차이
라캉은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이래 정신분석 경험(임상과 이론연구)이 결정적으로 특화한 것은‘욕망(désir)’임을 분명히 한다. “프로이트의 세계는 사물들의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세계도 아니며, 그 자체로서 욕망의 세계이다.”(『프로이트 이론과 정신분석 기술 속에서 자아』, (S Ⅱ, 26)1) 그러나 라캉이 말하는 욕망은 자연적 욕구나 어떤 특정 행동을 촉발하는 맹목적 충동과 다르다. 라캉은 욕망 개념을 정의하기 위해 욕구, 요구, 욕망을 구분한다. “이처럼 욕망은 만족을 위한 탐욕도 아니고 사랑을 위한 요구도 아니다. 욕망이란 전자에서 후자를 뺀 차이, 혹은 둘의 분열 현상 자체이다.”(E, 691)
여기에서 말하는 탐욕은 욕구(besoin)로 생리적이고 자연적인 본능에 속한다. 욕구는 욕망의 출발점을 이루지만 그 자체로 욕망이 될 수는 없는데 대상에 의존적이고 동물적이기때문이다. 요구는 욕구를 타자에게 표현하고 전달하기 위해 언어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최초에 가족의 형태로 경험하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욕구는 요구로 바뀌는데 이런 경험이 반복될수록 점점 더 많은 무제약적 사랑의 요구로 발전한다. 만족의 기억과 쾌락에 대한 내성이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결국 욕구가 요구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어떤 해소되지 않는 틈이 생기는데 욕망은 바로 여기에 깃든다. 라캉에 따르면 욕망은 요구가 욕구로부터 분리되는 경계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E, 814).
욕구와 요구의 불일치나 대립이 없다면 욕망도 생겨날 수 없는데 여기서 욕망이 언어 때문에 발생하게 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언어적인 것은 늘 타자를 필요로 하며 자연적인 욕구나 필요성을 타자에게 인정받아야 충족이 가능한데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왜곡이나 억압이 발생한다. 욕구, 요구, 욕망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프로이트가『꿈의 해석』에서 소개하고, 라캉도 자주 언급한 어떤 히스테리 환자의 꿈을 잠시 살펴보자. 이 꿈은 다음과 같다.
“저는 맛있는 저녁식사를 준비해 파티를 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집에는 약간의 훈제연어 말고는 다른 재료가 없었습니다. 시장에 가려고 했는데 공휴일이라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았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물건을 배달해주는 상인들을 찾아 전화를 하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전화기가 고장이 났더군요. 결국 저는 애석하게도 저녁파티를 하려던 계획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꿈이 소원성취 기능을 한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에 동의하지 못한 히스테리 환자가 얘기한 꿈이다. 꿈에서 만찬을 열고 싶은 소망은 좌절됐지만 주인공은 복잡하고 교묘한 우회적 방식으로 숨겨진 욕망을 충족시키고 있다. 저녁식사나 훈제연어는 식욕과 연관되어 있다. 이것은 만족이 가능한 대상이지만 환자가 실제 좋아하는 음식은‘캐비어’로 동일시의 과정을 거쳐 친구가 좋아하는 음식인 훈제연어가 꿈에 나타났다. 일종의 위장이다. 프로이트가 말한 꿈이 소원성취라는 명제는 욕구 충족이 아니라 숨겨진 무의식적 소망(욕망)을 드러내는 것과 관계가 있다. 남편의 관심 대상인 친구한테 질투심을 느낀 환자는 꿈에서 친구의 소원인 만찬을 좌절시키고 싶은 속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마른 몸매의 친구가 최근 환자에게 자기를 언제 만찬에 초대해달라고‘요구’했기 때문이다. 또 환자는 캐비어를 좋아하지만, 남편에게 그것을 사주지 말라고 ‘요구’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남편을 애태우면서 그녀에 대한 남편의 사랑이 지속되는 상황을 유지할 수 있었다.
라캉에 따르면 욕망을 지탱해주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불가능한 상태로 욕망을 유지하려는 마음과 환상이다. 이 환자는 욕구의 대상인 캐비어를 자신에게서 박탈해달라는 역설적 요구를 남편에게 하면서 욕구와 요구의 틈을 통해 사랑 받으면서 동시에 욕망의 대상이 되기를 바라는(E, 694) 자신의 숨겨진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욕구나 요구는 욕망이 아니다. 어떤 불일치나 억압을 통해 만족이 불가능한 대상처럼 나타날 때 비로소 인간적인 욕망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욕망의 본질
이제 세 가지 정도로 욕망의 본질을 설명하면서 그것이 어떻게 현대인의 삶과 연관되는지 비판적으로 살펴보자. 첫째로 욕망은‘언어 때문에 생기는 말하는 주체의 운명’으로 타자와 연관된다. 라캉에 따르면 주체는 무엇보다 말하는 주체로, 상징계에 진입하면서 탄생한다. 욕구에 머무르는 인간은 아직 동물과 마찬가지로 생물학적 존재이고 주체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어느 순간 대타자로부터 이름을 부여받고, 언어를 배우면서 자신의 욕구를 요구의 형태로 전달하고 타자와 관계 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인정받고 실현해야 한다. 이 과정이 라캉이 말하는‘오이디푸스’과정이다. 라캉은 프로이트처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아이가 부모에 느끼는 사랑과 질투의 개인적 경험이자 극복해야 할 콤플렉스로 해석하는 대신 아버지의 이름이 상징계의 법으로 자리 잡으면서 주체를 구조화하는 보편적 인간 드라마로 해석한다. 주체는 언어의 심급인 대타자에 의존하며, 인정을 필요로 한다. 당연히 인간의 욕망은 타자와의 관계를 조건 삼아 발생하며 그 속에서 복잡성이 생긴다.

플라톤(Platon)은『향연』에서 욕망이 결여와 풍요로움을 동시에 속성으로 가지고 있으며 인간의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말하면서 그것이 타고난 능력인 것처럼 설명한다. 철학자들의 의견은 대체로 비슷하다. 하지만 라캉은 언어가 욕망의 조건이자 한계라고 말하는데‘말’은 사물의 살해이며 상징적 죽음이“주체 속에서 욕망을 영속화”(E, 319)하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만약 대타자가 욕망의 의미를 정확하게 짚어주거나 욕망의 대상을 줄 수 있다면 욕망은 해소될 것이다. 하지만 대타자는 욕망을 만족시켜줄 수 없는데 욕망은 욕구와 요구의 불일치에서 쾌락 원리를 넘어서는 불가능한 갈망처럼 작용하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이 언어적 존재이기에 욕망이 있으며 욕망은 인간만의 고유한 양상이다.
타자의 욕망이 욕망을 만든다는 라캉의 욕망이론은 현대 소비사회에서 상품논리가 확장되는 현상을‘기호화 논리’로 설명하면서 이것에 따라 소비욕구가 팽창한다는 보드리야르의 문제의식과도 맞닿는다.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소비사회에서 인간의 욕망은 기호의 놀이에 수용되면서 기호가 부여한 의미를 좇는다. 사물과 상품은 기호가 되면서 유통, 구입, 판매, 취득되는데 이것은 매스커뮤니케이션에 의해 일반화되고 체계화된, 소비사회의 특징적인 행동(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 27)이다. 기호의 논리가 소비활동을 규정한다는 말은“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라고 말하는 라캉의 언명과 상통한다. 언어가 이 대상에서 저 대상, 이 주체에서 저 주체로 욕망을 이동시키기 때문에 우리는 욕망의 대상에 대해 알지 못하면서 타자의 욕망을 맹목적으로 좇는다. 욕망이 그 뿌리와 본성에서 대타자의 욕망(S Ⅷ, 212)이라는 말은 욕망이 언어에 의해 발생하고 그것에 의존하면서 그 너머를 동시에 지시하는 식으로 표현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인정에 만족하지 않는데 그것이 결국 우리 존재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둘째, 결국 욕망의 본질은 욕망이“결여에 대한 관계”(S Ⅱ, 261)이자“존재에 대한 정념”(E, 627)이라는 것이다. 말하는 주체인 인간이 상징계에 들어오면서2) 무언가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를 찾으려고 하는데 잃어버린 대상을 라캉은 존재(être, being)라 칭한다. 물론 이 상실은 실제적 경험이 아니라 언어에 의해 사후적으로 느끼는 결여이다. 라캉은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대상』이라고 제목이 붙은 세미나
11에서‘소외와 분리’를 통해 욕망이 발생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최초 단계에서 인간은 상상적 타자인 어머니와 분리되지 않고 융합되어 한 몸처럼 있다. 이 단계는 아이가 어머니와 하나로 합일되어 있기 때문에 행복해 보이지만 아직 주체로 독립하지 않고 존재에 대한 관계인 욕망도 경험하지 못하는 자폐적 상태이다. 다음 단계에서 아이는 어머니와 강제로 분리되면서 아버지의 법을 수용하는데 이것이 라캉이 말하는 거세로, 이 과정을 통해 아이는 비로소 욕망하는 주체로 태어난다. 아버지의 법을 수용하는 상징계로 들어오는 것은‘강요된 선택’으로 아버지의 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이는 어머니의 상상적 남근으로 머물면서 존재의 의미를 실현할 수 없다.
상징계로 들어오면서 주체로 태어나는 순간 아이는 존재의 일부가 상실되는 경험을 한다. 라캉은 이를 “주체는 늘 대타자 속에서 실현되지만, 절반만을 뒤좇을 뿐이다”(SⅩⅠ, 172)라고 말한다. 대타자 속에서 실현된다는 것은 기표의 사슬에서 분열된 존재성을 획득한다는 말이다. 기표가 늘 주체를 대리하면서 동시에 기표 속으로 사라지는 것으로 소외가 주체의 근본 사태가 된다.
존재의 일부는 상징계에서 늘 무의미나 결여로 남게 되며, 여기에서 이를 채우려는 욕망이 시작된다. 기표에 의한 소외에 이어지는 다음 단계는 분리(séparation)로 주체는 의미의 장 속에 무의미로 남는 부분을 정확히 자신의 존재로 인정하고 그것을 기표 사슬에서 떼어내는 과정이다. 분리는 상징계에 있는 결여를 주체가 자신의 잃어버린 대상이자 구조로 재발견하고 그것에서부터 주체화를 시작하는 능동적 작용이다. 주체는 언어에 의해 구성되지만 언어에 완전히 예속되지는 않는데 분리가 이것을 잘 보여준다. 분리를 통해 주체는 결여에 대한 관계, 즉 욕망을 시작하게 된다. 세미나 Ⅱ에 나오는 소외와 분리3)의 도식은 다음과 같다.



▲ 소외와 분리의 도식
ⓒ 김상환, 홍준기(2002), 『라깡의 재탄생』, 128쪽


주체는 기표의 사슬에 의해 소외되면서 분열된 주체 S로 상징계에 자리 잡지만 다음 단계에서 자신을 대리하는 기표 빗금친 S1대신 결여를 상징하는‘대상 a’와 관계를 가지면서 능동적으로 주체화를 완수한다. 결국 욕망이 특정 대상에 의해 충족되지 못하고 무한하게 환유적 운동을 반복하면서 이 대상에서 저 대상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는 것은 분리된‘오브제 a’와 관계를 맺으면서 그 의미를 찾기 위해 언어에 호소하는 것이 욕망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특징은 존재 결여와 연관되는 것으로 결국 욕망은 ‘환상을 통해 유지되고4) 환상을 근본 대상으로 가진다’는 것이다. 환상을 통해 욕망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것은 존재의 영역이 기표에 의해 완전히 재현되지 않는 실재적 속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라캉에 따르면 실재는 불가능한 것으로 “쓰이지않기를 멈추지 않는 것”(S ⅩⅩ, 87)이다. 결국 빈 공간과 틈을 유지하면서 주체는 채워지지 않는 그 부분에 대해 욕망을 투영하는 환상의 구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라캉이 말하는‘오브제 a’는 욕망의 원인이면서 대상인데 결여를 감추면서 그것을 채울 수 있는 것처럼 주체를 유인하는 환상을 통해 욕망을 생산한다. 욕망의 대상은 원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욕망과 행동 때문에 생긴다.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은 군 면제를 받기 위해 자신이 정신적 이상이 있음을 호소하는 신병의 예를 통해‘오브제 a’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재미있게 설명한다.5) 군의관이 증명서를 요구하자 신병은 관련 서류를 찾는 듯‘이게 아니야’를 반복하며 쉬지 않고 종이를 뒤지는데 서류가 아니라 이 행동을 보고 군의관은 군 면제 판단을 내린다. 결국 주체의 욕망이 결여의 자리를 지시하면서 감추는 환상 대상을 창조하는 것이지 대상 자체는 중요한 게 아니다. 욕망은 결국 환상과 관계를 가지며 여러 경험적 대상을 소환하는데 라캉은 이를 환상공식‘ 빗금친S ◇ a’로 공식화한다. 그런데 환상 공식에서 자칫 특정한 대상자체를 통해 결여를 채우려고 하는 과정에서 소외된 환상이 발생할 수 있다. 소비사회는 주체가 욕망에서 가지는 환상을 풍요에 대한 환상으로 변질시키고 물질을 통해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 것처럼 미디어를 이용해 호도하면서 그릇된 환상을 유포한다. 이것은 기만적이고 소외적인 환상이자 대중조작이다.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현대의 신화』에서 지배계급의 계급적 입장과 자본주의 가치를 반영하면서 현대인의 삶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를 신화라고 비판한다. 소비나 쾌락을 통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는‘소확행’현상도 이런 기만적 신화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한 취업 포털사이트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75% 정도가 소확행에 공감한다고 했지만 응답자의 82%는 현재 그런데도 행복하지 않다고 대답하는 역설 현상이 발생했다.6) 욕망의 본질이 환상이라는 것은 건강한 욕망은 결국 존재 결여를 그 자체로 인정하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만족할 수 있으면 욕망이 아니다.

타자의 욕망이 아니라 내 욕망
결국 중요한 것은 욕망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태도다. 라캉은“정신분석의 윤리는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것”(S Ⅶ, 362)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무조건 욕망을 따르라는 것은 오히려 소외를 심화시킬 수 있다. 오늘날 소외된 텅 빈 욕망이나 상상계와 기호의 논리에 휘둘리는 잘못된 이데올로기적 욕망이 범람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캉은 햄릿의 비극을 다룬『세미나 6, 욕망과 그 해석』에서 햄릿의 욕망은 타자인 어머니의 욕망 지배를 받으며, 타자의 시간에 머문다고 평가한다. 그렇기 때문에 햄릿은 행동할 수 없었으며 욕망의 주체 대신 강박신경증자로 변해간다. 자신이 사랑한 오필리아를 냉대하다 그녀가 죽자 광적으로 사랑을 표출한 것에서 보듯 햄릿의 비극은 자기 욕망의 주인이 되지 못한 데에 있다. 햄릿 사례는 소비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조건 타자의 욕망을 따를 게 아니라 존재를 겨냥하는 진정한 욕망을 찾아야 한다. 라캉이“Wo es war, soll, Ich werden”(그것이 있던 곳
으로 내가 도달해야 한다)을 윤리의 내용으로 제시한 것도 그 때문이다.

김 석 / 건국대학교 철학과 교수

 각주) 
1) 이하에서 라캉의 저서 Ecrits는 본문에서 E로, S´eminaire(세미나)는 S Ⅱ처럼 표기하고 원서 쪽수를 명기하겠다.
2) 상징계로 들어온다는 것은 기표의 그물망과 기호의 논리를 수용하여 이를 통해 존재를 표현하면서 타자와 관계를 맺는 주체로 기표의 장 속에 자리 잡는 과정이다. 알튀세가 말한 호명이론과 비슷하다.
3) 이 주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김석,「 소외와 분리: 욕망의 윤리가 발생하는 두 가지 결정적 순간」,『 라깡 과현대정신분석』, 10(2), 2008을 보라.
4)“환상이란 욕망의 버팀목이다. 욕망을 지탱해주는 것은 대상이 아니다.”(S ⅩⅠ, 168).
5) 슬라보예 지젝,『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272쪽 참조.
6) <구직자 행복 키워드‘소확행’1위>, 취업포털 커리어. www.career.co.kr/help/media_data_view.asprid=2661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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