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호 문화비평 : 이야기 읽는 시대] 이야기 읽는 시대 :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기

이야기 읽기에 관한 새로운 문화 조류들

최근 들어‘이야기 읽기’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문화 조류가 감지된다. 먼저 인프라 구축에 있어 독특한 개성을 가진 작은 책방과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독립 출판사의 도전이 눈에 뜨인다. 서울시는 여러 책방과 연계해 장서 12만권 규모의 공공 헌책방 사업인‘서울책보고’개장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온·오프라인을 매개로 구성된 독서 모임도 흔해졌다. 이들은 문화적 욕구만으로‘비생산’적인 활동을 자율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출판 시장의 소비 경향도 바뀌는 추세다. 2000년대 이후 오랫동안 출판 시장을 휩쓸었던 자기경영 중심의 자기계발서 열풍은 하락세로 보인다. 요즘은 경쟁을 위한 책보다는 개인의 평안을 추구하고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책들이 더 소구력을 발휘하고 있다. 일련의 문화적 흐름을 추수해보면, 지속적인 경제 불황과 신자유주의 논리에 매몰되었던 현대인의 피로 누적이 확연히 드러나는 것처럼 보인다. 독자들의 소비 형태에서 각박한 현실과 사회적 구속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사실 아날로그 매체인 도서의 틀을 탈피해 디지털 매체에서의 이야기 읽기 문화를 살펴보면 변화를 더욱 다각적으로 체감한다. 잠시 하루 일과를 떠올려 보자. 출근길에 스마트폰으로 포털사이트에 접속해 실시간 검색어를 살피고, 뉴스 기사를 본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를 통해 이슈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확인하고 메신저로 친구들과 잡담을 나눈다. 하룻밤사이 날아온 각종 메일을 확인하고 업무 경과를 포워딩한다. 혹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보를 검색할 수도 있다. 짧은 휴식 시간엔 웹툰을 보거나 장르소설을 읽는다. SNS나 인터넷에서 유머 글을 찾으며 기분을 환기할 수도 있다. 취미 활동과 관심사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도 읽기는 멈추지 않는다. 요약 정보를 제공하는 카드뉴스를 보고, 팔로우를 신청한 매거진과 블로그의 연재 글을 읽는다. 퇴근길엔 저녁 식사를 위해 주변 맛집 후기들을 살핀다. 혹은 동영상+음성이 아닌, 동영상+문자의 조합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버스티비를 보며 귀가의 지루함을 달랠 수도 있다. 이처럼 한때 비주얼 미디어의 부상으로 인해 쇠퇴가 예상되기도 했었던 읽기 문화는 도리어 근래에 와서 급격한 영향력 확장을 보여준다.

특히 디지털 미디어와 플랫폼의 진화는 이야기 읽기 문화의 확장과 변화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최근 각종 플랫폼 기업은 개인의 개성을 강화하는데 관심을 두고 있다. 사용자는 이야기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신의 취향에 따라 읽고 싶은 콘텐츠를 자유롭게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 한다. 한편, 현대의 읽기 문화는 플랫폼을 중심으로 집단적 큐레이션의 성격을 보이기도 한다. 플랫폼과 관심사를 중심으로 구성된 수용자 사이의 연결고리는 정보를 공유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네트워크 효과를 지닌다. 이처럼, 현대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이야기 읽기 문화는 새로운 방식으로 확장되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는 쉼 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영향력은 비단 온라인 공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각종 소모임과 취미 활동을 촉진하며 오프라인 공간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 기술을 토대로 한 새로운 이야기 읽기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 읽기 문화는 다양한 이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우려를 낳고 있기도 하다. 과잉된 정보, 거짓 뉴스, 지나친 소비주의의 확산, 자극적인 콘텐츠의 생산 등이 그렇다.

이야기 읽는 시대를 낯설게 돌아보기

이야기는 오랜 시간동안 인간의 삶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맺어 왔다. 이야기는 사회 구성원에게 생활에 유용한 정보와 대리경험을 제공하고, 공통의식을 형성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유희적인 성격과 인지 능력의 발달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이야기의 이점은 문화적인 측면은 물론,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도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야기를 읽어내는 방식의 변화는 인간에게 있어 심층적인 심리 구조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앞에서 살폈듯이 디지털 매체의 발달과 미디어의 확장은 이야기 읽는 문화에 큰 변곡점을 가져왔다. 실제로 디지털 시대의 이야기 읽기는 마치 공기처럼, 그 존재를 잊을 정도로 현대인의 삶에 밀착되어 있으며 개인과 사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스마트폰의 보급 이전과 이후 생활환경의 극적인 변화는 이를 적확히 대변한다. 이야기가 범람하는 시대에서 인간의 주의력은 한정된 공유 자원으로 여겨지기도 하며, 특히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경제적인 자산으로 쉽게 환급된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유튜브가 그 대표적인 예시이다. 그런 면에서 매력적인 콘텐츠의 개발과 플랫폼의 다각화는 궁극적으로 수용자의 더 많은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마케팅
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기업은 플랫폼에 누적된 빅 데이터를 활용해 이용자의 취향과 관심사를 분석한다. 이를 바탕으로 이용자에게 알맞은 콘텐츠를 추천하며 개인의 구매욕과 활동욕구를 자극한다. 컴퓨터의 알고리즘이 나의 욕구에 직접적으로 결부되면서 필요와 욕구를 견인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일상에서 이러한 구조를 인식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디지털 기술 환경의 이야기 시대를 사는 현대인은 체감하기 어렵겠지만, 이야기를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특권이었던 시기도 있었다. 이를테면 전후 혼란한 한국 사회에서 읽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은 좀처럼 갖기 힘든 기회였다. 조금 더 낯설게 접근해 보자. 한글 창제를 소재로 한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를 보면, 읽기 능력(literacy)의 힘과 권력적인 성격이 생경하게 재현된다. 이와 같이 허구적인 이야기 속에선 민중이 문자를 갖는 일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팽팽하게 맞선다. 플라톤(Platon)의『파이드로스』에서도 문자와 읽기에 대한 흥미로운 신화가 소개된
다. 문자를 발명한 이집트의 신 테우트는 파라오(타무스)와 읽는다는 행위를 주제로 논쟁을 벌인다. 테우트는 문자와 읽는다는 행위가 인간에게 기억과 지혜의 묘약(pharmakon)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타무스는 읽기가 오히려 사람들의 무관심과 망각을 불러일으킬 것이라 걱정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들의 이야기에는 공통적으로 읽는다는 행위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와 부정적인 시선이 교차한다. 여기서 이야기를 읽는 새로운 방식으로서 문자의 역능과 그에 대한 고민은, 근본적으로 디지털 미디어에 관한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변화와 기술에 대한 양가성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응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일이다.

새로운 이야기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울리히 벡(Ulrich Beck)은 일찍이『위험사회』에서 사회 재분배 문제를 논하며, 고도화된 기술과 경제의 합리화가 야기할 산업사회의 내재적 위험에 대한 재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무조건적인 체제 거부가 아니라, 반성적인 피드백을 통해 시스템의 발달과 지속가능성을 탐색하는 작업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개인은 그 어떤 때보다 과잉되게 주어진 이야기를 비판적으로 독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산발적인 이야기 형식의 디지털 문화와 집중력을 요구하는 아날로그 문화의 읽기 능력을 종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읽기는 근본적으로 정보에 대한 이해력을 높이며, 인간의 인지 활동을 정리하는 지적인 활동 방식이다. 주어진 매체를 활용해 능동적으로 이야기를 읽고 쓰는 문화는 인지 능력 발달의 첩경이다. 자신의 가치관과 행동 양식을 결정하는‘주체성’을 세우는 데 효과적인 접근 방식이기도 하다.

앞서 최근의 플랫폼은 인간의 개인화를 강화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는 고도화된 마케팅 기술의 일환일 수 있다. 그러나 플랫폼에서 읽어낼 콘텐츠를 디자인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과 역량에 달려있다. 이야기 읽기 문화의 새로운 조류를 견인하는 기술적 전환은 쓰기에 따라 약이나 독이 될 수 있는 묘약(pharmakon)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조 한 기 / 영화평론가, 만화평론가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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