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호 인문학술: 한복(韓服)] 한복(韓服)에게 바란다

이번 인문학술 지면에서는 이제껏 본보에서 다룬 적이 없던 한국 복식을 원생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복식은 문화의 가장 대표적인 산물이라 할 수 있다. 한복의 역사·문화 연관성에 대해 살펴보고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민족적 정체성을 알아보고자 한다.

받을 대우의 한계를 결정하는‘옷’, 그 여러 가지 이름들
필자의 학부 시절, ‘의복과 인간’이라는 교양 과목은 인기강좌 중 하나였다. 신입생이 되어 한창 꿈 많은 여대생들에게 의복은 매우 중요한 자기표현의 도구였기 때문이었을까. 수강 신청 조기 마감의 명성을 유지하던 그 강좌의 첫 수업에서의 질문이 기억난다.
‘인간에게 있어서 의복의 의미와 중요성’을 당시 수강생 수준에 맞춰서 적절하게 던진 질문이었다. “여러분이 소개팅을 나갔을 때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었을 때와 하얀색 정장 차림일 때 또는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있을 때 상대 남학생이 어디로 식사를 하러 가자고 할 것 같은가?”학생들은 청바지 차림엔 떡볶이나 라면, 김밥 등과 같은 분식집으로, 정장이나 원피스는 경양식집을 비롯한 분위기 있고 근사한 장소로 가자고 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 질문을 던졌던 교수는 예상했던 대로라는 표정으로 정답을 기다리는 수강생들을 뒤로 한 채 칠판에 큼지막하게“옷은 자신이 받을 대우의 한계를 결정한다”라고 적었다. 이미 어린 시절 가끔 대문을 두드렸던 걸인에게 밥을 퍼주곤 하셨던 어머니께서 말씀하신“잘 입은 거지가 더 잘 얻어먹는 법이다”가 실제였던 것을 의심 없이 보아온 처지이다 보니 돈가스, 스테이크 등으로 한마디 보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그 판서의 내용은 이후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 필자에게‘옷’이라는 물질문화에 대한 연구영역이 상당히 넓은 외연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하게 해준 현답(賢答)으로 추억된다.
옷이라는 것이 받을 대우의 한계를 결정지을 만큼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개인에게뿐 아니라 민족이나 국가에서도 그들의 고유 복식이나 대표 의상의 채택이 그 민족이 역사적으로‘받을 대우의 한계’를 정하게 하는 행위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옷’에 관한 여러 다른 면모들이 어떻게 연구 영역에서 인식되고 있는지를 잠시 짚어보자. 학부 또는 대학원에서 의류학 혹은 의상학 계통의 전공을 이수하는 이들에게 널리 읽혔던 기초서들 가운데 『의 복 , 제2의 피 부 :An Interdisciplinary Study of Clothing』(Horn, Marilyn J. & Gurel, Lois M, 1988) 라는 번역서가 있다. 제호 그대로 ‘피부가 인체의 장기(臟器)를 비롯한 여러 요소를 감싸 안고 있는 외피로써 기능하는 것’에 비유하여 의복 역시 개인의 내면을 포함하여 사회적인 함의를 둘러싸고 있음을 의미하는 제목이다. 제2의 피부가 되는‘옷’은 순수한 우리말이지만 그 기능과 역할에 따라 의복, 의류, 의상, 피복, 복식, 복장 등과 같이 다양한 개념으로 구분되어 그 연구 영역을 달리한다. 먼저 의복(衣服:clothes, garment)은 팔, 다리의 구간부(軀幹部)와 같은 몸체에 걸치는 것으로 이때 액세서리(모자, 신발,팔찌 등)는 제외 한다.‘ 옷’에 가장 가까운 한자어 번역이‘의복’이라고 보면 된다. 그 적절한 용례로‘의복구성’,‘ 의복이 남루한’등을 들 수 있다.
다음으로 의류(衣類:clothing)는 모자, 신발, 가방 등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입고 덮고 쓰는 온갖 종류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의류공장, 의류직물, 의류사업 등이 그 용례가 될 수 있다. 이어서 의상(衣裳:dress)은 착용자의 입은 상태 중 그 착용목적이나 특색이 분명한 경우를 일컫고자 할 때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민속의상, 무대의상, 파티의상 등 종족, 특정종류, 특징이 드러나야 할 때 사용한다.
이 외에 피복(被服:clothing)은 의류와 같은 의미인데 지역적으로 일본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어이다. 피복 재료학, 피복과학 등으로 소개된 번역서가 그와 같은 예이다. 복식(服飾:costume, dress)은 의복과 장신구를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영미권에서도 영국은 costume으로 미국에서는 dress로 불린다. 명대(明代)복식, 한국복식사, 서양복식사 등이 그 대표적 용례인데 시간적, 공간적인 구획을 지어서 설명 되어야할 분야에서 사용된다. 끝으로 복장(服裝:attire)이 있다. 이는 옷을 입는 사람의 그 상태까지 포함하여 이르는 말로 활용에서는 시대복장, 경찰, 군인복장과 같이 그 신분과 상황이 모두 드러나는 영역에서 사용된다.
이 외에 옷과는 조금 다른 범주이면서도 옷과 불가분의 관계 속에 있는 단어로 장신구(裝身具:accessory)가 있다. 자신을 장식하기 위해 쓰는 것으로 신체를 꾸미기 위해 쓰이는 모든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들 용어 가운데에서 인문학적인 접근을 하는 연구 영역에 가장 근접한 단어가‘복식’이다. 앞에서 설명한 여러 용어 가운데 복식과 의상은 모두‘옷’을 표현하고 있으나 전자는 의복과 장신구를 포괄하는 만큼 신분이나 지위 등과 같은 계층과 계급이 중요시되던 사회의 위정자나 지배계급들이 착용하는 것을 연구하는 영역에서 애용되는 편이다. 의상은 비교적 평민이나 서민 또는 특정 민족들이 일상적으로 착용하는 옷들을 소개할 때 선호되는 용어로 민속지적인 접근에서 더 자주 등장한다.

당신에게 한복(韓服)이란 어떤 옷을 말하는가?
“한복은 무엇인가?”우리 옷, 겨레 옷, 전통복식 등으로 불리고 있기도 하지만 아직 한국에서 한복이라는 용어는 법제화를 위해 필요한 정의도 없는 실정이다. 전통문화 가운데 물질문화로서 한지, 한옥은 그 구성 성분이나 원재료의 종류 등에 대한 동의를 통해 만인이 인정할 수 있는 정의가 마련된 것에 비해 한복은 그 답을 얻기가 쉽지 않은 듯하다. “당신은 한복이 어떤 옷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질문을 조금 달리 해보자.
현재 우리가‘전통 한복’으로 인식하고 있는 양식은 조선시대 후기 복식의 양식이다. 이는 현대 대한민국의 전통문화라고 하는 많은 것들의‘양식’적 특성이 조선의 영·정조 문예부흥기인 18세기 즈음에 완성된 것으로 보는 것에 대해 학제적으로도 큰 저항감이 없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국립국어원이 제공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밝히고 있는 한복의 정의를 보면“우리나라의 고유한 옷. 특히 조선 시대에 입던 형태의 옷을 이르며, 현재는 평상복보다는 격식을 차리는 자리나 명절, 경사, 상례, 제례 따위에서 주로 입는다. 남자는 통이 허리까지 오는 저고리에 넓은 바지를 입고아래쪽을 대님으로 묶으며, 여자는 짧은 저고리에 여러 가지치마를 입는다. 발에는 남녀 모두 버선을 신는다. 출입할 때나 예복으로 두루마기를 덧입는다”라고 되어있다. 즉, 시대적으로는 조선이고 용도상으로는 명절과 의례적인 행사 복식이라는 것이다. 동시에‘옷’의 품목에서 남녀 다 같이 상·하의 기본 복식으로 저고리, 바지 그리고 저고리 치마를 각각 착용하며 그 위에 예복 기능의 외의(外衣)가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용어는 마치 인간의 삶처럼 탄생과 소멸을 겪는다. 한복이라는 단어 역시 그 탄생 시기가 있다. 구체적으로 그 시기를 추론하면‘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을 타민족과 구별해야 할 상황에서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인데, 세계사적으로는 민족을 중심으로 하는 근대 국가 형성기 즈음으로 추적해 볼 수 있다. 한국사에서는 1876년에서1919년 3·1운동 시기까지를 대략적으로 근대라고 본다. 흔히 불평등 조약으로써‘강화도 조약’이라고 알려진 1876년의 조·일 수호조규는 우리나라가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다. 한국복식사에서는‘개화기’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자 조선의 옷이 한복으로 통칭되는 계기다.
흔히 일본 민족에 대한 호칭으로‘왜(倭)’라는 것은 진수가 저술한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서 일본 열도의 고대국가를 지칭한 이름이다. 한국에서의 왜인은 고려 시대의 사서『삼국사기』에도 기록이 있고 단순히 일본 열도의 고대 부족국가만을 한정지어 정의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왜놈(倭-), 왜년(倭-) 등 일본 민족에 대한 멸시적인 호칭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이와 달리 일본 스스로 사용하는 화족(和族)이 있다. 이 민족명은 19세기 말에 일본 본토 즉 혼슈, 시코쿠, 큐슈와 홋카이도에 사는 사람들을 역사적, 정치적, 언어적으로 구분하여 다른 민족들과 구별하기 위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던 조선인과 대만의 타이완인, 고산족과 구별 짓는 데도 사용되었다. ‘화(和)’라는 명칭의 유래는 일본에서 4세기에 존재했던 야마토(大和:ヤマト) 시대에서 따온 것으로, 일본사 최초의 통일국가가 생겨난 시대에 탄생한 민족명이며, 일본의 통일 권력이 형성되고 발전한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야마토 정권 대왕(大王)의 후손이 현재의 천황이다. 이 점에서 황제가 있는 국가, 천황이 다스리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여전히 최고의 문화 민족, 문화 국가의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이들이 입는 옷이 화복(和服)으로 불리고 있다는 함의를 찾을 수 있다.
일본인들이 화족(和族)으로서의 자신들이 입는‘화복(和服:わふく)’과 비교하여 당시 조선인들을 구성하는 한족(韓族)들이 입었던 옷들을‘한복(韓服)’으로 비교 구분하여 부른 것이 계기가 된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의 관점에서 생겨난 것인지 확인 할 수는 없다. 다만‘한복’의 정체성은 개항기 이후부터 현재까지도‘한민족(韓民族)’으로 구성된 우리 민족들이 타민족이나 국가와 다르게 역사적이고 철학적인 맥락에 따라 향유하고 착용해온 옷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최고의 문화 민족을 지향했던 한민족의 전통복식, 한복(韓服)
근대 한국사에서 발견되는 몇 가지 굴욕의 역사 가운데병자수호조약과 국권침탈은 일본의 명치유신(明治維新)의성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67년 일본은 봉건제였던 오랜 막부 체제가 대정봉환(大政奉還)이라는 왕정복고에 의해 종식되고 메이지 천황(재위 1867~1912)은 중앙집권국가인 근대 일본 제국시대를 열게 된다. 아시아의 패권자로서 황국(皇國)을 자처하게 된 일본은 이 시기에 천황을 비롯하여관료들의 공식 복장을 모두 서양식으로 교체한다.
이와 비교하여 조선은 1884년 개화파들에 의해 갑신정변이 있기 전 미흡하나마 갑신의제(甲申衣制)라고 불리는 근대 복식으로의 첫걸음을 내딛는 개혁을 단행한다. 그 개혁의 요지는 관리들의 공적인 집무복으로 착용된 단령포의 넓은 소매를 좁게 고치고, 사복(私服)은 도포·중치막·직령·창의 등의 소매가 넓은 광수의(廣袖衣) 대신 현재의 두루마기와 같은 좁은 소매의 포를 입도록 하는 것이었다. 또한 남성들이 착용하던 갓의 넓이를 적당히 줄이도록 권장하는 것이었으나 조선 왕조에서 오래도록 지속 되어 온 인습에 의해 시행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된다.

▲ (그림 1) 대한제국 선포후 고종 황제의 서양 복장
ⓒ 한국학중앙연구원

이후 1894년 갑오동학농민운동을 겪고 난 조정은 다시 갑오경장(甲午更張)이라 불리는 개혁과 1985년 명성황후시해사건 직후 단발령을 시행하는 등의 근대 복식 수용을 위한 일련의 노력을 지속하였다. 고종은 주변 열강들의 대조선에 대한 이권 쟁탈전에서 벗어나고자 1897년 국호를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고치고 천자만이 제를 올릴 수 있다는 원구단(圓丘壇)을 설치한다. 독립된 주권을 가진 자주 국가로서, 명나라 멸망 이후 동아시아의 중화(中華)를 계승해 온 문화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선포하는 의미를 지닌 황제 즉위식을 올리기 위함이었다. 이는 500년 넘게 지속하여 온 조선의 문물과 제도들이 복식제도를 포함하여 황제식으로 변모한다는 것을 내포하는 사건이다(그림 1). 그러나 명치 천황과 달리 고종 황제가 개국한 대한제국은 안타깝게도 1910년 국권침탈과 함께 세계사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1945년 광복을 맞이한 우리나라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통해 세계사 속에 다시 새롭게 역사를 쓰기 시작하였다. 이것은‘한복’도 새로운 역사를 써야 할 시간이 도래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생각해 본다.

▲ (그림 2) 조일대표회담도
ⓒ 한국학중앙연구원

여기서 잠시 다시 조선의 개항기로 역사의 시간을 돌려 보자. 1876년 병자 수호 조약이라는 근대 외교 조약이 당시 강화부사 연무대(練武臺)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근대화된 무기로 무장된 수십 척의 군함들과 수백의 병사들이 대동된 일본 측 관료들은 무력으로라도 조선에 불리한 조약을 강행하고자 서양식으로 변모한 차림에 단발을 하고 기세등등하게 앉아있다. 그 반대편에는 조선 측 대신들이 17세기 명나라의 멸망이후 만주족이 개국한 청나라와의 갈등 속에서도 공식적인 집무복(執務服)으로 착용해 온 단령포(團領袍)에 사모(紗帽) 를 쓰고 사뭇 예의를 지키며 앉아 있는 사진 한 장에 시선을 멈춰 보자(그림 2). 가슴과 등에 달리는 문관 1품관의 쌍학흉배(雙鶴胸背)를 사진에서 볼 수 없지만 당시 조선은 이미 관료들의 공식 복장에 동아시아에서 황제국의 신하 중 1품 문관들이 사용할 수 있는 선학(仙鶴) 문양을 사용하고 있었다.
자료 사진 속 조선의 사신들이 착용하고 있는 공식 복식인 단령 차림의 관복은 그 유래가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7세기 삼국을 통일하고자 했던 신라의 김춘추(태종 무열왕)가 당나라(618-907)에 병사를 청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받아 온 단령과 관모는 고려를 지나 조선에서도 문무 관료들의 집무복으로 사용되었다. 단령과 사모로 구성된 이 차림은 아시아 통일제국인 당나라의 전성기 동안 한·중·일 3개 국가에 모두 유행했던 복식이다. 물론 시대와 상황에 따라 포의 색상이나 섬세함, 그리고 관모의 외형은 다소 변화를 보여 왔으나 한국복식사에서는 거의 천년을 훌쩍 넘는 시기 동안 우리 민족이 애용해 온 관복(官服)이었다. 중국에서는 한족(漢族)이 세운 명나라(1368-1644)가 무너지고 만주족인 청나라(1616-1912)가 중원을 차지한 17세기 중반에 사라진 관복이다. 일본 역시 막부시대가 시작된 12세기부터 관료들의 공식 복장으로 기능한다고 보기 어려운 복장이 된 것에 비해 현대의 한국은 여전히 전통복식으로 단령포와 사모를 통과 의례시 전통 복식으로 계승해 오고 있다. 필자가 주목하고 있는 ‘한복’에서 느껴지는 자긍심이 바로 이런 점이다.

한복(韓服)에게 바란다
처음‘한민족 복식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한국복식사 영역을 연구하고자 할 때 몇 가지 위축감을 느끼는 지점이 있다. 고대국가때부터 우리 선조들의 복식이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거나 중세 이후에도 위정자들은 지속해서 중국으로부터의 사여(賜與)를 통해 공식적인 복장으로서의 법복(法服) 또는 공복(公服)을 받아 왔다는 대목이다. 더욱이 이등체강(二等遞 降:황제나 황제국의 신하보다 2단계 낮은 등위에서 최고위를 시작하게 된다는 것)의 원칙을 지키면서까지 우리 선조들이 주변 국가로서 복식제도를 유지했다는 내용 등이다. 그러나 이는 위축감을 가져야 할 것이 아니라 긍지를 가져도 좋을 만한 점이다. 과거 동아시아의 외교 질서는 소위 중화(中華)를 존숭하는 민족이 발현시키고 누리는 문물이 주변국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여기서 중화는 중국이라는 근대 국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선진 문물이나 수준 높은 문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한복’은 우리민족이 수준 높은 문화민족이 되기위해 자발적으로 끊임없이 노력해 온 복식이다. 그 이유는 전통복식인 한복의 그 양식적 완성 시기인 영·정조 시기가 조선성리철학이 완숙되어 소중화 의식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의 양식을 계승했기 때문이다. 우리 한복이 대표하고 있는 미학적인 특징은 자연의 이치인 성리(性理)를 거스르지 않는 편안함이다.
물론 현대인들이‘착용의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지만, 그것은 주거나 일상생활이 과거의 방식들과 달라졌기에 파생된 문제이다. 노동의 대가를 통해 획득한 소재들을 낭비없이 살뜰히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재단법이나 남는 원단들을 사용한 규방공예품의 창조는 이미 널리 알려진 한복의 장점들이다. 정결함을 추구하여 동정이나 거들지(예복용 상의의 소매 끝에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덧댄 구성물)와 같이 백색의 덧댄 부속물들이 장식적인 기능을 하고 있다거나 정성스러운 재료의 손질과 세심한 바느질에 높은 가치를 두는 습속도 본질에 충실히 하고자 하는 공력을 많이 들이는 옷이었음을 보여주는 방증들이다.

지난해 9월 조선의 4대 궁궐 가운데 3개의 궁궐이 위치한 종로구는 고궁 입장에 적용되는‘한복 착용자 무료입장’혜택에서 퓨전 한복이나 개량 한복은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정체불명의 옷’을 단속해 달라는 민원인들과‘한복이 유행하게 된 현상’을 축소하지 말아 달라는 민원인들의 대치 국면을 초래하였다. 당시 종로구 홍보팀장은 이에 대해“혜택 축소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기회에 한복에 대해 다 같이 고민해 보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민국에서 현재를 사는 우리들은‘한복’에 대해 한 번쯤 다 같이 고민을 해봐야 할 시기라는 점에서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다양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현재의 한복을 바라보면서 인간과 자연의 가치와 그 품격을 유지하고 존중해온 우리 전통복식의 중요한 특색을 생각해본다. 이 글의 전반부에서 ‘옷’은 개인에게는 그 사람이 받을 대우의 한계를 결정해주는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국가의‘전통복식’이라는 것은 그 민족이 받을 대우의 한계를 결정 지어주는‘옷’이라는 것을 다시 상기해 보자. 우리의 한복이 황제국을 선포하며 최고의 문화 민족임을 자부하고자 했던 선조들이 물려주고자 했던 격조 높은 복식이라는 점은 포기하지 않고 변해주었으면 한다.

지 수 현 / 원광디지털대학교 한국복식과학학과 부교수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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