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호 기획 : 컨베이어벨트 잔혹사] 컨베이어벨트의 사회적 재구성

노동자를 위한 노동환경이란 무엇일까? 자본주의 산업체제에 맞춰 빠르게 발전되어온 과학과 기술. 하지만 그 속도에 발맞출 수 있는 노동환경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번 기획은 자본주의산업의 요체인 컨베이어벨트의 이면과 무거운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마련하였다.

<모던 타임즈 Modern Times>(1989)의 한 장면 ⓒ movie.naver.com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참혹한 죽음을 맞은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씨의 장례식이 지난 2월 7∼9일 치러졌다. 한국은 하루 6∼7명의 노동 자가 산재 사고로 죽어나가는 나라이지만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원인에 대한 근본적 처방은커녕 변변한 논의조차 이뤄진 적이 없다. 우리 사회가 기업, 경제, 시장의 작동을 위해 운 없는 노동자 일부를‘인신공 양’하기로 합의한 것처럼 침묵해왔다면 과장일까.
그나마 이번 김 씨의 죽음은 대한민국 산재 사망의 역사를 새롭게 쓰는 계기가 되었다. 진상규명위원회 구성, 일부 발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등이 그것이다. 자식의 죽음을 사회의 반성과 변화로 승화시키기 위해 결연한 싸움을 전개한 유가족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김 씨가 죽음으로 남긴 교훈을 온전히 사회화하기 위해서는 김 씨의 목숨을 앗아간 컨베이어벨트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컨베이어벨트에 서린 테일러의 저주

헨리 포드(Henry Ford, 1863~1947)가 1913년 자동차 모델 T의 대량생산에 적용한 컨베이어벨트는 노동을 보조하는 소박한 도구가 아니라 노동 과정을 새롭게 조직하는 방식이었 다. 모든 부품과 노동 공정을 컨베이어벨트의 흐름에 따라 표준화·일관화하여 노동자들의 동작을 단순반복 작업으로 만들었다. 생산성 효과는 놀라웠다. 자동차 한 대의 조립 시간은 750분에서 93분으로, 1908년 825달러였던 T모델 한 대의 가격은 1920년 255달러까지 떨어졌다.
이것을 경영의 원리로 공식화한 사람은 포드와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프레데릭 테일러(Frederick Winslow Taylor, 1856~1915)였다.‘ 과학적 관리론’이라 일컫는 그의 경영론은 1911년 발표한『기업의 과학적 운영에 관한 원칙들』에 집약되어 있다. 여기에서 그는“관리자는 과거에는 노동자들의 것이 었던 전통적 기술정보와 모든 지식을 문서화하고 분류하여 규칙과 법칙, 공식들로 요약할 임무를 갖는다”고 했다. 그 목적은 업무를 게을리 하고 갖가지 술수를 부리는 노동자들로부터 그들의 자율성의 원천인 지식과 숙련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테일러는 개인별 생산성 지수를 상호비교하게 함으로써 나태한 노동자들을 가려내자고도 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생산 성을 감독할 또 다른 관리직 노동자의 채용과 비용을 의미했 다. 더구나 자본가의 눈에 노동자는 이 감독자까지 속일 정도로 간교했다. 따라서 사람 대신 기계가 노동자를 통제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노동자들의 작업 동작을 초시간 단위로 표준화하고 이 표준화된 작업 공정을 기계가 통제 하도록 하는 것이 테일러리즘의 요체였다. 컨베이어벨트는 테일러리즘이 구현된 기계였다.


몫 없는 노동자 – 포드주의와 린 생산방식

하지만 생산 과정에서 주도성을 완전히 박탈당한 노동자는 노동 동기마저 떨어진다는 것이 또 다른 과학의 발견이었다.
생산직 노동자를 포드주의 대량생산-대량소비 시스템에 통합 하기 위해 자본은 그들에게 고용 안정 및 시장 임금보다 높은 생산성 임금을 보장했다. 이렇게 해서 전후 황금기의 경제 성장을 주도했던 포드주의 노사타협 모델이 수립됐다. 이 타협은 독일, 일본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수익률 하락에 직면한 미 국 제조업이 1970년대에 노조 압박, 국내 생산투자 회피 등의 대응 전략을 선택함으로써 붕괴의 길로 나아갔다. 포드주의를 대신한 린(lean) 생산방식은 이 용어의 의미 그대로 생산과 판매 전체 과정에서 모든 군살을 제거하고자 했다. 여분의 노동 자를 해고하고 생산설비를 최소 상태로 가져가려면 핵심 부문 이외의 영역을 최대한 외주화(아웃소싱)해야 했다. 외주화는 파견 노동 같은 외부노동 유연화 제도를 요구했다.
포드주의 대량생산 모델에서 노동자는 소외를 경험했지만 자신과 직접 고용 관계를 맺고 있는 사업자에게 컨베이어벨트의 안전한 설치와 운전, 사고 발생 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 그러나 린 생산방식에서 노동자는 컨베이어벨트 소유자가 아닌 파견 사업자와 고용 관계를 맺는다. 파견 노동은 고용 관계를 맺은 파견 사업자가 아니라 컨베이어벨트 소유자인 원청 사업자의 지시와 감독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파견 노동자는 임금과 고용 안전은 말할 것도 없고 작업장 안전에 대해서도 무권리 상태에 놓이게 된다.
한국에서 린 생산방식을 뒷받침하기 위한 제도 변화는 1997 년 IMF 환란을 계기로 본격화됐다. 1998년 제정되고 시행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20년의 역사 속에서 파견 양산법이 되었다. 산업단지의 중소기업 태반이 파견 노동자를 쓰는데 그 태반이 방치된 불법 파견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용역, 파견, 민간위탁,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가 2017년 말 현재 346만 5,239명으로 전체 임금 노동자의 17.4%에 달한다.
잠을 자지 않는 컨베이어벨트는 파견법과 합작해 주야(晝 夜) 맞교대 노동을 정착시켰다. 원청 기업의 주문이 몰리는 기간에는 회전 속도를 인간 노동의 한계 지점까지 높인다. 노동을 컨베이어벨트의 완력과 속도에 맞춘다는 것은 불면증, 근골격계 질환, 소화불량을 달고 산다는 의미다. 간접고용 노동 자의 37.8%가 업무상 재해를 경험하고, 이는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의 20.6% 대비 2배에 가깝다. 포털 사이트에‘컨베이어 벨트 사망’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면 끝없는 노동자 죽음의 행렬을 만나게 된다.
컨베이어벨트를 단순한 기술이나 기계로만 바라보면 노동 자들의 사고는 사회가 기술 발전의 혜택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 치러야 할 불가피한 희생쯤으로 생각하게 된다. 고 김용균 씨가 남긴 교훈은 이런 관점을 극복하고 컨베이어 벨트를 사회적 구성물로 바라보게 한다. 컨베이어 벨트의 소유자와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일하는 노동 자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는가, 컨베이어 벨트의 설치와 운전이 작업자에게 얼마나 안전한 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운전되는가, 위기 상황에서 컨베이어벨트를 멈출 수 있는 자율성이 이를 직접 운전하는 노동자에게 있는가, 이 모든 측면들이 사회적 구성물로서 컨베이어벨트의 성격을 규정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 서면 카카오의 카풀 서비스에 반대해 최근까지 3명의 택시기사가 분신자살한 사건에 대해서도 다른 시야가 열린다. 카카오나 우버와 같은 플랫폼 사업 모델은 한 명의 노동자 고용도 없이, 한 대의 자동차도 없이 승차 서비스를 조직한 다. 오프라인 린 생산방식의 온라인 극단화에 해당 하는 이런 플랫폼을 린 플랫폼이라고 한다. 린 플랫 폼을 일종의‘디지털 컨베이어벨트’로 규정한다면, 카카오나 우버는 인터넷 기술을 이용해 사용자 책임, 사회적 책임을 완전히 벗어던지는 방식으로 이 디지털 컨베이어벨트를 구성하고 소유한 사업자에 해당한다.

컨베이어시스템 소유자인 자본에 사용자·사회적 책임을

결국 사회가 그 생산성을 안전하고 구성원 모두에게 고른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컨베이어벨트를 재구성해야 한다. 우선, 간접고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러한 과제에는 공기업 민영화와 외주화 금지, 파견법 폐지에 준하는 파견 노동의 원칙적 금지, 도급과 파견의 엄격한 구분 기준 마련 등이 있다. 이는 시민의 안전에도 긍정 적인 영향을 미친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사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가 진행되자 사고건수가 대폭 줄어든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노동자들이 외주용역직이었던 2016년 에는 221건이었던 사고가 2017년 무기업무직을 거쳐 2018년 일반정규직으로 전환된 뒤에는 113건으로 절반 정도 줄어들 었다.
간접고용이든 직접고용이든 컨베이어벨트의 소유자에게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성을 높이는 장치도 필요하다. 영국에서 산재 사고를 획기적으로 낮춘‘기업살인법’은 책임이 있는 사업주에게 상한 없는 벌금 부과가 가능하며, 기업은 물론 설비의 인허가 및 감독을 맡은 정부기관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기업살인법보다 훨씬 규제 정도가 약한‘중대 재해기업 처벌법’이라는 이름의 법률 제정안이 19대 국회와현 20대 국회에도 발의됐지만 제정 가능성은 희박하다.
디지털 컨베이어벨트에 대해서도 플랫폼의 생산성을 사회가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분배 장치로 적극 고민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플랫폼의 생산성은 모든 사회 구성원이 보유 하고 생산하는 데이터에 크게 의존한다. 따라서 의료, 교통, 통신, 교육, 에너지 등의 공공재에 대해서는 공공 플랫폼의 형태로 사기업 플랫폼 자본의 사유화를 막아야 한다. 동시에 사기업 플랫폼 이윤의 일정 부분을 사회가 모든 시민에게 배당하는 무조건적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삼아 플랫폼으로 인해 안정된 고용과 소득을 위협당하는 시민들의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

장흥배 /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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