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호 책지성: 조앤 샤프, 『 포스트식민주의의 지리』] 광복 이후 74년, 우리는 정말 독립했는가?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이면서 1945년 일본의 항복으로 인해 해방된 지 74주년이 되는 해이다. 공식적으로 우리가 일제의 강제 점령 하에 있었던 36년의 두 배가 넘는 세월이 흐른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우리가 정말 과거로부터‘독립’했는지는 의문이다. 『포스트식민주의의 지리』의 저자 조앤 샤프(Joanne P. Sharp)는 이에 대해 “전통적인 정치적·경제적 식민주의는 끝났을지 몰라도 정신의 탈식민화는 여전히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말한다.

이 책은‘식민주의’와‘포스트-식민주의’, 그리고‘포스트식민주의’의 세 부분으로 나눠 과거에서부터 오늘날까지 곳곳에 숨어 있는 식민주의의상흔을 노골적으로 짚어 준다.‘ 포스트-식민주의’는식민지배의 권력으로부터 독립했다는 제도적 의미의 단절을, ‘포스트식민주의’는 단지 식민주의가 아닐 뿐 오늘날의 문화·담론 등이 여전히 그 영향 아래에 있음을 의미한다. 책에서 언급되는 사례는 전통적인 식민지배국가인 유럽위주이나, 바로 그러한 점에서 독자들은 한국적 맥락에서는 어떤 함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생각 해보게 된다.

유럽중심적 사고에서의 지식 획득과 실천

전통적인 식민지배국인 유럽은 유럽 이외의 국가들에 대해 자신들과는‘다른’세계를 상상했고, 그들의 자의적인 상상은 식민지국에 대한 차별적인 지식을 형성했다. 유럽은 바로 그 차이를 통해 그들 스스로 권력 행사의 정당성을 획득했으며, 그 권력은 다양한 방식으로 행사됐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오리엔탈리즘’이다. 유럽인들은 백인 남성인 자신들을 기준 삼아 타자들과의 차이를 강조했고, 그 차이는 곧 열등한 것으로 이어졌다. 이는 오리엔탈리즘 미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림 1)은 <무희의 춤 Dance of the Almeh> 이라는 그림으로 동양에 대한 전형적인 환상을 보여준다. 향연의 장소에 헐벗은 여인은 야릇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여인을 둘러싼 남성들은 야만적으로 묘사된다. 이는 당시 정숙하고 자기 절제적이며 질서정연한 의식을 강조하던 유럽의 종교적인 분위기와 대비되는 것이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권력과 지식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말했다. 저자는 이에 동의하며, 유럽인들이 그들의 권력을 통해 지식을 획득한 방식은 과학과 탐험이라고 설명한다.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오직 과학만이 자연을 정복할 수 있는 이성적인 방식으로 여겨졌고, 원주민들은 자연을 벗어날 능력이 없는 야만인에 불과했다. 유럽인들은 과학이라는 명목 아래 원주민의 자연을 파괴하고, 그들의 신체를 미학적으로 열등하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과정을 주도한 백인 남성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영웅이었다. 그들은 지도상의‘빈 공간’을 메운다는 명목으로 원주민의 땅에 서양의 지명을 붙였으며, 그들의 편의에 따라 국경을 나누고 원주민 사회를 분리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유럽인들은 원주민 마을을 통째로 박람회로 옮겨와 전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모든 과정은 유럽의 국민들에게 제국주의의 우월함을 드러내는 효과적인 방식으로 여겨졌다

표면적으로는 벗어났으나 여전히 종속된 포스트-식민주의 시대

지도상의‘빈 공간’이 메꿔지고 식민주의 시대가 종말했으나 식민지배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의 우월성을 재확인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식민지 통치의 종말을 자극했던 것은 토착 엘리트에게 전달된 서양 식민지배자들의 계몽적 가치들이라는 것이다. 이는 이야기의 영웅이 항상 유럽이며, 식민지 사회는 수동적으로 남아있을 뿐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은 식민주의 이후의 세계 질서에서도 나타난다. 제1세계, 제2세계, 제3세계로 구분되는 세계 질서는 사실상 서양(유럽)과 타자라는, 여전히 이분법적인 관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제1세계와 제2세계는 각각 미국과 소련에 의해 주도되는 세계지만, 제3세계는 그저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 나머지였다. 이처럼 정상규범이자 본질적인 것으로서 모든 나라가 발전을 위해 필연적으로 겪는 앞의 두 세계와 그렇지 않은 변종, 두 가지가 존재할 뿐이다

소위 말하는 글로벌화와 문화 제국주의에서도 서양의 우월의식을 찾아볼 수 있다. 전통적인 식민지배국은 식민주의의 종말 이후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피식민국가의 문화를 향유하며 피식민국가에 대한 그들의 자의적인 생각을 전 세계에 퍼뜨렸다. 예를 들어, 영화 <인디아나 존스: 미궁의 사원>(1984)는 소위 말하는 비문명화된 사회에 대한 서구 지식과 지도력의 승리를 보여준다. 백인 남성인 존스는 과학과 문명의 이익을 위해 식민화된 세계로부터 유물을 구출하고, 원주민들은 비로소 본인들이 지녔던 유물의 가치를 알게 되며 선구자로서 백인 남성을 존경하게 된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미궁의 사원>(1984)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포스트식민주의 시대

포스트식민주의는 서양의 억측과 편견, 그리고 앎의 방식을 비판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고자 등장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학계를 비롯하여 문화 영역에서 서양의 지배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가 존재했다. 대표적으로‘타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으나, 이는 주류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은 그의 논문「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1988)에서 인식론적 폭력에 대해 토로했다. 그에 따르면, 비서양세계 토착민들의 글과 생각이 이해받기 위해선 번역이라는 일종의 검열을 거쳐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항상 재해석 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이는 결국 타자의 이야기를 할 때조차도 중심부에 머무는 것은 전통적인 백인 남성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처럼, 전통적 주체가 타자를 대하는 거친 시각은 오늘날에도 만연하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시가 바로 아랍 여성들에 대한‘베일의 정치’이다. 서양의 페미니스트들은“모든 여성들이 국가·지역·종교를 중심으로 분리되기보다는 가부장적 착취로부터의 여성 해방을 위해 일치단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제3세계 페미니스트들은“아랍의 여성들이 가부장적인 억압보다 글로벌 경제체제와 인종, 계급에 따른 더 큰 억압에 직면하고 있음을 서양의 페미니스트들이 망각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즉, 소위 말하는 주류 페미니스트들은 아랍 여성이 속해있는 전반적인
사회적 맥락에서 베일이 어떤 의미인지에 관심을 두기 보다는, 오직 그 베일을 벗겨버리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식민주의를 벗어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프란츠 파농( Frantz Fanon)은‘폭력의 불가피성’을 주장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검은 피부, 하얀 가면』(1952)에서 흑인들로 하여금 백인의 문화를 흉내내도록 함으로써 식민주의적 권위가 작동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피식민지인은 결코 완전하게 식민지배자의 가치를 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이러한 불완전성으로 인해 식민지배자의 우월성은 끊임없이 유지된다. 따라서 파농은 식민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방식은 오직 폭력뿐이라고 주장한다. 폭력은 가장 효과적으로 분노를 표출하면서 타자의 목소리에 외부 주체들이 관심을 기울이게 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적절성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적어도 이러한 주장이 나온 맥락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논의하며 공감을 얻고 있다.

오늘날 우린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과거 코카콜라, 할리우드 영화 등으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식민지배국들의 문화는 너무나 견고하여 대항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오늘날 이러한 문화 식민주의에 대항하여 비서양문화 역시 전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학계에서 다뤄지는 수많은 포스트식민주의 연구뿐만 아니라 다양한 디아스포라 문학, 할렘의 음악 등은 오늘날 일종의 거대한 흐름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문화의 뿌리가‘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기념비적인 일이다.

『포스트식민주의의 지리』는 전통적인 식민지배국인 서양의 사례 위주이다. 하지만 책이 담고있는 함의는 서양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독자들은 식민지배국가의 우월성을 기반으로 일본이 자행한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착취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2019년 3월,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나라에 자행됐던 식민주의와 그로부터 우리나라가 어떻게 탈피해왔는지를 생각해보며 책을 읽는다면 그 의미가 남다르리라 생각한다.

류제원 | jewonryu@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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