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호 영화비평:<보헤미안 랩소디>(2018), God Save Freddie Mercury!]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해 보자. 나이를 밝히게 되는 게 좀 꺼려지지만, 1985년 7월 13일 영국 런던의 웸블리 경기장과 미국 필라델피아의 존 F. 케네디 경기장에서 동시에 열린 역사적인 라이브 에이드(Live Aid) 콘서트가 MBC TV에서 녹화방송 됐을 때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팝과 록은 라디오만 켜면 쉽게 들을 수 있었다. 김광한, 이종환, 김기덕 같은 유명 DJ들은 매주 빌보드 차트 수위의 곡들을 소개해줬고, 나는 좋은 팝송만 나오면 카세트테이프(아, 옛날사람!)에 녹음하곤 했다. 조용필, 전영록, 이선희 같은 가수가 인기였지만 왠지 국내 가요는 시시해 보였다. 그런 나에게 라이브 에이드가 녹화방송 된다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 해는 벽두부터 아프리카 난민들을 돕기 위한 팝 뮤지션들의 노래, 즉 Band Aid의「Do They Know It’s Christmas?」와 USA For Africa의「We Are the World」가 전 세계적인 히트를 친 이후였다.
그 공연에서 단연 나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퀸(Queen)이었다. 특히「Radio Ga ga」는 압권이었다. 리드 보컬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의 손짓에 따라 일사분란하고 절도 있게 박수치는 관객들도 놀라웠다(훗날 그것이 뮤직비디오의 장면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퀸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날로 나는 퀸의 팬이 되었다. 애석하게도「Bohemian Rhapsody」가 국내에선 금지곡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진가를 알게 되는 것은 민주화의 여파로 노래가 해금되는1980년대 후반이었지만 말이다. 지금도 추운겨울,「 Bohemian Rhapsody」가 온전하게 수록돼 있는『A Night at the Opera』앨범을 사러 몇 번이고(몇 개 가져다 놓기만 하면 바로바로 팔렸기에) 음반가게를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 movie.naver.com

 

가수 전기 영화로서의 <보헤미안 랩소디>

퀸에 얽힌 개인적 기억을 이토록 길고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물론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Bohemian Rhapsody>(2018)를 말하기 위함이다. 이 영화가 블록버스터급 영화도 아니고 인기스타가 등장하지 않음에도, 400만(11월 25일 기준)이 넘는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 모은 데에는 퀸을 추억하는 40대 이상 중년들이 한몫했을 것이라는 점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전형적인 가수 전기 영화의 패턴을 그대로 따른다. 이 장르는 보통 그/그녀의 음악경력에서 최고 정점이나 쇠락한 시점으로부터 시작하여 가수 데뷔 이전으로 돌아간다. 어떻게 가수의 경력을 쌓아가게 되고 누구와 사랑에 빠지며, 최고의 위치에서 불안과 권태 속에 약물 등으로 자기파괴를 겪게 되고, 멤버들이나 주변인들과 불화를 겪게 되는, 그러나 궁극에 가서는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이야기는 할리우드에서 가수 전기 영화의 한 유형이다.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그 시작은 라이브 에이드 무대에 들어서기 직전의 프레디 머큐리(라미 말렉)이고, 이내 1970년 공항에서 수하물을 나르는 그의 모습으로 이동한다. 그는 동네 클럽에서‘스마일(Smile)’이라는 밴드를 이끄는 브라이언 메이(귈림 리)와 로저 테일러(벤 하디)의 눈에 들어 마침 리드 보컬이 탈퇴한 빈자리를 채우게 된다.
영화의 두 가지 줄기 중 하나는 퀸이 어떻게 1970년대 대중들을 사로잡으며 인기 록 밴드가 되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추구했던 음악세계와 음악탄생의 비화를 쫓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퀸을 사랑하는 팬들을 위한 일종의 팬 서비스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프레디 머큐리가 데뷔 무대를 갖는 클럽장면에서 그는 마이크가 빠지지 않아 애를 먹는데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박력 있게 마이크 대까지 뽑아 버린다. 라이브 에이드에서「Radio Ga ga」를 부르기 직전 진행요원이 갖고 있다가 건네주는 마이크의 기원이 바로 이것이다. 퀸이라는 이름으로 그룹명을 바꾼 후「Killer Queen」이 좋은 반응을 얻자 록에 대한 이해가 없는 BBC에서 의도와 무관하게 립싱크를 해야 했던 것, 1975년 록필드 농장에서 그 유명한「Bohemian Rhapsody」를 탄생시킨 비화가 상세하게 제시된다. 또한 음악적 실험을 추구하면서도 철저하게 대중의 즐거움을 생각했던 퀸의 면모도 묘사된다.「 Bohemian Rhapsody」처럼 6분이 넘는데다가, 중간에‘맘마미아’,‘ 비스밀라’,‘ 스카라무슈’,‘ 갈릴레오’등 가사의 맥락과 무관한 단어들이 튀어 나오는 오페라틱한 실험이 전자에 해당한다면, 발을 구르며 템포에 맞게 박수를 치면서「We Will Rock You」를 구상해내는 것은 후자에 해당한다.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 디스코의 열풍 속에서 디스코 리듬이 담긴「Another One Bites the Dust」를 발표한 것 역시 그렇다. 영화에서 로저 테일러는 프레디 머큐리에게 이젠 빌리지 피플(Village People:「 YMCA」,「 Go West」등으로 유명한과장된 게이 스타일의 디스코그룹)처럼 되려 하냐고 핀잔을 주지만 싱글로 발매된「Another One Bites the Dust」는 빌보드 차트에서 3주간 1위를 기록했다. 퀸의 1970년대 노래만을 인정하는 팬들은 1980년대 뉴 웨이브와 MTV의 부상 속에서 나온「I Want to Break Free」,「 Radio Ga ga」등을 록을 배신한 상업적인 팝으로 평가 절하했지만 (물론 퀸 자체를 록이라 생각하지 않는‘록 근본주의자’들도 있었다. 하드 록과 프로그레시브 록에 심취한 나의 형은 퀸을 좋아하는 나를 비웃었다!) 오히려 변화하는 음악의 흐름과 대중의 기호를 발 빠르게 포착한 퀸의 인기 비결을 설명해 준다.

 

퀴어(?) 영화로서의 <보헤미안 랩소디>

그런데, 바로 그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가르는 것, 그리고 프레디 머큐리가 긴 머리와 화려한 의상을 버리고 콧수염과 남성적인 외모로 변신한 이후의 이야기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선 문제적이다. 영화에서 그가 콧수염으로 변신하는 것은 1980년이다. 콧수염과 라이더 재킷이 미국 게이문화의 기표이고, 그가 거기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도 하지만(영화에서 로저 테일러는 콧수염 기른 자신이 어떠냐고 묻는 프레디 머큐리의 말에 더 게이 같다고 장난스럽게 말한다) 나는 그것이 과시적으로 여성성을 드러냈던 1970년대 프레디 머큐리와는 달리 그가 마초적인 문화가 지배했던 1980년대를 미리 선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떠올려 보라. 1980년대에 여성성을 찬양하는 글램 록은 자취를 감추었고, 극단적인 남성성이 지배하는 헤비 메탈이 득세했다는 것을). 그리고 1980년대가 무엇보다도 AIDS라는 신종‘페스트’의 시대였고, 그것은 동성애를‘원인균’으로 선전하며 퍼져나 갔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이를 다루는 방식은 퀸의 음악세계와 함께 또 하나의 줄기를 이룬다. 영화는 1980년대 이후 프레디의 뮤즈로서「Love of My Life」를 바쳤던 메리 오스틴(루시 보인턴)과의 이성애적 관계가 우정으로 바뀌고, 매니저인 폴 프렌터(엘렌 리치)나 파티의 웨이터였던 짐 허튼(아론 맥쿠스커)과의 동성애 관계를 부각시키는 것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사실 프레디 머큐리가 남녀를 가리지 않는 양성애자였다는 것, 그리고 약물과용과 난교 등 말할 수 없이 문란하고 난잡한 사생활로 점철되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음악 총괄감독으로서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가 직접 영화에 참여하고 있지만, 아마도 그들은 프레디 머큐리의 이런 부정적인 면을 억제시키는 역할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자제’는 그의 성 모럴의 취약성을 감출 수는 있을지라도 진정한 히더니스트(hedonist: 쾌락주의자)이자 현대판 디오니소스였던 프레디 머큐리의 매력을 반감시킨다. 아마도 그의 그러한 성향이 가장 잘 드러난 노래는 끝없는 쾌락 끝에 마침내 원자폭탄처럼 터질 거라는 가사의「Don’t Stop Me Now」일 텐데, 이 노래는 영화가 끝난 후 엔딩 타이틀에서야 등장한다. 더 나아가 퀸의 다른 멤버들이 프레디의 게이 파티를 탐탁지 않게 여기며, 게이인 매니저 폴이 라이브 에이드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프레디에게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 프레디가 AIDS에 걸리는 것과 게이 공동체와의 유대관계가 긴밀하게 연결된다는 점 등은 AIDS가 ‘동성애자의 페스트’라고 선전된 1980년대 재배 담론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 같아 석연치않다. AIDS의 원인은 동성애가 아니라 문란함이었는데도 말이다.
사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영화적으로 우수하지도 훌륭하지도 않다. 종반부에서 프레디가 자신을 속인 폴을 해고한 후, 멤버들에게로 되돌아오며‘너희들밖에 없어’하는 식의 설정은 흡사 신파멜로드라마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하다. 퀸을 조금이라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보지 않을 수 없다. 퀸을 몰랐던 사람들도 이 영화를 보면 반드시 1985년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찾아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영화의 힘이라기보다 온전히 퀸 그 자체였으며, 대중의 쾌락 신경 구석구석을 쥐락펴락했던 프레디 머큐리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일 것이다.

 

정 영 권 / 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강사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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