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호 인문학술: 기후와 역사] 문헌을 통해 알아보는 과거의 기후, 그리고 우리의 반성 -17세기 유럽을 중심으로-

과거보다 점점 더 추워지고 있는 지구, 기후 이상 현상 등이 나타나는 지구 등 현재 기후변화는 우리의 삶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기후변화는 현 21세기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에 본보는 17세기 유럽을 중심으로 과거의 기후를 살펴보고, 우리가 앞으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제4차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100년간 지구의 평균기온은 0.74℃(0.56~0.92℃ 범위)가 높아졌으며, 특히 1850년 관측 이래 가장 따뜻했던 12번 중 11번이 최근 12년 동안에 발생하는 등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있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지금과 같이 화석연료에 의존한 인간 활동이 계속된다면 21세기 말 지구의 온도는 온실가스 배출량 정도에 따라 최대 6.4℃(1.1~6.4℃ 범위)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이렇게 되면 북극 빙하는 21세기 말에 완전히 녹아 없어져 그 영향으로 폭염과 집중호우와 같은 기상변화는 지속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하였다.
이와 같은 급격한 기후변화는 세계 여러 나라에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감축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 유엔기후변화협약의 발리로드맵(Bali Road Map)에서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은 자국의 실정에 맞는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조치를 강조하고 있다. 즉, 각 나라의 감축 목표에 도
달하지 못하면 벌금을 내거나 탄소 배출권을 사들여야 하는 새로운 경제 상황이 현실화 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류의 노력은 과거 기후변화에 따른 사회, 경제, 문화적인 변화가 무척 크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는 점에 기인한다.
기후는 인류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과거와 현재에도 그랬으며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미래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기 때문에 개인과 국가 혹은 국가 간의 환경보전과 에너지 절약에 관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필자는 독자들에게 과거 기후로의 여행을 제안한다. 문헌에는 기후에 대해서 어떻게 기록되어 있을까? 선조들은 어떤 방법으로 기후를 추측하였을까? 역사상 소빙기로 알려진 17세기 전후 지구의 기후는 어떤 특징이고 당시 사람들은 어떤 일을 겪었을까? 등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포도 수확일 분석을 통해 밝혀진 17세기 중부 유럽의 기후

세계적인 기후사학자인 엠마뉴엘 르 로이 라두리(Emmanuel Le Roy Ladurie)는 약 1480년부터 1880년까지의 포도 수확일의 자료를 분석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를 자연과학적인 연구 성과와 결합하여 유럽의 17세기 소빙기적 기후 현상, 다른 세기보다 낮은 기온을 보이는 상황임을 제시하였다.
그의연구내용은흥미로웠다. 일단, 연구대상지역은Kürnbach(독일 남서부 산림지역), Lavaux(독일 남서부 산림지대), Aubonne(스위스), Lausanne(스위스 서부지역), Salins(프랑스) 및 Dijon(프랑스 중동부지역)이었고 연구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일단, 해당 연구지역의 포도 수확일을 시기에 따라 ‘양호’, ‘불량’, ‘평균’으로 나누고 이를 각각 ‘-6, 6, 0’으로 계량화하여 약 4세기에 걸친 포도 수확일 자료를 정량적으로 분석하였다. 매우 객관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는 기온 및 기후의 변화를 지역별 포도 작물의 생장과 연결시켰고, 이를 토대로 계절학적인 온도 곡선의 복원에 성공하였다. 그 결과는 무척 흥미로웠으며 온도 곡선은 알프스 빙하의 확장과 축소를 무난하게 설명하였다.

▲ <표 1> E. Ladurie의 포도 수확일로 본 중부 유럽의 17세기 기후

<표 1>을 보면 개략적인 17세기 중부 유럽지역 기온에 기반을 둔 기후를 알 수 있다. 기온이 높으면 빠른 포도 수확이 일어나고 기온이 낮으면 포도 수확은 늦어진다. 이것은 생물의 생장과 연결하여 파악할 수 있는 상식적 정보이다. 그의 연구결과는 포도 수확일의 결과로 구성되는데 크게 특징적인 네 개의 시기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 시기인 1601년에서 1616년까지는 전반적으로 별다른 추위 없이 평균적인 기온을 보였다.
두 번째 시기인 1617년에서 1650년까지는 전반적으로 저온과 늦은 수확이 진행되었고, 이 기간 중 1635년부터 1639년의 기간은 특이하게 대단한 혹서현상을 보였다. 특히 1637년~1638년은‘타는 듯한 여름(scorching summers)’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그 현상이 심하였다. 1651년부터 1670년까지는 고온, 모진 가뭄 등으로 기후가 진행되었다. 그래서 고온 건조하여 빠른 수확이 진행되었다. 아울러 1671년부터 1703년까지는 저온으로 인하여 늦은 수확이 일어났다고 문헌은 전한다. 특히 1672년부터 1675년간은 상당히 서늘함을 보이고 있고, 1676년부터 1686년은 가뭄이 일어났다. 그 기운은 여전히 진행되어 17세기 말까지 저온과 늦은 수확이 지속적으로 일어났다.

이와 같은 기후의 변화를 연도별로 기간을 크게 세 개로 구분하여 ‘평균기온보다 높음’, ‘평균기온’, ‘평균기온보다 낮음’으로 구분하여 연수를 삽입하여 보면‘평균기온보다 높음’은 약 20년간이고, ‘평균기온’은 약 16년간이었다. 그리고 ‘평균기온보다 낮음’은 약 64년간 지속됨을 알 수 있다. 물론, 춥지 않은 기간이 약 36년간 지속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으나, 덥지 않은 기간도 약 80년간 지속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결국, 17세기는 다른 세기와 비교하여 추운 간빙기의 시대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온도계로 측정된 17세기 중후반의 영국의 기후

영국은 세계 최초로 온도계를 사용하여 기온을 측정한 나라였다. 영국의 1659년 이후부터의 기온 자료는 기후학자인 고든 만리(Gordon Manley)에 의해 ‘온도계로 측정된 기후’가 수집될 수 있었고 분석된 내용은 신뢰받는 자료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는 영국의 과학자 로버트 훅(Robert Hooke)이 1664년에 어는점을 0℃로 사용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온도를 객관적으로 측정하려는 노력에 따라 더욱 신뢰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과거 기후의 연구 성과는 당시 다른 학자들의 기온추정에 근거한 자료보다 객관성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준거 자료로 크게 사용되었다. 즉, 객관적이고 엄밀한 과학적 기온고찰의 시기를 열었던 획기적인 연구 성과로 평가되었다.

다음은 온도계로 측정한 17세기 중후반 영국의 기후변화 추이를 표로 정리한 것이다.

▲ <표 2> Gordon Manley의 온도계로 측정한 17세기 중후반의 영국의 기후

<표 2>를 보면, 영국의 경우도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중부 유럽과 유사한 패턴의 소빙기적인 기후변화 양상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사를 시작한 1650년부터 1670년까지의 고온 건조로 인하여 중부 유럽에서는 포도의 빠른 수확이 일어난 것처럼 영국에서는 템스강의 수위가 낮아지고 1666년에 건조함이 극에 달아서 런던 대화재가 일어나기도 했다.
부연하면, 1666년 9월에 발생한 런던 대화재는 당시에 엄청난 사건이었다. 새벽 2시경 빵 공장에서 일어난 불은 런던 시내로 번졌고 5일간 87채의 교회, 1만 3천 채의 집이 불탔고 한다. 당시 런던의 인구 약 8만 명 중에서 약 7만여 명이 집을 읽고 노숙자가 되었다고 한다. 런던 대화재는 오랜 시간 동안 건조했던 당시 영국의 기후와 무관하지 않으며, 이와 같은 기후 변화에 따른 사건으로 인하여 목조주택이었던 영국 런던 시내의 주택들은 벽돌로 짓게 되었고 소방 체계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1673년부터 1700년까지의 기후는 중부 유럽과 유사하게 저온, 추움, 가뭄 등이 일어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엠마뉴엘의 포도 수확일로부터 추정된 온도 곡선의 결과를 상호적으로 검증받을 수 있는 과학적인 타당성을 부여한다. 특히 1673년과 1674년은 서늘하면서 춥고, 1675년은 매우 추움을 보이고 있다고 제시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특이할 만한 것 은 1680년부터는 ‘봄, 여름 두 계절의 모든 차가운 온도보다 거의 1도 정도 더 차가움’, ‘매우 추우며 절기에 맞지 않음과 같이 극심하게 추웠음’을 제시한다. 결국, 고든 만리의 온도계 로 측정한 1650년부터 1700년까지의 영국 기후는 초기 20여 년간은 따뜻하고 건조했으나 나머지 약 30년간은 극심하게 추 웠음을 알 수 있다.

17세기 영국과 중부 유럽기후의 상관관계

기후학자 허버트 램(Hubert Lamb)은 문헌에서 찾은 위의 두 연구 결과를 그래프로 표현하여 서로의 상관관계를 쉽게 파악하고자 하였다. 엠마뉴엘의 17세기 룩셈부르크와 프랑스 에 있어서‘포도 수확일의 장기 추세’와‘고든 만리의 17세기 중후반 영국 중부지역의 온도계 측정 결과’를 그래프로 비교 한 것이다.

ⓒ H. H. Lamb., 1977. Climate Presnt, Past and Future vol. 2.
▲ <그림 1> 포도 수확일의 추세와 Central England(3~8월)의 평균기온

<그림 1>의 가로축은 연도를 나타낸 것이고 세로축은 각각 포도 수확일과 기온을 표기한 것이다. 특이한 점은 포도 수확 일은 매년 9월 1일 이후 며칠이 지난 이후 수확했는지를 표기 하였다는 점이다. 숫자가 작을수록 더워서 빨리 수확한 해이 고, 숫자가 클수록 추워서 늦게 수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약 1670년경부터 1675년경까지 극심한 추위가 있어서 포도 수확 일이 늦어지고 온도 그래프가 유례없이 낮았음을 발견할 수 있다. 아울러, 그 후에도 1700년경까지 전반적으로 낮은 온도 가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전과 이후의 그래프의 모양이 상당한 상관관계에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만약 당시의 프랑스와 영국의 기후가 현격히 달랐다면 이 두 곡선은 각각 다른 형태를 취했겠지만 실제로 두 곡선의 추세가 유사하게 나타났다. 다시 말하면, 중부 유럽의 포도 수 확일 그래프는 영국 중부의 온도 측정 곡선과 상관관계에 있 음이 입증되었다.

소빙기로 해석되는 17세기 유럽 기후에 따른 생활의 변화

17세기는 1635년부터 1639년까지와 1651년부터 1670년까지 건조하고 따뜻했다. 그리고 그 기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77년 동 안은 지속적으로 서늘하고 추운 기후가 유지되었음을 이전 사 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 이와 같은 소빙기로 해석되 는 17세기 유럽의 사람들은 어떤 생활의 변화나 사건을 맞이하 였을까? 본 필자는 과거의 사료 그림을 통해 17세기 유럽 사람 들의 생활을 엿보고자 한다. 우선 극심하게 건조했던 1651년부 터 1670년의 유럽에 주목하고자 한다. 당시 런던 시내의 가옥들 은 주로 목조건물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1666년 9월에 발생한 런던 대화재는 5일간 87채의 교회와 약 1만 3천 채의 가옥을 잿 더미로 만들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은 집을 잃었다.

런던 대화재는 많은 런던 사람들에게 목조주택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부연하면 목조주택 을 석조나 다양한 형태로 개선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뿐만 아 니라 1671년 즈음부터 적게는 30여 년간 찾아온 낮은 기온과 추위는 주택의 형태를 크게 변화하게 하였다. <그림 2>를 보면 그 특징을 알 수 있다.

ⓒ Frances, Joseph, Gies, Life in A Medieval Village, 1990, p.89
▲ <그림 2> 17세기 후반에 추위를 막기 위해 증축된 영국 농부의 집 모습

17세기 후반에 증축된 영국 농부의 집은 그림을 통해 세 가 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벽체가 두꺼워졌다. 이것은 극심한 추위를 피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리고 집안의 온기를 유지하기 위해서 2층을 올리고 굴뚝을 크게 키웠다. 물론 지붕 은 바람과 낮은 기온을 막기 위해서 풍성하게 목재 등을 얹었 다. 위의 두 사례와 같이 당시 유럽의 가옥은 기후의 변화에 따라서 민감하게 변화되었다.

한편, 17세기 소빙기 기후는 사람들의 복장도 변화시켰다.

ⓒ Christopher Hilbert, London The Biography of a City, Penguin Books, 1969.
▲ <그림 3> 17세기 중반의 추위를 막기 위한 여인의 복장과 연기 굴뚝

<그림 3>은 1643년 굴뚝 연기가 솟는 런던 콘힐(Cornhill) 지 역의 겨울옷을 입은 여인의 모습이다. 이것은 체코의 에칭(etching) 판화가 벤체슬라우스 홀라르 (W.Hollar)의 판화작품‘겨울’에 등장하는 모습인데 여인이 작용한 모피 옷의 부피가 당시 소빙기 현상의 강도를 느끼게 한 다. 그리고 여인의 뒤편에 높게 피어오르는 연기와 굴뚝의 모습 을 보면 당시 얼마나 추웠는지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17세기 후반의 추위는 다른 예술 작품에서도 등장한다. 영국의 화가 아브라함 혼디우스(Abraham Hondius)는 얼어 있는 템스강의 모습을 대표적인 두 작품으로 남겼다. 하나는 제목이‘얼어 있는 템스강, 동쪽에서 본 낡은 런던교(The Frozen Thames, Looking Eastwards Old London Bridge)’이다. <그림 4>가 바로 그것이다. 이 그림은 얼어붙어 있는 1676년 12월의 템스강을 그린 것인데 그림을 보면 당 시의 날씨가 얼마나 추웠는지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 H. H. Lamb, Climate, History and the Mordern World, 1982.
▲ <그림 4> 영국의 화가 Abraham Hondius가 그린 1676년 12월 템스강의 모습

ⓒ https://www.telegraph.co.uk
▲ <그림 5> 영국의 화가 Abraham Hondius가 그린 1684년 12월 템스강의 모습

영국의 화가 아브라함 혼디우스의 얼어 있는 템스강의 모 습을 표현한 다른 하나의 작품은 <그림 5>와 같다. 이 그림은 1684년 12월의 템스강을 그린 것으로 영국의 일간지 에서‘기록에 남을 영국의 가장 추운 겨울’이라고 기사화하였다. 아울러 템스강은 월평균 6℃ 이상 낮은 온도로 인하여 적어도 두 달 이상 얼어 있었고 17세기의 마지막 16년 동안은 영국 역사상에 가장 추운 기간이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그림을 살펴보면 단단한 얼음 위에 말과 마차, 간이 공간, 많은 사람들 등이 위치하고 있는 추운 겨울임이 유화로 표현되고 있다.

소빙기가 인류에 미친 영향과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우리의 자세

기후의 변화는 문헌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우선적으로 사 람들의 의복과 주거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보다 확산적으 로 전반적인 당시 사회, 경제, 문화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기 후변화는 자급자족형 농업시대의 근간에 영향을 주었다. 왜냐 하면, 농업은 당시 경제의 기준이 되는 기간산업이었으며 농 업증진기술이 지금과 큰 차이가 있어서 풍년을 얻기 위해서는 작물이 자라기 좋은 적당한 기온과 강수량 등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과거 역사를 보면 17세기와 같은 소빙기는 다양한 형태로 여러 번 반복되었고 해당 지역의 특성에 따라 기후적 특성을 보인다. 소빙기의 기온 강화로 극지에 빙하가 급격히 늘어남 으로써 동남아시아 등 적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해수량 감 소를 겪는다. 해수량의 감소는 강수량이 급격히 줄어 춥고 비 가 오지 않는 가뭄에 직면하게 된다. 이것은 결국 폐농과 기근 으로 이어져 인구 감소와 도시 황폐화를 수반한다.

남미의 마야 문명의 멸망도 시기적으로 소빙기가 발생한 시대와 일치한다. 마야 문명은 종교적 신념과 연계하여 독특 한 소빙기 재난에 대한 취약성을 보였다. 마야 문명은 독특한 태양숭배 신앙이 있었는데 하나의 태양이 오랜 시간 동안 보 이면서 형성된 따뜻한 기온은 평온함과 윤택함을 상징하였다. 그러나 소빙기의 낮은 일조시간과 추운 기후 등은 지형적으로 분지 가림 현상이 강한 위치 특성에 따라 이 문명의 신앙 세계 에 극도로 위협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고산지역의 한랭화 현상 속에서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으로 되었을 것이다.

현재,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의 이름 하에 새로운 기술을 개 발하고 그것을 네트워크로 엮고 일반화하는 것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한 혁명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모두가 합심하여 단결하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이럴 때일수록 과 거의 문헌을 통한 지구의 기후와 그에 따른 우리의 역사를 기 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앞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우리는 자연 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그것에 순응해야 하는 인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행동으로 인해 배출된 이산화탄 소, 그리고 그로 인해 심해지는 기후변화를 적극적으로 대응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용근 / 서울대학교 대학원 교육학 박사(협동과정 환경교육전공)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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