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호 특강취재: 열린연단,〈시(인)의 사회적 위치와 기능〉] 시(인)의 가능성

강연의 제목인‘시(인)의 사회적 위치와 기능’에서 시와 시인은 동시에 나타나면서 온전히 붙어있지 못한다. 시와 시인은 괄호와 함께 시(인)으로 맺어져 있다. 강연자 진은영 시인은 시와 시인을 따로 분리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시와 시인’으로 떨어지는 간격만큼도 강연자는 아쉬워한다. ‘시와 시인’을‘시(인)’으로 붙여놓으며 강연자는 삶을 시로 만드는‘만인의 시인되기’에 관해 이야기한다.

시를 쓰는 사람이 시인이라면 시에 거주하는 사람은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이데거는‘인간은 시적으로 거주한다’고 말하며 신성(神聖)과 시를 연결하고, 인간 실존을 신성의 차원에‘거주함’으로 설명한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하늘과 땅 사이에 미만해 있는 신성을 척도로 삼아 제 삶을 측정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거주의 본질이다. 하이데거에게 시를 짓는 일은 자신의 삶을 측정하는 하나의 척도를 세우는 일이다. 따라서 시를 짓는 일은 시인에게만 주어진 역할이 아니다. 각자의 차원에 거주하는 개인은 각자의 시를 짓고 있으며 그것은 곧 삶을 짓는 것이다. 시(인)이라는 말에서 시와 시인은 동시에 읽힐 수밖에 없다. 시는 시인을 내포하며 시인은 시를 자신 안에 이미 내포한다. 진은영 시인은 시를 짓는 사람만이 아닌, 삶을 짓는 사람을 시인의 자리에 위치시키며 짐 자무쉬(JimJarmusch) 감독의 영화 <패터슨 Paterson>(2016)의 이야기로 시와 시인에 대한 강연을 시작했다.

 

시적으로 거주하기

미국 뉴저지의 소도시 패터슨에 사는 패터슨이란 이름의 주인공은 일상 속에서 시를 쓰는 평범한 버스 운전사이다. 영화는 패터슨의 일주일간의 일상으로 채워져 있다. 그는 매일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버스 운행을 하고 퇴근해서 아내 로라와 저녁을 먹고, 반려견 마빈을 데리고 산책을 하며 중간에 동네 술집에 들러 가볍게 술을 한잔 마신다. 그런 일상 속에서 패터슨은 틈틈이 시를 쓴다.

신형철 평론가의 말에 따르면, <패터슨>은 시와 시인에 대한 영화이지만 가장 정확한 표현은 시작(詩昨)에 대한 영화이다. 이것을 진은영 시인의 말로 옮긴다면, <패터슨>은 예술과 삶을 다루는 시(인)에 대한 영화이다. 영화엔 두 명의 예술가가 등장한다. 시를 쓰는 주인공 패터슨과 함께 그의 아내 로라는 항상 무언가 예술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그녀는 그림을 그리고 가수를 꿈꾸며 자신만의 레시피로 음식을 만든다. 이때 그녀의 목표는 자신의 예술작품을 완성해서 사람들 앞에 공개하고 찬사를 받는 것이다. 그녀는 남편의 시 또한 출판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패터슨은 출판에 관심이 없으며 시 짓기 자체의 순수한 기쁨에 만족한다.

강연자는 인간의 활동을 노동, 작업, 행위로 구분한 한나 아렌트의 논의를 빌려와 패터슨과 로라의 각기 다른 예술 활동을 설명한다. 아렌트가 말하는‘노동’은 삶의 유지에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활동이며, ‘작업’은 무언가를 제작해서 그 생산물을 다른 사람에게 진열하는 것이다. 그리고 ‘행위’는 결과물과 무관하게 과정 자체로 자기 충족성을 지닌 활동으로, 결과물에 비중을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작업’과 구별된다. 이에 따르면 로라는‘작업’의 영역에서 예술을 바라본다. 예술작품의 탁월성과 불멸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로라는 패터슨의 예술작품이 소멸되는 것을 가장 우려하며 패터슨에게 복사본을 만들어둘 것을 재촉한다. 반면 패터슨의 예술은 ‘행위’에 가깝다. 패터슨의 시들은 어느 날 그가 복사본을 만들어두기 위해 원고를 소파에 올려두고 외출한 사이 반려견 마빈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진다. 이것을 강연자는 패터슨의 무의식적 의도로 파악한다.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출판을 이행하기 직전에 그는 차라리 자신의 원고를 없애버리고 영원히 시를 짓고만 싶었던 것이다. 그는 원고를 소파에 올려두면 마빈이 그것에 관심을 보일 것을 알고 있다. 패터슨은 쓴다는 행위, 시작(詩作) 자체에서 예술 활동의 의미를 찾는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찬사보다 주변 사람들과의 일상적인 만남에 더 집중한다. 영화에선 그가 시를 쓰는 장면보다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장면이 더 많이 나온다. 그의 시는 그가 사는 패터슨이란 도시와 그가 접촉하는 주변 사물들,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스며 나온다. 그는 시를 쓴다기보다 시에 거주한다. 그에게 시 쓰기는 예술의 고유한 공간에서 삶과 분리되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에 이미 내포된 것이다.

 

해방된 존재로서의 시인

강연자는 <패터슨>을 삶이 되는 시 쓰기, 삶과 구분되지 않는 예술에 관한 영화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강연자가 삶 자체로 예술이 되는 것만 진정한 예술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에는 삶에 거리를 두어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만들거나 삶에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실험적인 형식 또한 존재해왔다.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ere)는 예술과 삶의 긴장관계를 예술의‘자율성’과‘타율성’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기존의 감성적 형식에 충격을 주면서 낡은 시간과 공간을 파괴하는 예술의 해방적 잠재력이 예술의 자율성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연극이나 아놀드 쇤베르크(Arnold Sch¨onberg)의 무조음악은 기존의 질서에 저항하며 공동체에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 변혁을 주도한다. 반면 예술의 타율성이란 예술이 어떤 외적 요구에 종속되지 않고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벗어나 그 자체로 삶이 되는 것을 말한다. 랑시에르는 예술에서 자율성과 타율성이 공존하며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때 자율성과 타율성의 긴장관계는 새로운 공동체의 구성을 촉진시킨다.

예술의 자율성을 통해 미적 실험을 수행하면서 공동체의 낡은 언어를 파괴하고, 예술의 타율성을 통해 소외되어 있던 공동체의 삶을 문학적으로 가시화할 때 공동체는 새롭게 재구성된다. 이에 강연자는 시인은 가장 예술적인 동시에 가장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술에서 미학과 정치가 융합될 수 있을 때 우리의 삶에는 새로운 시간과 공간이 출현한다. 시를 쓰는 행위로 자신의 삶 속에 스며있는 예술을 밖으로 내보이는 동시에 공동체의 삶을 바꾸는 것이 시(인)의 사회적 기능이다. 시(인)의 논의에 있어 시와 시인이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시(인)의 예술에서 개인과 공동체는 서로 맞물려 있다. 랑시에르에 의하면 예술가는 가능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있으며‘해방된 존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해방된 존재’가 내놓은 작업의 결과물은 우리 공동체의 낡은 감각을 파열시키며 감각적 현실을 새롭게 바꿔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만인의 시인되기는 공동체의 감성적 분배를 바꿔놓는 강력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일상 속에서 우리 곁에 존재하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의 모습은 특별한 존재인 시인 패터슨으로 이어지며 일상을 특별한 모습으로 변화시킨다. 미학적으로 탁월하고 특별한 예술작품에 대한 강박관념에 짓눌려 잊고 있었던 예술 활동의‘해방적’ 역할과 그 사회적 기능은 <패터슨>의 버스 운전사-시인의 모습과 함께 시(인)의‘가능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시인, 사회적 별종이자 마지막 청자

강연자는 시인의 위치를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하나는 미학적 실험을 통해 사회의 관습적 감각과 거리를 둠으로써 공동체에 새로운 감각적 흐름을 끌어내는‘사회적 별종’으로서의 시인이다.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과 다른 사물들 사이로 들어와 삶의 당면한 문제들과 접촉하고, 시가 그저 시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는 삶의 언어가 되도록 하는 사회의‘마지막 청자’로서의 시인이다. ‘사회적 별종’으로서의 시인이나‘마지막 청자’로서의 시인이나 강연자 진은영 시인이 바라보는 시(인)은 개인의 삶 속에서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공동체적 인간이고, 공동체 속에서 거주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시(인)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하지만 시(인)은 그 가능성만큼 쉽게 수행할 수 있는 일만은 아니다. 강연자는 이렇게 강연을 끝맺는다. “시인은 아무도 듣지 않는 작고 보잘것없는 소리를 마지막까지 경청함으로써 누군가의 존재를 드러나게 하고, 그 드러난 존재가 주는 울림을 통해 시를 씁니다. 물론 패터슨이 사는 고요한 도시와 달리 우리의 도시는 더 불안하고 비탄스러운 일들로 가득해 듣는 이들을 무척 고통스럽게 할 테지만 말입니다.”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은 올해 1월 6일부터‘동서 문명과 근대’라는 주제로 근대성 강연을 진행해왔다. 본 강연은‘예술과 근대 사회’의 여섯 번째 강연으로 지난 11월 17일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한국상담대학원대 교수이자 시인인 진은영 강연자가‘시(인)의 사회적 위치와 기능’이라는 제목으로 진행한 강연이다. 열린연단은 12월 1일부터‘예술의 역사적 전환’이라는 주제로 총 7회의 강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강연은 주 1회 열리며 열린연단 홈페이지(openlectures.naver.com)를 통해 참가 신청을 할 수 있다.

 

허승모 | suam3480@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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