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호 책지성: 장 앙텔므 브리야 사바랭, 『 브리야 사바랭의 미식예찬』] 미식의 시대, 미식의 고전이 주는 가치

 

2018년의 대한민국은 미식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TV에서는 연일 음식과 관련된 새로운 방송들이 쏟아지고, 현재 방영 중인 프로그램 수만 해도 십여 개가 넘는다. 또한, 관찰 예능 프로그램인 <전지적 관찰 시점>에서는 방송인 ‘이영자’의 영자미식회가 나오고, 낚시 예능 프로그램인 <도시어부, 나만 믿고 따라 와>에서도 생선을 이용한 요리를 선보이는 등 음식 프로그램 외의 관찰, 낚시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미식 콘텐츠를 넣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인터넷 방송으로 가면 더욱 선명해진다. 먹는 방송을 뜻하는 ‘먹방’이란 단어는 이미 ‘Mukbang’이란 한국의 미식 콘텐츠로 세계화가 진행 중이다. ‘Mukbang’을 검색하면 한국의 ‘먹방’을 따라 하는 해외의 인터넷 방송들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미식 콘텐츠는 지금 시대만의 트렌드일까? 미식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고대인들이 보던 음식관

음식과 관련된 글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존재했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글은 대부분 요리와 관련된 실용적인 요리책이나, 의학과 유사의학과 같은 섭생법에 관련된 책이었다. 하지만 문학적 측면에서의 책도 있었다. 그리스의 시인 아르케스트라테스(Archestrates, 기원전 4세기)의 ‘가스트로노미아(Gastro-nomia)’가 가장 오래된 문헌이다. 이 시의 제목인 ‘가스트로노미아’에서 따온 ‘가스트로노미(gastronomie)’라는 어휘가 1801년 베르슈(Joseph de Berchoux)의『미식법, 또는 식탁에 앉은 농부』라는 책이 출판되면서 본격적으로 미식법이라는 용법으로 쓰이기 시작한다. 미식법(gastronomie)이라는 단어는 사람의 장기인 ‘위’를 뜻하는 그리스어 ‘가스테르(gaster)’와 ‘법칙’을 뜻하는 ‘노모스(nomos)’로 이루어졌다. 어원으로 유추해 볼 수 있듯이 미식법은 과학적인 먹는 것의 규칙에 대해 말하는 단어였다. 즉, 예로부터 과학적인 식사법과 식사를 평가하는 비평은 중요한 일이었다.

 

현대적 미식의 시작, 프랑스 혁명

왜 미식법이라는 단어의 용법은 1801년부터 퍼진 것일까? 이는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19세기 초의 파리가 당시 유럽에서 가장 발달된 요리의 도시이자, 최초로 ‘레스토랑’이 등장한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현대적인 요식업은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프랑스 혁명과 함께 귀족계급이 몰락하면서 귀족들에게 요리하던 요리사들이 실업자가 되었고, 이들은 부유한 부르주아들에게 고용되거나 개인의 레스토랑을 개업했다.
‘레스토랑(restaurant)’이라는 단어는 원래 ‘체력을 회복시키다’라는 뜻의 동사 ‘레스토레(restaurer)’의 파생어에서 시작된 보양식과 같은 수프를 뜻했다. 18세기 말부터 등장한 레스토랑은 이전에 존재하던 선술집이나 여인숙에 딸린 식당들과는 달랐다. 본격적인 레스토랑이 등장하기 이전의 사람들은 식사를 가정에서 해결하거나, 가정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해결해야 할 경우, 본인이 묵고 있던 여인숙에서 식사하던 상황이었다. 식사만을 위해 어느 장소에 방문한다는 것은 레스토랑으로 인해 처음 등장한 일이었다. 개인의 기호에 맞는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오늘날과 같은 레스토랑의 등장은 당시 언어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20세기 이후부터 ‘레스토레(restaurer)’에‘식사를 제공하다’라는 뜻이 포함됐다.
레스토랑의 탄생으로 가정 요리와 직업적 요리가 구분되었고, 귀족들만이 베풀던 사교 문화의 상징인 연회가 부르주아들을 통해 점점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 이후부터 사회의 지배층으로 등장한 부르주아 계급은 귀족의 식사법, 미식법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새로이 지배계층에 들어간 부르주아들은 사회적 활동의 무대가 되는 연회에서의 미식법을 익히는 것이 필요했다. 시대적 흐름이 이러했기에, 19세기 프랑스에서 브리야 사바랭(Jean Anthelme Brillat-Savarin)과 같은 학자들의 미식 담론이 시작됐다.

 

ⓒ pixabay

 

200년 전, 미식 예찬의 가치

“당신이 먹은 것이 무엇인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라는 말로도 유명한 이 책의 저자, 브리야 사바랭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의 사람이다. 브리야 사바랭은 요리사도 아니었고, 미식 전문 작가도 아니었다. 그는 법률가이자 정치가로서, 평소 사색을 즐기고 새로운 이론에 흥미를 느끼는 스스로 교수라 즐겨 부르는 학자였다. 따라서 미식을 주제로 한 글을 쓸 때도 단순한 수다가 아닌, 당시 등장하기 시작한 생리학적, 철학적인 성찰을 글에 담고자 했다. 1825년에 출판한 이 책이 200년 가까이 재판되고 지금까지도 미식의 경전으로 읽히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마침내 프랑스에서 선정한 세계 문학의 주요 작품에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레 미제라블』(1862), 톨스토이(Lev ikolayevich Tolstoy)의『전쟁과 평화』(1867),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햄릿』(1611)과 함께 선정되면서 당당히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과학적 요소와 문학적 요소가 모두 글에 나타나는 모습은 저자가 살았던 18세기 후반, 19세기 초 프랑스의 역사적 배경과도 관련이 있다. 당시에는 이성의 계몽을 강조한 프랑스 계몽주의 백과전서파(百科全書派)와 감각 경험의 역할을 강조한 영국 경험론의 영향으로 실증적 정신이 싹트고 있었다. 이는 이후 19세기 실증주의의 바탕이 되는데, 생물학에서는 생리학을 병리학과 구분되는 의학의 한 분야로서 연구하기 시작한다. 이를 통해 스스로 의학 애호가라 했던 브리야 사바랭은 음식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소화 과정에 대한 생리학적 설명들도 책에 등장시켰다. 인상학이나 골상학적 관점에서 쓴, 지금은 비합리적이라 보이는 표현들도 당시로써는 새롭게 등장한 매우 학구적인 표현들이었다.

 

21세기 현대, 미식 예찬의 가치

200년가량 지난 고전 서적이 지금의 시대에도 가치가 있는 이유는 먹고 즐기는 것이 익숙지 않았던 시대에 식욕과 미식을 예찬한 브리야 사바랭에게 있다. 그리스도교의 7대 죄악 중에는 탐식(貪食, Gluttony)이 포함된다. 중세적인 사고방식에서 식욕은 절제되지 못한 죄악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식욕과 같은 인간의 욕망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여기고, 이를 아름답게 즐기며, 성찰하고, 다른 이와 말하기 혹은 글쓰기의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이것은 프랑스 혁명과 함께 대두된 인권존중과 개인주의가 태어난 시대적 상황의 반영이기도 하다. 하지만 브리야 사바랭의 미식 예찬은 단순히 식욕과 미식을 예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미식 문화가 요리에 대한 화려한 영상으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데 집중한다면, 브리야 사바랭은 본능이 아닌 이성으로서 미식의 의미도 일깨워준다. 식욕과 삶에 대한 낙관주의를 통해, 책의 중심 소재는 음식과 식생활이지만, 이를 통한 수많은 인간사로 삶에 대한 성찰을 제공하는 것이다.
편견보다는 경험과 성찰로써 판단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브리야 사바랭의 모습은 200년이 지난 21세기에도 여전히 가치가 있다. 얼마 전, 먹방이 비만을 조장하기 때문에 규제의 대상이 된다는 루머가 퍼진 적이 있다. 해당 루머는 보건복지부에서 공식적으로 “폭식을 조장하는 미디어에 가이드라인을 만든 것은 사실이나, 법적 효력이 없기 때문에 규제는 아니다”라고 발표하며 일단락되었다. 이는 본능으로서 미식의 의미만 강조된 상황에서 등장한 해프닝이었다.
우리는 음식을 주제로 다루는 콘텐츠 열풍의 현상만 보는 것이 아닌, 브리야 사바랭처럼 편견없이, 그 배경에 있는 인간에 대한 성찰을 해야 한다. 지금의 우리 미식 문화에서 문화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한 번쯤은 이성으로서 미식의 의미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음식을 단순히 먹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인간에 대해서도 성찰하는 날, 국민 건강 증진은 물론이고 좀 더 건강한 미식 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박효성 | qhs0801@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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