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호 영화비평:<리틀포레스트>(2018), 나만의 작은 숲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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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순례 감독이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만화를 한국의 정서와 풍토에 맞게 제작한 <리틀 포레스트>는 주인공 혜원(김태리)이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며 3개월 전 자신이 고향으로 돌아온 시점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대학을 진학하면서 서울에 상경한 혜원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동시대 청춘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취업도 연애도 학업도 마음대로 되지않는다. 영화는 그런 혜원이 눈 덮인 시골길을 걸어 집으로 들어오는 장면을 이어 붙인다. 반겨주는 가족 하나 없는 그곳, 미성리 집에 도착한 혜원은 시린 손을 비벼가며 눈 속에 묻혀 있던 배추와 파를 캐내 배춧국을 끓여 먹는다. 그렇게 혜원은 그동안 방치되어 있던 집에 온기를 불어넣기 시작한다. 하지만 혜원은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곁에는 고향을 떠나지 않고 농협직원이 된 단짝 은숙(진기주)과 도시에서의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농부가 된 재하(류준열)가 있기 때문이다. <리틀 포레스트>는 세 친구와 함께 시골에서 살아가는 혜원의 소소한 모습을 관객에게 펼쳐놓기 시작한다.

시골의 풍경과 농촌 판타지?

영화는 감자를 심고 막걸리를 담그는 등 자연이 제공한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혜원의 모습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아낸다. 여기에 더해진 시골의 사계절은 풀쇼트와 클로즈업으로 포착되어 관객들의 시선을 유혹한다. 풀쇼트는 혜원이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시선을 가지고 있으며 클로즈업은 각 계절의 시골 풍경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 이를 테면 여름날 연못에서 뛰어오르는 개구리와 가을날 길가에 피어있는 코스모스 등을 포착한다. <리틀 포레스트>는 이것이 전부인 영화이다. 카메라는 혜원이 감자, 토마토 등을 기르고 수확하는 모습과 그것을 가지고 음식을 만들어 먹는 모습을 전경화하여 관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 과정은 때로 숭고하기까지 하다. 혜원의 말처럼 농사는 긴 겨울을 뚫고 작은 정령들이 올라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혜원은 자신도 그렇게 되길 희망한다. 오랜 시간의 기다림을 거쳐 삶의 해답을 찾고 싶어한다.
많은 이들이 이 점을 지적하며 <리틀 포레스트>에 힐링영화라는 수식어를 붙여주었다. 그들은 동시대 TV가 앞을 다퉈가며 채택하고 있는 힐링예능과 다를 게 없다고 지적한다. 이 영화도 시대의 유행에 편승, 지치고 바쁜 도시인들에게 자연 풍광을 보여주는 것으로 일시적인 도피처를 제공해 준다는 지적이다.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회피하고 눈 감아버리는 자세, 이른바 시골 판타지라는 것이다. 이 영화가 농사와 음식을 만드는 일을 그린 장면이 이 주장의 근거로 작동한다. 주지하다시피 농사와 조리는 많은 시간과 노동이 필요한 작업이다. 하지만 영화가 보여준 것은 시골의 삶에서 노동을 지워버린 피상적인 결과물이다. 혜원이 밭일을 하는 장면과 재하가 홀로 과수원을 돌보는 장면은 저게 과연 가능한 것일까라는 생각을 품게 만든다. 게다가 시골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편함을 잠시 언급하는 장면, 예컨대 혜원의 일상에 참견하는 마을 어른들의 모습과 생필품이 다 떨어진 상황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영화평론가 김지미는 이러한 점을 지적하며 이 영화에‘어떻게’가 없다고 말한다. 영화는 혜원이 시골에서 버티는 과정을 삭제함으로써, 즉 경제적 조건에 대한 고민을 지워버린 다음 “오랜만에 만나도 반갑고 적당히 무심한 친구들”과 부모의 부재를 더함으로써 혜원을 서사를 초월한 존재로 만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따뜻한 집과 먹거리를 제공하는 자연을 누리며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는 혜원의 모습은 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이가 아니라 선택받은 이의 모습에 가까워 보인다.
이러한 주장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리틀 포레스트>가 재현한 시골의 풍경과 삶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리틀 포레스트>를 시골판타지로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다른 의견에 대한 단초는 이 영화가 시골과 도시의 풍경을 대조시키는 방법에서 찾을 수 있다. 영화가 재현한 미성리의 사계절은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곳이며 도시의 삶은 인스턴트 식품과 회색빛으로 물든 곳이다. 영화는 시골의 풍경을 주로 풀쇼트로 보여주고 있으며, 도시의 모습은 클로즈업으로 포착하고 있다. 때문에 시골에서의 혜원은 자연의 일부처럼 보이는 반면 도시에서의 혜원은 제자리를 갖지 못하고 어딘가에 끼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노량진 학원에서 다른 이들과 공부하는 것과 길거리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는 모습을 망원렌즈로 포착한 클로즈업이 대표적이다. 연심초점 안의 타인들은 명확히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이들이며 그들과 서로 부대끼면서 혜원과 생활하고 있다. 이러한 <리틀 포레스트>의 장면화는 시골과 도시를 대조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방점은 플래시백으로 제시된 엄마(문소리) 목소리와의 조응에 찍혀야 한다.

 

어머니와 딸, 파종과 수확

 

 혜원의 엄마는 수능이 끝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어느 날 갑작스럽게 자취를 감춘다. 미성리는 혜원 아빠의 고향으로, 병든 그의 요양 차 온 가족이 내려온 것이었다. 아빠가 죽은 뒤로 홀로 혜원을 보살피며 키우는 엄마는 혜원의 감정과 기분을 파악해 그때마다 어울리는 음식을 만들어 준다. 어린 혜원에게 음식은 일종의 처방전이었다. 이것은 혜원이 음식을 하면서 엄마를 떠올리는 장면과 연결된다. 혜원은 왜 아빠가 죽은 뒤에도 아빠의 고향에 엄마가 계속해서 머물게 된 이유를 고민하게 된다. 혜원은 재하와 은숙에게 금방 서울로 돌아갈 것이라고, 미성리에는 잠깐 내려온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는 그 순간마다 혜원이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을 끼워 넣는다. 엄마는 혜원에게 음식을 해 주며 땅에 뿌리 내리고 열매를 맺는 기다림을 거쳐야 비로소 수확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자신이 뿌리 내릴 수 있는 토양은 마음과 애정을 쏟을 수 있는 자신만의 ‘작은 숲’이며 기다림은 바람과 햇볕을 견디는 과정이라는 설명도 함께 말이다. 혜원은 엄마가 해 줬던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엄마의 이런 마음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다. 영화의 후반부는 다시 도시로 올라간 혜원을 보여준다. 여기서의 혜원은 이전의 혜원과 다르다. 카메라는 그녀가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포착하지 않고 풀쇼트로 보여준다. 혜원은 더 이상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지 않는다. 화면은 밝은 톤의 조명으로 이 모습을 나타낸다. 도시의 풍경 또한 풀쇼트로 포착되고 있다. 이것을 통해 영화는 혜원의 태도에 변화가 생긴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그녀의 옥탑방 앞 화분에서 자라난 봄날의 푸른 새싹으로 강조된다. 이전에 영화가 혜원의 자취방 냉장고에서 썩어가던 음식을 보여주었던 것을 떠올려본다면, 이 변화는 도시에서도, 아니 이제 어느 곳에 가더라도 혜원이 새로운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제 혜원에게 도시는 회색빛이 아니라 생기를 품은 곳이다. 혜원은 자신의 토양이 될 곳을 찾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플래시백을 사용한 것이며 도시 장면을 다르게 포착했다.
<리틀 포레스트>의 방점은 풍경이 제공한 힐링이 아니라 모녀간의 관계와 혜원의 변화에 있다. 한국영화에서 어머니와 딸의 모습, 그리고 그 관계를 통해 성장하는 서사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은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이 서사는 이들의 관계를 피상적이고 단순한 차원이 아닌, 파종과 수확이라는 우회로를 거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토양이 있을 때 가능하다는 말을 하고 있다. 엄마는 병든 남편과 어린 딸을 위해 포기했던 자신만의 것을 찾으러 여행을 떠난 것이며 딸도 그러하길 바라고 있다. 그것은 돌아옴이 예정된 여행이다.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자신만의 작은 숲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혜원이 미성리에 정착하는 모습이다. 언젠가 떠날 여행에 돌아올 곳이 될 수 있는 작은 숲을 만들기 위해서.

백 태 현 / 인하대학교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강사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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