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호 테마서평: 1인 미디어와 정치] 1인 미디어의 이중성

『몸짓들』(빌렘 플루서 저, 워크룸프레스, 2018)
『생명관리정치의 탄생』(미셸 푸코 저, 난장, 2012)
『우애의 미디올로지』(임태훈 저, 갈무리, 2012)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로장발롱(Pierre Rosanvallon)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감시’개념을 근대의 보편성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판옵티콘(Panopticon)’의 기능이 개인의 차원으로 확대된 ‘권력에 대한 사회적 감시’를 근대 정치라고 부른다. 1인 미디어가 무엇인지 질문하고 그 답을 구하고자 한다면, 이런‘사회적 감시’의 개념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1인 미디어야말로 판옵티콘의 일반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사회적 감시 개념과 판옵티콘

푸코의 판옵티콘 개념은 제레미 벤덤(Jeremy Bentham)에게 빌려온 것이다. 영국의 공리주의자인 벤덤에게 판옵티콘은 개인을 훈련시키는 규율 형식이었다. 벤덤은 범죄자를 구제하기 위한 ‘경제적인 방법’으로 원형 감시 건축물을 만들 것을 제안하는 서신을 작성했다. 벤덤은 자신의 건축물을 ‘교정의 집(the house of correction)’이라고 불렀는데, 판옵티콘의 목적이 강제노동처럼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고 잘못을 교정하는 기능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벤덤에 따르면 이 교정의 집에서 개인은 “어떤 일을 하던 자신의 능력껏 일한다면, 생계수단을 지급 받지 못할 이유가 없으며, 더 나아가서 의심으로부터 자유롭게 그 노동의 대가로 그들의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1) 푸코는 이런‘판옵티콘’에 대한 벤덤의 생각을 경제적 자유와 통치의 기술을 결합하려는 자유주의정부에 대한 구상이라고 보았다.2) 푸코의 분석처럼, 벤덤은 아주 긴 분량으로 기존의 처벌방식보다 월등한 ‘판옵티콘’의 경제성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 건축물에 대한 구상이야말로 자유주의 중에서도 정부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 작동해야 한다는 공리주의의 이상을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로장발롱은 ‘사회적 감시’라는 개념이 프랑스 혁명 시기에 귀족화하는 혁명 대표부에 대한 통제수단으로 처음 등장했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푸코의 생각을 민주주의의 문제로 확대시킨다. 당시 혁명대표부는 자신들의 독립성을 강조하기 위해 ‘임시 귀족체제’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에 대해 인민 주권의 관점에서 사회적 감시라는 대응책이 제시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감시’라는 것은, 전근대적인 군주제에서 수행했던 기능과 달리, 인민과 주권의 간격을 좁히기 위한 방안으로 도입되었다. 이것을 로장발롱은 감시 권력이라고 지칭하면서, 근대의 민주주의가 이런 믿음에 기초한다고 말한다.

 

로장발롱의 근대 민주주의, 감시 권력

시민세력 또는 사회가 수행하는 감시 권력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로서 로장발롱은 감찰(vigilance), 폭로(denunciation), 평가(evaluation)를 제시한다. 감찰은 정부에 대한 모니터링을 의미한다. 정부의 정책집행을 주시하면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행동이다. 정책을 중심으로 조직된 다양한 시민단체들이 주로 여기에 해당한다. 폭로는 말 그대로 정부 관료나 정치인의 비리를 공개하는 것이다. 이 비리에 스캔들도 포함된다. 로장발롱에 따르면, 스캔들의 폭로는‘권위에 동의하지 않는 허무주의적 묘사’와 ‘투명성이라는 정치적 미덕에 대한 신념’, 이렇게 두 가지 차원을 가진다. 가끔 지탄의 대상이 되는 ‘폭로 저널리즘’또는 ‘황색 저널리즘’역시 이런 의미에서 민주주의에 내재한 감시 권력의 기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폭로는 명망(reputation)이라는 정치인의 상징 자본을 훼손시키는데, 명망이야말로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제도’를 구축하는 토대라는 점에서 이런 효과는 무시하기 어렵다.3) 정치의 탈이데올로기화가 가속화하고, 복지부동에 대한 비판이 특이한 것이 아니라 규범적인 것이 되면서 개인의 잘못에 대한 비난은 체계에 대한 그것과 무관하지 않게 되었다. 과거처럼 개인과 구조가 명쾌하게 나뉘는 정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박근혜라는 이름 역시 이런 명망의 상징 자본 덕분에 권력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명망 하나로 유력한 정치인으로 부상한 경우는 안철수도 있다. 이들은 ‘이름’만으로 신뢰를 구축하는 탈이데올로기적 정치의 사례에 해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경우도 이렇게 폭로가 중요한 감시 권력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다. 대표적으로 인터넷이 이런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리고 인터넷에 기반을 둔 팟캐스트를 비롯한 1인 미디어는 이런‘감시’의 기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팟캐스트 시대의 개막을 알린 ‘나꼼수 현상’은 폭로라는 감시 권력의 기능을 전형적으로 보여주었다. 나꼼수 현상은 개인의 비리를 추적함으로써 체제의 문제를 드러내는 한편, 대항-민주주의로서 작동하는 감시 권력의 의미를 적절하게 밝혀준다. 나꼼수 현상은 대항-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가능했다. 따라서 나꼼수 현상이 선거로 이어져서 선출된 권력을 지향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동력을 상실하게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꼼수 자체가 대항-권력의 대상이 되어서 문제 제기를 받게 되었을 때,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도 한계로서 작용했다. 그러나 나꼼수 현상은 대항-민주주의의 감시 권력에 내재한 폭로의 기능을 보여준 훌륭한 본보기였다고 할 수 있다. 감찰이 시민단체의 문제라면, 폭로는 저널리즘의 역할이다. 나꼼수를 주도했던 이들이 자연스럽게 자신들을 ‘언론’이라고 지칭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감시 권력에서 폭로는 정치에 대한 허무주의를 조장하면서 정치적 이슈를 스캔들로 만들어낸다. 이 문제는 진실을 폭로하는 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 폭로의 목표가 더 이상 비리에 연루되어 있지 않았지만 합법적으로 보이는 행동 또는 처신이 그냥 의심스러울 때 더 큰 설득력을 가진다”는 것이 핵심이다.4) 폭로라는 감시 권력의 진실 공방에서 중요한 동기부여가 음모이론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 pixabay

평가에 따른 판옵티콘 효과, 근대성의 이중성

마지막으로 평가는 전문가집단을 중심으로 정부의 기능을 따져보고 판단을 내리는 행동이다. 평가의 목적은 정부의 통치기능을 개선하고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서도 명망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어디까지나 전문가의 기능성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로장발롱은 정치적 비판이 불가능했던 곳에서도 이런 정부 관료의 능력을 평가하는 감시가 있었다고 말한다. 이 주장에서 알 수 있듯이, 평가는 정치적 입장과 무관한 감시 권력이다. 한국의 경우 박정희 체제와 전두환 체제 같은 군사독재의 경우에 이렇게 전문가를 중심으로 구성된 평가의 감시 권력이 ‘민주화’를 추동한 중요한 원동력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에서 가장 강력하게 작동했던 것은 경제성장 이데올로기였고, 경제전문가의 평가는 아무리 독재 정부였다고 할지라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덧붙여서 간과할 수 없는 요소는 바로 미국이라는 거대한 전문가의 평가였다. 사회의 감시 권력 중에서 주시와 폭로라는 요소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할 때도 미국을 비롯한 전문가 집단의 평가는 영향력을 발휘했다. 시민사회나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조건이라고 할지라도 평가는 감시 권력의 역할을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근대화의 논리에 체현되어 있는 민주주의의 속성이다.
1인 미디어는 이런 근대성의 이중성으로 인해 양날의 칼을 감추고 있다. 형식적으로 1인 미디어는 민주주의의 확산이지만, 이념적으로 1인 미디어는 소비자 주의의 구현물이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의 미디어 상황은 감시 권력의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동시에 그 감시가 만들어내는‘판옵티콘’의 효과는 민주주의 자체의 존립 기반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이 택 광 / 경희대학교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1) Jeremy Bentham, The Panopticon Writings, ed. Miran Bozovic, London: Verso, 1995.
2) Michel Foucault, The Birth of Biopolitics: Lectures at the College de France 1978-79, trans. Graham Burchell, London: Palgrave, 2008, p. 86.
3) Rosanvallon, Counter-Democracy, 2008, p. 48.
4) Rosanvallon, Counter-Democracy, 2008, p. 51.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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