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호 인터뷰: 김재순, 국가기록원 서울기록관장] 아카이브를 통해 학문의 내용이 실학이 되기를

국가기록원 서울기록관 김재순 관장은 우리나라 현대 기록 역사와 함께한 인물이다. 국사학을 전공하고 IT기술에 대한 안목도 상당하여 서울기록관 개관부터 전자 기록 체계를 도입한 그는, 한국의 기록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다. 기록에 관한 사건이 많았던 요즘, 오랫동안 이 일에 매진한 그를 통해 어디에서도 듣지 못한 기록 이야기를 들어봤다.

 

현대 사관의 길을 개척하며 살아온 26년

Q. ‘기록’이라는 외길을 걸어오셨는데, 특별히 ‘기록’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원래 저는 기록에 관심이 없었어요. 기록은 역사 연구자였던 제게 단순히 사료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이렇게 ‘기록의 외길’을 걷게 되었죠. 제가 서울대학교 조교를 하고 있는데, 총무처 기록보존소(현 국가기록원)에서 역사전공자를 학예연구사로 뽑는다는 공문이 왔어요. 당시 학과장님께서 저에게 말하기를, 조선왕조 사관과 같은 자리니 관심을 두고 학교를 빛내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민 후, ‘단절된 기록 전통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현대 사관의 길을 한 번 개척해보는 것도 괜찮겠다’라고 생각해서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딱 1명 뽑는 자리에 경쟁률 12:1을 뚫고 입사해 지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Q. 기록보존소 연구원으로 일하시다가 영국으로 연수를 다녀오셨는데, 영국에서 어떤 공부를 하셨나요?
저는 92년도에 기록보존소에 들어와 한국에서만 주로 근무를 했는데, 직접 현장에서 기록 관리 연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최고의 서비스 수준을 갖춘 영국에 있는 런던시 아카이브(LMA, London Metropolitan Archives)에 요청을 넣어서 6개월간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런던에 아지트를 정해놓고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유럽의 아카이브를 둘러보았죠. 유럽은 전문가들이 직접 기록물을 다루면서 일을 해요. 그리고 한국과 달리 기록물 유형에 따른 보존방법을 정교하게 시스템화 해놨어요. 아날로그 문서들은 표준화된 편찰 봉투에 넣어 이관하고, 은행·종교 단체 등 민간 기록물도 수집합니다. 수집한 기록물들은 선임 기록 전문가와 조수 2명으로 이루어진 조들이 각각 맡아서 목록화하고 보관합니다.
또 하나 부러운 건 열람실 서비스예요. 고객들이 찾는 기록물은 전산으로도 볼 수 있고, 아날로그로도 볼 수 있도록 해 놨어요. 마이크로필름은 물론, 누구나 발급받을 수 있는 히스토리 카드(History Card)카드로 원본도 보고 복사도 할 수 있게 해놨죠. 이런 유럽을 보면서 한국의 기록관리 시스템도 더욱 정교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관장님께서는 서울기록관 대지 확보 및 설계에 직접 참여하셨는데,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나요?

제가 기록관리법 제정을 하고, 중앙 보존 시설이 필요할 때 성남시 국유지가 보였죠. 국유지라 대지 매입비도 안 들고 부지도 넓어 외교부와 논의 후 이곳에 서울기록관을 지었습니다. 미국 국가기록관이 파르테논 신전을 본떴다면, 서울기록관은 옛 사고(史庫)를 본떠 만들었습니다. 건물이 위엄 있게 보이기 위해 우리나라 전통적인 3계단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경배 의식을 갖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서고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현재에 있는 사람이 역사와 대화를 하도록 서고와 홀 사이에 중앙정원을 만들어놓았습니다. 나아가 여기서 더 부지를 확보해 기록문화 테마파크와 교육문화센터를 지을 계획입니다.

 

혁신적인 ‘열린 정부’ 구현을 위한 체계,

국가기록원 서울기록관

Q. 국가기록원은 대통령기록관, 서울기록관, 부산기록관, 대전기록관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다른 기록관들과 다른 서울기록관만의 특징이 있나요?
우선 우리나라 첫 기록관은 부산기록관입니다. 부산기록관은 1984년도에 개관했는데, 이 건물은 사실 제2의 6·25 전쟁을 대비한 법령, 외교조약, 판결문 위주의 후방 보존 시설이었습니다. 그래서 형태도 지하 요새 형태예요. 부산기록관이 만들어지고 난 후에는 전두환 정권 때 태백산 사고에 있던 가장 완벽한 조선왕조실록을 가져와 보관했습니다. 그리고 대전기록관이 2013년에 지어지고, 2015년에는 세종시에 대통령기록관을 지었습니다.
다른 기록관들과 달리 서울기록관은 사고(史庫)를 본 떠 만든 건물로, 종합관리 중앙보존시설입니다. 여기에는 수도권, 강원권, 경기권, 그리고 중앙정부 기록물과 함께 1910년을 기준으로 의용화된 기관들과 의병에 관한 기록물, 토지조사 사업 때 기록한 측량보고서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또한, 서울기록관에만 마이크로필름과 스캐닝 기계가 있어 아날로그 종이 기록, 디지털 기록, 시청각 기록 및 마이크로필름 기록들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Q. 서울기록관은 종합 기록시설뿐만 아니라 전시실도 운영하고 있는데요, 서울기록관에서 꼭 봐야 하는 기록물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서울기록관에서는 ‘6·25 작전 일지’를 꼭 봐야 합니다. 예전에는 육군 국가정보원에서 자체 보존하도록 했는데, 노무현 정권 때 기록물을 이관하도록 지시받았습니다. 계룡대에 국사편찬위원회처럼 군사연구실이 있어요. 군사연구실은 작전일지를 주로 관리하는데, 기록원과 달리 온습도 조절이 안 되는 곳에 중요한 작전 일지들이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작전 일지를 보시면 군홧발로 밟은 자국도 있어요. 6·25 때 청성부대에서 관문까지 간 방법을 요약한 종합본인 ‘6·25 작전 일지’는 대한민국의 운명을 갈랐던 작전일지이기 때문에 꼭 볼 필요가 있습니다.

Q. 서울기록관은 최첨단 기록관리시설과 전시실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관장님께서는 2004년부터 국가기록의 전자적 관리체계를 설계하셨는데, 어떻게 기록 관리에 IT 기술을 도입하게 되셨나요?
제가 처음에 기록보존소에 들어왔을 때 기록원에 있는 기록물 목록 정도만 전산화를 했었어요. 그때는 전자기록을 종이 문서 관리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던 거죠. 그래서 제가 IT를 설계한 것은 기존 전산 목록화를 진행하며, 유럽과 호주 모델을 참고로 기록관리시스템(Record Management System)을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한국의 모든 부처에는 BRM(Business Reference Model)이라는 기능 분류 체계가 있어요. 노무현 정권 때 도입된 건데, 매년 BRM 시스템에 들어있는 단위 과제를 바탕으로 공무원들이 일합니다. 그리고 문서별로 보존 기간을 설정해서 관리하는데,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 기관의 전체 기록물을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이관되고, 그중에서 영구 보존 대상은 우리 기록원으로 옵니다. 그런데 전자 문서의 경우 소프트웨어가 몇 년 지나면 바뀌어서 파일을 못 읽게 됩니다. 그래서 읽을 수 있는 pdf와 같은 보존 포맷으로 변환해서 원본 파일과 변환한 파일, 제목, 결재권자 등 이변 조작이 안 되도록 패키지를 만들어 보관합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 이후로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은 채 벌써 10년이 넘어버려서 다시 재설계를 해야 하는 시점이에요.

 

경험과 기술의 축적수단이자 창조의 원천, 기록물

Q. 우리나라 기록물은 과거 삼국사기, 실록부터 현재까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기록 관리 및 기록물의 특징이 있나요?
조선왕조실록의 경우 왕이 못 보게 했던 유일한 기록입니다. 사관들이 역사의 신뢰도와 도덕 정치 실현을 위해 행했는데, 제가 법 제정할 때 그것을 계승하기 위해 ‘기록물 생산 의무’를 부과했습니다. 다른 나라는 생산된 기록물만 이관 받아 관리하면 되는데, 저는 우리나라 기록보존 전통을 현대화하기 위해 기록물 생산 의무를 법제화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대통령 지정 기록물 제도’라고 해서 전임 대통령은 15년 이후에 대통령 기록물을 볼 수 있도록 해놨습니다. 사생활 관련된 것은 30년 정도까지 더 연장할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대통령 지정 기록물을 보기 위해서는 국회 재적 위원들의 2/3가 동의하거나 고등법원장이 영장을 집행했을 때만 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기록물 무단파기에 관해서 엄격하게 처벌하도록했습니다. 조선왕조 때는 사초(史草)를 누설하면 참형으로 다스린 점을 계승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기록물 관리법에만 형사처분 조항이 있어요. 대통령 기록물은 10년 이하, 일반 정부 기관은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이런 조항은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외국에서는 형사소송법에 따라 고발해야 처벌이이루어집니다.

Q. 대통령 지정 기록물 외에도 일반인들에게 공개할 수 없는 기록물도 있나요?
일반인들에게 공개 불가능한 기록물은 개인정보가 들어있는 기록물들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5공 청문회 등 역사청산 기록물은 개인정보일지라도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 국민들에게 공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외국과 같이 공개상한을 기록물 관리법 조항에 넣어서 역사 바로 세우기 관련 기록들은 공개해야 하는데, 아직은 할 수가 없어요. 예를 들어, 장면, 이승만 정권 때 부정부패했던 사람들을‘반민주행위자 공민권 제한 심사기록’이라 하는 기록물이 있는데, 당시에는 다
심사되고 공개되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법적 근거가 없어 당사자에게만 공개하고 있어요.

Q. 공공 기록물은 현재의 기억을 후대에 계승하는 보존수단을 넘어 다양한 콘텐츠로 부가가치를 만들고 있는데요, 공공 기록물을 활용한 전시 이외의 주목할 만한 다른 사례가 있나요?
국가를 경영하는 데 과거의 기록을 통해 진실을 밝히고 바로잡는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복궁에 있던 조선 총독부를 헐어내고 복원할 때 우리 기록원의 기록이 다큐멘터리로 다뤄진 적이 있어요. 제가 부산에 가서 발견한 조선 총독부 청사의 평면도와 함께 도쿄에 있는 에도성과 경복궁을 비교하는 민족적인 다큐멘터리를 KBS를 통해 방송했습니다. 이렇게 전시 이외의 다큐멘터리, 교육 자료, 개인에게 있어서는 순국하신 분들의 자랑스러운 기록 등으로 기록의 가치는 무궁무진합니다. 지금까지는 민원, 토지소유권, 전과 기록 조회 정도로만 해왔는데, 앞으로는 기록원 소유의 건축 도면, 환경관리 등 다양한 분야의 진실을 담고 있는 기록이 필요한 분야에 쓰일 수 있도록 가치 창조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Q.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합니다. 과거의 기록물을 통해 우리가 과거를 배우고 현시대 문제점의 해결책을 찾기도 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현대사회에서 국가기록원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공직으로 일하다 보니 기록은 ‘역사의 진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기록’은 학문의 내용이 실학이 될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이죠. 역사의 진실이 담보되지 않는 사회는 사회를 유지할 수 없어요. 그래서 외국 학자들은 논문을 쓸 때 모두 아카이브에 와서 기록 원본을 보고 연구를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록원은 민원 위주로만 하고 아직 학문 연구로서의 기록 열람이 활성화되지 않았습니다. 교육 내용의 콘텐츠는 결국 실학이 되어야 사회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인데, 대학에 있는 교육 내용은 외국 이론들이 많기 때문에 그것을 일으켜 세울 기록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 연구, 학문 연구 이전에 역사의 진실을 보존하는 것, 이것이 기록 관리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은 비록 상황이 어려울지라도, 외국처럼 기록원에 기록 전문가들을 두고자 합니다. 원생이 학술 열람을 오면, 그 주제와 관련된 기록물을 관리하는 전문가가 기록물 연대별 시리즈를 찾아주고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국가기록원으로 거듭나겠습니다.

 

 

대담·정리: 계은진 | nina01@khu.ac.kr
사 진: 김수애 | suaepic@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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