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호 인문학술: 한나 아렌트] ‘악의 평범성’ 다시 들여다보기

독일계 유대인 철학자이자 정치 사상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나치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의 재판 내용을 보며 ‘악의 평범성’을 개념화했다. 당시 아렌트의 사상은 유대계 커뮤니티와 가족 등 모두의 반대에 부딪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학자와 대중에게 큰 주목을 받으며 현재는 한국에도 널리 알려지고 있다. 사람이 악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악은 개인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일까? 본보에서는 사회가 가진 악마적인 시스템의 죄를 묻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 알아보고, 평범악의 의미를 짚어보고자 한다.

왜 또 아렌트인가?

최근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다시금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과 더불어 아 렌 트 의 『전 체 주 의 의 기 원 』(The Origins ofTotalitarianism, 1951)이 미국 서점의 눈에 띄는 매대에 자리잡았다. 대학에서도 교재로 다시 읽히고 있으며, 신문 칼럼 등에서도 아렌트에 대한 인용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했다. 유럽의여러 나라에서는 극우 정당들이 등장하고 대중적 지지를 조금씩 얻어가는 가운데, 나치를 떠올리는 사람들은 아렌트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 난민들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난민이었던 아렌트를 통해, 난민 문제의 역사가 뿌리 깊고 그 해결은 근본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하기도 했다.

리처드 번스타인(Richard Bernstein)은『왜 우리는 지금아렌트를 읽는가?』(Why Read Hannah Arendt Now?,2018)라는 책을 올해 6월에 출간하였다. 아렌트에 대한 세계적 관심의 폭증에 부응하기 위해 영국의 저명한 출판사 폴리티 프레스(Polity Press)가, 아렌트의 추천으로 뉴스쿨의 교수가 되었던 그에게 긴급 요청하여 나오게 된 책이다. 이 책은난민 문제에서 시작하여 인종차별문제, 악의 평범성, 정치에서의 거짓말, 공적 자유, 혁명정신, 정치적 책임 등 이 시대에 시의적절한 주제들을 간명하지만, 핵심을 건드리며 다룬다.한국의 문제의식은 좀 달랐다. 2016, 2017년의 촛불집회를통해 아렌트가 뜻밖의 주목을 받았다. 뛰어나고 유능한 인물들이 어떻게 그런 어리석고도 추악한 상황의 주역이 되었는지놀라며, 사람들은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개념을 떠올렸다.다른 한편으로, 대통령을 평화적으로 갈아치운 권력의 주인이시민들 자신임을 스스로 확인하면서, 이 과정을 가장 잘 해석할 수 있는 정치사상가로 한나 아렌트에 주목하기도 했다.

 

▲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 ⓒ New York Post

 

 

 

 

 

 

 

 

 

 

 

 

 

 

 

 

아렌트와 아이히만의 만남

‘악의 평범성’ 개념은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된, 600만 유대인 학살의 주범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 1906~1962)과 아렌트가 만난 결과로 나왔다. 이 만남은 아렌트가 전혀 예상치 못한 가운데 그녀의 일상과 계획된 일들을 깨트리며 진행되었다.

아렌트는 1906년 독일 하노버에서 태어난 유대인 여성으로어린 시절부터 총명했지만, 종교적으로는 유대교와 무관한 삶을 살았다. 철학에 대한 흥미가 많아 독일 헤센 주 마르부르크대학으로 진학했을 때 그녀의 관심은 형이상학과 기독교 신학에 있었다.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철학에 깊이매료되었던 그녀는 하이데거와의 관계를 지속할 수 없었기에그의 추천으로 칼 야스퍼스(Karl Jaspers)에게로 가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아렌트는 자신은 시온주의자가 아니면서도 시온주의자들의 활동을 돕다가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심문을 받았다. 많은 사람은 그런 상황에서 죽음을 면치 못했지만, 아렌트는 천운으로 무사히 나와 그 길로 어머니와 함께 파리로도망쳤다. 당시 파리는 유입된 난민들에게 관대하여 아렌트가머물기엔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나치 독일의 프랑스 침공이가까워지고, 프랑스에 친나치 정권이 들어서자 상황은 위험해졌다. 아렌트는 잠시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신분증을 위조하여 도망쳤다. 이후 파리에 있던 난민지원단체를 통해 얻은 비자로 포르투갈을 거쳐 1941년에 미국으로 갈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은 아렌트로 하여금 형이상학에서 정치로 관심을옮기게 만들었다. 1951년에 쓴 획기적 연구서로 평가받는『전체주의의 기원』은 자신의 경험에 대한 학문적 연구의 산물이었다. 이후 그녀는『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1958)과『혁명론』(On Revolution, 1963)의 저술을 통해 정치사상가로서의 길을 꾸준히 걸어가던 중에 아이히만의 체포 소식을 듣게 된다. 『전체주의의 기원』은 극우의 광기와 홀로코스트(Holocaust)의 참상에 대한 역사적, 정치학적 탐구였다면, 아이히만과의 조우로 나온『예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 1963)은 사람에게 주목한 철학적,심리학적, 도덕 철학적 설명의 시도였다.

아이히만은 아렌트가 파리로 망명을 갈 즈음에 비밀 나치당에 입당하였고, 이후 하인리 힘러(Heinrich Himmler) 예하의친위대에 들어가 유대인 담당 부서에서 책임자로 일했다. 유대인 문제를 해결하는 첫 번째 해결책이었던 유대인 추방 문제를 효과적으로 시행하기 위해‘원스톱 시스템’을 만들어 탁월한 업무역량을 발휘하였고, 유대인들을 게토(ghetto)에 가두었다가 강제수용소로 이송하였다. 이후 또다시 죽음의 수용소로 이송할 때에도 전시였던 당시의 복잡한 수송 문제를 잘해결했던 능력자였다. 아이히만은 종전 직전에 군대를 벗어나벌목공으로 숨어 지내다가 신분 노출의 위험을 감지하고 이탈리아를 지나 아르헨티나로 도망쳤다. 거기서 잠시 어려운 시간을 보내다가 벤츠 회사에 취업하여 생활할 수 있게 되자 독일로 연락하여 아내와 자식들을 불러 함께 지냈다. 그러던 중이스라엘 비밀조직에 그의 존재가 노출되어 납치를 통해 이스라엘로 비밀 압송되어 재판을 받게 된 것이었다.

예루살렘 법정에서의 아이히만

아이히만이 체포되어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을 것이라는정부의 발표가 1960년 5월에 있었고, 이듬해 4월에 기소되어 6월 29일에 첫 공판이 열렸다. 변호사는 독일에 공모하여 독일인으로 선임하였다. 12월까지 진행된 재판의 끝에 아이히만은이틀 동안 읽은 총 244개 항목의 판결문을 통해 유죄 선고를받아 사형에 선고되었다. 변호사는 즉각 항소하여 다음 해 3월대법원 항소심을 시작했으나 5월 29일 원심인정 판결로 결국2일 후인 5월 31일에 사형에 처해졌다. 시신은 화장하여 그 재가 지중해 이스라엘 수역 밖에 뿌려졌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체포 소식에 계획되었던 대학 강의와연구, 여행 등을 모두 취소하고, 잡지사 뉴요커(The NewYorker)에 연락하여 자신이 특파원으로 가겠다고 제안을 한다. 이후 재판에 대한 글을 1963년에 <뉴요커>에 연재하고 그글을 모아 후기를 보태어 1965년에 단행본을 낸다.

어느 누구라도 그랬겠지만, 아렌트를 포함하여 사람들은아이히만의 모습에서 악마, 사이코패스, 괴물과 같은 존재를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유리 부스에 앉아 창백한모습으로 자기변호에 열중하는 아이히만의 모습은 그런 괴물이나 악마가 아니었다. 정신과 의사들은 그를 정상으로 판정했으며, 한 의사는 “적어도 그를 진찰한 후의 내 상태보다도더 정상이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가족관계와 친구에 대한 태도 등에 비추어 볼 때 그는 “정상일 뿐 아니라 바람직한 사람”이라고도 했다. 그를 정기적으로 방문했던 한 성직자는 그가 “매우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했다.

악의 평범성 개념

악의 근본성이란 악에는 뿌리가 있다는 것이다. 원래 독일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용어이다. ‘도착된 사악한 의지’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 개념을 아렌트도『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사용했는데, 이때 아렌트의 초점은 인간을 잉여적으로 만드는 전체주의의 시스템과 관련하여출현한 악을 지칭하는 데 있었다. 악의 평범성 개념은 악의 근본성 개념과 명백히 대척점에 서 있다. 이제 아렌트는 악마적근본성이 아니라 오히려 실체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아렌트는 악은 근본적(radical)인 것이 아니라 극단적(extreme)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을 설명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이 단어는 본문에서 두 번밖에 등장하지않는다. 아이히만에 대한 묘사가 이 개념에 종합적으로 수렴되어 있을 뿐이다. 에필로그 바로 앞에 있는, 본문의 마지막부분에서 아이히만의 처형장 모습을 묘사하는 가운데 이 말이등장한다. 그는 형장에서 처형 직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 잠시 후면 여러분, 우리는 모두 다시 만날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운명입니다. 독일 만세, 아르헨티나 만세, 오스트리아 만세, 나는 이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이 말은 죽음을 앞둔 사람의 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말은 장례식에서죽은 자를 앞에 두고 그를 잊지 않겠다고 토로하는 추모객의말이었던 것이다. 아렌트는 그의 모습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죽음을 앞두고 그는 장례 연설에서 사용되는 상투어를 생각해 냈다. 교수대에서 그의 기억은 그에게 마지막 속임수를 부렸던 것이다. 그의 정신은 의기양양했고, 그는 이것이 자신의장례식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라고 말이다.

악의 평범성 개념의 핵심은, 그 악을 범하는 사람의 모습에대한 것이지 저질러진 악의 성격이 평범하다는 것이 아니다.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악의 근원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다. 둘째, 평범악의 악행자는 무능한 사람이 아니라 유능한 사람이다. 셋째, 악행자에게도 양심은 작용한다. 다만 다른 방식으로 작용한다. 넷째, 평범악의 징후는상투어 사용에 있다. 상투어로 인해 사유는 현실과 만나지 못한다.

‘평범성’ 이라는 말로 번역된 영어 단어는 banality이다.이 개념은 일본에서‘진부성’으로 번역되었다. 둘 다 가능한말이다. ‘일상성’ 혹은 ‘범속성’도 가능한 번역어이다. 악행의 근원이 너무나 평범하고 새로울 것이 전혀 없어서 진부하다는 것이다. 필자가『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번역할 당시‘평범성’이라는 단어를 선택하면서, 이미 오래전에 나와 있던일본어 역에서 사용된 ‘진부성’을 선택하지 않았던 것은 그어휘가 한국어 어감에 비추어 단어의 핵심을 적중시키지 못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 덕에 국정농단 심판의 과정에서 그잘못된 자들의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 모습에서 이 표현이쉽게 떠올랐던 것은 다행이었다. 하지만 평범의 모습에만 집중하면 이 개념의 본래적 의미를 놓치기 쉽다. 위의 첫째와 둘째보다는 네 번째가 핵심이다.

 

▲ 이스라엘에서 공개재판을 받는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의 실제 모습  ⓒ gettyimages

 

 

 

 

 

 

 

 

 

 

 

 

 

 

 

 

상투어(클리셰, cliche)와 무사유

악의 평범성의 핵심은‘무사유’에 있다. ‘생각 없음’, ‘생각이 이루어지지 않는 모습’이 평범한 모습이고 진부한 상황인 것이다. 이런 일은 너무 흔하게 눈에 띄지 않는가. 그런데 아이히만에게 생각이 작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아렌트는 어떻게 알았을까?

앞서 인용한 구절을 다시 보자. 아렌트는 죽음의 공포도 지배하지 못한 그의 정신의 의기양양함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바로 상투어였다. 재판 과정에서 아렌트가 포착했던점은 그가 상투어와 관청에서 사용하는 용어, 선전 문구 등이그의 언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가 하는 말을판사들도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판사들은 모두 독일 출신의유대인들로 독일어에 능한 자들이었음에도 그 표현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판사가 설명을 요구하자 아이히만은 달리 설명하지 못하면서 “관청 영어만이 나의 언어입니다”라고 답했다. 아렌트는 이에 대해 ‘그는 상투어가 아니고서는 단 한 구절도 말할 능력이 없었음’을 짚어 낸다.

예를 들어 보자. ‘안락사’ 라는 단어를 아이히만이 사용했다. 이 말의 일상적 의미는 나치들이 이 말로 의미한 바와 완전히 달랐다. 그들에게 이 말은 정신질환자, 지체장애인 등을죽여 없애는 일을 가리켰다. 독일인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위대한 아리아인(Aryan)들에게 그런 모습의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지워버리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또 ‘최종 해결책’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 말은 어떤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책이라는 뜻이지만, 실제 내용은 유대인들을 학살해서 제거하는 정책을 표현한다. 이 표현들은 나치들에게 통용되었던 것이지만, 아이히만의 경우 그의 언어 세계는 이런 어휘를 포함하여 업무의 일상용어들과 일반적 상투어들로 충만했던 것이다.

관청 용어와 상투어의 사용으로 인해 판사들은 아이히만의진술 내용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아이히만이 내실 있는 말을 피하기 위해, 또 사실 규명을 회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렇게 말을 하는 것으로 느꼈다. 하지만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이런 상투어를 일관성 있게, 단어 하나도 틀리지 않고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Eichmann Before Jerusalem, 2011)이라는 책을 쓴 베티아스탕네트(Bettina Stangneth)는 이런 모습이 철저히 연출된것이라고 해서 큰 논쟁거리를 제공했지만, 아이히만의 죽음의순간까지 그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점을 설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아이히만의 이런 모습은 말하기의 무능성이라고 표현된다. 자신의 언어 세계에 갇혀 외부로부터 오는 변화를 읽어낼 수없고, 자신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것이 사유의 무능성 표증이라는 것은 해석학에 대한 이해가필요하다. 인간의 언어는 사유의 내면을 전달하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사유가 언어로 구성된다. 언어가 풍부하면 사유도 풍부하고 언어가 굳어져 있으면 사유도 굳는다. 언어는 사유와 세계가 만나는 통로이다. 세계에서 늘 새롭게 일어나는일은 언어를 통해 정신에 전달된다. 체험되거나 이야기된 세계의 모습은 언어를 통해 사유로 치환된다. 달라진 표현이나세계의 변화에 반응할 능력이 있는지의 여부는 언어가 그것을적절히 드러내는가에 달려 있다. 질문을 달리해도 대답은 동일하게 나온다면 사유가 작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형장에서 아이히만의 입술로 나온 말은 장례식장의 상투어였다. 죽음의 현장이라는 상황과 그의 정신은 마지막으로 그의 사유와 세계의 만남을 방해했다. 아렌트는 이를 가리켜 ‘말과 생각을 허용치 않는 악의 평범성’이라 표현했다.

평범악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평범악의 모습은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누군가의 대화에서 내 말에 적절하게 반응하지 못하고 자신의 사고에 빠져 동일한 답변이 반복되어 돌아오는 경우는 사유가 작동하지않는 징후이다. 만일 스스로 돌아보아, 내가 그런 식으로 반응하고 있다면 나도 그런 평범한 악에 빠져 있는 경우이다. 특히 부모자녀 관계에서 내게 고정된 관념으로만 대한다는 생각에상대의 언어의 새로운 점을 읽어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엄마가 암에 걸려 완곡하게 고통을 호소하지만, 가족들은 그에 반응하지 못하고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그 다름을 인식하고 후회하는 식으로 그려진다. 왜 사소한 변화의 표현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한 것은 나의 생각에스스로 매여 있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바로 이런 자신의 모습을 돌아본다는 데서 시작한다. 내가 상투어로, 상투적인 반응을 보이는 순간 내가 평범악에 빠져 있는 것이다. 영화 <굿바이 만델라 GoodbyeBafana>(2007)에서는 주인공 제임스 그레고리가 아이히만과 달리, 현실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실수하지 않고 죄에 빠지지않는 모습이 그려진다. 주인공은 넬슨 만델라와 관련된 상황에 자신이 잘못된 방식으로 연루되었음을 깨닫게 되고 그에 반응한다. 자신의 상관에게 질문하고,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금지된 문서에 접근한다. 결국 그는 잘못된 명령을 거부하며자신에게 주어진 당근책을 거절한다. 결과는 실직이고 삶이주는 고통이었지만, 그의 선택은 옳았음이 결국 이후의 시간을 통해 입증된다.

독단에 빠진 사람

현실은 어렵고 직면하기가 힘들다. 현실은 비논리적이고거칠지만, 내면에서 자신의 논리에 부합하는 달콤한 세계를만들 수 있다. 그러나 세상과 유리되어 있는 의식 세계는 위험하다. 아이히만에게서 나타난 무사유의 함정에 빠지기 때문이다. 무사유와 생각 없음이 무능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태에 대한 인지, 주어진 문제 해결, 논리적 접근, 새로운 지식의 습득 등은 얼마든지 사유 없이도 가능하다. 다만 사유 없이성실한 사람은 성실한 악행자가 될 수 있다. 자신이 행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사유가 없이는 타인의 입장에서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못하게 되고, 세상을 온통 자신이 만든 창 안에서만 본다. 그런 이들은 독단에 빠진 자들이다. 이들은 말이 영향력을 갖고접근하는 데 저항한다. 말이 사유에 영향을 주지 못함으로써그의 사유는 자기 생각의 반복만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말은자신의 독단을 관철시키는 데에만 사용되며, 세계에 대해서는투쟁의 도구로만 활용된다.

독단에 빠진 자의 양심도 이상하게 작용한다. 자신이 믿는신념체계에 부합한 행동을 하지 않을 때 가책을 느낀다. 아이히만의 경우도, 자신이 월급을 받으면서도 주어진 직책에 충실하지 않을 때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직책이 유대인을 학살하는 것이었음에도 말이다.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세계에 대해 나아가 만나기 위해서는 말에 민감할 수 있어야 한다. 남에게 고통을 주다가도고통받는 이의 아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면 자신의 행위를 중지할 수 있다. 이것이 평범한 악에서 벗어날 수 있는길이다. 이 길이 평범해 보이긴 해도 실행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많은 어려움이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악의 평범성 개념의 한계

아렌트가 예루살렘에서 아이히만과 만남으로써 원래의 관심사였던 철학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그 결과가『정신의 삶』(The Life of the Mind, 1978)으로 나타난다. 이 책에서 아렌트는 평범악에 대해 ‘근원이나 동기 추적을 불가능하게 하는천박성’이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이 모든 악행자들의 상태를 설명할 수 있는 전가의 보도처럼 여겨져서는 안 된다. 악의 평범성 개념은 아이히만에 대한 판단의 결과일 뿐, 악행을설명하는 보편이론으로 제출된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홀로코스트 가해자들의 행위와 같은 악행을 설명하는 유일한방식이 평범악인 것은 아니다. 극단적 사악성, 사이코패스도있으며, 이데올로기적 확신 등도 그 원인이 될 수 있다. 다만아이히만의 경우를 통해 얼굴 없는 관료주의, 평범한 일상에서 묵과되고 간과되는 사유의 결여 또한 홀로코스트의 중요한한 요소였다는 것이 이 개념이 주는 교훈이다.

 

김선욱 / 숭실대학교 철학과 교수, 한국아렌트학회 회장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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