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호 영화비평:<염력>(2018), 순수한 피해자라는 강박이 만들어낸 풍경

영화 <염력>(2018)의 후반부에서 루미(심은경)와 주민들은 재개발을 이유로 들이닥친 철거용역들을 피해 건물 옥상으로 대피한다. 이때 경찰 특공대를 실은 컨테이너 박스가 크레인에 매달려 루미와 주민들이 있는 옥상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장면은 관객들로 하여금 9년 전 용산에서 벌어진 사건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른바 ‘용산참사’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용산 4구역 재개발 보상대책에 반발한 철거민과 전국철거민 연합회 회원들이 남일당 건물에서 경찰과 대치하다 발생한 화재로,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대원 1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당한 사건이다. 주지하다시피 이 사건은 경찰이 법으로 보장된 힘을 무책임하게 행사하면 비극이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을 뿐아니라 사건이 초래한 고통을 비극의 현장에서 있었던 철거민과 경찰 구성원들에게 떠넘기는 무책임한 공권력의 모습도 보여주었다(<염력>보다 1주일 먼저 개봉한 <공동정범>(2018)은 그렇게 조성된 삭막한 지형도에 관한 영화이다). <부산행>(2016)으로 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연상호 감독은 <염력>을 통해 자신이 새롭게 서술한 그날의 기억을 관객들에게 펼쳐 놓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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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로 상징되는 한국사회의 트라우마

영화평론가 송경원은 초능력을 가진 석헌(류승룡)이 영웅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서부극의 구성과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홀연히 나타난 외부인이 위기에 처한 집단을 구하고 떠나는 서부극의 영웅처럼 석헌이 그 궤적을 그린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염력>이 서부극의 전형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염력>을 서부극의 전형 위에 감독 특유의 요소들이 첨가된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염력>에서의 그것은 “용산참사로 상징되는 한국사회의 트라우마”의 형상화이며, 작품에서 감지할 수 있는 사회성은 <돼지의 왕>(2011)과 <사이비>(2013), <부산행> 등의 작품에서도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연상호의 작가적 특성은 한국사회의 부조리함과 거기서 발생한 패배의 감정이라는 것이다. <염력>에 대한 송경원의 평가는 시도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연상호 감독을 작가로 호명하기 위해 실사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까지 소환해 그의 특징이라 부를 만한 요소를 찾는 것은 무리한 작업처럼 보인다. 또한 이러한 지점이 과연 일관되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쉽게 동의하기 힘든 지점이 있다. 송경원의 말처럼 <염력>은 용산참사로 상징되는 한국사회의 트라우마를 건드리고 있다. 그러나 그 지점을 <염력>이 가지고 있는 작가적 특성으로 해석하는 것보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 차원으로 보는 것이 더 유용해 보인다.

영화는 철거 용역들이 주인공 루미의 치킨집을 습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한때 방송에서 맛집으로 소개되어 유명세에 올랐던 루미의 치킨집이 입주한 남평상가는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하는 대형면세점 부지로 선정되면서 철거될 위기에 처한 상태이다. 루미를 비롯한 세입자들은 정당한 보상을 해 주지도 않은 채 폭력적으로 쫓아내려하는 대형 건설회사와 용역들에 맞서 맨몸으로 그들의 터전을 지키는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용역들이 한밤중에 루미의 가게를 습격하게 되고, 그들과 몸싸움을 벌이던 루미의 어머니인 정희(김영선)가 목숨을 잃게 된다. 이에 루미는 자신과 엄마를 버리고 홀로 살고 있는 아버지인 석헌에게 전화를 건다. 서울의 작은 빌딩 경비원으로 일하는 석헌은 돈을 아끼기 위해 사무실 커피와 화장지 등을 몰래 챙기는 소시민이다. 그런 석헌은 산책을 나갔다가 우연히 마신 동네 뒷산의 약수물로 초능력을 얻게 된다. 우주에서 떨어진 무엇인가가 약숫물을 변화시킨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깨닫게 된 그는 루미와 철거민들을 위해 초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영웅으로 떠오르게 된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석헌이 초능력을 가지게 된 순간을 루미의 어머니가 죽는 장면과 교차해서 보여주는 지점이다. 이 조합은 두말할 나위 없이 석헌의 능력이 정희의 죽음과 관련 있다는 것으로, 아버지로서 그의 위상을 다시 복원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영화는 그 능력이 어떻게 생긴 거냐고 묻는 철거민의 법적 대리인인 정현(박정민)의 질문에“아빠 노릇 제대로 한 번 하라고 보내준 것 같아. 루미 엄마가 보내 줬는지…”라는 석헌의 대사로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이처럼 <염력>에 대한 방점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인식뿐만 아니라 석헌이 아버지로서 거듭난다는 지점에 찍혀야 한다. 앞서 언급했던 석헌의 대사에서 나왔듯이, 그의 주된 목적은 철거 예정지인 남평상가의 구원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루미에게‘아빠 노릇’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석헌이 루미에게 남평상가에서 나오라고 설득하는 장면에서도 이와 같은 모습이 반복된다. 석헌은 자신의 초능력이 돈벌이가 될 것 같으니 어차피 질 싸움 여기서 나와 자신과 함께 살자고 루미에게 말한다. 그러자 루미는 이제 와서 아빠 노릇 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때 영화는 플래시백으로 석헌의 기억을 끄집어내기 시작한다. 과거의 그는 친구의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빚을 지게 되었고 가족들을 버리고 야반도주를 하게 된다. 이때 그는 방에서 나온 어린 루미와 눈을 마주치게 된다. 그런 그는 어린 루미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 기억을 떠올린 석헌은 죄책감에 루미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된다. 석헌이 상가를 나오자마자 민사장(김민재)과 용역들이 철거민들을 습격하게 되고, 석헌은 위험에 처한 루미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초능력을 사용하게 된다. 루미를 구하기 위해 사용한 초능력은 당연하게도 철거민들을 도와주게 되었고, 이를 통해 그는 남평상가의 영웅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그는 우연히 탄생한 영웅인 것이다.

순수한 피해자라는 강박

<염력>의 수상한 지점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이 영화는 등장인물들에게 기본적인 위치와 역할을 강요한다. 아버지로서 석헌의 모습을 관객들에게 강조했던 것처럼, 철거민들과 정현에게도 순수함을 강요한다. 이러한 징후는 영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현은 그동안 루미에게 일어났던 일을 석헌에게 자세히 설명하지만 석헌은 그런 정현에게“너 루미와 무슨 관계야? 루미 좋아하냐?”라고 반문하며 루미를 도우는 그의 의도를 점검한다. 날로 과격해지며 수가 많아지는 용역들에 대한 대비를 논의하는 철거민들의 회의에서 김씨(유승목)가“다른 철거민들은 화염병도 준비하고 뭐, 그러던데”라고 말하자 정현은“이런 사건은 여론이 80이다. 화염병 등장하면 저쪽에다 좋은 거리 하나 더 만들어 주는 거예요”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김씨 부인이“저놈들은 쇠 파이프로 사람 막 때리고 그러는데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때리면 맞으라는 거예요?”라며 다시 묻는다. 이때 정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이러한 지점은 몇 년 전부터 한국사회에 떠도는 ‘순수한 피해자’라는 강박적인 통념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 말은 선악구도에 위치한 착한 심성의 피해자를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한 순수한 피해자는 어떠한 사상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외부세력의 도움이나 불법적·비도덕적 행위, 불순한 의도 등이 배제된 멸균과 진공 상태의 피해자를 뜻한다.
<염력>은 순수한 피해자에 대한 강박으로 다시 써 내려간 ‘용산참사’이다. 이것을 한국사회의 트라우마에 대한 트라우마가 그려낸 초상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용산참사 당시 경찰특공대에서 희생자가 발생한 점을 들어 피해자였던 철거민들이 가해자로 전복된 상황을 목격한바 있다. 세월호 참사 때도 보상금에 눈이 멀어 떼쓰는 유가족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무언가 하나라도 지적할만한 사항이 등장하면 피해자가 가해자로 전환되는 것은 여반장이었다. 때문에 피해자는 자신이 피해자라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또 증명해야만 했다. <염력>의 카메라가 등장인물의 의도를 끊임없이 점검하는 것은 바로 대형참사들, 즉 한국사회가 간직한 트라우마의 트라우마가 아닐까. 이렇게 볼 때, 석헌이 아버지로서 루미를 도우고 있다는 점을 영화 끝까지 견지한 점이 의미심장해 보인다. 불순한 의도가 없기에 석헌은 비로소 용산참사가 남긴 트라우마를 수정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 것이다. 다시 영화의 후반부로 돌아와 철거민들이 경찰과 함께 들이닥친 철거용역들을 피해 건물 옥상으로 대피하기 시작한다. 이에 경찰 특공대는 컨테이너 박스에 올라타서 옥상으로 진입을 시도한다. 하지만 몸싸움 끝에 김씨는 계단에 위태롭게 매달리게 되고 경찰이 올라탄 컨테이너 박스는 크레인에 위태롭게 매달리게 된다. 이때 석헌이 등장해 자신의 초능력으로 위기에 빠진 김씨와 경찰의 목숨을 구하기 시작한다. 용산참사를 상기하게 만들지만 현실과 반대로 그 누구 하나도 죽지 않은 이 장면은 정현이 철거민들에게 꼬투리 잡히니 화염병은 절대 안된다고 외치던 모습의 반복처럼 보인다. 동시대 한국사회가 요구한 순수한 피해자의 프레임을 완성한 석헌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경찰에 순순히 연행된다. 이어지는 에필로그가 석헌의 출소와 다른 곳에서 새출발 한 루미, 행복한 표정의 철거민들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지금도 고통 받는 현실의 피해자와 달리 영화 속 그들이 행복해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백 태 현 / 동국대학교 국제학생센터강사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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