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호 기획:영양학의 오류] 환원론적 영양학의 한계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각종 미디어에서는 식이요법을 위한 수많은 영양학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정보를 받아들이며, 건강을 위해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 노력한다. 과연,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영양학 정보들은 건강한 정보일까? 이러한 질문을 시작으로 본 지면에서는 영양학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건강한 영양섭취를 위한 방법을 제언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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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학의 한계

필자는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로 매일 100여 명의 직장인들을 만나 건강에 대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만나는 사람들의 건강상태는 아주 비슷하다. 고지혈증, 고혈압, 고혈당, 과체중 혹은 비만 그리고 지방간. 이런 건강상태는 심근경색, 협심증, 뇌경색, 뇌출혈, 암, 치매 등 심각한 질병들이 자라기 쉬운 비옥한 토양과도 같다. 과거에 필자는 건강진단을 통해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조기에 발견하고, 더 심각한 질병이 발생하지 않도록 열심히 약을 먹게 하는 것이 의사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회의감에 빠지게 됐다. 약을 먹는 사람들은 건강해지기는커녕 또 다른 약을 먹게 되는 경우가 많았고, 일부는 약을 먹어도 혈압이나 혈당이 조절되지 않기도 했다. 더 이상 의사로서 손써 볼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이즈음 필자는‘영양(nutrition)’의 엄청난 치유 효과를 경험하게 됐고, 영양에 대한 오해로 인해 우리 사회가 병들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저탄수화물 다이어트’의 유행

현재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가장 큰 오해를 꼽으라고 한다면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를 꼽을 수 있다. 많은 사람은 탄수화물이 비만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밥’을 많이 먹으면 살찐다고 얘기하고, 살을 빼기 위해 ‘밥’을 적게 먹기 시작했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하지만 이렇게 ‘밥’을 줄이는 사람들치고 체중 관리에 성공하거나 건강을 제대로 유지하는 사람들을 찾아 보기 어렵다. 이런 주장이 터무니없다는 것은 1970년대 한국인들이 지금보다 3배가량 많은 밥을 먹었는데도 아주 날씬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한국인이 점점 뚱뚱해지는 이유는 ‘밥’을 많이 먹기 때문이 아니라, 밥을 먹을 때 고기, 생선, 계란, 우유, 식용유, 설탕이 듬뿍 들어간 반찬을 많이 먹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탄수화물 다이어트’가 유행인 것은 현대 영양학의 ‘환원론적’ 관점 때문이다.

 

가정과 실험에 의존하는 ‘환원론’

건강과 식품에 대한 많은 연구는 ‘영양섭취 분석’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어떤 음식을 얼마만큼, 얼마나 자주 먹었는지 조사하고, 각 음식의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각종 미네랄과 비타민 구성을 대입해 사람들이 각각의 영양소를 얼마나 섭취하고 있는지 분석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어떤 영양소가 부족하면 어떤 증상이 발생하니 그 영양소를 보충해야 한다거나, 어떤 영양소가 과잉이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그 영양소를 줄여야 한다는 식의 조언이 이어진다. 하지만 매우 정밀해 보이는 이 과정은 실제로 매우 부정확한 추정에 불과하다. 오늘 먹은 사과와 어제 먹은 사과의 성분이 다르고, 산지가 달라지면 당연히 그 성분도 달라진다. 우리 집 된장국과 옆집의 된장국도 결코 같을 수가 없다. 물론 이런 식의 추정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이런 영양평가가 매우 정밀하다고 착각하고, 각종 영양소를 ㎎, 심지어 ㎍ 단위까지 맞추려고 한다.

 

영양소냐 음식이냐

많은 영양학 연구는 매우 단순한 연구방법으로, 개별 영양소의 양에 따라 건강상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평가하는 방식이다. 가령 ‘영양평가’에서 엽산 섭취가 부족한 산모가 출산한 아이에게서 신경관결손이라는 선천성 기형이 많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면 많은 언론에선 “선천성기형을 예방하기 위해 ‘엽산 보충제(folic acid)’를 꼭 챙겨 먹어야 한다”고 보도한다. 그런데, 엽산 보충제를 섭취할 경우 대장암이나 유방암 발생 위험이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엽산 보충제를 먹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하지만, 영양소가 아니라 음식의 관점에서 보면 결론은 아주 명쾌하다. 엽산(葉酸, foliate)은 식물의 푸른 잎에 풍부한 성분이다. 때문에 엽산 섭취가 부족한 사람들은 평소에 채소를 먹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고, 채소를 먹지 않는 산모에서 선천성 기형아가 태어날 위험이 높은 것이다. 그렇다면 선천성기형을 예방하기 위해 산모들에게 충분한 채소와 과일 섭취를 권해야 한다. 다행히도 채소를 통해 엽산을 섭취할 때 오히려 유방암과 대장암 발생 위험이 감소한다. 채소의 유익함을 엽산이라는 하나의 성분으로 환원해 해석하고, 현실에 적용하게 되면 이런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다.

 

토마토와 라이코펜

일부 영양 전문가들은 토마토를 먹을 때 견과류나 지방을 함께 먹는 것이 좋다는 ‘고급상식’을 전한다. 토마토에 있는 라이코펜(lycopene)이라는 성분이 전립선암 예방과관련 있는데, 토마토는 지용성이라 지방 성분을 함께 먹어야 흡수율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다시 라이코펜을 음식의 관점에서 바라보자. 라이코펜은 토마토의 대표적인 영양소다. 때문에 라이코펜 섭취가 많은 사람은 토마토 섭취가 많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라이코펜의 항암효과는 라이코펜 단독의 효과일까? 토마토엔 라이코펜 외에도 수만 가지 이상의 성분이 있다. 사실 우리는 현재의 기술로 측정 가능한 성분만 존재를 인지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효과를 라이코펜 하나의 성분으로 환원시키게 되면 이렇게 웃기고도 슬픈 ‘고급상식’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장담하건대, 토마토를 먹을 때마다 지방이나 견과류를 챙겨 먹으면 뱃살만 나오게 될 것이다. 현대 영양학과 과학은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 우리는 토마토를 먹으면 왜 전립선암이 예방되는지 그 정확한 기전을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토마토의 다양한 성분들이 함께 작용해 암이 예방된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영양은 다양한 영양소들의 합주곡

현대 영양학은 ‘영양소 권장섭취량’을 근거로 다양한 영양제를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권장 섭취량의 결정 과정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권고가 얼마나 허술한지 금방 알 수 있다. 각각의 영양소의 단독 효과만을 가정하고 통계분석의 방법으로 권장량을 설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양소들은 서로 매우 복잡한 상호작용을 한다. 그리고 우리 몸도 상태에 따라 영양소를 흡수하고 활용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사실 특정 순간에 우리가 어떤 음식을 먹어서, 어떤 영양소가 우리 몸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는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함께 먹는 음식 혹은 영양소, 당시 몸의 영양상태, 심신이 처한 상황 및 활동 정도에 따라 매번 달라질 수밖에 없다. 또한, 특정 영양소만 고용량으로 먹게 될 경우 오히려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 우리는 그저 적당히 좋은 음식을 먹고, 우리 몸이 알아서 적절히 조절해주길 바라야 한다.

 

총체론적 영양학의 필요성

지금까지 영양학은 숲을 현미경으로 바라봐왔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인체 내 특정 영양소들의 미세하고 상세한 작용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직면한 건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미경이 아니라 뒤로 물러나 망원경으로 봐야한다. 영양소 단독의 효과만 주목해선 답이 나오지 않는다. 탄수화물을 전체 열량의 80% 수준으로 먹고, 채소 반찬만 먹었던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에서 비만, 당뇨병, 고지혈증은 희소병이었다. 지난 50년간 탄수화물 섭취량이 40%가량 감소하고, 고기, 생선, 계란, 우유 섭취량이 10~40배가량 증가하고, 설탕과 식용유 섭취량이 20~40배가량 증가하면서 만성질환이 창궐한 사실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탄수화물 음식에 동물성 단백질을 추가해서 먹을 때 혈중 인슐린 농도가 2배가량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들이 우리가 겪은 역사적 사실의 생물학적 근거를 제공해준다. 1960년대 지중해 사람들의 식사법을 ‘지중해식단’이라고 추종하기 전에, 비만과 심장질환이 아예 없었던 시절 한국인들이 먹던 식습관을 복원해 ‘한국식단’을 ‘총체론적(wholism)’ 관점에서 정립할 필요가있다.

 

이 의 철 / 선병원 직업환경의학센터 소장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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