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호 사진으로 말해요] 자리 채우기

202-20-4(new)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한다. 담담히 최대한 진솔하게. 아주 작고 사소할 뿐이니 뭐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내게 넌지시 말을 건네던 너도, 무심한 듯 흔쾌히 받아들인 나도.
일순간 무감각한 얼굴로 어떤 형상을 떠올린다. 그러자 이내 그마저도 힘에 겨워하는 모습이 무감각한 얼굴 위로 둥둥 떠다닌다. 오징어 같은 그 모습이 보기 싫어서일까? 급히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고, 아무에게나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으며 그렇게 별 소득 없이 허둥지둥 대다가 한참을 고심하고말았다.
한동안 유약하게 흔들렸던 나는 이제 아무런 준비도, 채비도 없이 다시 시작한다. 더 이상 준비물은 필요하지 않으므로 준비했던 모든 것은 지운다. 그리고 돌아서서 천천히 나에게로 집중한다.
다시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한다. 지독하게 괴롭히던 나만의 악몽은 저 멀리 사라져 가고, 언제 그랬냐는 듯 차근히 채워가는 나를 발견한다. 메스껍던 몸과 마음은 한꺼번에 뻥 뚫리고 나는 내게 넌지시 말을 건넨다. 무심한 듯 흔쾌히, 수고하였노라고.

김내영|myjq180@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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