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호 특강취재: 두산아트센터, <두산인문극장 2018: 이타주의자 Altruist> ] 이타주의 재고의 필요성

두산아트센터는 4월 9일부터 7월 7일까지 <두산인문극장 2018: 이타주의자 Altruist>를 선보인다. 본 기획은 강의, 전시, 공연으로 구성되었으며, 강의는 ‘오늘날 이타주의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를 시작으로 총 8회에 걸쳐 진행된다. 4월 9일에는 최정규(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가 이타주의와 경제에 대해 강의했다.

▲ 강연을 진행하고 있는 최정규 교수                                                                                                             c두산아트센터 제공

이기주의만으로 사회 전체를 설명할 수 없다

현대 사회는 대규모의 협력체제로 이루어져 있으며 도덕적 자기희생이 필요하지 않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사회는 필요와 공급을 조절하며 원활하게 돌아간다. 이러한 경제학적 사유의 발전과정에서 도덕적 심리인 이타주의를 불필요한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으며, 이타주의 없이 개인의 이기심만으로도 사회가 원활히 돌아간다는 믿음이 형성되었다. 즉, 경제학에서 현재 주류 담론은 개인의 욕구와 이기주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부분의 경제학 이론은 순수한 의도에서 사회 구성원의 ‘협력’이 일어나지 않으며, 개인의 욕구와 이기심으로 인해 협력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버나드 맨데빌(Bernard Mandeville)은 그의 저서『꿀벌의 우화』(1723)에서 인간의 도덕에 대해 ‘자유를 제한하는 족쇄’로 평가절하하며 인간의 이기심과 이익 추구행위가 사회를 이끌어나간다고 주장한다. 또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는 이타성을 낡은 본성이라고 일컬으며, 이 ‘낡은 본성’의 탈피가 시장의 발전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진화생물학적으로도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행위가 생존에 유리하다고 알려져있다. 인간의 이타주의가 생존에 불필요한 것이라면, 이타적 행위는 인류와 사상의 발전과 함께 사장됐어야 함이 분명하다. 그러나 인류는 경험적으로 이타주의적 인간을 인식해왔으며, 경제적 측면과 아울러 사회의 다양한 곳에서 이타적 행위를 경험해왔다. 또한 이러한 경험을 통해 사회에 이타주의와 이기주의가 병립하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현실과 밀접한 두 가지 의문에 봉착한다. 먼저 개인의 이익과 도덕은 갈등하는것일까? 그리고 이타주의는 하이에크의 주장처럼 낡은 본성에 불과한 것일까?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 강의자는 청중들에게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100만 원이 생긴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 물었다. 누군가는 갖고 싶었던 전자제품을 산다거나, 누군가는 여행을 다녀온다고 답했다. 질문의 의도는 오직 자신만을 위한‘이기적 만족감’과 타인의 이익에서 비롯되는 자신의‘이타적 만족감’을 구분하는 것이다. 금액의 많고 적음과 별개로, 많은 사람이 이기적 만족감뿐만 아니라 이타적 만족감을 위해 비용을 지급할 용의가 있었다. 간단한 질문을 통해서도 인간이 이기주의와 더불어 이타주의적 욕구를 추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타주의를 증명하는 실험

인간의 이타주의적 행위를 증명하기 위한 실험이 있었다. 일정한 공간에 각각 만 원씩 주어진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다른 한 사람과 짝지어져 있지만, 자신의 짝이 누구인지 서로 알지 못한다. 이 때 짝에게 자신이 가진 일정 금액을 전달할 수 있는데, 그 금액은 3배로 불어나 상대에게 전달된다. 이 실험의 규칙에 따르면, 전체 파이는 3배로 불어날 수 있다. 하지만 실험에 참여한 개인이 가장 큰돈을 버는 방법은 짝으로부터 최대한 많은 액수를 받고, 자신은 짝에게 하나도 주지 않는 것이다. 이 경우에 실험자가 받을 수 있는 최대의 이익은 4만원이다. 이 실험은 자신이 이득을 보는 방법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피실험자의 행위가 쉽게 예측되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결과를 보면 다소 의외의 결과를 알 수 있다. 평균적으로 두 짝이 서로에게 건네는 금액은 6,710원이다.
다시 실험의 전제를 조정하여, 자신의 짝이 누구인지 알게 한다. 그리고 한 쪽이 먼저 돈을 전달하면, 상대방에게 전달금액을 알려준 후 돈을 보내게 했다. 그러자 두 번째 피실험자가 전달하는 액수가 첫 번째의 실험보다 늘어났다. 이 실험은 ‘인간의 행위가 이타주의에 의해 결정된다’고 확정할 수 있는 실험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의 행위가 전적으로 이기주의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결과를 도출해냄으로써 이타주의가 존재함을 증명한다. 또한 상대와 행위를 공유하거나 소통이 가능할 시에는 이타적 행동이 더 크게 일어날수 있다는 근거를 제공한다.

 

이타주의의 상호성과 몇 가지 가설

이제는 위의 실험을 통해서 이타주의에 대해 어느 정도 정의할 수 있다. 이타성은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고, 타인에게 이익을 주려는 속성이다. 이러한 속성에 대해 여러 가지 예를 들 수 있다. 헌혈, 자원봉사, 심지어 투표까지도 어떤 의미에서는 이타적이다. 몇몇의 경우에 이타적 행위가 자신에게 손해만 주는 것은 아니다. 어느 경우에는 자신의 희생이 보답으로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이것을 이타주의의‘상호성’이라고 한다.
이런 이타적 행위는 동물에게서도 나타나는데, 두 동물의 예를 통해 이타적 속성의 상호성을 관찰 할 수 있다. 먼저 상호성이란 자신에게 이익을 주는 행위를 한 상대에게 이익을 주고, 자신에게 해를 끼친 상대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이다. 뱀파이어 박쥐는 매일 사냥에 나서지만 사냥 성공률은 20% 밖에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대략 5일에 한 번 사냥하는 셈인데, 사냥을 더 오랫동안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 다른 뱀파이어 박쥐가 상대에게 자신의 피를 나눠준다. 피를 나눠주는 상대를 분석해본 결과, 이전에 자신에게 피를 나누어주었던 박쥐에게 다시 피를 나눠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어캣의 경우를 보면, 미어캣은 돌아가면서 보초를 서는 동물로 유명하다. 보초를 서는 미어캣은 천적이 나타날 경우, 경고음을 내 동족을 보호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소리를 냄으로써 천적의 목표가 되기 십상이다. 이처럼 동물들도 자신에게는 해가 가지만 다른 상대에게 이익이 가는 행위를 통해 이타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상호성은 강함과 약함에 따라 전략적, 비전략적으로 나뉜다. 이 둘은 다시 약한 혹은 강한 상호성이라고도 불린다. 전략적이며 약한 상호성을 가질수록 자신의 희생으로부터 보답을 기대하는 경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이타주의의 상호성과 관련된 몇 가지 가설이 있다. 다음의 네 가지 가설로 인간의 이타주의적 행동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정의하고 어떤 방향으로 발전될지 추론할 수 있다. 첫 번째는 ‘혈연선택가설’로, 유전적으로 가까운 상대에게 도움을 준다는 관점에서 이타적 행위를 설명한다. 두 번째로 ‘직접상호성가설’은 서로 이타적 행위를 계속할 경우가 그렇지 않을 경우보다 이익이 충분히 큰 경우에 이타적 행위가 발현된다는 관점이다. 이 경우에 전략적 상호성이 높을수록 이타적 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다. 세 번째는 ‘간접상호성가설’이다. 거래를 시작하려는 대상은 거래 상대를 물색하면서 인지도, 평판 등의 가치를 고려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거래의 대상으로 선택받기 위해서 이타적 행위를 하게 된다는 가설이다. 마지막으로 ‘집단선택가설’은 집단 전체가 위험에 빠지는 경우 일정한 희생으로 집단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 희생을 통해 이타주의를 실현한다는 관점이다.

 

왜 이타주의에 주목해야 하는가?

위의 논의를 통해 이타주의가 계속해서 논의되고, 발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이타주의라는 속성이 인간에게 꼭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을 수 있다. 사회에는 이타주의와 이기주의가 늘 병립하지만 이기주의적인 경제적 담론이 우세하게 보인다. 존 롤스(John Rawls)는 누구로 태어날지 모르는 상태에서 사회에 태어나기 때문에, 스스로가 최악의 인물의 처지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이 관점에서 인간의 이타적인 행위는 타인에 자신을 대입함으로써 사회 전체적인 방어기제가 된다.
A4용지나 컴퓨터 같은 사물의 거래에서는 이타적 속성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노동자와 사용자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거래에서는 노동을 판매하는 노동자는 인권의 문제라던가, 사용자와 판매자간의 권력의 문제와 같은 이타적 속성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특정한 분야, 즉 인권적 측면에서는 이타주의적 행위가 반드시 필요하다. 어느 사회든 구성원들은 서로 의존하며 살아가며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지금까지 대규모 협력체계에서 경제적 관점의 논의가 이기주의에 주목했다면, 이제는 경제적 측면의 이타주의에 주목해야 하는 시점이다.

 

최유락 | cyr6160@naver.com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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