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호 인문학술: 노엄 촘스키의 인간론] 노엄 촘스키의 인간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논의는 인류의 영원한 숙제라고 할 수 있다. 노엄 촘스키는 현대 언어학과 인지과학의 창시자이자 열렬한 사회 비평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언어학자로서 학술적 주장으로 인간을 정의한다. 본 지면에서는 언어학적 사유를 통해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탐구해보고자 한다.

플라톤의 문제

노엄 촘스키(Noam Chomsky, 1928~)의 인간관은『통사구조 Syntactic Structures』(1957)가 출판된 이래, 여러 관점에서 다루어졌다. 여기서는 ‘자극의 빈곤 논의(Poverty of the Stimulus Argument)’와 ‘인간의 창의성(creativity)’을 토대로 촘스키의 인간관을 소개하려 한다. 자극의 빈곤에 기반을 둔 논의는 실제로 체험한 자극보다 더 많은 지식을 터득하는 인간의 능력에 착안한 개념이다. 일례로, 우리는 가족이나 이웃과 의사소통하는 과정에서 말을 실수하거나 잘못 듣는 경우가 있다. 그로 인해 말을 시작했다가 도중에 다른 단어나 문장 구조로 변경시키면서 미완성된 문장이나 미처 연결되지 않은 표현들을 접하게 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촘스키는 이러한 언어 환경을 ‘자극의 빈곤(Poverty of the Stimulus)’이라고 특기하였다.
촘스키의 저서에 인용되어 있는 문장들 중 “색깔 없는 녹색 사상이 분노에 떨며 잔다(Colorless green ideas sleep furiously)”의 구조를 생각해 보자. 문장의 첫 부분인 ‘색깔 없는 녹색 사상(colorless green ideas)’은 표현을 사전에서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화자라도 의미적으로 부적합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녹색’은 그 자체로 빛깔이 녹색이므로 ‘색깔 없는 녹색’은 의미적으로 문제가 있다. 또한 대부분의 인간은 이 표현을 이전에 들어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학습 혹은 경험을 통하지 않고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는 ‘창의적’ 능력은 어떻게 얻어지는가? 그리고 경험하지 않은 표현에 대해서 의미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판단력은 어떻게 획득하게 되었을까? 이 질문이 바로 촘스키가 명명한 ‘플라톤의 문제(Plato’s Problem)’이다. 인간에게는 만 4세경이면 빈곤한 언어 환경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모국어를 습득할 수 있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 있으며, 인간에 대한 이해는 플라톤의 문제를 모색하면서 한층 더 깊어질 것이라는 것이 촘스키의 주장이다.

 

통사구조 지식의 내재화와 심리적 실재성

촘스키의 주장에 따르면, 빈곤한 자극과 플라톤의 문제는 인간의 내적 언어 지식의 심리적 실재성(psychological reality)과 언어의 구조적 의존성(structural dependency)의 두 논점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은 모국어에 대한 내적 언어 지식(I-language)이 있는데, 내적 언어 지식에는 세 가지 의미가 복합적으로 담겨있다. 가령 ‘영미’라는 사람의 내적 언어 지식에는 영미 개인(individual)의 내적(internal)인 곳, 마음 또는 두뇌에 ‘의도되어 있는(intensional)’ 언어 구조이다. 내적 구조는 외부 세계와 관련되는 의미와는 완전히 독립적이며 오직 통사구조적 지식만 포함한다. 이 지식은 사용하는 언어에 관계없이 모든 언어 사용자들이 공유하는 지식체계로 보편성을 갖는다. 예를 들어, “꽃이 활짝 폈어”라고 말한 사람의 내적 언어에는 ‘꽃’의 어휘 정보인 품사(명사), 문법관계, 성/수, 형태소 등의 통사적 지식이 표상되어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특기할 점은 화자가 누구이던 ‘꽃’에 대한 통사적 언어 지식은 위와 동일하게 공유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통사적 지식은 듣거나 만지는 등 외부 세계와의 감각적 교류를 통해 경험할 수 없는 추상적 자질이므로 어떠한 경험적 자극의 도움으로 습득될 수 없다. 따라서 내적 지식은 버러스 F.스키너(Burrhus F. Skinner)의 조건화(conditioning) 혹은 강화(reinforcing) 원리 등 경험주의(empiricism)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선험적 지식이다. 또한 촘스키는 언어 습득이 결코 경험에 의해서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 다음과 같은 예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두 문장의 [ ] 부분을 비교해 보면 P1에서는 대명사 them이 the men을 가리킬 수 있지만, P2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영어가 모국어인 모든 인간이 문법 교육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학교 교육은 이런 내용을 포함하지 않으며, 학교 교육을 받지 않아도 이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내적 언어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을 알수 있다. 이러한 지식이 내재되어 있는 인간은 창의적이고 생산적이며,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다. 인간의 내적 언어의 심리적 실재성에 대한 신경과학적 설명과는 별도로, 최근 촘스키는 인간의 마음을 신체 기관과 비유하면서 사실주의(realism)적 설명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마음-몸의 일원론(mind-body monism)으로써 인간이 가진 언어 지식의 심리적 실재성을 신체 기관의 해부학적 유추법으로 설명한다. 가령 신체 기관과 인지적 체계가 하나의 유기적 구조를 이루지만 독립적으로 운용되는 것처럼, 인간의 언어와 인지 능력도 유기체적으로 결합하지만 독립적인 운용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통사구조 지식의 본성과 구조적 의존성

촘스키는 최근의 저서『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What Kind of Creatures Are We?』(2016)에서 내적 지식은 암묵적으로 습득되는 선천적 지식(competence)으로서 품사(명사, 동사 등), 구(phrase), 형태소(morpheme), 음소(phoneme), 음(speech sound) 등의 본성적 언어 성분 요소들이 서로 적절히 병합된, 오롯이 통사 구조적인 형태로만 표상된 구조라고 전제한다. 이 전제는 촘스키가 스키너의 언어행동(Verbal Behavior)의 경험론에 도전하면서 출범시켰던 약 60년 전부터 현재까지 현대 언어학의 근간을 이룬다. 이 전제는 위에서 언급한 통사 구조적 독립성뿐만 아니라 구조적 의존성(structure-dependence)을 함유한다. 촘스키가 논의한 문장 “Instinctively, eagles that fly swim”의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이 문장에서 부사 ‘instinctively’는 동사 ‘fly’, ‘swim’ 중 오직 ‘swim’과 병합될 수 있다. 이것은 통사적 구조의 독립성뿐만 아니라 의존성을 증명한다. ‘날다(fly)’와 ‘수영하다(swim)’의 두 동사의 의미만 고려하면, 동사의 의미는 본능적 능력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의미적으로는 부사가 두 동사와 모두 관련이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 문장에서 부사 ‘instinctively’는 ‘swim’만을 수식하는 것이 문법적으로 올바른 통사 구조로 인식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통사 구조적으로 볼 때, ‘[eagles [that fly]]’는 하나의 독립적인 명사구이다. 이 표현에 쓰인 언어 성분들은 서로 분리될 수 없으므로, 부사 ‘instinctively’는 오직 ‘swim’과의 병합만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양상을 토대로 촘스키는 인간의 ‘병합’능력은 구조적 의존성에 의거하며, 구조적 의존성은 여러 언어에서 보편적으로 관찰되는 인간의 본성적 언어지식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촘스키는 인간이 가진 병합 능력의 심리적 실재성은 신경과학적 실험 자료로 설명하기에는 아직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한다. 사실 촘스키는 1959년 이래 약 60년 간 물리적 환원주의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취했다. 예를 들어, 브로카 영역(Broca’s area)과 언어 본능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인용하면서, 보편문법적 구조와 그렇지 않은 구조에 대해 두뇌가 질적으로 서로 상이한 반응을 보인 점을 주목했다. 동시에 이러한 연구가 꾸준히 축적될 경우, 1세기 전부터 논의되기 시작한 환원주의가 인간관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을 조심스럽게 관망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도 부사 ‘instinctively’가 두뇌에서 어떤 작용을 거쳐 실시간적으로 동사 ‘swim’과 병합으로 결속되어 문장이 이해되는지 설명 할 수 없다. 두뇌 기능에 대한 이해는 지난 사반세기에 걸친 신경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과거보다는 깊어졌지만, 언어 지식은 여전히 매우 창의적이고, 복잡다단하면서도 추상적이다. 여전히 언어 성분 요소 간의 독립적 관계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두뇌의 인지 능력의 한계를 판단하기에는 불확실성이 크다는 것이다. 촘스키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언어 지식을 물리적 환원주의나 복잡다단한 기계론적 설명에 의지하여 설명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과학적 근거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는 점을 시사한다.

 

인간의 무한한 창의성과 귀환성

위에서 논의되었듯이, 빈곤한 자극과 플라톤의 문제는 인간의 내적 언어 지식의 심리적 실재성(psychological reality)과 구조적 의존성(structural dependency)의 두 논점으로 발전되었음을 실증적으로 관찰하였다. 빈곤한 자극의 논의는 한층 더 나아가, 인간의 무궁무진한 창의적 능력(creativity)과 통사구조의 귀환성(recursion) 발견으로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인간의 창의적인 표현 능력은 통사구조의 귀환적 특징과 직접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무한한 창의적 표현 능력의 사례로, 화가 김점선의『바보들은 이렇게 묻는다』(2005)에서 이용한 문장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김점선은 “나는 매일 물을 마신다”의 문장과 유사한 의미를 다음과 같이 다양한 구조로 변경시켰다. 예를 들면, “나는 나에게 매일 물을 준다”, “나는 나 자신에 매일 물을 붓는다”, “나는 내게 매일 물 먹인다”, “나는 나를 매일 물속에 담근다”, “나는 나를 매일 물에 적신다”, “나는 매일 물을 보충한다”등이다. 문장들은 서로 다른 통사적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들은 감각적으로 조금씩 차이가 보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유사한의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문장들에는 모두 다른 동사들과 다른 조사들이 쓰였다. 기본적으로는 거의 동일한 명제(proposition)가 담겨 있지만, 동사와 조사의 상이한 정도에 의해 문장의 구조뿐만 아니라 의미적으로는 조금씩 변형된 창의적인 문장들이 생성된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창의성’은 어떻게 발달 또는 발현되는 것인가? 한편, 창의성은 구조적인 의존성을 무시한 병합의 결과에서는 발휘되지 않는다. 가령, “나는 나에게 물을 준다”를 “나 나을는 물다 준에게”라는 문장으로 변형시켰을 경우, 기본적인 의미가 전달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구조적 의존성이 와해된 형태이므로 창의적 문장으로 인정될 수 없다.
통사 구조의 귀환적 특징(recursion)은 인간의 창

의적 표현 능력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구조적 의존성과 직접 관련되는 개념이다. 다음의 사례에 있듯이, 명사(Noun), 동사(Verb) 등의 어휘범주와 명사구(Noun Phrase), 동사구(Verb Phrase), 구 구조 범주들, 그리고 문장(Sentence) 등의 범주들이 겹겹이 반복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구의 구성 성분들의 반복적 출현으로써 문장 표현의 창의적 생산성은 무한대로 심화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구조를 보면, 문장 전체를 가리키는 S1 안에 또 하나의 문장인 S2가 포함되어 있다. NP1 내부에는 또 하나의 명사구인 NP2가 담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통사 구조적 다양성, 무한성, 생산성은 인간의 창의적 언어 구사력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인간 언어의 보편적 특징이다. 한국어에도 이러한 통사구조 성분의 귀환성을 다음 문장들에서 엿볼 수 있다.

위의 문장들의 통사구조를 분석적으로 보면, ‘영미의 친구’와 같은 명사구는 끊임없이 제2의, 제3의 명사구로 새로운 구조들이 생성될 것이다. 레이 재켄도프(Ray Jackendoff)에 의하면, 이러한 귀환적 구조들이 거듭 반복적으로 귀환되기 위해서 인간의 마음과 뇌에 구조들이 무의식으로 거듭 저장된다. 이 과정에서 보다 견고한 문법의 내재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논의한 바 있다.

 

언어를 통한 인간 연구의 방향성

우리는 인간의 내적 지식과 통사 구조적 의존성이 언어 보편적이라는 점을 관찰하였다. 촘스키는 인간의 창의적 능력은 “아마도 인간의 지능으로는 절대 꿰뚫지 못하고 영원히 알 수
없는 비밀 중 하나로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피력한 바 있다. 이것은 촘스키 자신이 주창하고 있는 심성적 실재성이 본유적(本有的) 관념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미 논의한 바와 같이, 인간의 언어적 창의성도 보편적 양상을 띨 가능성이 크다.
촘스키의 인간관은 인간의 보편적 인지 능력을 토대로 언어의 담화 화용적(discourse pragmatics) 기능을 강조하는 마이클 토마셀로(Michael Tomasello)와 같은 학자들의 인간관과 크게 대조를 이룬다. 이 학자들은 통사적 구조 보다는 담화의 맥락과 화자-청자 간에 실시간적으로 사용되는 언어 표현들의 다양한 양상에 주력한다. 즉 언어의 의미와 구조가 담화 상에서 어떻게 다른 양상을 보이는지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따라서 언어학자들의 인간관은 인간 언어의 어떤 구조적 양상에 주력하는지에 따라 학파들이 서로 다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이밖에 인간 언어의 다양성과 보편성 및 보편문법에 대한 논의는 음악, 춤, 건축양식 등을 포함한 문화의 영역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문화에 대한 최근 연구에서는 국가, 민족에 따라 다양한 특징들이 어떻게 보편구조로 범주화되며 자의성을 갖는지에 대해 매우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재켄도프는 음악의 다양성과 보편성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악기 구성과 느낌, 박자 등에 보편문법이 있음을 발견한 바 있다. 그의 연구에서는 문화와 언어의 다양성을 보편문법적 요소로 체계화하고, 이러한 보편문법이 인간의 언어 능력과 인지 능력에 어떻게 획득되는지에 대한 연구로 이어진다. 문화의 보편성이 어떻게 인간에게 선험적, 유전적으로 촉발되고 다음 세대에 전달될지에 대해 질문하면서, 문화에 대한 보편문법은 두뇌의 생리적 능력으로 어떻게 규명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탐구한다. 이러한 연구는 문화적 보편문법의 내재화와 심리적 실재성에 대한 질문으로서 마치 촘스키가 제기한 통사구조의 보편성과 심리적 실재성에 대한 연구와 동일한 성격의탐구로 보인다.
촘스키는『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의 마지막 부분에서 인간의 마음에 대한 심리적 실재성에 대해 간략히 논의한 바있다. 그는 세상에는 인간의 언어 지식과 관련하여 아직 미해결의 난제가 산재해 있으며, 부분적으로는 어디엔가 신비한 형태로 숨겨져 있을 가능성을 낙관한다. 또한, 신 그라이스(Grice)주의 화용론은 새롭고 흥미로운 시도이며 인간의 창의적 언어 사용이 화용구조로 얼마나 설명될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도 언급하고 있다. 만약 촘스키의 주장이 전적으로 옳다면, 인간의 창의적 언어 사용은 ‘아마도 인간의 지능으로는 절대 꿰뚫지 못하고 영원히 알 수 없는 비밀’ 중 하나로 남을지도 모른다. 언어와 인간에 대한 논의를 통해 촘스키는 아마도 자신이 주창하고 있는 심성적 실재성의 본유적 관념론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또한 촘스키가 짤막하게나마 화용적 접근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은 인간에 대한 융합적인 조명이 머지않아 통사구조를 비롯한 화용구조, 음운구조 등 다양한 언어구조와 언어가 속해있는 문화의 심성적 실재성과 보편성에 대한 연구가 공동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을 제시하는 이정표가 되지 않을까?

 

조숙환 /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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