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호 테마서평: 인류의 미래] 인류 스스로의 미래를 논하다

[1] 『사피엔스: 인류 약사』(유발 하라리 저, 2015)

[2] 『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유발 하라리 저, 2017)

[3] 『사피엔스의 미래』(알랭 드 보통·말콤 글래드웰·스티븐 핑커·매트 리들리 저, 2016)

 

 

 

 

 

 

 

 

 

 

인류가 4차 산업혁명기에 들어가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류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다루는 ‘인류 미래 담론’ 서적들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유발 하라리(Yuval Harari)가 시리즈로 내놓은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 캐나다에서 진행된 토론회 <멍크 디베이트 Munk Debates>의 결과물인 『사피엔스의 미래』가 특히 돋보인다.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중핵과목교재 『우리가 사는 세계』에 의하면, 전통문명들과 달리 현대문명이 제시한 새로운 솔루션은 ①과학, ②계몽사상, ③민주정치, ④시장경제, ⑤개인에 대한 존중이었다. 이 다섯 가지는 사피엔스의 오랜 여정에서 전대미문의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인류문명의 자산으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 계몽사상, 민주정치, 개인에 대한 존중은 사피엔스의 자유로운 표현과 활동을 담아내는 튼실한 그릇이며, 이 그릇 안에서 과학과 시장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끊임없이 인간 사회의 발전을 추동한다. 이 새로운 솔루션에 힘입어 현대문명은 ‘역사는 진보한다’는 낙관론을 갖게 된 최초의 인류문명이 되었다. 물론 낙관론의 목소리만큼 비관론의 목소리도 당연히 있었다.

 

 

인류의 미래, 낙관과 비관 사이

▲ 2016년 11월 5일 ‘인류의 미래는 밝은가?’를 주제로 멍크 디베이트가 열렸다.                           ⓒ www.munkdebates.com

『사피엔스의 미래』는 ‘인류의 앞날에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가?’를 놓고 낙관론을 대변하는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와 매트 리들리(Matt Ridley), 비관론을 취하는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과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의 토론을 담고 있다. 스티븐 핑커는 ①수명연장, ②질병퇴치와 건강향상, ③경제적 풍요를 통한 빈곤극복, ④전쟁 감소로 인한 평화, ⑤범죄로부터의 안전, ⑥자유의 증가, ⑦교육수준 향상, ⑧ 인권신장, ⑨성 평등, ⑩지능지수 향상이라는 열 개 분야의 상향 곡선 데이터를 제시하면서 진보에 대한 낙관론을 편다. 매트 리들리도 “지구상의 평균적인 사람으로 볼 것 같으면 매년 경제적으로 부유해지고 건강도 좋아지고 행복해지고 똑똑해지고 친절하고 자유롭고 안전하고 평화로워지고, 그리고 좀 더 평등해지고 있다”고 거든다. 그는 자신의 낙관론이 ‘기질’ 때문이 아니라 ‘증거’ 때문임을 강조한다.
알랭 드 보통은 “상향 곡선을 부인 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어리석음과 무지는 지속된다는 사실도 알아야한다”는 말로 두 사람의 낙관론이 인간의 불완전함(인간의 불완전함을 강조하기 위해 그는 인간의 머리를 ‘결함 있는 호두’라고 지칭하였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말콤 글래드웰도 보통을 거들어 “기술을 비롯해 여러분야가 발전할 경우 그 반대편의 재앙적인 본성과 규모도 비례해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인류가 특정 분야에서 이룬 거대한 도약의 반동으로, 스스로를 파괴할 수 있는 능력도 거대한 도약을 이루고 있다”고 하며 진보가 인류의 ‘실존적 위험’을 더 키워 놓았다고 주장했다.

 

 

호모 사피엔스의 허구적 상상력

그러나 필자가 더 관심을 두는 것은 하라리의 두 책,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에서 제기되는 ‘호모 데우스 담론’이다. 하라리는 두 책에서 과학기술이 진보를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사피엔스를 신으로 업그레이드할 것이라고 강력한 전망을 하고 있다. 호모데우스의 출현은 호모 데우스와 호모 사피엔스 간의 신분 불평등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 새로운 불평등은 생물학적 사실에 근거한 불평등이므로, 전통문명들의 관념적 신분 불평등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그는 『사피엔스』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의 지배자가 되고 또 호모 데우스로까지 업그레이드되는 데 큰 영향을 준 세 개의 혁명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한다. 하나는 7만 년 전의 인지혁명이고, 다른 하나는 1만 2천 년 전의 농업혁명이며, 마지막은 5백 년 전의 과학혁명이다. 농업혁명과 과학혁명은 이미 잘 알려져 있기도 하고 지면도 부족해 생략하고 인지혁명에 대해서만 소개한다. 그에 의하면, 인지혁명은 문화라는 상호 주관적 실재를 출현시켰다. 실재에는 ①주관적 실재(개인에게만 국한된 생각과 느낌), ②객관적 실재(물리적 질서처럼, 개인의 생각과 느낌에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 ③상호주관적 실재(문화처럼, 여러 사람의 의사소통에 의존하는 것) 세 가지가 있는데, 세 번째 상호 주관적 실재를 만드는 능력 때문에 사피엔스는 지구를 지배하는 종이 되었다.
인간이 안면 관계로 결속을 유지할 수 있는 집단의 규모는 150명이다. 이 임계치를 넘어서면 안면관계로 결속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런데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일어난 인지혁명의 결과, 사피엔스는 허구적 상상의 질서인 문화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 능력 때문에 수백만 명 이상의 인구가 유연하게 협력 가능해졌다. 문화는 거짓말처럼 허구이지만 개인의 거짓말과 달리 그 구성원들이 함께 실재라고 믿는 것이다.
하라리는 사피엔스의 본성이라는 객관적 실재에 더욱 잘 부합하는 그런 문화는 존재하지 않고 모두 상상 때문에 구성된 다양한 허구적 문화들만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근대 민주주의 문명의 핵심 가치인 평등, 자유, 개인의 인권을 허구의 산물로 단정한다. 그는 구체제인 왕정제도가 프랑스 혁명 때문에 국민주권제도로 바뀐 것을 인간의 본성에 더욱 더 적합한 발전이나 진보로 보지 않고 단순한 허구의 교체로 설명한다. 또 그는 1776년의 미국독립선언서에 나타난 인간 평등의 가치를 기원전 1776년의 함무라비 법전에 나타난 신분제와 남녀차별의 불평등 제도와 똑같은 허구라고 주장한다. 이 둘은 모두 객관적 타당성이 결여된 신화일 뿐이다.

 

 

동감의 본성과 사피엔스의 미래

필자는 현대문명의 평등·자유·인권 사상이 상호 주관적 실재인 허구적 문화 관념의 산물이 아니라고 본다. 이것들은 사피엔스의 생물학적 본성 속에 있는 객관적 실재인 원초적 동감(Sympathy)의 정서를 발견하고, 이에 부합하는 문명을 건설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출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원초적 동감에 의하면,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맹목적으로 우선시킬 수 있는 특권을 갖고 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 그러한 주장은 어떤 사람에게도 동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평등하며, 서로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
하라리의 역사철학은 ‘현대문명의 평등사상=허구의 상호 주관적 실재,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의 불평등=생물학적 사실인 객관적 실재’라는 도식으로 압축된다. 당연히 그에게는 생물학적 사실이 더 큰 힘을 갖는다. 이러한 역사철학은 과학기술에 근거한 새로운 인종주의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그는 자신의 역사철학을 정당화하고자 히틀러의 나치즘으로 인해 폐기된 진화론적 인본주의를 ‘과학기술’ 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부활시키려 하고 있다.
하라리는 현대문명이 인류 문명사에서 처음으로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평등하다는 사실을 인정한 시대이며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자랑스러워 한다”고 말한다. 현대의 사피엔스는 기나긴 역사의 투쟁을 통해 문화적 허구에 근거한 불평등한 인간관을 물리치고 인간 본성의 동감에 근거한 평등한 인간관을 확립하였다. 또한, 불평등한 인간관이 사피엔스를 얼마나 고통스럽게 했는지를 역사에서 배워 잘 알고 있다. 사피엔스는 원초적 동감의 정서가 말해주는 자명한 사실을 지키기 위해 과거의 불평등한 인간관으로 되돌아가려는 파시즘적 전체주의와 공산주의적 전체주의와 싸웠다. 따라서 사피엔스는 호모 데우스로 진화해 다시 불평등한인간관을 들여오려는 세력들이 있다면 주저 없이 그들과 싸우기를 선택할 것이다. 사피엔스가 과학기술의 도움으로 더 높은 단계로 진화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는 자신의 본성 속에 있는 동감의 정서를 절대 버리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동감 본성을 잘 알고 있는 사피엔스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현대문명이 성취한 평등한 인간관 안에서 소화해서 수용하는 지혜와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평등한 인간관을 수호할 때에만 낙관론도 비관론도 인류의 미래를 위한 보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윤원근 /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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